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의 발자취(年代記)

권동철(權銅哲) 2021. 8. 14. 16:14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정상화 전시전경. 사진=권동철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에서 개최되었던 《한국의 단색화》(2012.3.17-5.13)는 새삼 한국적 모더니즘 미술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하였다. 이후 국내외 미술계와 미술시장에서 한국의 단색조 회화는 ‘제2의 전성기’라 해도 무방할 주목을 받았다. 포스트모던 또는 포스트민중미술의 시기를 지나고도 한참이 되었는데 다시 소환된 단색조 회화는 이전과 어떤 차이, 차별적 의미를 가질 수 있는가. 어떻게 수용되고 이해되어야 하는가. 이는 꽤나 심도 있는 논의가 본격화되어야 할 의제인 것은 분명하다.<정상화의 추상, 김형미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

 

 

무제 95-9-10, 1995, 캔버스에 아크릴릭, 228×182㎝.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제공

 

모노크롬을 넘어서(BEYOND MONOCHROME, 1993-현재)

199211, 화가 정상화는 20여 년이 넘는 해외 생활을 마치고 한국으로 영구 귀국했다. 귀국 후 경기도 여주에 작업실을 마련한 1996년부터 현재까지를 여주시기로 볼 수 있다. 2010년 들어 국내외적으로 높아진 단색조 회화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그 또한 개인전 및 단체전 참여 횟수가 많아졌고, 2011년 프랑스 생테티엔 현대미술관(Musée d'art moderne et contemporain de Saint-Étienne)에서는 대규모 개인전을 개최했다.

 

여주에 완전히 정착한 이후 정상화는 백색 단색조 회화를 주로 제작하며 작품의 완숙미를 극대화해 나갔다. 뿐만 아니라 이전 작품들을 한지에 프로타주 한 ‘180227-01, 2018’ 등의 작품을 선보이며, 그의 대표적인 시각 어휘인 격자 구조를 다변화했다.

 

자신의 작업을 과정으로 정의내리는 정상화의 작품에는 지난한 노동의 행위가 집약되어 있다. 적게는 수개월에서 많게는 1년의 시간이 걸리는 이러한 노동집약적인 행위는 고도의 정신

적 인내심과 육체적 몰입을 요구한다.

 

지금까지 조수를 한 번도 둔 적이 없다는 그는 작품 제작의 모든 과정을 온전히 본인 스스로 해나간다. 그래서 매일같이 생활 속에서 묵묵히 예술을 실천하며 과정 자체를 반복하는 정상화만의 독특한 창작 방식은 되풀이되는 일상에 대한 기록(사토 렌, 画商, 神戸新聞總合出版)-センター, 1996, 201-207)

 

 

무제 07-09-15, 2007, 캔버스에 아크릴릭, 259×194㎝.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그림이 숨 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2020년 유보나와의 인터뷰에서 정상화는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들어내고 메우는 과정은 내가 캔버스의 평면성을 탐색하고 구성하는 방법입니다. 거기서 나는 호흡의 리듬과 박자와 같은 움직임과 리듬을 발견합니다. 마치 우리가 숨 쉬는 것처럼 그림이 숨 쉬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것을 느껴야 합니다. (Yoo Bona, “How to Become Free: A Conversation with Chung Sang Hwa”, in Chung Sang Hwa. 1964-78, exh. cat. ‘New York and London: Lévy Gorvy/Seoul: Gallery Hyundai, 2020’)”<접촉. 정상화와 모노크롬, 사이먼 몰리(작가, 평론가)>

 

 

 

 

현대서양사상을 동아시아의 전통적 사상과 결부, 복원

그의 회화가 묘사하는 자아는 깊이 몰입되어, 물리적으로 저항적이지만 유연한 세계와 끈기 있는 상호작용을 하며 의식의 행동을 한다. 현대 서양 모노크롬의 사상을 동아시아의 전통적인 사상과 결부시킴으로써 정상화는 회화의 표면의 가치를 이해하는 대안적인 방식을 효과적으로 복원했다.

 

여기서 작가, 회화, 관객은 동일한 생명력의 체현이며 표면은 모든 것이 연결되고 소통하는 상태인 유기적 완전체의 부분으로서 신체가 경험한 세계의 거울이다. 오늘날 정상화와 한국 단색화 작가들이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이유는 아마도 인류가 중요한 지식은 거리를 두고 보는 것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세상과의 직접적인 물질적 교류에서 나온다는 것을 잊음에 따라 직면하게 된 위험에 대한 자각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접촉. 정상화와 모노크롬, 사이먼 몰리(작가, 평론가)>

 

 

정상화 작가. 사진=이만홍. 국립현대미술관제공

 

안의 구조로 전개되는 평면성

대부분 단색화 계통의 작품들에서 발견되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이 평면성이다. 모든 단색화가 평면의 자각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평면성의 자각은 화면에서 일체의 이미지를 제거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것은 말할 나위 없다.

 

그러면서도 평면성의 자각의 감도는 개별적인 차원을 지닌다. 많은 부분에서 평면성은 화면의 균질한 표면의 시도에서 비롯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어느 면에선 정상화의 작업도 균질한 표면의 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의(정상화 화백, CHUNG SNAG HWA) 평면성은 표면의 구조에 얽매이지 않고 안의 구조로 전개되는데서 그 독자의 차원을 형성해간다.

 

동일성의 반복이 균질한 평면성에 대응되면서도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지 않고 내면으로 잠재되는 것은 안의 구조의 형성이야말로 그의 평면구조의 근간이기 때문이다.”<평면의 건축-정상화의 작가적 편력과 작품세계, 오광수 미술평론가>

 

=권동철, 이코노믹리뷰 814,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