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길라잡이

Panna Vamsa 2009. 6. 12. 17:07

다섯가지 장애

13.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다섯가지 장애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다섯가지 장애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자기에게 감각적 욕망이 있을 때 ‘내게 감각적 욕망이 있다.’고 꿰뚫어 알고 , 감각적 욕망이 없을 때 ‘내게 감각적 욕망이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감각적 욕망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감각적 욕망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감각적 욕망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악의가 있을 때 ‘내게 악의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악의가 없을 때 ‘내게 악의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악의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악의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악의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 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해태와 혼침이 있을 때 ‘내게 해태와 혼침이 있다.’고 꿰뚫어 알고, 해태와 혼침이 없을 때 ‘내게 해태와 혼침이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해태와 혼침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해태와 혼침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해태와 혼침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들뜸과 후회가 있을 때 ‘내게 들뜸과 후회가 있다.’고 꿰뚫어 알고, 들뜸과 후회가 없을 때 ‘ 내게 들뜸과 후회가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들뜸과 후회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들뜸과 후회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들뜸과 후회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자기에게 회의적 의심이 있을 때 ‘내게 의심이 있다.’고 꿰뚫어 알고, 의심이 없을 때 ‘내 게 의심이 없다.’고 꿰뚫어 안다. 비구는 전에 없던 의심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의심을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의심이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밖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는 현상(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법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마음챙김만이 현전할 때까지 .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다섯가지 장애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열가지 족쇄>

 

낮은 단계 경(A(:67)(五下分結)

 

1. "비구들이여, 다섯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下分結)가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2. “유신견, 의심,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 감각적 욕망, 악의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가 있다.”

 

3.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버리기 위해서는 네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아야 한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다섯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버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네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아야 한다.”

 

 

높은 단계 경(A9:70)(五上分結)

 

1. "비구들이여, 다섯가지 높은 단계의 족쇄(上分結)가 있다. 무엇이 다섯인가?

 

2. “색계에 대한 탐욕, 무색계에 대한 탐욕, 자만, 들뜸, 무명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가지 높은 단계의 족쇄가 있다.”

 

3.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가지 높은 단계의 족쇄를 버리기 위해서는 네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아야 한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신수관)머문다....비구들이여, 다섯가지 높은 단계의 족쇄를 버리기 위해서는 이러한 네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닦아야 한다.”

 

감각적 욕망 경(A5:7)

.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아무 것도 모르고 뒤척이지 못하고 반듯하게만 누워 있는 갓난아이가 유모가 소홀히 한 틈을 타서 막대기나 자갈을 입에 넣는다면 그 유모는 즉시에 그것에 주의를 기울일 것이고 즉시 주의를 기울인 뒤에 그것을 끄집어낼 것이다. 만일 즉시에 끄집어내지 못한다면 왼손으로 머리를 끌어안고서 오른 손으로 손가락을 구부려서 피가 나더라도 끄집어낼 것이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이것은 아이에게 위험한 일이며, 그것은 그냥 지나칠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것은 아이의 이익을 바라고 이로움을 추구하고 연민의 정이 가득한 유모가 연민의 마음을 일으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 아이가 자라서 충분하게 지혜가 생기면 유모는 이제 그 아이에 대해서 ‘이제 이 아이는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방일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더 이상 돌보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가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믿음으로 해야 할 바를 하지 않고 ,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양심으로 해야 할 바를 하지 않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수치심으로 해야할 바를 하지 않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정진으로 해야 할 바를 하지 않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통찰지로 해야 할 바를 하지 않는 한 나는 그 비구를 보호할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비구가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믿음으로 해야 할 바를 하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양심으로 해야 할 바를 하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정진으로 해야 할 바를 하고,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통찰지로 해야 할 바를 하는 한 나는 ‘이제 이 비구는 자신을 보호할 수 있다. 방일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여 더 이상 비구를 돌보지 않는다.“

 

  

떨어짐 경(A5:8)

 

1.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고 정법에 확고부동하지 못하다. 무엇이 다섯인가?

 

비구들이여, 믿음이 없는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고 정법에 확고부동하지 못하다.

비구들이여, 양심이 없는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고 정법에 확고부동하지 못하다. 비구들이여, 수치심이 없는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고 정법에 확고부동하지 못하다. 비구들이여, 게으른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고 정법에 확고부동하지 못하다. 비구들이여, 통찰지가 없는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고 정법에 확고부동하지 못하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고 정법에 확고부동하지 못하다.

 

 

2. “비구들이여, 다섯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지 않고 정법에 확고부동하다 무엇이 다섯인가?

 

비구들이여, 믿음이 있는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지 않고 정법에 확고부동하다. 비구들이여, 양심이 있는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지 않고 정법에 확고부동하다. 비구들이여, 열심히 정진하는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지 않고 정법에 확고부동하다. 비구들이여, 통찰지를 가진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지 않고 정법에 확고부동하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가지 법을 갖춘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지 않고 정법에 확고부동하다.“

 

존중하지 않음 경1(A5:9)

 

1."비구들이여, 다섯가지 법을 갖추었고 존중심도 없고 순응하지도 않는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고 정법에 확고부동하지 않다. 무엇이 다섯인가?“

 

2. “비구들이여, 믿음이 없고 존중심도 없고 순응하지도 않는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고 정법에 확고부동하지 못하다. 비구들이여,양심이 없고 존중심도 없고 순응하지도 않는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고 정법에 확고부동하지 못하다. 비구들이여, 수치심이 없고 존중심도 없고 순응하지도 않는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고 정법에 확고부동하지 못하다. 비구들이여, 게으르고 존중심도 없고 순응하지도 않는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고 정법에 확고부동하지 못하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가지 법을 갖추었고 존중심도 없고 순응하지도 않는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고 정법에 확고부동하지 못하다.“

 

3. “비구들이여, 다섯가지 법을 갖추었고 존중하고 순응하는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지 않고 정법에 확고부동하다. 무엇이 다섯인가?”

 

4. “비구들이여, 믿음이 있고 존중하고 순응하는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지 않고 정법에 확고부동하다. 비구들이여, 양심이 있고 존중하고 순응하는 비구는 정법에 확고부동하다. 비구들이여, 수치심이 있고 존중하고 순응하는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지 않고 정법에 확고부동하다. 비구들이여, 통찰지를 가졌고 존중하고 순응하는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지 않고 정법에 확고 부동하다. 비구들이여, 통찰지를 가졌고 존중하고 순응하는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지 않고 정법에 확고부동하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가지 법을 갖추었고 존중하고 순응하는 비구는 정법에서 떨어지지 않고 정법에 확고부동하다.”

 

존중하지 않음 경2(A5:10)

 

1."비구들이여, 다섯가지 법을 갖추었고 존중심도 없고 순응하지도 않는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향상과 증장과 충만을 얻을 수 없다. 무엇이 다섯인가?“

 

2. “비구들이여, 믿음이 없고 존중심도 없고 순응하지도 않는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향상과 증장과 충만을 얻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양심이 없고 존중심도 없고 순응하지도 않는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향상과 증장과 충만을 얻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수치심이 없고 존중심도 없고 순응하지도 않는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향상과 증장과 충만을 얻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게으르고 존중심도 없고 순응하지도 않는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향상과 증장과 충만을 얻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통찰지가 없고 존중심도 없고 순응하지도 않는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향상과 증장과 충만을 얻을 수 없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가지 법을 갖추었고 존중심도 없고 순응하지도 않는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향상과 증장과 충만을 얻을 수 없다.”

 

3. “비구들이여, 다섯가지 법을 갖추었고 존중하고 순응하는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향상하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된다. 무엇이 다섯인가?”

 

4. “비구들이여, 믿음이 있고 존중하고 순응하는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향상하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양심이 있고 존중하고 순응하는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향상하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수치심이 있고 존중하고 순응하는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향상하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정진에 매진하고 존중하고 순응하는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향상하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통찰지를 가졌고 존중하고 순응하는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향상하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가지 법을 갖추었고 존중하고 순응하는 비구는 이 법과 율에서 향상하고 증장하고 충만하게 된다.”

 

속박경(A4:10)

 

1. "비구들이여, 네가지 속박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감각적욕망의 속박, 존재의 속박, 견해의 속박, 무명의 속박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감각적 욕망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감각적욕망에 대한 탐욕, 감각적욕망을 즐거워 함, 감각적 욕망에 대한 애정, 감각적 욕망에 대한 홀림,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증, 감각적 욕망에 대한 열병, 감각적 욕망에 대한 계박,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가 잠복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감각적 욕망의 속박이라 한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이다. 그러면 존재의 속박이란 어떤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존재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그가 존재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존재에 대한 탐욕, 존재에 대한 즐거움, 존재에 대한 애정, 존재에 대한 홀림, 존재에 대한 갈증, 존재에 대한 열병, 존재에 대한 계박, 존재에 대한 갈애가 잠복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존재의 속박이라 한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이고 존재의 속박이다. 그러면 견해의 속박이란 어떤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견해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그가 견해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견해에 대한 탐욕, 견해에 대한 즐거움, 견해에 대한 애정, 견해에 대한 홀림, 견해에 대한 갈증, 견해에 대한 열병, 견해에 대한 계박, 견해에 대한 갈애가 잠복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견해의 속박이라 한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이고 존재의 속박이고 견해의 속박이다. 그러면 무명의 속박이란 어떤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지 못한다. 그가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들에 대한 무명과 무지가 잠복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무명의 속박이라 한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이고 존재의 속박이고 견해의 속박이고 무명의 속박이다.

 

악하고 해롭고 정신적 오염원이며 다시 태어남(재생)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있게 하는 법들에 묶였기 때문에 속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자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가지 속박이다.

 

 

 

 

2.“비구들이여, 네가지 속박에서 벗어남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남, 존재의 속박에서 벗어남, 견해의 속박에서 벗어남, 무명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남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감각적 욕망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다. 그가 감각적 욕망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 감각적 욕망에 대한 즐거움, 감각적 욕망에 대한 애정, 감각적 욕망에 대한 홀림,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증, 감각적 욕망에 대한 열병, 감각적 욕망에 대한 계박,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가 잠복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라 한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다. 그러면 존재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란 어떤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존재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다. 그가 존재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존재에 대한 탐욕, 존재에 대한 즐거움, 존재에 대한 애정, 존재에 대한 홀림, 존재에 대한 갈증, 존재에 대한 열병, 존재에 대한 계박, 존재에 대한 갈애가 잠복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존재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라 한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남이고 존재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다. 그러면 견해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란 어떤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견해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다. 그가 견해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견해에 대한 탐욕, 견해에 대한 즐거움, 견해에 대한 열병, 견해에 대한 계박, 견해에 대한 갈애가 잠복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견해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라 한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남이고, 존재의 속박에서 벗어남이고 견해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다. 그러면 무명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란 어떤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다. 그가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여섯 감각접촉의 장소들에 대한 무명과 무지가 잠복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일러 무명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라 한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서 벗어남이고 존재의 속박에서 벗어남이고 견해의 속박에서 벗어남이고 무명의 속박에서 벗어남이다.

 

악하고 해롭고 정신적 오염원이며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있게 하는 법들로부터 풀려났기 때문에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자 라고 불린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가지 속박에서 벗어남이다.

 

3. 감각적 욕망의 속박에 묶이고 존재의 속박에 묶이고

 

이 둘 다에 묶이고 견해의 속박에 묶이고

 

무명의 속박을 앞세우는 중생들

 

그들은 태어남과 죽음이 거듭되는 윤회를 하노라

 

감각적 욕망과 존재의 속박을 모든 곳에서 철저히 알고

 

견해의 속박을 뿌리 뽑고 무명의 속박을 빛바래게 하여

 

모든 속박으로부터 풀린 자들은 참으로 속박을 넘어선 자들이어라.“

 

<앙굿따라니까야 제2권중에서>

 

Ⅳ-3. 여섯가지 감각장소(六處)

 

15.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六內外處)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가 여섯가지 안팎의 감각장소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을 꿰뚫어 안다. 형상을 꿰뚫어 안다. 이 둘을 조건으로(緣) 일어난 족쇄도 꿰뚫어 안다.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족쇄를 어떻게 제거하는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족쇄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귀를 꿰뚫어 안다. 소리를 꿰뚫어 안다. ...코를 꿰뚫어 안다. 냄새를 꿰뚫어 안다....혀를 꿰뚫어 안다. 맛을 꿰뚫어 안다.... 몸을 꿰뚫어 안다. 감촉을 꿰뚫어 안다....마노를 꿰뚫어 안다. 전에 없던 족쇄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꿰뚫어 알고, 일어난 족쇄를 어떻게 제거하는 지 꿰뚫어 알며, 어떻게 하면 제거한 족쇄가 앞으로 다시 일어나지 않는지 꿰뚫어 안다.

   

이와 같이 안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여섯가지 안팎의 감각장소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대념처경중 법의 관찰중에서>

 

연기의 이치

내가 이제 인연법과 연생법에 대하여 말하겠다. 인연법이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것인데, 소위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고, 행을 인연하여 의식이 있다. 이렇게 전개되어 고통이 쌓이고 모이는 것이다. 연생법이란 무엇인가? 이른바 무명을 인연하여 행이 있다는 것인데, 이런 이치는 나 붓다가 세상에 나오거나 나오지 않거나 이 법은 상주하는 현상계가 존속하는 이치이며 현상계의 근원적인 원리로서 붓다인 내가 스스로 깨닫고 알아서 보편타당한 깨달음을 이루고 모든 중생들을 위하여 분별해 연설하고 드러내 보이는 것뿐이다.

 

-2. “비구들이여, 이처럼 참된 사람을 섬기지 않음을 갖추면 정법을 배우지 않음을 갖추게 된다. 정법을 배우지 않음을 갖추면 믿음 없음을 갖추게 된다. 정법을 배우지 않음을 갖추면 믿음없음을 갖추게 된다. 믿음 없음을 갖추면 지혜 없이 마음에 잡도리함을 갖추게 된다. 지혜없이 마음에 잡도리함을 갖추면 마음챙기지 못하고 알아차리지 못함을 갖추게 된다. 마음챙기지 못하고 알아 차리지 못함을 갖추면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함을 갖추게 된다. 감각기능을 단속하지 못함을 갖추면 〔몸과 말과 마음으로 짓는〕세가지 나쁜 행위를 갖추게 된다. 세 가지 나쁜 행위를 갖추면 다섯 가지 장애를 갖추게 된다. 세가지 나쁜 행위를 갖추면 다섯 가지 장애를 갖추게 된다. 다섯 가지 장애를 갖추면 무명을 갖추게 된다.

 

이렇게 무명의 자양분이 있고 이렇게 무명을 갖추게 된다.“ <앙굿다라니까야 제6권 무명경중에서>

 

-내가 너희에게 세계의 발생과 소멸에 대하여 말하겠다. 눈(안)과 대상(색)에 따라 안식(안식)이 발생한다. 눈과 대상과 안식 이 세가지가 함께 어우러진 것이 촉이다. 촉에 의지하여 감각이 생기고 감각에 의지하여 욕망이 생긴다. 욕망에 의하여 집착이 생긴다. 집착에 의하여 존재의 상태를 불러온다. 존재의 상태는 태어남을 낳는다. 태어남에 의해 노사우비고뇌에 빠져들게 된다. -부처님말씀 168쪽-

 

-내 소견으로는 중생이란 것도 모두가 짜맞추어진 것이니, 여러 가지 인과 연이 어우러져서 있게 되는 것이지요. 여기서 인연이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업을 말합니다.  만약 일시적으로 인과 연이 어우러져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바로 영원하지 못한 것이며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며,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것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나의 실체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여러분들이 말한 견해들에 대하여 마음에 집착을 두지 않습니다.

 

세상이 영원하다는 등의 견해들은 생각하는 것이 주도면밀하지 못한데서 생기거나 남들의 말을 믿고 의지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견해들은 어떤 것에 마음을 기울이게 되었을때 생기는 것이요, 무엇인가에 대해 궁리해서 생기는 것이며, 무엇인가 어떤 것에 의존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당신들이 진실이라고 말하는 것은 어떤 의도를 갖고 짜 맞추어진 생각을 인연으로 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인연을 따라 생기는 것은 덧없고 무상한 것입니다. 또한 당신들은 모든 존재가 영원하다는 것만이 진실이요, 그 밖의 소견을 거짓이라고 말하지만 바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온갖 괴로움의 근본입니다. 그런 사뙨 견해에 집착하면 괴로움과 관련되어 나고 죽는 윤회의 과정 속에서 더욱 큰 괴로움을 받게 됩니다. 윤회의 과정 속에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은 모두가 실재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말씀 173쪽>

 

-눈으로 사물의 형체를 대하게 되면 사물의 형체를 분별하는 인식이 생긴다. 귀로 소리를 듣게 되면 그 소리를 분별하는 인식이 생기고, 코로 냄새를 맡게 되면 그 냄새를 분별하는 인식이 생긴다. 혀가 맛을 대하게 되면 그 맛을 분별하는 인식이 생기며, 피부가 촉감을 대하게 되면 촉감을 분별하는 인식이 생긴다. 우리의 마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그것들을 분별하는 의식이 생긴다. 이처럼 우리의 내적 감각기관이 외적 대상을 만날 때 여섯가지 분별(육식)이 생기는데 (십팔계) 이때에 좋다 나쁘다 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다는 감각이 일어나게 된다. 이런 감각들을 일체법이라고 말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내가 말하는 일체법을 부정하고 어떤 다른 방식으로 일체법을 말하고 있다면 그것은 단지 언설일 뿐이요, 그것에 대해서 물어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의혹만 더욱 증폭시킬 뿐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처님말씀 177쪽>

 

사람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한 비구가 여쭈었다

“비구는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법을 볼 수 있습니까?”

“내적 감각기관(안이비설신)이 외적대상(색성향미촉)을 만나 의식작용(전오식)이 생긴다. 감각기관(감관)과 외적대상과 의식작용이 하나로 어울리는 것이 접촉(삼사화합)이다. 이 접촉을 통해서 감각.지각.사유가 생긴다. 이것이 마음과 사고의 내용으로서 법의 발생이다.

감각.지각.사유.의식 이 네 가지 비물질적 요소와 물질적 요소(색)를 합하여 사람이라 말한다. 이러한 것들(오온)에서 사람이란 생각을 하여 삿따.나라.....등 다양한 의미로 부른다.

또 말하기를 ‘내 눈으로 형체를 본다. 내 귀로 소리를 듣는다. 내 코로 냄새를 맡는다. 내 현로 맛을 본다. 내 몸으로 촉감을 느낀다. 내 마음으로 법을 분별한다’고 말하고, 통상적인 관례를 따라 ‘이 사람의 성씨는 무엇이며, 이름이 무엇이고, 이렇게 태어나, 이렇게 자랐고, 이렇게 먹고, 이렇게 고통과 즐거움을 누렸고, 이렇게 오래 살았고, 이렇게 목숨을 마쳤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想)이요 기억(誌)이며 말로 설명하는 것이며, 인연따라 생기는 이 모든 것(諸法)은 의도적인 생각에서 나오는 것이므로 덧없고 허망한 것이다.

<부처님말씀 178쪽>

 

몸뚱이와 오온

-내가 이제 몸뚱이가 있다는 것과 몸뚱이가 있게 되는 원인과 몸뚱이가 사라짐과 몸뚱이가 사라지는 길에 대하여 말하겠다.

몸뚱이가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몸뚱이가 있다는 것은 바로 집착에 바탕을 준 다섯 가지 요소(오온)를 의미한다. 그 다섯가지는 무엇인가?

물질적인 것에 대한 집착의 덩어리요, 감각적인 것에 대한 집착의 덩어리이며, 지각하는 것들에 대한 집착의 덩어리이며, 의지적인 것에 대한 집착의 덩어리이며, 의식적인 것에 대한 집착의 덩어리이다. 이것을 가지고 몸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몸뚱이가 있게 되는 원인은 무엇인가? 기쁨과 탐욕을 동반한 욕망이 미래의 존재상태를 초래하는 이것저것에 집착하는 것이다. 몸뚱이의 사라짐이란 무엇인가? 기쁨과 탐욕을 동반한 욕망이 미래의 존재상태를 초래하는 이것저것에 집착하는 것을 남김없이 끊어버리는 것이다. 몸뚱이가 사라지는 길이란 무엇인가? 여덟가지 수행의 길이다.“

<부처님말씀 179쪽>

 

오온

-다섯가지 쌓임이 괴로움이다. 다섯가지 쌓임이란 육신 감각 지각 의지 의식이니라. 무엇을 육신이라 말하는가? 육신이란 물질을 구성하는 네가지 기본적요소(사대)와 네가지 기본적요소로 만들어진 몸이니 이것을 눈에 보이는 형체를 가지는 것들의 쌓임이라 말한다.

감각이란 육신이 느끼는 괴로움,즐거움,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는 느낌, 을 느끼는 것의 쌓임이라 한다. 지각은 과거, 현재, 미래의 감각이 함께 모여 이루어지는 것을 감지하는 것의 쌓임이라 한다. 의지는 지각을 가지고 몸으로 행동하고 입으로 말하고 마음이 움직이는 것을 이럭저럭 꾸려나가는 것의 쌓임이라 말한다. 의식이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맡으며 혀로 맛보고 피부로 느낀 것을 마음이 파악하는 것의 쌓임이라 한다. 수는 느낌이며, 상은 앎이며, 행은 선행이나 악행을 이루는 것이며, 식은 옳고 그름을 분별하고 따지는 것을 말한다. (181쪽>

 

-존재(유)란 무엇입니까? “감각적 욕망이 없고 무르익은 업이 없다면 과연 감각적 세계(욕계)에서의 존재가 나타나겠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점에서 업은 밭이요, 의식(식)은 씨앗이며, 욕망은 수분이 된다고 말한다. 중생이 무명에 가려지고 욕망에 얽매이고 의식이 욕심세계에 자리를 잡기 때문에 미래의 삶은 반복되는 것이다.-

<206쪽>

 

-“세존이시여, 중생을 윤회의 상태로 이끄는 것은 무엇입니까?“

“어리석은 자들이 육신이 생기는 원인.육신의 소멸,육신이 주는 즐거움. 육신이 주는 고통.육신의 굴레에서 벗어남에 대하여 잇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육신에 대하여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육신을 사랑하고, 육신을 즐기면 육신을 찬탄하고, 육신을 감싸며, 육신에 물들어 집착한다. 육신을 사랑하고 즐기는 인연으로 집착하게 되고, 육신에 집착하는 인연으로 존재의 상태(유)가 있게 되고, 존재의 상태를 인연으로 태어남(생)이 있게 된다. -<207쪽>

 

Ⅰ-4. 몸의 32가지 부위에 대한 혐오

5.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몸이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머리털끝에서부터 위로 머리털 끝에서부터 아래로,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반조한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몸털, 손발톱, 이빨, 살갗, 살, 힘줄, 뼈.골수.콩팥.염통. 간,근막. 지라. 허파. 큰창자. 작은창자. 위.똥.담즙. 가래.고름.피.땀. 굳기름. 눈물. 피부의 기름기. 침. 콧물. 관절활액. 오줌등이 있다.’ 고

 

비구들이여, 이는 마치 양쪽에 주둥이가 있는 가마니에 여러 가지 곡물, 즉 밭벼, 보리, 녹두, 완두, 참깨, 논벼 등이 가득 담겨 있는데 어떤 눈밝은 사람이 그 자루를 풀고 반조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은 밭벼, 이것은 보리, 이것은 녹두, 이것은 완두, 이것은 참깨, 이 것은 논벼다.’고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올라가며 그리고 머리털에서부터 아 래로 내려가며 이 몸은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한 것으로 가득차 있음 을 반조한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 살갗,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염 통, 간, 근막, 지라, 허파, 큰 창자, 작은 창자, 위, 똥,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굳기 름, 침, 콧물, 관절활액, 오줌등이 있다.‘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대념처경 몸의 관찰 중에서>

 

-나는 ‘식은 연을 말미암아 생긴다. 식은 연이 있으면 생기고 연이 없으면 사라진다. 식은 연하는 것을 따라 생기는데 그 연이란 눈이 형체를 연으로 하여 생기는 것을 말하며, 식이 생긴 뒤에는 안식이라 말한다. 귀.코.혀. 피부에서도 마찬가지이며, 뜻(의)이 생각(법)을 인연하여 생기는 식을 의식(의식)이라 한다. 마치 불이란 인연하는 것을 따라 생기는 것과 같아서 석탄을 인연하여 생기면 석탄불이라 하고, 장작을 인연하여 불이 생기면 장작불이라 하는 것과 같느니라.“-<부처님말씀 209쪽>

 

-우빠시와야, 그 무엇에도 매달림이 없이 깊이 정신을 집중하라.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다고 명상하므로써 생사의 큰 물결을 건널 수 있으리라. 보고. 듣고 냄새맡는 것등 감각적 대상에 대한 욕망을 버리고 망설임을 떨쳐내고 존재에 대한 애착이 소멸한 경지를 밤낮으로 살펴라.“

“보고 듣고 냄새맡는 것들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그 무엇에도 집착하는 것이 없이 지혜에 의해 높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거기에 머물게 됩니까?”

“보고 듣고 냄새맡는 것들에 대한 욕망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그 무엇에도 집착하는 것이 없이 지혜에 의해 높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거기에 머물게 되느니라. ”

“전지자시여, 만약 지혜에 의해 높은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여 거기에 오랫동안 머물러서 마음이 평온하게 되었다면 그에게는 의식이 있는 것입니까?”

“만약 강한 바람에 의해 불길이 꺼져버렸다면 더 이상 불이라 할 수 없는 것처럼 육신과 마음으로부터 해탈한 사람은 존재한다는 의식이 없느니라.”

“그는 육신과 마음이란 의식이 사라진 것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까? 그것도 아니면 번뇌로부터 벗어난 것입니까? 성자시여, 당신은 이런 것에 대하여 잘 알고 계실 터이니, 그것을 곧이곧대로 말씀해 주십히오.”

“육신과 마음이란 의식이 사라진 자에게는 더 이상 헤아릴 기준이 없다. 그에게는 더 이상 이렇다거나 저렇다고 말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없다. 모든 것들이 없어졌을 때 논쟁할 모든 것들 또한 없어지는 것이다.” <212쪽>

 

-세존이시여, 의식을 가지고 있는 몸과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외부의 모든 대상을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아야 자아라는 생각을 갖지 않고, 내것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으며 의식을 가진 몸이나 의식이 없는 외부의 대상에 대해 그릇된 잠재된 성벽을 갖지 않게 되나이까?“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네 안의 것이든 네 밖의 것이든,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멀리 있는 것이든, 가까이 있는 것이든, 눈에 보이는 형체는 내적 통찰에 의해 자아가 아니고, 내 것이 아니며, 그릇된 잠재적 성벽을 가질 것이 아니다. 라고 있는 사실 그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수 있어야 집착에서 벗어나 해탈할 수 있게 된다.” < 215쪽>

 

인식의 발생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 사리뿟따가 비구들에게 말했다. “만약 내적 감각기관인 눈(眼)이 상하고 외부의 물질적 형체(色)가 빛을 받지 못하면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되어서 눈의 분별(眼識)이 일어나지 못합니다. 그러나 눈이 상하지 않았고 외부의 물질적 형체가 빛을 받고 눈이 볼 수 있는 일정한 영역 안(界)에 있으면서 감각적 인상을 받게 되면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게 되어 ‘본다’는 눈의 인식이 일어나게 됩니다.

 

눈(眼)과 대상(色)과 안식(眼識)이 외부의 물질적 형체(外色)를 인지하고 그것을 집착하면 물질적인 것에 대한 집착의 쌓임(色陰)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감각이 있으면 감각적인 것에 대한 집착의 쌓임이고, 지각이 있으면 지각에 대한 집착의 쌓임이며, 의지가 있으면 의지에 대한 집착의 쌓임이며, 의식이 있으면 의식에 대한 집착의 쌓임이라 말합니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집착의 쌓임이 모인다는 것을 관찰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만일 연기(緣起)를 보면 곧 법을 볼 것이요, 법을 보면 곧 연기를 볼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연을 따라 생긴다(緣起)는 것은 바로 다섯가지 집착의 쌓임(五蘊)을 말하며, 다섯가지 집착의 쌓임이란 육신(色).감각(受). 지각(想). 의지(行). 의식(識)을 말합니다.

 

만약 우리의 감각기관인 눈.귀.코.혀. 피부.마음이 무너지고 외부의 대상인 물질적 형체들이 빛을 받지 못하게 되면 그것들에 대하여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없어져서 결국 의식도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상적유경<중아함경 제 7:1-467 상>- 부처님 말씀중 발췌-

 

 

의지와 생각의 산물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사리뿟따가 아난다에게 물었다.

 

"존자여, 내가 그대에게 물을 것이 있는데 괜찮겠소?"

 

"존자여, 말씀하시죠. 제가 아는 대로 말씀드리지요."

 

"존자여, 흔히 소멸이라고 말하는데, 어떤 것이 소멸한다고 말합니까?"

 

"사리뿟따 존자여, 다섯가지 감각이 집착으로 쌓이는 것은 본래 의지가 만드는 것이요. 본래 생각이 원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상하여 소멸하는 것들입니다. 그것들이 없어지게 되므로 소멸이라고 말합니다.

 

다섯이란 무엇인가? 육신의 감각적 집착의 쌓임이니, 이것은 본래 의지가 만드는 것이요. 본래 생각이 원한 것으로 무상하여 소멸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어지므로

 

소멸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감각. 지각. 의지. 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렇습니다. 존자의 말대로 다섯 가지 감각적 집착의 쌓임은 본래 의지가 만든 것이요 원래 생각이 원한 것입니다.

 

아난다 존자여 , 만약 다섯가지 감각적 집착의 쌓임이 본래 의지가 만든 것이 아니고 생각이 원한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어떻게 그것들이 소멸할 수 있겠습니까?

 

이 다섯가지 감각적 집착의 쌓임은 본래 의지가 만들었고 생각이 원하였던 것이므로 이것은 무상하여 소멸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잡아함경 제10: 260경: < 2-65하>

<부처님 말씀 223쪽>

 

 

제일의 공(第一義空)

부처님께서 꾸루의 깜마사담마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이제 너희들을 위해 설법하리라. 이것은 처음도 좋고 , 중간도 좋고, 마지막도 좋으며, 좋은 뜻과 좋은 의미로서 순수하고 하나같으며, 원만하고 깨끗하여 수행이 청정한 것이다. 그래서 제일의공경(第一義空經)이라 한다.

 

제일의공, 즉 더할 수 없이 오묘한 의미의 공(空)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눈에서 ‘본다’는 인식이 생기지만 ‘본다’는 실체가 어디서 온 것도 아니고, ‘본다’는 인식이 사라지지만 어디로 간 것도 아니다. 이처럼 인식이 실체는 아니지만 인식작용은 생기고 생겼다가는 사라지곤 한다.

 

선악의 업인(業因)에 따라 나타나는 고락(苦樂)의 과보(果報)는 있지마는 작용의 실체는 없으나 이 존재가 소멸하고 나면 다른 존재가 이어 받는다. 그러나 세속에서 말하는 언어적 개념의 법(俗數法)은 제외한다.

 

귀.코.혀.피부.뜻에서도 마찬가지다. 세속에서 말하는 언어적 개념의 법이란 ‘이것이 있기 때문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기 때문에 저것이 일어난다’는 것이니, 무명(無明)을 인연하여 행위(行)가 있고, 행위를 인연하여 의식(識)이 있다. 이렇게 점차적으로 전개되어 고통이 생긴다.

 

그리고 ‘이것이 없기 때문에 저것이 없고 , 이것이 소멸하기 때문에 저것이 소멸한다’는 것이니,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행위가 없고, 행위가 소멸하기 때문에 의식도 소멸한다. 이렇게 전개되어 고통도 없어지는 것이다. 이것을 第一義空經이라 말한다.“<잡아함경 제 13:335경 <2-92하>

<부처님말씀 중에서>

 

-참된 공상에는 어리석음의 근원이 되는 무명도 없고 어리석음의 근원이 되는 무명이 없으므로 무명이 다함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근본 무명이 없으므로 무명으로 반연하여 생겨나는 행.식.명색. 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십이연기)의 현상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무명은 빛이 없는 어둠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인 오온.십이처.십팔계.십이연기.사성제 등에 무지함을 무명이라 하는 것이다.

 

이미 바른 지혜로써 모든 법에는 영원한 실체가 없다는 것을 밝게 비춰보았기 때문에 바른 법의 무지함으로 인해 생겨난 어리석음이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어리석음의 근원이 되는 무명이 도무지 없음으로 무명의 다함마저도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반연이란 마음이 어떤 대상에 집착하여 작용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삿된 것에 집착하지 않음으로 인해 무명을 반연하여 생겨나는 행.식.명색.육입.촉.수.애.취.유.생.노.사.의 현상도 있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이여, ‘그 이전에는 존재에 대한 갈애가 없었고 그 이후에 존재에 대한 갈애가 생겨났다.’라고 이렇게 존재에 대한 갈애의 첫 시작은 꿰뚫어 알아지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존재에 대한 갈애는 이것에 조건된다고 꿰뚫어 알아진다고 말한다.”고 하셨다.

 

무명은 원인 없는 이 세상의 근본원인이 아니다. 번뇌가 일어나기 때문에 무명이 일어난다. 번뇌가 무명의 근원이고 윤회의 출발점인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모든 번뇌의 소멸만이 바른 해탈이며, 이것을 비구가 법을 보아 열반을 얻는 것이라 하느니라.”고 하셨다.

-<스님도 모르는 반야심경:김종수 지음;우리출판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