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 소식

권동철(權銅哲) 2021. 10. 10. 18:06

△(정면 벽 그림)윤동구-무제, 1989, 캔버스에 유채, 금박, 나무 오브제, 기타 혼합매체, 192×192㎝, 192×78㎝,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오른쪽)경주 남산 약수곡 석불좌상 불두, 높이 50㎝ 너비 35㎝,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 소장. △(왼쪽 앞)이수경-달빛 왕관 신라금관 그림자, 2021, 유리부표, 황동, 철, 24k금박, 나무, 3D프린트 조각, 진주, 유리, 자개, 131.7(h)×65 ×66.4㎝, 개인소장. 촬영=양이언 ⓒYeesookyung. 전시장사진=권동철

 

한국성과 동시대성의 공존

‘DNA:한국미술 어제와 오늘전시, 78~1010,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 전관

 

 

포스트 모더니즘을 추구하며 다양한 가치와 미감이 공존하고 역동적으로 변모하던 1990년대 이후 한국미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살펴본다. 화(和)란 대립적인 두 극단의 우호적인 융합(Dynamic and Hybrid)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둘의 단순한 더하기가 아니라, 각자의 고유성을 지닌 채 공존하는 일종의 법칙이다. 동아시아 전통 미학에서 화(和)는 결국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제압하는 것이 아닌 상호의 차이를 존중하는 조화를 통해 통일에 이름을 뜻한다. 아래 글은 ‘DNA:한국미술 어제와 오늘’ 전시도록(국립현대미술관, 2021)에 수록된 글을 요약 발췌했다.

 

 

 

경주 남산 약수곡 석불좌상 불두, 높이50㎝ 너비35㎝, (재)신라문화유산연구원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모더니티의 번역과 수용

1990년대 한국미술은 미디어의 발달, 포스트모던의 수용, 문화다양성의 확산, 세계화 등과 맞물려 있었다. 적어도 1980년대 국가가 주도하여 전통을 현대적 민속으로 기획하는 상황을 따르기보다는 세계로 확장된 상황 속에서 나는 누구인지라는 자각의 시간이 도래하게 된다.

 

1990년대 한국미술은 서구 모더니티의 시간을 압축적으로 수용하고 번역하며 갈등과 화합을 찾아가는 과정의 징후를 보여준다. 무엇보다 민주화 이후 영토의 안과 밖 사이를 오고 가면서 스스로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우리의 시각과 타자의 시선을 상호적으로 의식하면서 전통혹은 역사가 말하는 것과 말하지 못 하는 것 사이에서 한국성과 동시대성이라는 지정학적 미학의 사유가 벌어지는 장이었다는 점을 환기해야 할 것이다. <1990년대 이후 전통에 대한 인식, 정현 인하대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

 

 

백남준-반야심경, 1988, 혼합재료, 133(h)×50.6×94㎝, 개인소장. 사진=권동철

 

 

정신과 물질의 융합

백남준은 동양적인 것과 서양적인 것이 중첩된 삶을 살았다. 교육적으로는 서양의 것에 심취

해 있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일본의 교육 제도는 서양에 치우쳐 있었다고 한다. 그는 오히려 유럽에서 자신의 전통과 동양을 새롭게 만나게 된다. ‘에 깊이 침윤된 케이지의 예술세계를 접하면서 백남준은 그동안 자신이 경도되어 있었던 서양 예술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자신이 떠나왔던 아시아의 문화와 사상에 대해서도 재검토하는 계기를 마련’6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백남준은 훗날 존 케이지(John Cage, 1912~1992)를 만나 비로소 선불교의 가능성을 재발견한다. 타자를 통하여 자아를 확인하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로써 그에게 전통이란 반드시 지켜야 할 무엇도 아니고 무조건적으로 동양에 속한 개념과 실천도 아니란 사실은 분명해진다. 백남준은 죽비를 맞은 것처럼 화두가 된 불교의 선()과 공()사상을 자신의 작업에 적용하게 된다.

 

그렇게 TV 부처>가 탄생한다. 백남준은 단지 동서양을 왕래한 게 아니다. 그는 동양의 사상과 서양의 문명을 위계 없이 서로 연결함으로써 정신과 물질을 융합하기에 이른다.<1990년대 이후 전통에 대한 인식, 정현 인하대학교 조형예술학과 교수>”

 

 

 

서봉총 금관(보물 제339호), 신라, 금속(금), 높이 3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국립현대미술관제공  

 

 

 

세 가지의 나뭇가지, 세 마리의 봉황

신라관은 박, , 김이 돌아가면서 왕위를 계승하던 이사금 시대 이후 김씨 집단이 마립간이란 왕위를 독점하던 시기의 관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신라관으로 연상하는 형식은 둥근 대륜에 흔히 출자형(出子形)이라고 부르는 맞가지식 입식이 얼굴 앞쪽의 중앙과 좌우에 세 개 세워지고, 뒤쪽으로 엇가지식 사슴뿔 형태의 두 개의 입식이 세워진 것이다.

 

그리고 예외 없이 대륜에 두 줄의 긴 수하식이 매달려 있다. 이제까지 발견된 신라 금관은 모두 6점에 불과하지만 금동 재질의 신라관은 상당수 출토되었고, 마립간 시대의 왕들은 여섯 명에 불과하여 왕만이 신라관을 쓴 것으로 보기 어렵다.

 

서봉총 금관은 다른 금관과 마찬가지로 맞가지식 입식 세 개와 사슴뿔 모양의 입식 두 개가 장식되어 있고 대륜 아래에는 긴 수식 두 개가 드리워져 있다. 대륜 위에 금판의 테두리를 십자형으로 교차시켜 모자 모양을 만든 다음 그 위에 세 가지의 나뭇가지와 세 마리의 봉황을 장식한 요소는 다른 금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서봉총 금관만의 특징이다. 신라 적석목곽분 묘제에서 북분이 여성 고분인 것을 상기하면 서봉총 북분도 여성의 무덤일 것으로 본다.

 

한편, 의례 도구와 관련하여 서봉총 금관의 재질인 금을 살펴보면, 그 반짝이는 속성이 마치 태양을 상징하며 이는 마립간 시대를 연 김씨 왕조의 설화와도 관련이 있다. 김씨와 관련된 설화는 황금 궤에 담겨서 내려오거나, 금수레를 타고 내려왔다는 등 어떠한 형태로든 빛나는 금속인 금과 관련한 출자(出自)를 가지고 있다.

 

빛나는 하늘로 올라갈 수 있도록 돕는 매개체들이 신라 금관의 관자놀이 부분을 지나는 긴 수하식에 착장된 점은 주목된다. 사람의 맥이 뛰는 관자놀이 부분을 지나는 수하식 유형은 기원전 16세기에서 기원전 14세기로 편년되는 카자흐스탄의 켄제콜(Kenzekol) 무덤의 수하식에서

부터 사브로마트의 여성 사제 무덤인 탁사이I(Taksai-I) 무덤군 6호 쿠르간3의 묘주의 모자에 이르기까지, 또한 현재 유라시아 여성들의 전통 혼례에 쓰는 관에서는 예외 없이 나타난다.

 

삼국 시대 신라 금관은 고대인들이 가지고 있는 천상의 개념, 나아가 인간이 천상에 오르려는 욕망이 표상된 미술품이라고 할 수 있다. 신라인들의 우주관이 신라관의 형식으로 현현하여 신라 사회를 작동시켰다면, 이 시대만큼 미술이 사회에서 역동적인 힘을 발휘하던 시기도 없었을 것이다.<천상에 오르려는 욕망의 상징-서봉총 금관, 이송란 덕성여자대학교 미술사학과 교수>

 

=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21.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