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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na Vamsa 2009. 6. 15. 19:38

첫 번째 이익은 청정입니다. 어떤 이가 마음챙김을 닦을 때, 그는 모든 번뇌에서 청정해질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팔리어의 킬레사(kilesa)라는 말은 낯설지 않을 것입니다. '킬레사'라는 말을 불교 학자들은 번뇌 또는 때(defilement)라고 번역하였습니다. 킬레사에는 10 가지의 주요한 종류가 있습니다.

(1) 탐욕(貪; lobha),

(2) 성냄(瞋; dosa),

(3) 어리석음(癡; moha),

(4) 사견(見; di.t.thi),

(5) 아만(慢; maana),

(6) 의심(疑; vicikicchaa),

(7) 혼침과 수면(混沈-睡眠; thiina-middha),

(8) 들뜸과 회한(掉擧-悔恨; uddhacca-kukkhucca),

(9) 무참(無斬; ahirika),

(10) 무괴(無愧; anottappa).


로바(lobha)는 탐욕뿐만 아니라 욕망, 욕정, 갈망, 갈애 그리고 사랑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정신적인 상태 가운데 하나가 우리의 마음속에 생겨날 때, 우리의 마음은 더럽혀져 번뇌에 물듭니다. 따라서 이러한 것들을 번뇌라고 하는 것입니다.

도사(dosa)는 증오, 분노, 악의 또는 혐오의 뜻입니다.

모하(moha)는 환각, 또는 무지의 뜻입니다.

디티(di.t.thi)는 잘못된 견해 또는 틀린 견해의 뜻입니다.

마나(maana)는 아만(자만)의 뜻입니다.

위치킷차(vicikicchaa)는 회의적인 의심의 뜻입니다.

티나-밋다(thiina-middha)는 혼침과 졸음의 뜻입니다. 졸리움도 역시 혼침과 졸음의 일종입니다. 혼침과 졸음은 수행자들과 법을 듣는 이들의 오랜 친구이기도 합니다.

오늘, 점검(interview) 시간에, 모든 수행자들이 '피곤합니다, 졸음이 옵니다'라는 경험을 보고했습니다. 수행을 처음 시작할 때, 아직 우리들은 마음챙김 수행에 익숙해 있지 않기 때문에, 힘을 불어넣어야만 합니다. (피곤과 졸음을 느끼는) 이 때가 수행의 고비 단계이지만, 그리 오래 지속되지는 않습니다. 이 기간은 2-3일 정도 지속될는지도 모릅니다. 3일이 지나면, 모든 수행자들은 괜찮아질 것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물론 사마타 수행에 있어서 향상을 방해하는 이 '오랜 친구'들을 이겨내는데 그리 힘들지 않다는 사실을 수행자들은 알게 될 것입니다.

웃닷차-쿡쿠차(uddhacca-kukkhucca)는 들뜸(restlessness; 불안함)과 회한에 빠진다는 의미입니다.

아히리카(ahirika)는 도덕적인 부끄러움이 없음(無斬)을 의미합니다. 말과 생각과 행위로 지은 악한 행위에 대해서 (스스로 마음속으로) 부끄러워함이 없음을 말합니다.

안오타파(anottappa)는 도덕적으로 두려워함이 없음(無愧)을 의미합니다. 말과 생각과 행위로 지은 악한 행위에 대해서 (남들에게) 두려워함이 없음을 말합니다. 도덕적으로 두려워함이 없는 것도 번뇌의 하나입니다.

이것들이 위빠사나 수행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속에서 버리고 제거해야할 10 가지 번뇌들입니다. 붓다는 말했습니다.


만일 어떤 이가 마음챙김 수행을 닦는다면,

그는 모든 번뇌로부터 청정해질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모든 종류의 번뇌로부터 완전하게 청정해졌을 때, 그는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이익입니다.

마음챙김 수행의 두 번째 이익은, 슬픔과 근심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만일 이 마음챙김 수행을 닦는다면, 여러분은 실패에 대해서 걱정하지 않게 될 것이며, 친척의 죽음 때문에 그리고 일자리를 잃어서 슬픔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며, 그 어떠한 일이 닥쳐도 슬퍼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아무런 도(道; magga)와 과(果; phala)를 얻지 못했다 할지라도, 여러분들은 어느 정도까지는 슬픔과 근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슬픔과 근심이 생길 때, 여러분은 그것들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챙김 수행을 완전하게 향상시켰을 때, 여러분은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을 것임에 틀림없으며, 근심과 슬픔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근심과 슬픔은 마음챙김 수행을 통해서 극복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이익은 비탄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비록 여러분의 부모나 자식이나 친척이 죽는다하더라도, 그 때문에 어떠한 비탄에도 빠지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이른바 '자식'이나 '부모'라고 불리던 존재를 이루고 있는, 정신과 육체의 과정들을 완전하게 자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비탄은 마음챙김 수행을 통해서 극복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의 이익과 관련해서 {대념처경}의 주석서에서는 한 이야기를 들고 있습니다.


파타차라라는 한 여인이 있었는데, 하루 이틀 사이에 남편과 두 아들, 부모와 형제들이 모두 죽어서 슬픔과 근심과 비탄으로 미칠 지경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녀는 사랑하던 사람들의 죽음 때문에 비탄에 빠져 있었습니다.

하루는 부처님께서 사위성 가까이 있는 죽림정사에서 대중들에게 법을 설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고 있던 이 미친 여인은 정사로 들어가서 설법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대중들을 보았습니다. 그녀가 대중에게 다가가자, 이 가난한 사람에게 아주 친절한 한 노인이 자신의 상의를 벗어서 그 여인에게 건네주며 "여보시오, 내 옷으로 당신 몸을 좀 가리시구려" 하고 말을 건넸다. 이와 동시에 부처님께서 그녀에게 "자매여, 마음을 챙기시오" 하고 말씀했습니다. 부처님의 달래는 듯한 목소리에, 그 미친 여인은 제 정신을 차리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녀는 대중의 한 쪽에 앉아서 법문을 들었습니다. 붓다는 그 여인이 정신을 차린 것을 아시고, 법문의 방향을 그녀에게 맞추었습니다. 그녀의 마음은 점차로, 법문의 핵심으로 깊이 빠져들게 되었습니다. 법을 깨닫기에 충분할 만큼 그녀의 마음이 준비되었을 때, 부처님께서는 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諦)를 설했습니다.


괴로움의 진리(苦諦),

괴로움의 발생의 진리(苦集諦),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苦滅諦),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의 진리(苦滅道諦).


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諦)에는 우리의 마음과 몸에서 생겨나는 모든 현상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방법에 대한 가르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제 정신을 차린 파차타라는 마음챙김의 기법을 바르게 이해했으며, 그 방법을 마음과 몸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과 귀로 들리는 모든 소리에 대해 적용시켰습니다. 그녀의 마음챙김이 순간적인 마음집중(刹那三昧; momentum)을 이루었을 때, 그녀의 마음집중은 더욱 깊어지고 더욱 강해졌습니다. 마음집중이 깊어지게 되자, 마음과 몸에 대한 그녀의 지혜와 꿰뚫어 보는 앎은 더욱 강력해져서, 그녀는 점차로 정신적 육체적 현상의 독특한 특성과 일반적인 특성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그녀는 법문을 듣는 동안에 꿰뚫어 보는 앎의 모든 단계를 차례로 경험해서, 첫 번째 도인 수타원도(sotaapatti-magga)를 얻었습니다. 마음챙김 수행에 의해, 법에 대한 그녀 자신의 체험을 통해서, 슬픔과 근심과 비탄은 그녀의 마음에서 완전히 없어져 버려 그녀는 '새로운 여인'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그녀는 마음챙김 수행에 의해 그녀의 슬픔, 근심, 비탄을 극복하였습니다. 이렇게 {대념처경}의 주석서는 말해주고 있습니다. 붓다 당시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금 이 시대의 사람들도 또한 슬픔과 근심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만일 우리들이 마음챙김 수행을 닦아서 어느 정도의 높은 단계의 꿰뚫어 보는 앎을 얻게 된다면. 여러분들도 마음챙김 수행에 의해 슬픔과 걱정을 극복할 수 있는 이러한 사람들의 대열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네 번째의 이익은 육체적인 괴로움의 소멸입니다.

다섯 번째의 이익은 정신적인 고뇌의 소멸입니다.

통증, 뻗뻗함, 가려움, 저림 등등의 육체적인 통증은, 일상 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집중수행기간 동안에도 마음챙김 수행에 의해 극복될 수 있습니다. 수행이 진전되어 어느 정도의 체험을 하게 되면, 여러분들은 정신적 육체적인 괴로움을 상당히 극복할 수 있게 됩니다. 만일 여러분이 충분한 노력과 시간을 투자한다면, 여러분이 아라한의 깨달음을 얻을 때, 정신적 육체적인 괴로움을 영원히 없애버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수행을 하는 동안에는, 여러분은 통증, 뻗뻗함, 가려움, 저림 그리고 모든 종류의 불쾌한 육체적인 감각들을, 아주 적극적으로 그리고 밀착해서 관찰함을 통해서 극복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통증, 뻗뻗함, 또는 저림 등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여러분들이 괴로움의 소멸을 얻게끔 도와주는 '좋은 벗'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통증을 강하고, 정확하게, 밀착해서 관찰한다면, 더욱 명료하게 알게 되기 때문에 통증이 더욱 심해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이 고통스러운 감각의 불쾌함을 완전히 알게 될 때, 여러분은 그 불쾌함을 여러분 자신이라고 간주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감각이란 정신적인 현상의 자연스런 과정이라는 점을 파악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고통스런 감각에 대해서 '나'니 '나의 것'이니 '사람'이니 '존재'니 하면서 애착을 가지지 않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여러분들은 영혼, 자아, 사람, 존재, '나' 또는 '너'라고 하는 잘못된 견해를 없앨 수 있습니다.

모든 종류의 번뇌의 뿌리인 유신견(有身見) 또는 아견(我見)을 부수어 버렸을 때, 여러분은 첫 번째 도인 수타원도를 틀림없이 얻습니다. 그런 후, 여러분은 세 자지의 보다 높은 도(道)와 과(果)를 얻기 위해서 수행을 계속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통증, 뻗뻗함, 가려움, 저림 등의 불쾌한 육체적인 감각들이 괴로움의 소멸을 얻게끔 도와주는 '좋은 벗'이라고 말한 이유입니다. 달리 말하면, 저림이나 다른 고통스런 감각이 바로 열반의 문을 여는 열쇠라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통증을 느낄 때, 여러분은 운이 좋은 것입니다. 통증은 가장 가치 있는 수행의 대상입니다. 왜냐하면, 통증이 있으면 '알아차리는 마음'은 아주 오랫동안 그 통증에 머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알아차리는 마음'은 그 통증에 깊이 집중할 수 있게 되고, 그 속에 몰입해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마음이 고통스런 감각에 완전히 몰입했을 때, 여러분은 더 이상 자신의 몸의 모양이나 자기 자신에 대해서 지각이 없게 되어 버립니다. 이 말은, 여러분이 고통의 고유한 특성(sabhaava-lakkhana) 또는 고통스런 감각(苦受; dukkha-vedanaa)의 개별적인 특성을 자각하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수행이 진전됨에 따라, 여러분은 정신적 육체적 현상의 무상하고 고이며, 무영혼 또는 무아인 일반적인 특성을 자각할 수 있게 됩니다. 그때 여러분은 모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통증을 느낀다면, 여러분은 운이 좋은 것입니다.

미얀마에서, 꿰뚫어 보는 앎(위빠사나)의 세 번째 단계(思惟智; sammasana-~naa.na)를 통과한 어떤 수행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대부분 모든 고통스런 감각을 완전하게 극복했지만, 알아차려야 할 통증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의 수행에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릎을 꿇고 앉아 다리에 체중의 압력을 주어 통증을 느낄 수 있게 했습니다. 그들은 괴로움의 소멸로 이끌어 주는 '좋은 벗'을 찾았던 것이었습니다.

여러분이 불쾌함을 느낄 때, 그 불쾌함을 강하고, 주의 깊고, 아주 밀착해서 '불쾌함, 불쾌함' 하고 관찰해보기 바랍니다. 만일에 우울함을 느꼈다면, 그 우울함을 아주 주의 깊고 인내력 있게 관찰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챙김이 강해지면, 불쾌함이나 우울함은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이렇게 정신적인 괴로움을 극복하는 것이 마음챙김 수행의 다섯 번째 이익입니다,

여섯 번째 이익은 깨달음 즉, 도(道)와 과(果)의 성취입니다. 여러분이 마음챙김 수행에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을 때, 여러분들은 최소한 첫 번째 도인 수타원도를 얻을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챙김 수행의 여섯 번째 이익입니다.

일곱 번째 이익은, 마음챙김 수행을 통해서 여러분들은 열반, 해탈, 자유를 틀림없이 얻는다는 것입니다.

마음챙김 수행의 일곱 가지 이익은 위빠사나 수행자가 법에 대한 개인적인 체험을 통해서 얻을 수 있습니다.


1. 모든 종류의 번뇌로부터 청정.

2. 슬픔과 근심의 극복.

3. 비탄의 극복.

4. 모든 육체적인 통증의 극복.

5. 모든 정신적인 고뇌의 극복.

6. 깨달음(道와 果)의 성취.

7. 열반의 성취.

붓다는, 서두에 이 일곱 가지 마음챙김 수행의 이익을 제시하면서 {대념처경}을 설했습니다. 따라서 불굴의 정진력으로 수행한다면, 여러분들이 이 일곱 가지 이익을 얻을 것임에 틀림없을 것입니다.

깨달음을 얻으시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바른 길을 가르쳐 주신 부처님을 믿기 때문에, 우리들은 운이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만족감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팔리 경전에 다음과 같은 비유가 나옵니다.


어느 곳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물은 맑고, 많은 연꽃이 피어있었습니다. 손이 더러운 한 여행자가 있었습니다. 연못에 손을 씻으면 손이 깨끗해진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손을 씻으러 연못으로 가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손은 여전히 더러운 채였습니다. 이렇게 그는 연못을 지나쳐서 여행을 계속했습니다.


이 비유가 설해진 다음에 경전에서는 다음과 같은 물음을 던졌습니다. "만일 그 사람이 더러운 채로 있다면, 누가 비난받아야 하는가. 연못인가, 여행자 자신인가 ?" 비난받을 대상은 말할 것도 없이 여행자입니다. 그는 연못에서 더러움을 씻어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여행자가 비난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붓다는 우리에게 마음챙김이라는 (마음의 때와 번뇌를 씻어내는) 방법을 가르쳐 주셨다. 만일 우리가 그 길을 알고 있으면서도 마음챙김 수행을 닦지 않는다면, 우리는 괴로움을 없앨 수 없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괴로움을 없애지 못한다면, 누가 비난받아야 하겠는가 ? 붓다입니까, 마음챙김 수행법입니까, 아니면 우리 자신입니까 ? 그렇습니다. 우리 지신이 비난받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불굴의 정진력으로 이 마음챙김 수행법을 닦는다면, 이 마음챙김 수행의 일곱 가지 이익을 얻음으로써 여러분은 모든 번뇌에서 청정해지고, 괴로움을 제거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