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과 문화/문화이야기

노매드21 2006. 5. 12. 16:37

요즘 마음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잘 먹고 잘 살게 되면서도 사람들은 자꾸만 외롭다고 말하지요.

 

어디가면 어디가 좋고 어디가 맛있고 어디서 어떤 느낌을 받았더라...는 식의 여행기에 식상할 때, 노매드(www.nomad21.com)로 메일 한통이 날아왔습니다.

 

미국에서 정신건강 상담원으로 일하고 계신 분이었는데, 이 분이 정신 여행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다고 해서, 해보라고 했지요. 우선 저 자신이 즐거울 것 같고, 그리고 이 글을 본 많은 이들이 환호하는 것을 보니 꽤 즐거운 여행이 될 것 같습니다. 이름하여 싸이코 트래블로지!

 

 

-----------------------------------------------------------------------------------

 

[싸이코트래블로지]라는 이름으로 여행과 정신심리를 접목시키는 새로운 기사를 연재합니다. 미국에서 정신과 상담일을 하고 있는 작가에 의해 시도되어지는 이 연재는  작가가 여행지에서 혹은 자신의 작업을 통해서 만난 사람들과 상담 사례들을 통해 우리 모두의 내면여행에 좋은 길잡이가 되어줄 것입니다.

 

한국에서는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을 임상심리사라 부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 미국에서는 정신건강 테라피스트라고 부른다.

 

병원에서 정신과 환자의 면담, 검사, 경과관찰, 의사에게 조언 등이 내가 하는 일이다. 미국은 의사와 테라피스트간의 업무분담이 철저하게 돼있다. 대부분의 정신과 의사들은 처음만 제외하고는, 2주일이나 한 달에 한번, 한 환자를 위해 15분 만 일한다. 15분 동안 대부분 약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끝낸다는 말이다.

 

실제적으로 환자들은 나 같은 사람들을 1주일에 1시간씩 만난다. 영화에서 환자들과 정신과의사들이 만나 심각한 상담을 하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는데, 그게 의사들이 아니라 나 같은 사람인 게 더 현실적이다. 정신과의사와의 상담은 보험처리가 되지 않지만 테라피스트의 상담은 모두 보험처리가 되기 때문이다.

 

나의 경우 병원에 소속되어 일을 하는 것을 더해 남는 시간을 이용해 내 개인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다.

 

나는 지금  미국의 수도 워싱턴지역에 살고 있다. 14년째의 미국 생활이다. 그리고 결정적인 것을 빼먹을 뻔 했다. 나는 돼지띠 남자다. 다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나는 글을 읽을 때 여자 글인지 남자 글인지를 먼저 확인한다. 같은 글도 성별을 알고 읽는 게 느낌의 차이가 크다. 여자 글이려니 생각하고 읽다가, 나중에 남자가 저자인 것을 알고 나면 가끔 당황하기도 한다.

 

여기까지가 나에 대한 소개다.

 

이제부터는 속칭 연재의 변(辨)이다.

 

노매드에 메일 한 통을 보냈다. 기사를 쓰고 싶다고 했다. 내 전문 분야를 밝히고 여행은 예술이라는 노매드 스피릿에 동의하며 여행의 예술을 정신 심리의 예술과 접목시키는 시도를 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수없이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 내가 들었던 인생의 부침들과, 그들이 정신질환을 얻게 된 과정, 그리고 전 세계에서 온 다른 사람들의 환희와 고통을 풀어놓고 싶다고 했다. 역사 속의 인물들에 대한 심리분석과  내가 여행하면서 만났던 사람들의 심리분석도 해보고 싶다고 했다.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의욕이 앞서고 있는 듯했지만,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이고, 그 무대가 노매드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노매드에서 누가 미국 동부지역에오면, 음식과 잠자리를 제공하겠다고 립서비스도 했다.

 

노매드에서는 와이낫, 이라고 간결하게 답을 줬다. 그래서 오늘 첫 글이 나가게 되었다.

나는 앞으로 이 연재에 있어서 두 가지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다. 나의 원칙은 독자들의 협조를 전제로 한다.

 

첫째, 내 전문분야라도 되도록 어려운 말은 쓰지 않을 것이다.

사실 나도 무식해서 어려운 말은 잘 모르기도 하지만 정신분석 혹은 심리학이 너무 대중들에게 어렵게 접근하는 경향을 스스로 경계하기 때문이다. 프로이드가 말한 고착이라는 용어는,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말한 우리 할머니의 말로 풀었을 때 더 이해가 빠르게 된다.

 

둘째, 앞으로 나올 심리학자들의 이론들에 대해서 그 해석은 나의 주관에 따르기로 한다. 지금 연구 논문을 쓰는 것도 아니고 학술 발표를 하고자 함도 아니다. 이 연재의 주인공은 내가 만난 사람들과 나의 경험들이다. 그러므로 이론을 가지고 맞네, 틀리네를 독자들과 시시비비 할 생각은 없다. 물론 팩트 자체가 틀릴 경우 그 지적은 겸허하게 받겠으나 나의 해석에 대해 그걸 증명할 만한 데이터를 내놓으라는 식의 요구는 하지 말기 바란다. 나의 해석이 싫으면 독자는 자신의 해석을 기초로 주관을 세우면 된다.

 

 

바로 첫 편을 시작하자.  첫 번째 이야기는 무의식과 여행이다. 독자 열분들은 이 이야기를 읽게 되면  좀 더 명확하게 이 연재의 기획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프로이드

 

 

프로이드가 훌륭한 이유는 무의식에 대한 개념 정립이다. 무의식은 빙산의 일각이라는 말을 인용하는 것이 좋겠다. 수면위로 솟은 빙산의 일각이 의식이라면 바다 속에 숨어있는 더 거대한 빙산은 무의식이다. 그 무의식이 의식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프로이드의 개념정리는 수많은 대문호와 예술까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그가 정말로 대단한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그가 정신분석이라는 학문을 시작했고, 거기에 파생해서 수많은 심리학, 상담, 의학관련 학문과 이론들이 생겨났다. 그가 시작해서 번성했기 때문에 그를 학문의 아버지 중 한 사람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겠다.

 

그런데 그가 지금도 종종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는 이유는 무의식의 근원을 성(sex)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처음 그의  이론을 접했을 때, 반발감이 먼저 생겼었다. 성이야 나도 좋아하지만 무의식의 근원을 성으로 보고, 문제의 근원을 어릴 때 기억나지 않은 성의 불만족으로 본다는 건-이런 정리가 그의 이론을 너무 획일적으로 내몰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하더라도, 무의식의 영역을 너무 국한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생각했었다. 인간이 기억할 수 없는 태어나 5년여 간의 인생의 부분에 모든 무의식이 정립되 버린다는 그의 이론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차에 구스타프 칼 융을 알게 되었다.

 

 구스타프 칼 융

 

 

이 사람의 이론은 내게 충격적이었다. 왜냐. 프로이드의 이론보다 더 황당해서.

그런데 프로이드보다 덜 과학적이고 증명하기 힘든 그의 황당 이론이 무진장 끌렸더랬다. '집단 무의식'이라는 말 너무 유명해서 다 한 번씩 들어봤을 거다.

 

이 이론은 무의식을 개인 역사에 국한하지 않는다. 내가 비록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것도, 내 집단에서 경험한 게 나의 무의식에 들어있다는 것이다. 이걸 더 넓게 해석해보자.

 

융의 '집단 무의식'에는 내 조상의 역사가 있고, 인류의 역사와 경험이 있다. 그걸 잘만 분석하면, 미래도 있다. 이 얼마나 황당한가. '집단 무의식' 이론이라면, 도대체 해석 못할 꿈이 없다. 이 이론 잘못 사용하다간, 심리학자들 부채 들고 돗자리 피는 일 생긴다. 하지만, 융의 이론은, 제한된 무의식의 세계를 제한 없는 넓은 경지로 끌어올리는 공헌을 한다.

 

이건 내 생각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융은 불교신자 같다.

 

'집단 무의식' 의 이론과 불교의 '연기(緣起)' 이론이 얼마나 유사한가.  '연기'이론이 뭐냐. 한마디로 '이것이 있으니 저것이 있고 , 저것이 있으니 이것이 있다. 내가 있으니 그게 있고, 그게 있으니 내가 있다. 그러니 이 세상에 연관되지 않은 것이 없고 하나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 없다' 이 말이다. 융에게서 불교 냄새가 나는 또 하나의 증거가 있다. '티벳 사자의 서' 영문 번역판에 보면, 서문에 융이 감상문을 무척 길게 실었던 걸 읽은 기억이 난다.

 

 하여튼 '집단 무의식'이론은 한참을 더 공부해봐야 할 주제이고, 과학적 증명이 좀 아쉬운 이론이지만, 난 그 이론을 받아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왜냐. 모든 일에 대해서 해석해주기 무척 좋은 이론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제한되지 않은 무한대의 것들이 무의식 속에 있다는 것. 난 그거 하나는 확실하게 믿는다. 논문이라면 내가 그렇게 믿는 이유에 대해서 이해할만한 예를 여러 개 들겠지만, 그냥 여기서는 통과하자. 게다가 그 예들은 앞으로 연재하면서, 심심찮게 나올 것이다.

프로이드와 융 이야기 하면서, 무의식 이야기했으면, 정신분석학 반은 알고 가는 거다.

 

 무의식과 여행

 

정신 분석학의 궁극적 목적은 인간 안에 있는 무의식을 끄집어내서 의식과 일치시키는데 일조하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행동이 있으면, 그 행동과 관련된 무의식을 찾아낸다. 그리고 그 무의식을 인지하고 의식하며 행동할 때 그건 이미 무의식이 아니라, 의식이 되고, 행동은 치료가 되는 것이다. 무의식을 많이 끄집어내서 의식과 합치시키면 시킬수록 인간은 웰빙하며 살게 된다.

 

'무의식' 그리고 '여행'.

 

당장에 콕 꼬집어 말은 못하겠지만, 뭔가 잘 어울리는 단어들이라는 생각 들지 않는가? 난 여행을 가면, 미술관을 거르지 않는다.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작가들의 무의식을 보려고 노력할 때, 그 그림은 무척 흥미가 있어진다.

 


소설가 김형경씨도 여행중 만난 그림들을 정신분석의 도구로 사용했다.(사람 풍경)

 

그렇게 무의식을 보려고 한참을 폼 잡다가, 종국엔 넓은 미술관을 제대로 구경 못하고, 다리가 아파서 나온 적도 있다. 인간의 그림이나 행동을 보고, 그 사람의 무의식이 한번에 꽂히는 경지가 되려면, 얼마나 공부하고, 경험해야 될까. 그 경지에 오른 테라피스트를 보면 무척 부럽다.

 

심하게 우울한 사람이나 아픈 사람 빼고, 인간은 누구나 여행에 대한 갈망이 있는 것 같다. 테라피스트는 환자의 여행에도 관여한다. 종종 여행을 좋아하는 환자들이 있는데, 그들은 항상 떠나기 전에 테라피스트들의 의견을 구한다. 여행을 갈 수 있는 상태인지 아닌지에 대한 자문이다. 테라피스트의 말은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편이라서, 가지 말라고 하면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그 의견을 이야기해 주는 게 보통 일이 아니다. 여행을 다녀와서 입원해 버리는 환자가 있고, 더 좋아지는 환자가 있다. 똑같은 환자들이 그 다음번에는 반대로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경지에 오른 테라피스트들은 그걸 한 번도 틀리지 않고 예상하더란 말이다. 어찌 보면 상대방의 무의식은 다른 상대방의 의식으로 보는 게 더 쉬운 경우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잘 훈련을 한다면 말이다.

 

독자 여러분은 앞으로 나와 여행을 하면서, 잠재된 무의식을 끄집어내는 연습을 하게 될 것이다. 여행을 떠나면 떠나는 이유에 대한 심리분석을 할 것이고, 사람을 만나면 그 사람에 대한 심리분석을 할 것이다. 어느 장소에 가면 그 장소가 내 심리에 끼치는 영향을 이야기할 것이며, 환자들 이야기를 하며, 자신의 심리에 접목시켜 볼 것이다.

 

죽음에 대한 여행을 해보며, 거기에 연계된 자신의 무의식을 생각해 볼 것이고, 마음의 상처는 어떤 식으로 치료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볼 것이다. 이 연재를 읽는 노매드 독자들이, 자신의 무의식을 많이 끄집어내서, 의식과 일치시키는 능력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

 

앞으로 함께 여행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