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말씀

Panna Vamsa 2009. 6. 15. 19:39

4.7.0 『대념처경』 서언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캄마사담마라고 하는 쿠루 족의 마을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비구들이여' 하고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세존이시여'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세존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것은 모든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기 위한, 괴로움과 싫어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한, 올바른 길에 이르기 위한, 열반을 깨닫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바로 그것은 네 가지의 마음챙김이다. 네 가지란 무엇인가 ?

(1) 몸에 대한 마음챙김 (身念處)

비구들이여, 여기 [이 가르침]에서 어떤 비구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2)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 (受念處)

그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3) 마음에 대한 마음챙김 (心念處)

그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4) 법에 대한 마음챙김 (法念處)

그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4.7.1.2 동작[行住坐臥]에 대한 마음챙김

또한 비구들이여, 걸어갈 때는 걸어간다라고 알아차리고, 서 있을 때에는 서 있다라고 알아차리며, 앉아 있을 때에는 앉아 있다라고 알아차리며, 누워 있을 때에는 누워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이외의 다른 몸의 동작이 있을 때, 그러한 동작을 그때그때 알아차린다.*

<역주 : 위의 행주좌와(行住坐臥)에 대한 팔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나는 걸어간다, 나는 서 있다,나는 앉아 있다, 나는 누워 있다라고 번역해야 하지만 우리말에서는 주어인 나는이라는 표현이 없는 것이 실제의 수행에 비추어 볼 때 더욱 적합한 표현이므로 주어는 전부 생략했다. 팔리어나 영어와 같은 印歐語에서는 문장의 문법적인 구조 상 주어가 생략되지 않지만, 실제의 수행에서는 행위의 주체인 나라는 존재의 설정이 없어도 행주좌와(行住坐臥) 등의 동작에 대한 알아차림이 가능하며, 결국 자아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극복하기 위한 것이 수행의 한 목적이라 할 때, 나라고 하는 행위의 주체를 개입시키지 않는 것이 위빠사나 수행을 향상시키는 데에도 도움이 됨을 알 수 있다.

수행이 향상됨에 따라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은 나라는 어떤 실체가 아니라, 단지 정신적인 현상(名)과 육체적 혹은 물질적인 현상(色) 뿐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즉, 우리가 경험할 수 있는 현상은 정신적인 현상(名)과 육체적 혹은 물질적인 현상(色)일 뿐, 어디에서도 실체적인 자아는 발견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육체적인 동작이나 행위에 마음을 챙겨 알아차릴 때, 처음부터 나는 또는 내가라고 하는 생각을 개입시키지 않는 것은 실제의 수행에 있어서 중요하다. 실제로 행주좌와 등의 동작을 알아차릴 때, 간단하게 걸음, 서 있음,앉음,누움이라고 마음으로 알아차리면 된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4.7.1.3 분명한 앎(正知)

또한 비구들이여, 앞으로 나아갈 때나 뒤로 들아 갈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앞을 볼 때나, 주위를 볼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팔다리를) 구부리거나 펼 때에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가사(승복)를 입고, 발우를 들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가고, 서고, 앉을 때에도, 잠자리에 들고, 잠에서 깨어날 때에도, 말하거나, 침묵을 하고 있을 때에도 분명한 앎을 지닌다.*

<역주 : 분명한 앎(正知)의 절(節)은 앞의 행주좌와의 동작에 대한 마음챙김에 이어지는 부분으로, 일상의 모든 육체적인 동작과 행위를 할 때에는 반드시 분명한 앎이 동반되어야 함을 제시되어 있다. 마음챙김(正念)과 분명한 앎(正知)은,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수레의 두 바퀴, 새의 두 날개와 같은 관계이다. 마음챙김이 있으면, 분명한 앎이 있고, 분명한 앎이 있으면 반드시 마음챙김이 동반되어 있다. 마음챙김이 대상에 마음을 보내서 그 대상에 대해서 순간 순간 잊지 않고, 놓치지 않는 마음의 작용이라 한다면. 분명한 앎은 마음챙김과 동반되는, 대상에 대한 분명한 인식, 파악을 의미한다. 수행자 특히, 일정 기간의 집중적인 수행을 하는 수행자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저녁에 잠에 드는 순간까지 의식이 깨어 있는 모든 순간에, 자신의 육체적인 모든 행위와 동작에 마음을 챙기고 분명한 앎을 지녀야 한다. 한 순간의 방심도 없이 마음챙김이 이어질 때, 마음집중(定)과 지혜(慧)가 성숙하기 시작한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長部』22『大念處經』DN II, 292-3.

4.7.1.5 네 가지 요소(四大; 地水火風)에 대한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이 육신을 현재 있는 그대로, 구성되어진 그대로 (네 가지) 요소의 측면에서 관찰한다. 즉, ꡒ이 육신에는,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가 있다ꡓ라고.

비구들이여, 마치 숙력된 백정이나 그의 제자가 소를 도살해서 사거리의 큰 길에 부위별로 해체해 놓고 앉아있는 것과 같이, 바로 이처럼 비구들이여, 수행자는 바로 자신의 육신을 (네 가지) 요소의 측면에서 관찰한다. 즉, ꡒ이 육신에는,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가 있다ꡓ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어떤)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293-5.

<*역주 : 위에서 말한 네 가지 요소에 대한 관찰은 현재 미얀마의 마하시 스님(1904-1982)의 전통에 따르는 위빠사나 수행의 토대가 되는 수행의 방법이다. 마하시 스님의 위빠사나 수행의 특징은 좌선을 할 때, 들숨과 날숨(出入息) 에 마음을 챙기는 출입식념(出入息念)을 택하지 않고) 호흡에 동반되어 발생하는 복부의 움직임에 마음을 집중하는 것이라 하겠다. 호흡이라는 자연스른 생명의 현상에 따라 발생하는 복부의 팽창과 수축에 마음을 챙겨서 바로 이 복부의 움직임이 다름아닌 바람의 요소(風界)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아차려가면서 마음집중과 지혜를 동시에 향상시켜나가는 것이 마하시 스님의 위빠사나 수행의 기본적인 좌선의 방법이다. 물론 좌선 이외의 동작을 할 경우에는 앞에서 이미 설명한 바 있는 모든 동작에 마음을 챙기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마하시 스님의 수행법은 마하시 스님 이전에는 일반화되지 못한 채 몇몇 수행승들에 의해서 전해져 내려왔으나, 1950년대 부터 본격적으로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현재에도 미얀마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닦는 수행법이 바로 마하시 스님이 일반화한 위빠사나 수행법이다. 미얀마에는 마하시 수행법이외에도 손꼽을 수 있는 몇몇의 수행법이 현재 승려는 물론 일반 재가자들 사이에서도 실천되고 있다.>

4.7.2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受念處]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즐거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괴로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괴로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육체적인 즐거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육체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정신적인(비육체적인) 즐거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정신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육체적인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육체적인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정신적인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정신적인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느낌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느낌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느낌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느낌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298-9.

<역주 :「네 가지의 마음챙김」 가운데에서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이 「몸에 대한 마음챙김」 뒤에 설해져 있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 의미를 집중수행을 하는 수행자의 경우와 일상생활에서의 경우를 들어서 생각해 보자.

(1) 집중수행의 경우

집중적인 수행을 하고 있는 수행자는 몸과 마음에서 생겨나는 감각적인 느낌을 생생하게 파악하게 된다. 우선적으로는 육체적인 느낌(주로 괴로운 느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특히 초보자의 경우, 좌선을 할 때에는 다리의 통증이나, 등의 통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때, 통증이 느껴지는 과정을 놓치지 않고 관찰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상적인 생활에서는 몸에서 통증이 생기면, 바로 그 통증을 제거하기 위한 조건 반사적인 행동을 취하게 된다. 수행 도중에도 이러한 조건 반사적인 행동을 취한다면, 감각적인 느낌의 본질을 알지 못하게 될 것이다. 수행은 자극에 대해서 반사적인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극 자체를 알아차리는 작업이다. 다리의 통증이나 등의 통증이 있을 때, 견디어 낼 수 있을 때까지 견디면서(이 때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온을 유지해야 한다는 점을 명심할 것) 느낌 자체를 관찰하면서 그 본질을 알아 차려야 한다.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즐거운 느낌, 불쾌한 느낌 등의 자극을 반사적인 반응 없이 알아차려 나갈 때, 그 느낌들의 본질을 직접 이해하게 된다. 즉 모든 느낌은 (조건에 의해서) 생겨나서, (조건이 없어지면) 사라져 가는 것이라는 본질을 자신의 관찰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이해가 생기면, 고통을 견디어 내는 힘도 강해지고, 즐거운 느낌에도 집착하는 마음이 없어지게 된다.

수행 도중에는 마음의 집중이 향상함에 의해서 강한 기쁨이나 희열 등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 때 경험하는 기쁨도 생겨나는 순간에 관찰해야 하는 대상일 뿐, 붙들고 집착할 대상은 아니다. 좋은 경험도 결국은 사라지는 경험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끊임없이 생겨나는 즐겁고, 괴로운 느낌들을 집착하지도 싫어하지도 않으면서 관찰해 나갈 때, 지혜가 성숙해 가는 것이다. 느낌은 지혜를 계발하는 재료이다. 몸에 대한 마음챙김은 일차적으로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으로 바로 연결되어 있다.

(2)일상생활에서의 느낌에 대한 관찰

우리들의 일상생활은 갖가지 감각적인 자극들로 가득 차 있다.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은 무방비 상태로 개방된 채 수많은 자극들을 소화도 시키지 못한 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마음은 이렇게 쏟아져 들어오는 자극들을 정리도 못한 채, 이리저리 헤매이고 있는 것이 우리들의 평범한 일상의 모습이다. 즐거운 느낌이 있으면, 더욱 그 느낌을 얻으려 하고, 불쾌한 느낌이 있으면, 그 느낌을 없애려고 애를 쓴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마음속에서는 우리를 불행하게 하는 탐욕과 성냄이 생겨나는 것이다. 탐욕과 성냄이라는 마음의 번뇌는 즐거운 느낌과 괴로운 느낌에 의해서 생겨난다. 즉 번뇌의 원인은 느낌에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느낌을 없앨 수는 없다. 느낌은 감각 기관과 대상과의 접촉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문제는 느낌 자체가 아니라 느낌에 대한 집착과 거부감이다.

예를 들면, 여름철의 무더위 때문에 육체의 불쾌한 느낌이 생긴다. 이 불쾌한 느낌 때문에 정신적인 짜증이 생기고 불쾌지수가 높아지는 것이다. 이처럼 육체의 불쾌감이 정신의 불쾌감의 원인이 되는 것은 일상에서 언제나 경험되는 일이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마음을 살피려 하고 탐욕과 성냄이라는 마음의 번뇌를 덜어내려면, 느낌에 의해서 이러한 번뇌가 일어나는 과정을 잘 이해해서, 느낌 뒤에 번뇌가 생겨나는 것을 방지하는 힘을 키워야 할 것이다. 여름은 더운 계절이라는 상식을 다시 한 번 생각하면, 더위를 정신적으로 견디어 내는 힘이 생겨날 것이다. 느낌을 바로 이해하는 것은 그 느낌을 극복하는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일상생활에서도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은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다.>

4.7.3 마음에 대한 마음챙김 (心念處)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탐욕이 있는 마음(有貪心)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또는 탐욕이 없는 마음(無貪心)을 탐욕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성냄이 있는 마음(有瞋心)을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성냄이 없는 마음(無瞋心)을 성냄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有癡心)을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無癡心)을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침체된 마음을 침체된 마음이라고 알며, 산만한 마음을 산만한 마음이라고 안다. (선정 수행으로) 커진 마음(大心)을 커진 마음이라고 알며, (선정 수행을 닦지 않아) 커지지 않은 마음을 커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색계 선정과 무색계 선정 수행이) 향상된 마음을 향상된 마음이라고 알며, 향상이 안된 마음을 향상이 안된 마음이라고 안다. (선정에 의해) 잘 집중된 마음을 잘 집중된 마음이라고 알며, 집중이 안된 마음을 집중이 안된 마음이라고 안다. (선정 수행에 의해 일시적으로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진 마음(解脫心)을 자유로워진 마음이라고 알며, 자유로워지지 않은 마음(非解脫心)을 자유로워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 여기에서 사용된 마음(citta)이란 마음 또는 의식의 순간들(moments of consciousness)을 통틀어서 일컫는 집합적인 용어(collective term)이다. 인식작용[識; vi~n~naa?a]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마음 또는 의식이라는 용어를 사고(思考; thought)라고 번역해서는 안된다. 사고(思考)와 생각함(thinking)은 마음의 언어적인 작용, 즉 거친 생각(尋)과 미세한 생각(伺)에 해당하며, 형성작용의 무더기인 행온(行蘊)이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마음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마음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마음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마음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299-300.

<*역주 : 냐나틸로카 스님의 해설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여기에서 말하는 '마음'이란 의식의 순간들을 의미하는 말이다. 특히 사소한 마음의 변화도 민감하게 포착하고 있는 수행중의 수행자의 마음 또는 의식의 순간들을 가리키고 있다.

마음 또는 의식이란 고정되어 있는 실체가 아니라 조건에 의해서 생겨났다가는 사라지는 순간 순간의 마음의 총체를 말한다. 엄밀하게 말하면 마음은 순간 순간 변하므로 동일한 두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불교의 기본적인 입장이다.. 시간의 변화에 따라 마음을 만들어낸 조건도 변하므로, 동일한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이 동일한 마음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일상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마음은 이렇게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마음을 어떤 범주를 정해서 편의상 이름을 붙여서 부르고 있는 것이다.

위와 같은 경전에 설해진 마음의 범주를 후대의 아비달마 불교에서는 정밀하게 분류하였다. 아비달마 불교의 분류는 지면상 생략하지만, {大念處經}의 「마음에 대한 마음챙김」에서 제시된 마음은 16가지의 마음의 범주임을 알 수 있다.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라는 근본적인 번뇌와 관계된 마음과 수행과 관계된 마음의 순간들이 제시되어 있다. 이 경전을 듣는 청중이 수행승들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수행 도중에 경험되는 마음의 순간들에 대한 언급이 자세히 설해진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요점은 수행 도중에 경험하는 마음들에 대해서 정확하게 알아차리는 것이며, 그러한 마음을 집착하거나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탐심이 일어나면, 탐심이라고 알아차리면 된다. 알아차리게 되면, 생겨난 탐심이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 스스로 알게 될 것이다. 수행의 힘이 약한 일상의 마음으로는 탐심이 있다는 점을 알아도 그 탐심을 다루는 법에 능숙하지 못하므로 탐심이라는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있게 된다. 하지만 마음챙김의 힘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다면, 탐심이 일어나는 순간 탐심을 알아차려 탐심의 진행은 차단된다. 알아차리는 순간 탐심은 끊어져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수행에 의해 생겨난 지혜의 힘에 의해서 번뇌가 제어되는 과정이다. 탐심과 같은 부정적인 마음뿐만 아니라, 탐심이 없는 마음이라는 긍정적인 마음도 정확하게 알아차려야 한다. 즉, 탐심을 알아차린 후 탐심이 사라졌으면, 탐심이 사라졌음을 분명히 파악해야 한다. 알아차림이라는 마음의 작용에 의해서 부정적인 마음들은 사라지고, 긍정적인 마음, 청정한 마음이 생겨나게 된다. 이 때 주의해야 할 점은 긍정적인 마음에도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부정적인 마음이 사라짐으로써 생겨난 긍정적인 마음도 집착의 대상이 된다면 결국 또 다른 탐심(부정적인 마음)이 생겨나는 결과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마음이 생겨나면, 생겨났음을 바로 알아차려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부정적인 마음도 긍정적인 마음도 거부나 집착의 대상이 아니라 마음챙김(알아차림)의 대상이 될 때, 수행은 제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그 어떠한 것이라도 생겨나고 경험된 것은 알아차림의 대상이지, 집착의 대상은 아니다. 부정적인 요소가 없어지고, 긍정적인 요소가 생겨나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긍정적인 요소에도 집착하지 않는 것이 수행의 바른 길이다. 수행을 하는 과정에서 경험되는 좋은 마음의 순간들은 수행이 향상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향상된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마음챙김을 지니는 것은 수행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순간 순간의 마음을 잘 살피고 마음챙김을 굳게 지닐 때, 부정적인 마음은 사라지고, 마음은 청정해지며, 더욱더 지혜로워질 것이다. 마음챙김 수행의 이로움은 바로 스스로 청정해지며,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지혜를 갖추게 해주는 것이며, 궁극적으로는 이렇게 얻은 지혜의 힘으로 최상의 행복인 열반을 얻는 데에 있는 것이다. >

4.7.4 법에 대한 마음챙김 (法念處)
<다섯 가지 종류의 육체적?정신적 현상에 대한 마음챙김>

4.7.4.1 다섯 가지 덮개(五蓋)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다섯 가지 덮개(五蓋)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다섯 가지 덮개(五蓋)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있으면, ꡐ나에게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있다ꡑ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없으면, ꡐ나에게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없다ꡑ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감각적 욕망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감각적 욕망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악의(惡意, 분노)가 있으면, ꡐ나에게 내적으로 악의(惡意)가 있다ꡑ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악의가 없으면, ꡐ나에게 내적으로 악의가 없다ꡑ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악의가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악의가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악의가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있으면, ꡐ나에게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있다ꡑ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없으면, ꡐ나에게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없다ꡑ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혼침과 졸음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혼침과 졸음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혼침과 졸음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우울)이 있으면, ꡐ나에게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이 있다ꡑ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이 없으면, ꡐ나에게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이 없다ꡑ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회한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들뜸과 회한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들뜸과 회한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있으면, ꡐ나에게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있다ꡑ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없으면, ꡐ나에게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없다ꡑ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회의적 의심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회의적 의심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회의적 의심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300-301

<역주 :「네 가지 마음챙김」 가운데 네 번째의 「법에 대한 마음챙김」에 대한 부분은 마음챙김 수행의 대상과 장애, 수행 도중에 경험하는 현상들 그리고 마지막 목적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앞서 설해진 몸에 대한 마음챙김 (身念處),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 (受念處), 마음에 대한 마음챙김 (心念處) 등의 수행의 전 과정이 요약 정리되어 제시되면서, 초기불교의 주요 교설인 오개(五蓋),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 칠각지(七覺支), 사성제(四聖諦)가 설해져 있다. 법념처(法念處)에서는 이처럼 5 가지 종류의 육체적?정신적 현상에 대한 마음챙김이 설해지고 있으나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러한 교리들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수행을 해 나가면서 알아차림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점이다. 먼저 법념처에서 마음챙김의 대상으로 삼는 수행의 대상 또는 주제는 인간의 정신적?육체적 현상의 전체인 오온(五蘊)이다(오온에 대해서는 4.7.4.2를 참조하기 바람). 이렇게 우리 자신의 정신적?육체적인 현상을 관찰하고 알아차리는 수행을 시작하는 수행자가 처음 부딪히는 문제가 다섯 가지 덮개[蓋; 욕망, 악의(분노), 혼침과 졸음, 들뜸과 회한(우울), 회의적 의심]다. 일차적인 수행의 대상인 육체적인 현상(좌선 시에는 호흡이나 호흡에 동반되어 발생하는 복부의 움직임이며, 행선(걷는 수행)시에는 들어올리고, 앞으로 나아가고, 내려놓는 동작임)을 마음챙겨서 알아차리다가 마음에서 수행에 방해가 되는 다섯 가지 장애가 생기면 생기는 바로 그 즉시 알아차리고 알아차린 후 이 장애들이 사라지면 사라졌다고 바로 알아차려야 한다고 이 부분에서 설하고 있는 것이다.

집중적인 수행을 하지 않을 때에도 다섯 가지 덮개는 우리의 마음을 오염시키는 번뇌이므로 항상 주의 깊게 살펴서 마음에서 생겨난 이러한 번뇌들이 주인 노릇을 못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번뇌를 차단시키려면 항상 자신의 마음과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기민한 마음챙김으로 알아차려야 한다. 마음챙김이라는 문지기가 없으면 우리의 마음에는 각가지 번뇌가 생겨나기 때문이다. 번뇌라는 정신적인 현상으로서의 법을 생겨날 때 그리고 사라질 때 즉시 즉시 알아차리는 것이 마음챙김에 의거한 위빠사나 수행에서의 법에 대한 마음챙김의 한 부분이다. 법에 대한 마음챙김은 다섯 가지 덮개에 이어서 (2) 오온(色受想行識), (3) 십이처(眼耳鼻舌身意와 色聲香味觸法), (4) 칠각지(念, 擇法, 精進, 喜, 輕安, 定, 捨), (5) 사성제(苦集滅道)로 이어진다. >

4.7.4.2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비구가 '이것은 물질적 현상(色)이다', '이것은 물질적 현상의 발생이다', '이것은 물질적 현상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감수 작용(受)이다', '이것은 감수작용의 발생이다', '이것은 감수작용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표상 작용(想)이다', '이것은 표상 작용의 발생이다', '이것은 표상 작용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형성 작용(行)이다', '이것은 형성 작용의 발생이다', '이것은 형성 작용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인식 작용(識)이다', '이것은 인식 작용의 발생이다', '이것은 인식 작용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4.7.4.4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念覺支; sati-sambojjha"nga]가 있을 때, ꡐ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ꡑ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ꡐ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ꡑ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擇法覺支; dhamma-vicaya-sambojjha"nga]가 있을 때, ꡐ나에게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ꡑ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ꡐ나에게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ꡑ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精進覺支; viriya-sambojjha"nga]가 있을 때, ꡐ나에게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ꡑ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ꡐ나에게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ꡑ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喜覺支; piiti-sambojjha"nga]가 있을 때, ꡐ나에게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ꡑ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ꡐ나에게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ꡑ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輕安覺支; passaddhi-sambojjha"nga]가 있을 때,ꡐ나에게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ꡑ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ꡐ나에게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ꡑ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定覺支; samaadhi-sambojjha"nga]가 있을 때, ꡐ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ꡑ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ꡐ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ꡑ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捨覺支; upekkhaa-sambojjha"nga]가 있을 때,ꡐ나에게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ꡑ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ꡐ나에게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ꡑ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역주 : 다섯 가지 덮개를 극복하면서 몸과 마음의 현상들을 관찰하는 수행을 계속해 나아가면, 깨달음의 일곱 가지 요소(七覺支)가 경험되기 시작한다. 이때가 되면 몸과 마음이 안정되며 수행에 대한 확신도 강해진다. 마음챙김(念覺支)이 더욱 예리해지고, 몸과 마음이라는 현상(法)에 대한 이해(擇法覺支)가 심화된다. 수행이 향상됨에 따라 좋은 현상들을 경험하게 되면서 더욱 더 정진에 힘을 가하게 된다(精進覺支). 마음에서 강한 기쁨을 맛보기도 하며(喜覺支), 마음과 몸은 편안해지고 안정된다(輕安覺支). 기쁨을 맛보고 편안해진 마음은 더욱 집중을 이루게 되며(定覺支), 생겨났다가는 사라지는 심신의 온갖 현상들에 대해서 집착하지도 거부하지도 않는 마음의 평온이 유지된다(捨覺支).

수행이 진전되면서 생겨나는 깨달음의 일곱 가지 요소가 경험될 때 주의해야 할 점은, 이러한 긍정적인 현상에도 집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수행의 핵심은 마음챙김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이러한 좋은 현상들도 마음챙김의 대상일 뿐이다. 경험되면 바로 알아차리고 일차적인 마음챙김의 대상을 알아차리는 일로 마음을 돌려야 한다.

『청정도론』에서는 다음과 같이 위빠사나를 닦는 수행자가 경험하게 되는 10 가지 번뇌를 설명하고 있다. 10 가지 위빠사나 수행에 따르는 번뇌(十觀隨染)는 모두 처음 위빠사나 수행을 열심히 하는 수행자에게만 생기는 번뇌이다.(Vism .633-638)

(1) 마음속에서 강한 빛을 경험하기도 하고 (光明 obhaasa),(2) 예리한 이해력이 생겨 경전이나 교리의 깊은 의미를 꿰뚫듯이 이해되기도 하며 (知 ~naa.na), (3) 몸의 전율을 느끼는 희열이 생기기도 하고 (喜 piiti), (4) 몸과 마음은 아주 안정되어 편안해지며 (輕安 passaddhi), (5) 마음에서 강렬한 즐거운 느낌을 느끼기도 하며 (樂 sukha), (6) 강한 신심이 생겨나기도 하고 (勝解 adhimokkha), (7) 더욱더 수행에 전념하여 정진을 하며 (努力 paggaho), (8) 흔들림 없는 마음챙김이 뚜렷하게 항상 자리잡고 있기도 하고 (現起 upa.t.thaana), (9) 생겨났다가 사라지는 현상들에 대해서 마음은 더욱더 무덤덤해지며 (捨 upekkhaa), (10) 이러한 제 현상들에 대하여 미세한 집착과 욕망이 일어난다(欲求 nikanti).

수행 도중에 위와 같은 현상을 경험하게 되면,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집착하거나 미세한 욕망이 마음에 있는가를 잘 살펴서 조금이라도 집착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는 번뇌라고 알아차리고 계속해서 수행을 해 나아가야 한다. 10 가지 위빠사나 수행에 따르는 번뇌와 깨달음의 일곱 가지 요소와의 차이는 집착 또는 욕망이라는 번뇌에 있다. 깨달음의 일곱 가지 요소와 같이 수행을 통해서 얻은 좋은 현상에도 집착하면 안된다는 가르침을 10가지 위빠사나 수행에 따르는 번뇌에서 찾아볼 수 있다.>

4.7.5.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 [出入息念] (간추림)

4.7.5.1 호흡의 관찰

비구들이여,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을 닦아 자주 익힌 수행자는,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을 완성하게 된다. 네 가지 마음챙김을 닦아 자주 익힌 수행자는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를 완성하게 된다.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일 닦아 자주 익힌 수행자는 지혜[明, vijja]에 의한 자유[解脫]을 이루게 된다.

비구들이여, 어떻게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자주 익혀서, (네 가지 마음챙김의 완성이라는) 큰 결과와 큰 이익을 얻겠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비구가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빈방에 가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서, 상체를 곧 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단단히 하여 앉는다. 그리고는 마음을 챙겨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을 챙겨서 숨을 내쉰다.

(1) 숨을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숨을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pajaanaati], 길게 내쉬면서는 `숨을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2) 숨을 짧게 들이쉬면서는 `숨을 짧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숨을 짧게 내쉬면서는 `숨을 짧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3) `온 몸 (호흡의 전 과정)을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sikkhati] `온 몸을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4) (호흡이라는) '몸의 작용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들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몸의 작용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한다.

(5) (수행에 의해서 생겨난) '기쁨[喜]을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기쁨을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6) '즐거움[樂]을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즐거움을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7) (기쁨이나 즐거움 등의 느낌이라는) '마음의 작용[心行]을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마음의 작용을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8) '마음의 작용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들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마음의 작용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한다.

(9)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10)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즐거움을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11)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12) '마음의 상태를 안정시키면서 숨을 들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마음의 상태를 안정시키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한다.

(13) '무상함을 관찰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무상함을 관찰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14) '(마음속에) 탐욕이 없음을 관찰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탐욕이 없음을 관찰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15) '(괴로움의) 소멸[nirodha]을 관찰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소멸을 관찰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16) '집착의 버림을 관찰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집착의 버림을 관찰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한다.

4.7.5.2 호흡의 관찰과 네 가지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어떻게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 [出入息念]을 닦아 자주 익혀서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을 완성하는가?

(1) 호흡의 관찰과 몸에 대한 마음챙김

(1) 비구들이여 어느 비구가 숨을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숨을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길게 내쉬면서는 `숨을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2) 숨을 짧게 들이쉬면서는 `숨을 짧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숨을 짧게 내쉬면서는 `숨을 짧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3) `온 몸(호흡의 전 과정)을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sikkhati] `온 몸을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4) (호흡이라는) '몸의 작용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들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몸의 작용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이렇게 수행할 때,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바로 이 들숨[入息]과 날숨[出息]을 몸에서 몸을 관찰할 때의 대상으로 말하기 때문이다.

(2) 호흡의 관찰과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

(5) 비구들이여 어느 비구가 [수행에 의해서 생겨난] '기쁨[喜]을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기쁨을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6) '즐거움[樂]을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즐거움을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7) (기쁨이나 즐거움 등의 느낌이라는) '마음의 작용[心行]을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마음의 작용을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8) '마음의 작용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들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마음의 작용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이렇게 수행할 때,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감각적인 느낌에서 감각적인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 것이다.

(3) 호흡의 관찰과 마음에 대한 마음챙김

(9) 비구들이여 어느 비구가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10)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즐거움을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11)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12) '마음의 상태를 안정시키면서 숨을 들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마음의 상태를 안정시키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한다.

이렇게 수행할 때,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 것이다.

(4) 호흡의 관찰과 법에 대한 마음챙김

(13) 비구들이여 어느 비구가 '무상함을 관찰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무상함을 관찰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14) '(마음속에) 탐욕이 없음을 관찰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탐욕이 없음을 관찰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15) '(괴로움의) 소멸[nirodha]을 관찰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소멸을 관찰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16) '집착의 버림을 관찰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집착의 버림을 관찰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한다.

이렇게 수행할 때,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지혜에 의해서 탐착심과 언짢은 마음을 극복한 비구는 사물을 평온한 마음[捨心]으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경우를 무상(無常) 등의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의 대상이라고 나는 말한다.*
『中部』118『출입식념경』MN III, 78-85.

<역주 : 장부(長部)의 『대념처경』에 대한 정리를 끝나운 후, 냐나틸로카 스님은 중부(中部)의『출입식념경』의 내용을 간추려서 정리했다. 『대념처경』에서 간단하게 설명되었던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이 상세하게 다루어지면서,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을 바탕으로 한 수행의 점진적인 향상이 제시되어 있는 경이 바로 중부(中部)의『출입식념경』이다.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을 바탕으로 한 수행의 점진적인 향상은 다음과 같이 전개된다. 먼저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에서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으로 수행이 향상되며, 다시 네 가지 마음챙김 수행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로 향상되고,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에 의해서 지혜[明, vijjaa]에 의한 자유[解脫]를 이루게 된다는 구체적인 수행의 단계가 이 경에는 조리있게 설해져있다.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을 바탕으로 네 가지 마음챙김을 닦는 수행법은 현재의 남방불교의 주된 수행법의 한 가지이다. 태국 동북부의 아찬 먼 스님과 아찬 차를 위시로한 그의 제자들의 수행법, 태국 남부의 아찬 붓다다사 스님의 수핸법, 미얀마의 레디 사야도의 수행전통(모곡 사야도, 순룬 사야도, 우 바 킨, 고엔카 등)이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을 기초로 하면서 네 가지 마음챙김을 바탕으로 한 위빠사나 수행법을 가르치고 있다.>

4.7.5.3 호흡의 관찰과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

비구들이여, 어떻게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을 닦고 자주 익혀서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를 완성시키는가?

비구들이여,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어떤 비구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낼 때, 감각적 느낌에서 감각적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낼 때,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낼 때,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낼 때, 그 때 그의 마음챙김은 뚜렷이 확립되어 있고, 흐리멍덩하지 않은 상태이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의 마음챙김이 뚜렷이 확립되어 있고, 흐리멍덩하지 않은 상태일 때, 그에게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念覺支; sati-sambojjha"nga]가 생겨난 것이며,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 것이며,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를 수행을 통해서 완성하게 된다.

이와 같이 마음챙김을 지니고 지내면서, 현상[법; dhamma]을 지혜에 의해서 (無常하고 苦이며 無我라고) 고찰하고, 검토하며, 사색한다. 이처럼 마음챙김을 지니고 지내면서, 현상을 지혜에 의해서 고찰하고, 검토하며, 사색할 때, 그 때 그에게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擇法覺支; dhamma-vicaya-sambojjha"nga]가 생겨난 것이며,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 것이고,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를 수행을 통해서 완성하게 된다.

현상을 지혜에 의해서 고찰하고, 검토하며, 사색하는 그 비구에게 흔들리지 않는 정진이 생겨난다. 현상을 지혜에 의해서 고찰하고, 검토하며, 사색하는 비구에게 흔들리지 않는 정진이 생겨났을 때, 그 때 그에게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精進覺支; viriya-sambojjha"nga]가 생겨난 것이며, 그는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 것이며,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를 수행을 통해서 완성하게 된다.

정진을 일으켜 수행에 몰두하는 그 비구에게 (번뇌에 물들지 않은) 세간에서는 맛 볼 수 없는 기쁨이 생겨난다. 정진을 일으켜 수행에 몰두하는 비구에게 세간에서는 맛 볼 수 없는 기쁨이 생겨났을 때, 그 때 그에게는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喜覺支; piiti-sambojjha"nga]가 생겨난 것이며,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 것이고,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를 수행을 통해서 완성하게 된다.

기쁨에 넘쳐 있는 마음의 그 비구는 몸도 편안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진다. 기쁨에 넘쳐 있는 마음의 비구가 몸도 편안해지고 마음도 편안해질 때, 그 때 그에게는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輕安覺支; passaddhi-sambojjha"nga]가 생겨난 것이며,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 것이고,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를 수행을 통해서 완성하게 된다.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안정된 그 비구는 마음이 집중된다. 몸이 편안하고 마음이 안정된 비구가 마음이 집중되었을 때, 그 때 그에게는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定覺支; samaadhi-sambojjha"nga]가 생겨난 것이며,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 것이고,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를 수행을 통해서 완성하게 된다.

이처럼 집중된 마음을 지닌 그 비구는 치우치지 않는 마음의 평온한 상태를 잘 유지한다. 집중된 마음을 지닌 비구가 치우치지 않는 마음의 평온한 상태를 잘 유지할 때, 그 때 그에게는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捨覺支; upekkhaa-sambojjha"nga]가 생겨난 것이며,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를 닦는 것이고,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를 수행을 통해서 완성하게 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네 가지 마음챙김을 닦고 자주 익혀서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을 완성한다.

4.7.5.4 호흡의 관찰과 해탈의 성취

비구들이여, 어떻게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닦고 자주 익혀서 지혜[명, vijjaa]에 의한 해탈을 이루게 되느아?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비구가 (세간적인 것에서) 멀리 떨어짐[遠離, viveka]에 의거해서, 감각적인 욕망을 버림[離欲, viraaga]에 의거해서, (번뇌 또는 괴로움의) 소멸[滅, nirodha]에 의거해서, 털어 버림[捨, vossagga]에 의거해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念覺支],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擇法覺支],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精進覺支],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喜覺支],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輕安覺支],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定覺支],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捨覺支]를 닦는다.

이와 같이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를 닦고 자주 익히면 지혜에 의한 해탈을 이루게 된다.
『中部』118『출입식념경』MN III, 85-8.

4.7.6 네 가지 마음챙김에 의한 열반의 성취

마치 코끼리 조련사가 코끼리의 야성적인 습성을 제어하고 인간에게 맞는 습성을 가르치기 위해서, 땅에 커다란 기둥을 세워놓고 코끼리 목을 붙들어 매어놓는 것과 같이, 세간의 생활에 바탕을 둔 습성을 제어하기 위하여, 세간의 생활에 대한 기억과 성향을 제어하기 위하여, 세간의 생활에서 생기는 괴로움, 정신적인 피곤함, 열병을 제어하기 위하여, 궁극적으로는 진실한 길을 얻고 열반을 증득하기 위하여 이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은 고귀한 제자들의 마음을 붙들어 매어 두는 기둥이다. *
『中部』125 『調御地經』MN III, 136.

<역주 : 중부(中部)의 『출입식념경』에 제시 되어 있는 수행의 향상 단계를 다시 정리해본다. 먼저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이 완성되면서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으로 수행이 향상되며, 다시 네 가지 마음챙김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로 이어지고,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에 의해서 지혜[明]에 의한 해탈을 이루게 된다는 수행의 향상 단계를 본 경전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은 수식관(隨息觀)이라고도 하며 호흡의 흐름을 정확하게 파악하면서 마음을 안정시키고 가라앉히는 수행법이다. 이 수행법은 마음의 안정과 집중[禪定]를 얻는 데 효과적이며, 모든 성향의 사람들이 닦을수 있는, 부작용이 없는 보편적인 수행법으로 경전에 제시되어 있다. 하지만,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은 다음 단계의 수행인 네 가지 마음챙김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단계의 수행이다.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으로 마음이 안정되면,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으로 수행이 진전되어야 한다. 네 가지 마음챙김 수행은 다름 아닌 위빠사나 수행이며, 이 수행을 통해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가 완성되고,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의 완성에 의해서 지혜[明]에 의한 해탈을 이루게 된다. 『출입식념경』에 제시되어 있는 수행의 첫 걸음은 자신의 호흡을 파악하면서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이라면, 그 종착역은 네 가지 마음챙김에 의해서 얻어지는 지혜에 의한 괴로움의 소멸에 있는 것이다.>

4.8 바른 마음집중[正定]

4.8.1 바른 마음집중의 정의

바른 마음집중이란 무엇인가?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고정되어 있는 상태[cittekaggataa ; 心一境性], 이것이 마음집중[三昧]이다.

[* 가장 넓은 의미에서 생각할 때, '바른 마음집중'[正定; sammaa-samaadhi]이란, 모든 온전한 의식 상태[善心; kusala-citta]에 내재하고 있는 정신적인 집중상태를 말하며, 최소한 바른 사유[正思, 두 번째 덕목], 바른 노력[正精進, 여섯 번째 덕목], 바른 마음챙김[正念, 일곱 번째 덕목] 의 세 가지 덕목을 동반하고 있다. '바르지 못한 마음집중'[邪定; micca-samaadhi]이란 온전하지 못한 의식 상태에 내재하고 있으며, 따라서 오직 감각적 욕망의 영역[欲界]에서만 있을 뿐 더 높은 영역[色界 또는 無色界]에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경전에서 마음집중[三昧; samaadhi]이라는 말이 단독으로 쓰일 경우에는 항상 바른 마음집중을 의미한다.]

4.8.2 바른 마음집중의 대상․조건․향상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 이것이 마음집중의 근거[nimittaa]이다. 네 가지 바른 노력, 이것이 마음집중의 조건이다. 이러한 법들을 실행하고, 닦으며, 계발하는 것, 이것이 마음집중의 향상[bhaavanaa]이다.
{中部} 44 {有明小經} MN I, 301.

[* 바른 마음집중은 근접삼매(近接三昧)와 안지삼매(安止三昧)의 두 단계로 나뉘어진다. 근접삼매는 초선(初禪)에 들어가지 않으면서 초선에 접근해 가는 마음집중을 말하며, 안지삼매는 초선에서 사선(四禪)에 이르는 네 가지 선정(禪定)으로 대표되는 마음집중을 말한다. 이러한 선정은 다섯 감각기관의 영역[欲界]을 넘어서 있는 마음의 상태이며, 감각적인 세계로부터 멀리 떨어져 마음집중 수행에 꾸준하게 전념할 때에만 경험될 수 있다. 이러한 선정의 상태에서는 다섯 감각기관의 모든 활동은 정지된다.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어서 생기는 어떠한 느낌들도 선정의 상태에서는 생기지 않으며, 어떠한 육체적인 느낌도 느껴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외적인 모든 감각적인 느낌들이 없어졌다고 하더라도, 마음은 활동적이고, 아주 기민한 상태이며, 충분히 깨어있다.

하지만 이러한 선정에 도달하는 것이 (수타원에서 아라한에 이르는) 네 부류의 성인의 깨달음[四果]를 얻는데 필수적인 조건은 아니다. 근접삼매나 안지삼매에는 네 부류의 성인의 깨달음에 이르도록 하는 힘이 결여되어 있다. 따라서 선정에는 번뇌나 괴로움에서 영원히 벗어나게 해주는 힘이 정말로 없다. 현상적인 존재의 모든 흐름이 영원하지 못하고[無常], 안정되어 있지 못하며[苦], 영원한 나라고 할만한 것이 없음[無我]을 통찰하는, 깊은 지혜(위빠사나)가 있을 때에야 비로소 네 부류의 성인의 깨달음은 실현될 수 있다. 이러한 통찰의 지혜는 안지삼매를 통해서가 아니라 근접삼매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네 가지의) 선정을 경험하지 않고서 네 부류의 성인의 깨달음 가운데 하나라도 얻은 사람을 일컬어 자신의 수행법으로 위빠사나만을 행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건관행자(乾觀行者; sukkha-vipassaka) 또는 순관행자(純觀行者; suddha-vipassanaayaanika)라고 한다. 이에 반해서 선전 수행을 닦은 후에 네 부류의 성인의 깨달음의 하나를 얻은 사람을 일컬어 자신의 수행법으로 선정을 의미하는 고요함[止; samatha]을 행하는 자라는 의미에서 지행자(止行者; samathayaanika)라고 한다.] *

<역주 : 『붓다의 말씀』의 편저자인 냐나틸로카 스님은 『대념처경(大念處經)』에 설해진 가르침을 중심으로 팔정도의 일곱 번째 덕목인 바른 마음챙김[正念]에 대한 긴 설명을 마친 후, 팔정도의 마지막 덕목인 바른 마음집중[正定]에 대해서 해설을 시작한다. 먼저 중부경전의 {有明小經}에 간단하게 설해져 있는 마음집중[禪定]의 정의, 대상, 조건, 향상에 대한 부분을 제시한 후, 구체적으로 초선(初禪)에서 사선(四禪)의 의미에 대해서 정리하고 있다. 이번에는 {有明小經}의 간단한 내용과 그에 대한 냐나틸로카 스님의 해설을 번역해 보았다.

경전에 제시된 마음집중[禪定]에 대한 정의는 가장 일반적인 정의로서 알려져 있는 정의이다. 즉 '마음이 하나의 대상에 집중되어 있는 상태'가 그 정의이다. 다음으로 마음집중의 대상으로서 사념처(四念處)가 제시되어 있는 점에는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본래 사념처 수행은 지혜의 계발과 직결되어 있어 위빠사나 수행의 내용이 되어 있음은 이제까지 살펴본 바른 마음챙김[正念]에 대한 해설을 참조하면 알 수 있다.

선정과 지혜 또는 지(止)와 관(觀), 사마타(samatha)와 위빠사나(vipassanaa)로 대표되는 불교의 두 수행법의 대상이 동일하게 사념처(四念處)로 제시되어 있다는 점에서 우리는 선정 수행과 지혜 수행의 공통의 기반을 확인할 수 있다. 몸?느낌?마음의 상태?심신의 여러 가지 현상[身受心法]인 네 가지 마음챙김의 대상 자체가 선정 수행을 위한 대상인 동시에 지혜 수행을 위한 대상이 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이 두 가지 수행법이 서로 깊은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법구경(法句經)』의 다음 시구에서도 확인된다.

지혜가 없는 자에게는 선정이 없고, 선정이 없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다.
선정과 지혜를 갖춘 자, 그에게 열반은 가까이 있다. Dhp 372.


선정과 지혜가 사념처를 공통의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이 두 수행법은 상호 보완적인 작용을 하고 있음을 이해한다면 선정 수행을 위주로 하는 수행법과 지혜 수행을 위주로 하고 있는 수행법은 서로 뗄 수 없는 관계임을 알 수 있다.

냐나틸로카 스님의 해설에서 볼 수 있듯이, 지혜 수행을 의미하는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자에게는 사선(四禪)으로 대표되는 안지삼매가 아닌 초선(初禪)에 가까이 접근하는 근접삼매가 지혜의 직접적인 조건으로서의 선정의 역할을 한다. 즉, 사선을 경험하지 않더라도 근접삼매라는 선정이 지혜의 조건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근접삼매란 초선에서 사선에 이르는 완전한 선정의 상태에 이르기 직전의 선정의 상태이다.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선정론이지만 위빠사나 수행의 바탕이 되는 선정은 근접삼매라고 이해한다면 크게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단 위빠사나 수행에도 선정이 필요하며, 그 선정은 근접삼매라고 이해해두자. 실제로 위빠사나 수행을 하는 자에게도 사선을 수행할 때 경험되는 선지(禪支; 선정의 구성요소)가 경험되는 것은 위빠사나 수행에 근접삼매가 바탕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다시 정리하면 불교의 수행법의 두 날개인 선정과 지혜, 사마타[止]와 위빠사나[觀]는 상호보완적인 관계에 있으며, 사념처를 공동의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붓다의 가르침에 의거한 수행법의 가장 원초적인 형태이다.>

4.8.3 네 가지 마음집중[四禪]

(1) 초선(初禪)

비구들이여, 비구는 모든 감각적인 욕망을 떨어버리고, 모든 온전하지 못한 법들[不善法]을 떨쳐 버리고 (마음집중의 대상에 대한)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가 있고, (감각적인 욕망 등에서) 멀리 떠남에 의해서 생겨난 희열[喜, piiti]과 행복감[樂, sukha]이 있는 첫 번째 마음집중[初禪]을 성취하여 거기에 머문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313.

[* 이것이 미세한 물질의 세계[色界]에 속하는 마음집중[禪定]의 첫 번째 단계이다. 이 초선은 마음집중의 힘과 다섯 감각기관의 활동의 일시적인 정지와 다섯 가지 덮개[五蓋]의 일시적인 소멸을 통해서 얻어진다.]

벗들이여, 첫 번째 마음집중[初禪]에는 다섯 가지 현상[五蓋]이 끊어지고, 다섯 가지 현상[五禪支]이 갖추어진다.

[오개(五蓋)의 사단(捨斷)]

벗들이여, 여기에 첫 번째 마음집중에 도달한 비구에게는 (1) 감각적 욕망에의 희구[kaamacchanda]가 끊어진다. (2) 악의[惡意, byaapaada]가 끊어진다. (3) 혼침과 졸음[thiina-middha]이 끊어진다. (4) 들뜨는 마음과 회한에 잠기는 마음[uddhacca-kukkucca]이 끊어진다. (5) 회의적인 의심[vicikicchaa]이 끊어진다.

[오선지(五禪支)의 구족(具足)]

첫 번째 마음집중에 도달한 비구에게는 (1) 거친 사유[尋, vitakka], (2) 미세한 사유[伺, vicaara], (3) 희열[喜, piiti], (4) 행복감[樂, sukha], (5) 하나의 대상에 대한 마음의 통일[心一境性, cittekaggataa]가 작용한다.
{中部} 43 {有明大經} MN I, 294.

[* 첫 번째 마음집중[初禪]에서 작용하는 다섯 가지 현상을 초선의 다섯 구성요소라고 한다. 그 가운데 거친 사유[尋, vitakka]와 미세한 사유[伺, vicaaro]는 마음의 언어적인 작용[vaci-sa"nkhaara]으로 불린다. 따라서 이 두 가지는 의식의 이차적인 것으로 여겨진다. 『淸淨道論』에 의하면, 거친 사유[尋, vitakka]는 물병을 잡는 행위에 비유되고, 미세한 사유[伺, vicaaro]는 잡은 물병을 닦는 행위에 비유된다. 초선에서는 이 두 가지가 함께 작용하고 있지만, 수행의 대상에 마음이 완전히 몰입되어 있을 때, 미세한 사유는 산만함이 없어지고 탐색하는 성질을 가지게 된다. 이 두 가지 초선의 요소는 제 2선(第二禪) 이후에는 완전히 없어진다. ]

(2) 제 2선(第二禪)

다시 비구들이여, 거친 사유[尋]와 미세한 사유[伺]가 가라앉고 마음의 정결함[sampasaadana]과 전일성이 있는, 거친 사유가 없고[無尋] 미세한 사유도 없는[無伺]의 마음집중[samaadhi]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감이 있는 제 2선(第二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313.

제2선을 구성하는 요소는 희열[喜], 행복감[樂] 그리고 심일경성(心一境性)이다.
『分別論』「禪定分別」Vibh 263.

(3) 제 3선(第三禪)

다시 비구들이여, 희열을 버리고, 평온[捨,upekkha]에 머문다. 마음챙김[正念]과 분명한 앎[正知]을 지니고, 몸으로 행복을 경험하면서, 성자들이 `평온함과 마음챙김을 지니고 행복감에 머문다'고 한 제3선(第三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313.

제3선을 구성하는 요소는 행복감[樂]과 심일경성(心一境性)이다
『分別論』「禪定分別」Vibh 264.

(4) 제 4선(第四禪)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행복감[樂]을 떠나고 괴로움[苦]도 떠나고,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없애버린, 불고불락(不苦不樂)인, 그리고 평온(捨)에 의한 마음챙김의 청정함이 있는 (또는, 평온과 마음챙김이 청정하게된; upekkhaa-sati-paarisuddhi) 제4선(第四禪)을 성취하여 머문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313.

제4선을 구성하는 요소는 평온[捨]과 심일경성(心一境性)이다.
『分別論』「禪定分別」Vibh 264.

비구들이여, 이것을 바른 마음집중[正定]이라고 한다.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313.

[* 『청정도론』에는 40 가지 선정 수행의 주제[業處]가 제시되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이 수행의 주제를 제대로 닦으면 다음의 선정의 결과를 기대할 수 있다.

4선(四禪) ;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 열 가지 카시나[十遍] 수행,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四梵住] 가운데 평온의 마음가짐[捨梵住].

초선, 제2선, 제3선 ;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四梵住] 가운데 慈?悲?喜梵住.

초선 ; 10 가지 부정관(不淨觀), 몸의 32 가지 부분에 대한 마음챙김[身至念]

근접삼매(近接三昧) ; 여섯 가지 마음챙김[六隨念;불법승(佛法僧), 계(戒), 사(捨), 천(天)]

열반에 대한 마음챙김[寂止隨念],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死念], 음식을 싫어하는 생각[食厭想],

(地水火風의) 네 가지 요소에 대한 분석[四界區別].

4무색정(四無色定) ; 4선을 바탕으로 하여, 각각의 명칭에 따른 선정의 주제를 닦아서 다음의 4무색정을 얻는다.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

선정 수행의 40 가지 주제에 대해서『청정도론』의 3장에서 13장에 자세히 다루어져 있다.]*

<역주 : 위에서 제시된 바와 같이 팔정도의 마지막 덕목인 바른 마음집중[正定]에 대한 설명은 4선(四禪)에 대한 해설이 중심 내용을 이루고 있다. 냐나틸로카 스님은 『청정도론』등을 참조하면서 선정수행에 대해서 조금은 전문적인 설명을 부가하고 있다. 40 가지 선정 수행의 주제와 각 수행의 주제에 의해서 얻어지는 선정의 단계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전문적인 지식이 요구된다.

사선(四禪)으로 대표되는 마음집중은 지혜의 계발을 위한 조건으로서 제시되지만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선정과 지혜, 사마타와 위빠사나라는 두 가지 수행법은 어느 한 쪽이 없으면 다른 한 쪽도 있을 수 없는 상호의존적인 관계에 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해두자. 선정 수행에 동반되는 분명한 앎[正知]은 처음에는 힘이 약하더라도 지혜의 역할을 하며, 선정에 의해 잘 안정된 마음을 바탕으로 해서 사물(자신과 세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성숙한 지혜가 생겨나는 것이다.

불교의 목표는, 인간의 무지와 애욕[苦集聖諦]에 기인하고 있는, 인간의 삶의 저변에 깔려 있는 삶의 불안[苦聖諦]을 뿌리째 없애어, 흔들리지 않는 행복인 열반[苦滅聖諦]을 성취하는 것이다. 이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두 수행법[苦滅道聖諦]이 바로 선정과 지혜라는 불교의 입장을 분명히 이해한다면, 「붓다의 말씀」에서 정리된 팔정도의 전체적인 틀을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마음집중[三昧]을 닦아야한다. 비구들이여, 마음이 잘 집중되어 있는 비구는 있는 그대로 안다. 무엇을 있는 그대로 아는가? 물질적 현상[色]의 발생과 소멸, 감수작용[受]의 발생과 소멸, 표상작용[想]의 발생과 소멸, 형성작용[行]의 발생과 소멸, 의식작용[識]의 발생과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안다.
『相應部』XXII 5「三昧」SN II, 13.

물질적 현상의 무더기[色蘊], 감수작용의 무더기[受蘊], 표상작용의 무더기[想蘊], 형성작용의 무더기[行蘊], 의식작용의 무더기[識蘊]를 현명하게[abhi~n~naa] 잘 이해해야 한다. 어리석음[無明]과 존재에 대한 애욕[有愛]을 현명하게 없애버려야 한다. 마음의 고요[止; 禪定]와 위빠사나[觀; 智慧]를 현명하게 닦아야 한다. 깨달음[明]과 자유로움[解脫]을 현명하게 실현해야 한다.
{中部} 149 {六處大經} MN III, 289-290.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래가 깨닫고, 중생들로 하여금 보게 하고, 알도록 한 중도(中道)이다. 이 중도에 의해서 적정(寂靜)과 지혜와 깨달음과 열반에 이른다.
『相應部』LVI, 11. 「如來說」SN IV, 421.

이 길을 따르면, 괴로움의 소멸을 이룰 것이다.

 

 

 

 

버젼3

 

대념처경



『대념처경(大念處經)』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 때, 세존께서는 캄마사담마라고 하는 쿠루 족의 마을에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비구들이여’ 하고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세존이시여’하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서 세존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이것은 모든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기 위한, 괴로움과 싫어하는 마음을 없애기 위한, 올바른 길에 이르기 위한, 열반을 깨닫기 위한 하나의 길[ekāyano maggo]이다. 바로 그것은 네 가지의 마음챙김이다. 네 가지란 무엇인가 ?

(1) 몸에 대한 마음챙김 [身念處]

비구들이여, 여기 [이 가르침]에서 어떤 비구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2)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 [受念處]

그는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3) 마음에 대한 마음챙김 [心念處]

그는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4) 법에 대한 마음챙김 [法念處]

그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열심히, 분명한 앎을 지니고, 마음챙김을 지니고, 세간에 대한 탐착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제어하면서.


1 몸에 대한 마음챙김 [身念處]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1.1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비구가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에 가거나 빈방에 가서, 다리는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 바로 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단단히 하여 앉는다. 그리고는 마음을 챙겨서 숨을 들이쉬고 마음을 챙겨서 숨을 내쉰다. 숨을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숨을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pajānāti), 길게 내쉬면서는 `숨을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숨을 짧게 들이쉬면서는 `숨을 짧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숨을 짧게 내쉬면서는 `숨을 짧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온 몸을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sikkhati) `온 몸을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호흡이라는) 육체의 작용[身行]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들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육체의 작용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한다.

마치 도자기공이나 그 의 도제가 원반을 돌릴 때, 오랫동안 돌리면서는 ‘오랫동안 돌린다’라고 알아차리며, 짧게 돌리면서는 ‘짧게 돌린다’라고 알아차리는 것과 같이, 바로 이처럼 비구들이여,  숨을 길게 들이쉬면서는 `길게 숨을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길게 내쉬면서는 `숨을 길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숨을 짧게 들이쉬면서는 `숨을 짧게 들이쉰다'고 알아차리고, 숨을 짧게 내쉬면서는 `숨을 짧게 내쉰다'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온 몸을 파악하면서 숨을 들이쉬리라'고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온 몸을 파악하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한다. `(호흡이라는) 육체의 작용[身行]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들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하며, `육체의 작용을 안정시키면서 숨을 내쉬리라'며 마음을 다지면서 수행을 한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 『대념처경』주석서의 보충설명; ‘몸이 있다’라는 것은 오직 육체적인 현상만이 있지, 거기에 중생, 인격체, 여자, 남자, 자아는 없다는 의미이다. 즉, 몸에는 자아에 속한 것이나, 자아나, 인격체에 속한 것은 없다는 의미이다.2)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出入息念]은 가장 중요한 수행방법 가운데 하나이다. 이 방법은 위빠싸나 수행을 닦기 위한 예비 단계나, 네 가지 마음집중[四禪]을 계발하는 방법이나 위빠싸나와 선정 의 양쪽을 닦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될 수 있다. 지금 이 『대념처경』에서의 출입식념은 다음과 같이 전개될 위빠싸나 수행을 닦기 위한 예비단계로서의 마음집중과 고요함을 얻기 위해서 제시되었다. 

정기적인 출입식념의 수행을 통해서 어느 정도의 마음의 고요와 마음집중(사선 가운데 한 가지의 선정)을 얻은 후, 수행자는 호흡의 시작(origin of breath)을 검토한다. 그는 사대(四大; 地水火風)와 다섯 감각기관과 같이 사대에서 파생된 여러 가지 물질적인 현상에 의해 구성되어 있는 육체[色]에 의해서 호흡이라는 현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다섯 가지 감각기관을 통해서 받아들여진 인상[觸]으로부터 인식[識]이 생겨나고, 이 인식과 함께 오온(五蘊)의 나머지 세 가지 요소인 느낌[受], 표상작용[想], 의지작용[行]이 생겨난다는 사실도 통찰하게 된다.

따라서 수행자는 이른바 인격체라고 불리는 에고라는 실체 또는 자아는 어디에도 없으며, 존재하는 것은 다만 여러 가지 요건에 의해서 조건 지워져 있는 육체와 마음의 흐름뿐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본다. 그런 후,  그는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서 세 가지 특성을 적용시켜서, 그것들을 전적으로 무상하며, 괴로움이며, 영원한 실체가 없음을 이해하게 된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中部』118經 『出入息念經』과『淸淨道論』8장을 참고하기 바람.


1.2 동작[行住坐臥]에 대한 마음챙김

또한 비구들이여, 걸어갈 때는󰡒������걸어간다󰡓������라고 알아차리고, 서 있을 때에는 󰡒������서 있다󰡓������라고 알아차리며, 앉아 있을 때에는 󰡒������앉아 있다󰡓������라고 알아차리며, 누워 있을 때에는 󰡒������누워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이외의 다른 몸의 동작이 있을 때, 그러한 동작을 그때그때 알아차린다.3)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1.3 분명한 앎[正知]

또한 비구들이여, 앞으로 나아갈 때나 뒤로 들아 갈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앞을 볼 때나, 주위를 볼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팔다리를) 구부리거나 펼 때에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가사(승복)를 입고, 발우를 들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먹고 마시고 씹고 맛볼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한 앎을 지니며, 가고, 서고, 앉을 때에도, 잠자리에 들고, 잠에서 깨어날 때에도, 말하거나, 침묵을 하고 있을 때에도 분명한 앎을 지닌다.4)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1.4 육체에 대해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킴[厭逆作意]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 육신을 아래로는 발바닥에서 위로는 머리카락에 이르기까지 피부로 덮여져 있으며 가지가지의 깨끗하지 못한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즉, 이 육신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머리카락, 몸의 털, 손톱, 발톱, 이,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심장, 간장, 늑막, 지라, 허파, 내장, 내장의 내용물, 위장, 위장의 내용물, 대변, 담즙, 가래, 고름, 혈액, 땀, 고형지방질, 눈물, 액체지방질, 침, 콧물, 관절액, 소변 등.

비구들이여, 마치 위아래 양쪽에 구멍이 나있는 자루에 여러 가지 곡식 즉, 벼, 보리, 녹두, 콩, 깨, 쌀 등이 들어있는 경우, 이 자루를 눈이 있는 사람이 풀어보고서󰡒������이것은 벼, 이것은 보리, 이것은 녹두, 이것은 콩, 이것은 깨, 이것은 쌀이라고 직접 관찰하는 것과 같이, 비구들이여, 수행자는 바로 자신의 육신을 직접 관찰한다. 즉, 이 육신은 다음과 같은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머리카락, 몸의 털, 손톱, 발톱, 이, 피부,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심장, 간장, 늑막, 지라, 허파, 내장, 내장의 내용물, 위장, 위장의 내용물, 대변, 담즙, 가래, 고름, 혈액, 땀, 고형지방질, 눈물, 액체지방질, 침, 콧물, 관절액, 소변 등으로.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어떤)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5)


1.5 네 가지 요소[四大; 地水火風]에 대한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이 육신을 현재 있는 그대로, 구성되어진 그대로 (네 가지) 요소의 측면에서 관찰한다. 즉, 󰡒������이 육신에는,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가 있다󰡓������라고.

비구들이여, 마치 숙련된 백정이나 그의 제자가 소를 도살해서 사거리의 큰길에 부위별로 해체해 놓고 앉아있는 것과 같이, 바로 이처럼 비구들이여, 수행자는 바로 자신의 육신을 (네 가지) 요소의 측면에서 관찰한다. 즉, 󰡒������이 육신에는, 땅의 요소[地界], 물의 요소[水界], 불의 요소[火界], 바람의 요소[風界]가 있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어떤)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6)


1.6 묘지에서의 아홉 가지 관찰 [부정관(不淨觀)]7)

① 첫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져 하루나, 이틀이나, 사흘이 된 시체가 부풀어오르고, 검푸러지고, 썩어 가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② 두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까마귀, 매, 독수리, 개, 표범, 호랑이, 재칼 등에 의해서 먹혀지고, 갖가지의 벌레에 의해서 파 먹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③ 세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힘줄이 남아 있고, 살점이 붙어있는 채로 해골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④ 네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힘줄이 남아 있고, 살점은 없이 핏자국만 얼룩진 채로 해골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⑤ 다섯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힘줄만 남아 있고, 살점이나 핏기가 없는 채로 해골로 변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⑥ 여섯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의 뼈가 사방으로 흩어져 있어, 여기에 손뼈, 저기에 발뼈,  정강이뼈, 넓적다리뼈, 골반, 등뼈, 두개골 등으로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⑦ 일곱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의 뼈가 조개껍질의 색처럼 하얗게 변해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⑧ 여덟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의 뼈가 일 년도 더되어 한 무더기로 쌓여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⑨ 아홉 번째 관찰

다음으로 비구들이여,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뼈마저 썩어 가루로 되어 있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바로 자신의 몸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나의 이 육신도 이러한 속성을 지니고 있으며, 이와 같이 될 것이며, 이렇게 되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몸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몸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몸에서 몸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1.7 「몸에 대한 마음챙김」의 열 가지 이익8)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챙김[身念; kāyagatāsati]을 거듭 닦고, 향상시키며, 계발하고, 수레(수행법)로 쓰며, 기반으로 하고, 확고하게 하며, 강화시켜, 잘 수행한다면, 다음의 열 가지 이익이 기대될 것이다.

(1)불쾌함과 즐거움을 제어하게 되어 불쾌함이 그를 정복하지 못하게 된다. 불쾌함이 생겨날 때 (즉각 알아차림으로써) 불쾌함을 극복하며 지낸다.

(2)공포와 두려움을 제어하게 되어 공포와 두려움이 그를 정복하지 못하게 된다. 공포와 두려움이 생겨날 때 (즉각 알아차림으로써) 공포와 두려움을 극복하며 지낸다.

(3)추위와 더위, 배고픔과 갈증, 등에, 모기, 바람, 햇빛, 기어다니는 벌레등과 접촉할 때 견디어 내게 되며, 험담이나 불쾌한 말, 고통스럽고 통증이 심하며, 살을 애는 듯한 괴로움이나, 뼈를 깍아내는 듯한 괴로움, 의견의 불일치, 고뇌 그리고 생명에의 위협을 견디어 내게 된다.

(4)어려움이나 곤란함 없이 자신의 의지의 따라서 네 가지 마음집중[四禪]을 얻을 수 있다, 사선은 마음이 정화된 높은 경지이며, 사선을 얻으면 바로 여기에서 안락하게 지내게 된다.

(5)여러 가지의 신통력을 얻게 된다. 몸이 하나의 상태에서 여럿이 되기도 하며, 여럿인 상태에서 하나로 되기도 한다. 눈앞에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하며, 벽이나 사방이 가로막힌 곳을 가로질러 아무런 장애 없이 통과하기도 하고, 마치 빈 공간을 지나가듯이 산을 뚫고 지나가며, 마치 물 속으로 잠수하듯이 땅 속으로 들어가며, 마치 땅 위를 걷듯이 물위를 빠지지 않고 걸어간다. 가부좌를 한 채로 새처럼 공중을 날아가며, 손으로 달과 태양을 만질 정도로 신통력이 생긴다. 범천의 세계와 같이 멀리 떨어진 곳에까지 그의 신통력이 미치게 된다.[神足通]

(6) 인간의 귀를 뛰어넘는 청정한 천상의 귀(청각기관)로 천상과 인간세계의 소리를 듣는다. 멀리서 나는 소리나 가까이에서 나는 소리나.[天耳通]

(7) 다른 존재나 다른 사람의 마음을 마치 자신의 마음을 아는 것처럼 이해하게 된다. 그는 (다른 사람의) 탐심에 물든 마음을 탐심에 물들어 있다고 알며, 탐심이 없는 마음을 탐심이 없다고 안다. 성내는 마음을 성내는 마음이라고 알며 성냄이 없는 마음을 성냄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어리석음에 덮여 있는 마음을 어리석음에 덮여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을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인색한 마음을, 인색한 마음이라고 알며, 인색한 마음이 없어지면 인색한 마음이 없어졌다고 안다. (색계와 무색계의 선정에 의해) 고양된 마음을 고양된 마음이라고 알며, 고양된 마음이 없으면, 고양된 마음이 없다고 안다. 보다 뛰어난 마음을 뛰어난 마음이라고 알며, 보다 뛰어난 마음이 없으면 보다 뛰어난 마음이 없다고 안다. 집중이 되어 있는 마음을 집중이 되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집중이 안된 마음을 집중이 안된 마음이라고 안다. (번뇌에서 벗어나) 해탈한 마음을 해탈한 마음이라고 알며, 해탈하지 못한 마음을 해탈하지 못한 마음이라고 안다.[他心通]

(8) 자신의 수많은 과거 전생에 대해서 기억한다. 즉, 한 생이나 두 생 .....등등의 과거생의 자신의 이름, 태생, 모습, 생전의 경험 내용,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 등을 기억하게 된다.[宿命通]

(9) 인간의 눈을 뛰어넘는 청정한 천상의 눈(시각 기관)으로 뭇 중생들이 죽어서 다시 태어나는 것을 본다. 좋은 곳에 태어나는가 나쁜 곳에 태어나는가, 잘 생겼는가 추하게 생겼는가, 행복한가 불행한가를 보게 된다. 이처럼 그는 중생들이 자신의 행위[業].에 따라서 받게 되는 삶의 양태를 알게 된다.[天眼通]

(10) 모든 번뇌를 없애 버려서,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과 지혜의 해탈을 바로 이 생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증득해서 깨달아 완성을 이루어 지낸다.[漏盡通]


비구들이여, 몸에 대한 마음챙김을 거듭 닦고, 향상시키며, 계발하고, 수레(수행법)로 쓰며, 기반으로 하고, 확고하게 하며, 강화시켜, 잘 수행한다면, 위와 같은 열 가지 이익을 얻게 될  것이다.

『中部』119, 『身念經』MN III, 97-99.


* 열 가지 몸에 대한 마음챙김의 이익 가운데 뒤의 여섯 가지(5에서 10까지)의 이익은 여섯 가지 신통[六神通]을 말한다. 이 가운데 앞의 다섯 가지 신통은 (번뇌를 완전히 제거하지 못한) 세간적인 조건들이어서 범부들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마지막의 여섯 번째의 누진통은 (번뇌를 모두 제거한) 출세간적인 신통력으로서 아라한만이 지니는 덕목이다. 네 가지의 마음집중[四禪]을 이룬다면 다섯 가지의 세간적인 신통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신통력을 얻기 위한 조건으로서 네 가지 신족(神足)이 있다.9)


2 느낌에 대한 마음챙김[受念處]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즐거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괴로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괴로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육체적인 즐거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육체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정신적인(비육체적인) 즐거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정신적인 즐거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육체적인 괴로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정신적인 괴로운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육체적인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육체적인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또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정신적인 느낌을 현재 느끼고 있으면서 ‘나는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정신적인 느낌을 느끼고 있다’라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느낌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느낌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느낌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느낌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10)


3 마음에 대한 마음챙김 [心念處]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탐욕이 있는 마음[有貪心]을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또는 탐욕이 없는 마음[無貪心]을 탐욕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성냄이 있는 마음[有瞋心]을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성냄이 없는 마음[無瞋心]을 성냄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有癡心]을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알며,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無癡心]을 어리석음이 없는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침체된 마음을 침체된 마음이라고 알며, 산만한 마음을 산만한 마음이라고  안다. (선정 수행으로) 커진 마음[大心]을 커진 마음이라고 알며, (선정 수행을 닦지 않아) 커지지 않은 마음을 커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또는 (색계 선정과 무색계 선정 수행이) 향상된 마음을 향상된 마음이라고 알며, 향상이 안된 마음을 향상이 안된 마음이라고 안다. (선정에 의해) 잘 집중된 마음을 잘 집중된 마음이라고 알며, 집중이 안된 마음을 집중이 안된 마음이라고 안다. (선정 수행에 의해 일시적으로 번뇌로부터) 자유로워진 마음[解脫心]을 자유로워진 마음이라고 알며, 자유로워지지 않은 마음[非解脫心]을 자유로워지지 않은 마음이라고 안다.


* 여기에서 사용된 마음(citta)이란 마음 또는 의식의 순간들(moments of consciousness)을 통틀어서 일컫는 집합적인 용어(collective term)이다. 인식작용[識; viññāņa]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마음 또는 의식이라는 용어를 사고(思考; thought)라고 번역해서는 안된다. 사고(思考)와 생각함(thinking)은 마음의 언어적인 작용, 즉 거친 생각[尋]과 미세한 생각[伺]에 해당하며, 형성작용의 무더기인 행온(行蘊)이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마음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마음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마음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마음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11)


4 법에 대한 마음챙김 [法念處]

<다섯 가지 종류의 육체적∙정신적 현상에 대한 마음챙김>


4.1 다섯 가지 덮개[五蓋]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다섯 가지 덮개[五蓋]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다섯 가지 덮개[五蓋]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감각적 욕망이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감각적 욕망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감각적 욕망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감각적 욕망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악의(惡意, 분노)가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악의(惡意)가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악의가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악의가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악의가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악의가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악의가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혼침과 졸음이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혼침과 졸음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혼침과 졸음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혼침과 졸음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우울)이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이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이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들뜸과 회한이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회한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들뜸과 회한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들뜸과 회한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또는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있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있다󰡑������라고 안다. 또는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없으면, 󰡐������나에게 내적으로 회의적 의심이 없다󰡑������라고 안다. 그리고 생겨나지 않은 회의적 의심이 일어나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회의적 의심이 사라지면 바로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사라진 회의적 의심이 이후에 생겨나지 않으면, 바로 그것을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12)


4.2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비구가 ‘이것은 물질적 현상[色]이다’, ‘이것은 물질적 현상의 발생이다’, ‘이것은 물질적 현상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감수 작용[受]이다’, ‘이것은 감수작용의 발생이다’, ‘이것은 감수작용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표상 작용[想]이다’, ‘이것은 표상 작용의 발생이다’, ‘이것은 표상 작용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형성 작용[行]이다’, ‘이것은 형성 작용의 발생이다’, ‘이것은 형성 작용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것은 인식 작용[識]이다’, ‘이것은 인식 작용의 발생이다’, ‘이것은 인식 작용의 소멸이다’라고 안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집착된 무더기[五取蘊]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4.3 여섯 가지 인식 기관과 인식 대상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여섯 가지 내적인 인식 기관과 외적인 인식 대상[六內外處]이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여섯 가지 내적인 인식 기관과 외적인 인식 대상이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여기에 비구가 눈[眼; 시각 기관]을 알아차리고, 색[色; 시각 대상으로서의 모양과 색깔]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結; samyojana]13)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귀[耳; 청각기관]를 알아차리고, 소리[聲]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코[鼻; 후각기관]를 알아차리고, 냄새[香]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혀[舌; 미각기관]를 알아차리고, 맛[味]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몸[身; 촉각 기관]을 알아차리고, 접촉[觸]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마음[意; 사고 기관]을 알아차리고, 마음의 현상[法]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 두 가지를 조건으로 해서 생겨난 (번뇌의) 족쇄를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족쇄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리고, 생겨난 족쇄가 끊어지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끊어진 족쇄가 이후로 생겨나지 않으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내적인 인식 기관과 외적인 인식 대상[六內外處]이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14)


4.4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念覺支; sati-sambojjhaṅga]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마음챙김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擇法覺支; dhamma-vicaya -sambojjhaṅga]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법에 대한 고찰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精進覺支; viriya-sambojjhaṅga]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정진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喜覺支; pīti-sambojjhaṅga]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기쁨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輕安覺支; passaddhi- sambojjhaṅga]가 있을 때,󰡐������나에게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심신의) 평안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定覺支; samādhi-sambojjhaṅga]가 있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마음집중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여기에 비구가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捨覺支; upekkhā- sambojjhaṅga]가 있을 때,󰡐������나에게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있다󰡑������라고 알아차린다. 또는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을 때, 󰡐������나에게 내적으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없다󰡑������라고 알아차린다. 그리고 아직 생겨나지 않았던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생겨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이미 생겨난 평온의 깨달음의 요소가 수행을 통해서 완성되면, 그것을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일곱 가지 깨달음의 요소[七覺支]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15)


4.5 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諦]에 대한 마음챙김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내는가 ?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諦]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낸다. 그러면 비구들이여, 어떻게 네 가지 고귀한 진리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면서 지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에 어떤 수행자가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올바르게 [있는 그대로; yathābhūtaṃ]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원인)이다’라고 올바르게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올바르게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라고 올바르게 안다.16)

이와 같이, 그는 내적으로, 또는 외적으로, 또는 내외적으로,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이 생겨나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생겨난 현상이)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법에서 현상들이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 또는 그에게 ‘법이 있다’라고 하는 마음챙김이 분명하게 확립된다. 바로 이 마음챙김은 분명한 앎을 얻기 위한 것이며, (현상들에 대해서) 놓침이 없는 알아차림을 얻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음이 기울어져 의지하는 것이 없이 지내며, 그 어떠한 세간적인 것에 대해서도 집착하지 않는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네 가지 고귀한 진리[四聖諦]라는 법에서 법을 관찰하는 수행을 하면서 지낸다.17)


4.6 네 가지 마음챙김의 이익 - 마음챙김 수행에 의한 깨달음의 보증

비구들이여, 누구든지 이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을 이와 같이 7년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不還]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7년은 그만 두어도 좋다 (7년은 걸리지 않아도 좋다).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을 이와 같이 6년간, ... 5년간, ... 4년간, ... 3년간, ... 2년간, ... 1년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1년은 그만 두어도 좋다.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을 이와 같이 7개월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7개월은 그만 두어도 좋다. 이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을 이와 같이 6개월간, ... 5개월간, ... 4개월간, ... 3개월간, ... 2개월간, ... 1개월간, ... 반달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반달은 그만 두어도 좋다. 이 네 가지 마음챙김[四念處]을 이와 같이 7일간 닦는다면, 그에게는 두 가지의 결실 가운데 어느 하나의 결실이 기대될 것이다. 즉, 지금 이 생에서 (아라한의) 지혜를 이루거나, 집착이 남아 있는 경우에는 아나가미의 깨달음을 이루게 될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은 모든 중생들의 청정을 위한, 슬픔과 비탄을 극복하기 위한, 괴로움과 마음의 언짢음을 없애기 위한, 올바른 길에 이르기 위한, 열반을 깨닫기 위한 유일한 길이다. 바로 그것은 네 가지의 마음챙김이다라고 앞에서 말한 것은 바로 이런 연유로 말한 것이다. 이와 같이 세존은 설하셨다. (설법을 들은) 그 비구들은 만족해하며, 세존의 설법에 대해 환희에 찼다.18)     󰡔������長部󰡕������ 22, 󰡔������大念處經󰡕������ DN II, 290-315

고맙습니다. 좋은 글 잘 담아갑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