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고3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

ddik 2013. 3. 10. 11:39

소유권의 변화

사도행전 4:32~37

 

32.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33.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34.그 중에 가난한 사람이 없으니 이는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35.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36.구브로에서 난 레위족 사람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라(번역하면 위로의 아들이라) 하니

37.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서 사회문제와 관련해서 가장 왜곡되어 있는 부분중의 하나가 돈에 대한 기독교적 태도이다.

 

중세시대에는 돈에 대해서 극단적 회피주의 모습을 보였다. 즉 믿음이 중요하지 돈은 중요하지 않다. 더 극단적인 태도는 돈을 죄악시 하였고, 그 결과 돈과 관련된 노동, 경제활동에 대하여 비관적이고 부정적이 모습을 드러냈었다.

 

but 오늘날에는 기복주의 신앙의 모습, 즉 믿음이 좋으면 돈도 잘 벌고, 부자가 되어 축복받는 것이 당연하다. 그러면서 돈에 대한 소유가 기독교적 신앙의 기준으로 변질되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돈에 대해서 과연 어떻게 그리스도인들이 태도를 취해야 할까?

혹시 대학을 경제학과로 들어가기 위해 준비하는 친구가 있나요?

세상의 경제원리가 하나님의 경제원리랑은 차이가 좀 많이 있습니다.

but 모든 경제원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된 것임을 기억하고, 잘 세겨두기를 바랍니다.

 

먼저 짧게 성경에서 가르치는 돈, 물질에 대한 정의를 잠시 살펴보자.

창1:28절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인간의 삶에 필요한 내용들, 비록 화폐는 아니지만 돈, 물질의 개념인 것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또한 성경에서 합법적으로 사용하는 돈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축복임에 대해서 말씀하신다.

 

잠10:15절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요 가난한 자의 궁핍은 그의 멸망이니라”

잠11:16절 “유덕한 여자는 존영을 얻고 근면한 남자는 재물을 얻느니라”

전5:19절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but 이러한 경고의 말씀도 있다.

잠11:28절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는 자는 패망하려니와 의인은 푸른 잎사귀 같아서 번성하리라”

딤전6:10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약1:15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돈에 대한 의미를 오해, 변질시킨다면 그것이 하나님을 외면하는 우상의 길로 빠져들어 죄를 짓는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so, 돈에 대해서 우리가 생각해 볼 가치, 개념, 경제원리는?

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주신 선물이자,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중요한 도구로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

그러므로 나를 위해서도 사용하지만, 하나님의 영광의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지난주에 이어 또 물질관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고 있다. 오해 X, 시험도 들지 X

 

이 땅에 주어진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 그렇다면 누구의 것? θ

여러분이 누리고 있는 이 모든 것은 누구의 것? θ

따라합니다. “내 소유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내 구주로 모신 사람들의 경제관이 이렇게 바뀌어야만 합니다.

오늘의 제목은 ‘소유권이 변한다!’

소유권이 변한 사람들의 모임인 한국교회가 사회에 얼마나 이바지했을까?

 

작년에 조사된 바에 따르면 국내 전체 사회복지시설 중 약87%가 기독교, 카톨릭교, 불교 등 3대 종교에서 설립되었다. 그 중 기독교가 시설수와 정원수를 합쳐 전체의 59.99%를 차지랬다. 또한 대북 인도적 지원이나 국제사회의 복지사역에서도 기독교가 타종교에 비해 확연히 앞섰다. 골수, 장기기증의 경우는 전체 기증자 중 기독교 27.6%, 천주교 6.3%, 불교 5.7% 순서로 나타났다. 헌혈기독교가 83.4%에 달할만큼 이웃을 위한 사랑의 실천을 나타난 통계로 알 수 있다.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왜 이러한 나눔에 앞장을 선 것일까?

⦿소유권의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행4:32절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

 

믿는 무리, 지난 주에 교회란 뭐라고 했죠? 믿는 사람들이 모임이라고 말했다.

지난주와 동일한 개념으로 오늘 말씀이 반복되어 강조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믿는 사람들의 모임이라 했죠? 죄, 죽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죄용서, 하나님의 자녀로 재탄생,,, 즉 십자가의 능력을 믿고 그것을 지는 사람들의 모임!!!

 

믿음의 사람들이 31절의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말씀처럼 성령충만여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성령의 충만함은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는 능력을 가져다주었다.

but 성령의 충만함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신기한 일들이 벌어졌다.

성도들이 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지난주에 한 마음이란 소유의 개념, 물질의 개념을 갖고 있다면 어렵다고!!

그런데 여기서는 자신의 물건을 서로 나누고, 자기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았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이어진 복음의 능력은 소유, 물질의 개념을 뛰어넘고 한마음, 한 뜻이 되어 나누는 기적이 일어났다.

 

왜? 이러한 기적? 일들이 생겨난 것일까요? 사람의 힘과 생각으로, 단순한 결단으로는 어떠한 물질에 대해서 소유개념을 버릴 수 없다. 거의 불가능한 ‘나의 것’을 주장하는 자기중심적인 경제관에서, ‘자신의 소유권’을 포기하고 그것을 하나님께로 돌리는 ‘거룩한 경제관’으로 변화될 수 있었던 그 이유가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 이유는? 복음을 통해 성령의 체험을 한, 성령충만한 사람들이 말씀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기도시작을 하게 되었다. 그러자 그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물질에 대한 시각이 변했다. 물질의 소유권이 자신에게서 하나님으로 변했다.

내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주인을 하나님으로 인정한 것이다.

 

이처럼 우리 삶에 복음이 들어오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면 모든 소유의 주인이 ‘나’에서 ‘하나님’으로 변하게 된다.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모든 소유의 주인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그렇다면 소유권의 주인을 하나님께로 인정한 사람들의 태도는???

 

⦿하나님께 기쁘게 드리게 되었습니다.

행4:37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

물질의 가치관, 소유권이 하나님으로 바뀐 초대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소유를 팔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이해안되죠?^^

 

물질을 하나님께 많이 드리는 사람, 하나님을 위해 이웃을 돕는데, 선교하는데, 교회에 섬기는 성도님들,,, 부자여서 드릴까요? 돈을 쓸데가 없어서?

그들은 믿음이 참 좋으신 분들입니다.

 

돈이 많다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웃에게 낼 수 있는 것 X

돈이 없는 사람 입장 -> 나보다 많이 가졌으니깐 그렇게 낼 수 있다!

NO!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했기 때문에 아깝지 않게 낼 수 있는 것 O

전재산 1억을 가진 사람이 절반 5천만원을 드리기 쉬울까?

전재산 10만원 가진 사람이 절반 5만원을 드리기 쉬울까?

너무 비약적인가요? 10만원 가진 사람에게 5만원보다 1억중에 5천만원이 더 아깝지 않을까요? 5천만원이나 더 있다구요? 그러니깐 덜 아깝다구요? 그럴까?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X, 있으면 있을수록 더 움켜쥐려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

so,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 즉 사망을 낳는다!

 

물론, 돈을 많이 냈다고 무조건 믿음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그것을 자랑하고, 돈을 많이 낸 이유로 드러내고, 말이 커진다면 그건 꽝!!!

말씀에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이것은 문자적으로 사도들한테 주었다, 전도사님 목사님한테 주었다는 것 X

주님의 교회에 드렸다는 뜻이다.

그저 감사함으로 드러내지 않고, 감사함으로 주인이신 주님께 드리는 것이 큰 믿음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돈을 적게 내면 믿음이 약하냐?

꼭 그렇지 않다. 과부처럼 자신이 가진 생활비 전부를 드린 이의 믿음을 칭찬하신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마음, 정성을 다해 드린 것이라면 칭찬받을 믿음이라는 것이다.

 

많게 내든지, 적게 내든지 헌신 자체가 칭찬받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왜냐하면 소유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자유를 허락하셨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중요한 것은 드린 사람의 마음의 자세인데,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많이 내는 사람의 마음은 자신의 소유가 많건, 적건 기쁨으로 드리기에 더 많이 드리려 한다는 사실이다. 그 기쁨의 자세를 사도행전 4장 33절에,,,

 

행4:33절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큰 은혜를 받아‘ 초대교회 성도들은 구원의 기쁨과 감격으로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자세는 기쁨으로 드려야 한다.

 

but 사도행전 5장 1~11절을 보면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잘못된, 못된 마음이 있었다. 이들 부부는 성령님을 속였다.

 

자신에 것에 대한 소유는 자유였다. 그런데 바나바가 자신의 소유를 팔고 하나님과 사람에게 칭찬을 받을 것을 보았다. 그러자 자신도 인정받고, 칭찬받으려고 자신의 소유를 팔았지만, 모든 것을 드리는 것이 아까웠다. 그래서 얼마를 감추었다. 그 결과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하나님의 징계로 인하여 목숨을 잃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내가 모은 것, 내 힘만으로 모았다고 생각하면 아까울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 아까워한 것을 책망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죽음이라는 무서운 형벌을 내리셨을까?

 

아직 그들의 믿음이 바나바와 같지 않았다. 진실로 복음도 받아들이지 못했고, 성령충만하지 못했다. 그렇기에 큰 믿음을 소유하진 못했다. 그것이 죽을만한 문제는 아니었다.

 

but 이 당시는 교회가 세워져가는 아주 중요한 시기였다. 교회라는 하나님의 거룩한 성전이 만들어져가는, 거룩한 성도들의 고귀한 믿음이 자라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의 욕심을 위해, 사람들에게 인정받으려고, 칭찬받으려는 그 잘못이, 하나님을 속이면서까지 이루려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고귀한, 거룩한 믿음의 신앙이 변절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단호한 처벌을 내리신 것이다. 결코 용납하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많이 드릴 수 있다면 더 좋고, 적게 드린다하여도 감사함으로, 기쁨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목사님과 선생님이 헌금하세요~ 해서가 아니라, 자원함으로 드릴 때 여러분의 소유를 하나님으로 인정하게 되는 믿음을 갖게 될 것이다.

 

이렇게 귀한 믿음의 헌금들은 사도들은 어떻게 사용했을까?

⦿이웃들에게 나누었다.

행4:35절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줌이라”

 

교회는 그 귀한 물질로 이웃에게 사랑을 나누었다.

예수님께서는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순종하여 교회는 이웃을 사랑하는 예수님의 명령을 지켜나간 것이다. 그러자 그들 중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라졌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공동체, 교회가 탄생된 것입니다.

 

이렇게 시작된 것은? 요셉이라는 레위족 사람이 모범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도들은 요셉을 ‘바나바’라고 불렀다.

바나바의 뜻은 ‘위로의 아들’ 즉, 어려운 이들을 위로한 사람으로 불렸다는 것이다. 자신의 물질을 더 이상 자신의 것이 아닌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는 성도들은 이렇게 세상을 위로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렇게 성도, 그리스도인은 물질의 소유권이 더 이상 내가 아닌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해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놀라운 일을 이루는 데 동역하게 된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을 위로할 준비가 되셨나요? 아직 준비가 안됐죠?

 

사실 설교하는 저도 참 이런 말씀을 드릴 때 부끄럽습니다.

나름 드린다고 하지만, 성도님들에 비해 너무 작은 것을 하나님께 드리고 있고, 아직도 내 것을 하나님의 것으로 인정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이 있다.

그렇기에 더 기도하고, 성령으로 충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단지 이 땅에서 예수님 잘 믿어서 공부잘하고, 사업잘하고, 잘 먹고 잘 살면서 죽으면 천국에 오는 것만을 원하셔서 구원하신 것 아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새롭게 만들기를 원하신다.

 

성령을 통해 예수님을 영접한 모든 성도는 삶의 주인이 예수님으로 바뀌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 거기에는 우리 물질, 소유하는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드린 헌금이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어려운 이들을 섬기는 일에 쓰이게 됩니다. 그럼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새 계명을 지키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경제원리, 거룩한 경제관, 소유권을 하나님께로 변화시키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