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식

권동철(權銅哲) 2021. 9. 30. 16:56

 

‘聖(성)-성스럽고 숭고하다’ 전시전경. (정면 벽 그림)일월오봉도 삽병, 19-20세기 초, 비단에 채색, 149×126.7㎝,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사진=권동철

 

채색과 추상의 연결, 한민족의 전통적 물건

‘DNA: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전시, 78~1010,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관

 

 

전시구성 ‘Ⅰ-聖(성)’에서는 서구 사실주의에 대한 반향으로서 한국미에서 완정미(完整美)가 발굴되고 이에 주목받았던 삼국시대미술부터 고려시대까지의 이상주의적 미감을 살펴본다. 고구려 고분벽화에 담긴 죽음 너머의 또 다른 천상세계에 대한 염원, 통일신라시대 석굴암에 투영된 부처에 대한 믿음과 깨달음에 대한 갈망 등은 성스러운 종교미술로서 ‘성聖, Sacred’이라는 동아시아 미학의 핵심 가치를 잘 담아내고 있다. 한편, 아래 글은 ‘DNA: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전시도록(국립현대미술관, 2021)에 수록된 △<송희경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초빙교수=20세기 한국미술에 호명된 고구려 고분벽화> △<김계원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교수=사진가의 시선에 담긴 석굴암> 중 일부를 요약 발췌했다.

 

 

△강서대묘 현무 모사도, 고구려6세기 말~7세기 전반(1930년 모사), 종이에 채색, 218×311㎝.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제공

 

20세기 한국미술에 호명된 고구려 고분벽화

 

고구려 고분벽화는 해방 이후 평가 절하된 채색화를 되살릴 때 활용할 수 있는 훌륭한 범본으로, 현대성과 동반하는 추상의 대안으로 모색됐다. 일본의 영향에서 벗어난 한반도 고유의 국토색이자 담대한 기백의 표현이며, 현대 회화의 근원으로 인식된 것이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소환은 전통을 호명해야 정체성이 확립된다고 보는 동양화단의 특성을 알려주는 현상이라 할 수 있다.

 

오광수(吳光洙, 1938~)1963년 신춘문예 당선작인 전통 계승의 자세: 동양화의 내일을 위하여에서 동양화의 기원을 고구려 벽화로 보았다. 벽화에 드러난 단순한 힘, 형태가 지닌 조형 감각, 안정된 구도에 의한 충만한 공간성 등이 동양화 본연의 조형 이념과 부합된다는 논리이다. 또한 고구려 벽화의 상징성과 추상성은 정신성이 결여된 서구 회화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오광수의 언술은 동양화단에서 고구려 고분벽화가 채색과 추상을 연결 시켜주는 전통으로 기능했음을 알려주는 단서이다.

 

 

(왼쪽)이종상-연기(緣起), 1972, 대리석분, 백시멘트, 소석회에 무기 산화철,동,채색, 122.3×122.3㎝, 서울대학교미술관 소장. (오른쪽)신영헌-기(氣), 1966, 캔버스에 유채, 100×141㎝, 개인소장. 사진=권동철

 

화가 이종상한국채색화 시작이 고구려 고분벽화

이종상(李鍾祥,1938-)1964년경부터 고구려 고분벽화에 심취하여 벽화의 조형성뿐만 아니라 제작기법연구에도 심취하였다. 그는 한국회화의 역사에서 채색화의 시작이 고구려 고분벽화임을 거듭 강조하며 벽화의 안료를 분석하고 모티프를 일부 변형한 채색화를 발표하였다.

 

그 결과물이 국전에 추천작가의 신분으로 출품한 풍화__72-3, 환각__73-2), <영생 벽화 773>이다. 이 작품군은 고구려 벽화의 안료를 분석하고 모티프를 일부 변형하여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에 위치하도록 구성한 채색화이다.

 

이후 이종상은 고구려 고분벽화 관련 논문을 여러 편 발표했다. 그리고 내가 추구해 온 현대미술도 알고 보면 고대 벽화 기법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하였고, 현대미술의 표현 양식이 제 아무리 다기다양(多岐多樣)하다 하더라도 그 연원을 따져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은 벽화에 닿아 있음을 알게 된다.”라고 고백했다.

 

 

박노수-수렵도, 1961, 종이에 채색, 217×191㎝, 서울시립미술관 소장. 사진=권동철

 

화가 박노수사람과 사물 부각하는 목판화

박노수(朴魯壽, 1927-2013)수렵도에서 인물들이 말을 타고 사냥하는 순간을 포착하기 위해 아이보리블랙 물감과 먹을 섞어 오로지 흑백의 대조만으로 사람과 사물을 부각하는 목판화의 효과를 도입했다. 이러한 박노수의 수렵도는 고분벽화에 표현된 수렵도를 연상시킨다.

 

특히 달리는 말 위에서 상체를 뒤로 돌려 활을 쏘는 파르티안 사법(射法, Parthian Shot)은 무용총과 덕흥리 고분의 수렵장면에 등장하는 사냥 방법이다. 박노수의 수렵도고구려 분벽(墳壁)에서 보는 듯 하는 수렵도를 초묵일색(焦墨一色)으로 옮긴그림이라는 평을 들었다.”<20세기 한국미술에 호명된 고구려 고분벽화, 송희경 이화여자대학교 조형예술대학 초빙교수/‘DNA:한국미술 어제와 오늘도록, 국립현대미술관 2021>

 

 

한석홍, 경주 석굴암 석굴 사진, 1981, 1986, 2000, 국립문화재연구소 소장. 한석홍 기증자료. 국립현대미술관제공

 

사진가의 시선에 담긴 석굴암-이건중의 사진

1945년 총독부박물관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개관하자, 초대 관장 김재원은 박물관 유물 담당 사진가로 이건중(1916-1979)을 기용한다.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 사진을 촬영한 최초의 한국인 사진가였던 이건중은 1946년 경주 호우총 발굴, 1947년 고구려 고분벽화 발굴 조사에 참여했고, 고대 청동기를 비롯한 주요 고미술품 사진을 남겼다.

 

해방 직후 촬영되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이건중의 사진은 풍부한 디테일과 계조, 완벽한 프레이밍과 균일한 톤으로 유물을 시각화한다. 실제로 이건중의 사진 이력 48년을 총망라하는 작품집인 한국의 멋,1978’에는 박물관 공식 사진가로서 유물에 접근이 용이한 작가만의 고유한 시각과 접근법이 엿보인다.

 

그의 석굴암 사진엔 주실 천장 라인과 본존불의 두 상이 겹쳐 있는 것으로 보아, 작가는 사다리를 천정에 육박하는 곳에 설치하고 위로 올라가 파인더를 겨누었을 것이다. 정면 상부에서 천정을 걸치며 강하게 내려친 조명은 불상의 얼굴 하관과 흉배, 그리고 천정을 하얗게 날려 버린다. 결과적으로 등장하는 이미지는 강력한 흑백의 톤과 거친 사진 입자로 번안된 본존의 또 다른 모습이다. 대상의 충실한 교사에 목적을 두는 자료사진과 달리, 여기서는 작가의 주관적 관점과 표현의지가 선명하게 엿보인다.

 

 

(오른쪽 벽면)최영림-불심, 1970, 캔버스에 유채, 흙, 116×116㎝,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진=권동철  

 

이건중의 한국의 멋전체를 아우르는 주제는 전통이다. 사진집에서 작가는 전통을 직접 언급하면서 한민족의 전통적인 물건영구히 남아야 할 우리 것을 기록하고 싶었고, 이러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을 필름에 담아오래 간직하려는 의도가 있었다고 밝힌다.

 

그런데 전통에 대한 관심은 이건중 뿐만 아니라 그가 멤버로 참여한 한국사진작가단의 공통점이었다. 작가단은 19571월 이건중을 위시한 일곱 명의 사진가 성두경(1915-1986), 이경모(1926-2001), 정도선(1917-2002), 정희섭(1917-1971), 조명원(?), 최계복(1909-2002)이 결성한 일종의 전문사진단체다.

 

세계적인 보도사진 전문 통신사인 매그넘(MAGNUM)을 모델로 창립된 작가단은 2년간 활동하며 총 네 차례의 회원전을 개최했다. 결성 시기는 길지 않지만 정부수주의 사진 프로젝트를 꾸준히 수행하던 작가단은 1950년대 후반 사회가 사진을 요구하는 일들이 무엇이었는지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다.”<사진가의 시선에 담긴 석굴암, 김계원 성균관대학교 미술학과 교수/‘DNA:한국미술 어제와 오늘도록, 국립현대미술관 2021>

 

=권동철, 924, 2021. 이코노믹리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