화가의 발자취(年代記)

권동철(權銅哲) 2021. 8. 10. 15:10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정상화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그가 말했듯 자신의 작품은 외부에서 오는 어떤 영향에서보다 자신 속에 있는 숙성의 과정에 있었다는 말과 같이 언제나 자기 속에서 스스로를 발견하려는 의지의 지속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세계가 70년대 중반을 통해 대두한 국내의 모노크롬경향과 일정한 견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해지면서도 집단적인 경향의 영향이라고 할 수 없는 데서 그 독자의 위상을 가늠하게하고 있다.

 

그의 작품상에 나타나는 방법과 궁극적인 정서가 국내에서 전개된 모노크롬과 적잖이 일치되면서도 집단적 이념의 호응 관계에선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는 데서다. 그의 단색은 오랜 시간을 통해 발효된 독자의 방법에서 이루어진 것이지 이념의 공유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란 점이다.”<평면의 건축-정상화의 작가적 편력과 작품세계, 오광수 미술평론가>

 

 

무제, 1978, 한지에 먹, 64.5×49.5㎝. 작가소장. 사진=서스테인 웍스. 제공=국립현대미술관

 

 

격자화의 완성(PERFECTION OF THE GRID,1977-1992)

 

1977년부터 1992년까지는 일본 고베 체류를 마치고 파리로 이주하여 작업했던 시기이다. 파리에서의 생활이 더욱 긴장되고, 작품에 대한 책임감도 강하게 느꼈다는 정상화는 작가로서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격자화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주목했다.(이인현, 시각에 호소하는 철저한 평면화, 공간, 19806월호)

 

고베에서 이미 격자형 단색조 회화로의 이행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파리에서는 격자화 표면의 구조와 밀도, 그리고 색채에 있어 다채로운 변화가 나타났다.

 

 

무제, 1987, 캔버스에 아크릴릭, 130×97㎝. 개인소장. 사진=이만홍

 

먼저 이 시기에는 정상화 작가만의 독특한 작품 제작 방식인 뜯어내기와 메우기기법이 완성도를 더해갔다. 물감을 캔버스에 바로 칠하는 회화적 전통에서 벗어나 고령토를 뜯어내고 빈 곳을 물감으로 채우는 작가의 노동 집약적인 방식은 1960년대부터 꾸준히 이어져왔으나(정상화 인터뷰,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빙정상화, 2017, 출처:문화체육관광부, ()예술경영지원센터- 원로작가 디지털 아카이빙 자료수집 연구지원 사업, 팀 그리핀, 몇 번이고 되풀이하기:정상화의 과정, CHUNG SNAG HWA, 도미니크 레비 갤러리, 2016, 11-15)

 

1980년대에 들어 다양하게 탐구됐다. 캔버스에 3-5mm 두께로 바른 고령토를 네모꼴로 뜯어내고, 고령토가 떨어진 자리를 유채나 아크릴 물감으로 채워 넣는 행위는 그리드의 간격이나 방향, 바탕 안료의 두께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을 탄생시켰다. ‘무제 90-10-22, 1990’는 사선에 의해 만들어진 격자무늬의 간격을 밀도 있게 구성함으로써 리듬감 있는 화면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무제 79-B, 1979, 종이에 흑연, 155×122㎝. 작가소장. 사진=이만홍

 

다음으로 정상화 화백 화면에도 백색 이외의 흑색, 청색, 자주색과 같은 다색이 등장했다. 한국현대미술의 모노톤 양상을 보여주는 한국현대미술전70년대 후반 하나의 양상, 국립국제미술관, 오사카, 일본, 1983’에 박서보, 이동엽, 최명영 등의 작가들과 함께 참여하여 백()에 대한 깊은 사색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점차 그의 화면에서는 다채로운 색의 변화가 나타났다.

 

 

무제 87-2-10, 1987, 캔버스에 아크릴릭, 162×130.3㎝.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사진=이만홍.

 

백색으로부터 서서히 짙어지는 푸른색이 돋보이는 무제 85-7-1,1985’이나, 정상화 작가 고향 마산바다의 색을 연상시키는 청색으로 제작된 무제 87-2-10,1987’등이 이 시기의 대표작이다. (김경갑, 내 안에 움트는 새로운 것을 청색에 담았죠.:내달 2일 개인전 갖는 정상화 화백, 한국경제, 2007422).

 

=권동철, 2021.8.9.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