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자료

권동철(權銅哲) 2015. 4. 8. 18:38

 

신창세기(Re Genesis), 91×72.5,삼베위에 옻칠, 흙가루, 숯가루, 뼈 가루, 자개

 

      

여기까지 이르렀다라는 것은 자신에게 가장 맞는 것- 자신의 뿌리근원, 자신이 나온 곳, 그리고 언젠가는 돌아갈 곳을 의미한다. 이정연이 작품을 만드는 물질은 나선이 한 둘레위로 올라온 곳에서 크게 변화하고 있다. 이들은 옻, , 숯이나 돌가루, 삼베 등 모두 자연의 소재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눈에 바로 알 수는 있듯이 그녀의 현재 작품은 흙 느낌 대지의, 거칠지만 눈에 낯설지 않은 독특한 표면을 이루고 있다.

 

In such a way, she has reached here. What suits her best - her own origin where she came from and where she will return at last. Rhee, Jeong-Yoen has been changed to apply natural materials, such as lacquer, clay, ashes of charcoal and stone, clothes and so on.

 

 

   

    신창세기(Re Genesis), 162×130

 

 

이 텍스처의 충격력은 강하다. 강할 뿐만 아니라모체인 대지라는 것을 당연히 느끼게 할 뿐만 아니라 적어도 동아시아 지역의 사람에게는 자신의 뿌리의 깊은 옛날 기억과 연관되는 것에 호소하는 요소를 틀림없이 가지고 있다.

 

Thus her work has unique texture of the earth. Such a texture hints so strongly the mother earth and reminds at least people of East Asia of their own origin and memories.

 

 

   

    신창세기(Re Genesis), 116.5×182

 

 

이정연의 이번신창세기연작에서 그 텍스처와 함께 특징적인 것은 90년대 말까지는 모양을 점차 추상화 시키고 최후에는 모양이 거의 없어져 거의 굵은 선으로까지 되었던 그녀의 회화에 확실한 모양, 뼈와 대() 같은 모양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In Rhee, Jeong-Yoen recent series of 'Re-Genesis' what is very characteristic other than texture is that there appear again firm shapes just like bones or bamboos in her painting where everything used to be abstracted up to only thick lines.

 

 

   

    신창세기(Re Genesis), 162×130

 

 

 

독특한 텍스처와 뼈나 대 같은 특이한 모양으로 된 그녀의 회화는 나에게는 생명이나 어떤 일의 시작을 암시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듯하다. 다시 말하면 모양은 아니고 모양과 바탕에 의해 만들어진 공간인 것이다. 뼈나 대와 같은 모양은 식물과 동시에 통모양의 어떤 종류의 원생적인 동물을 연상시킨다. 즉 어떤 생명체로서의 모양을 이루는 그 시초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Her painting of unique texture and forms of bones orbamboos, for me, signifies the very beginning of life or a certain event. In other words, her work is the very result of forms and texture. Forms like bones or bamboos remind me of plants and a certain primary animals. So to speak, they remind me of the very beginning of a certain life. =시바 시게오, 미술평론가, 일본/(Chiba Shigeo, Art Critic, Japan)

 

 

 

출처=권동철, 이코노믹리뷰 201167일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