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말씀

Panna Vamsa 2009. 8. 28. 14:16

Sutta Nipata IV.8

Pasura Sutta

To Pasura

 

숫따 니빠따 빠수라 경(SN.4.8)

 

only here is there purity"

-- that's what they say --

"No other doctrines are pure"

-- so they say.

Insisting that what they depend on is good,

they are deeply entrenched in their personal truths.

 

“여기에만 청정이 있다.”

이것은 그들이 말하는 것이네.

“다른 교리에는 청정이 없다.”

그렇게 그들은 말하네.

자신들이 의지하고 있는 것이 좋은 가르침이라고

그들은 개인적인 진리에 고집하네.(*개인적인 진리란 개인적인 견해, 즉 영원주의 등을 말한다.)

 

Seeking controversy, they plunge into an assembly,

regarding one another as fools.

Relying on others' authority,

they speak in debate.

Desiring praise, they claim to be skilled.

 

논쟁을 찾아 모임에 뛰어들고

상대방을 어리석은 자라고 여기며

다른 권위에 의지해서 (*서로 다른 스승에 의지해서 싸우는 것을 말한다.)

칭찬을 바라고 달인이라고 주장하면서

논쟁을 일삼네.

 

Engaged in disputes in the midst of the assembly,

-- anxious, desiring praise --

the one defeated is

chagrined.

Shaken with criticism, he seeks for an opening.

 

모임에서 논쟁을 하다가

화를 내거나, 칭찬을 바라다가

패배하면 분하게 여기고

비평을 받으면 동요하며

탈출구를 찾네.

 

He whose doctrine is [judged as] demolished,

defeated, by those judging the issue:

He laments, he grieves -- the inferior exponent.

"He beat me," he mourns.

 

논쟁을 판단함으로써 그의 이론이 뒤집히고

패배했다고 하면

그는 한탄하며 슬퍼하면서

자기보다 못한 해설자가

‘나를 패배시켰다.’고 울부짖네.

 

These disputes have arisen among contemplatives.

In them are elation,

dejection.

Seeing this, one should abstain from disputes,

for they have no other goal

 

than the gaining of praise.

이러한 논쟁이 수행자들 사이에서 일어나면

승자는 득의양양하고 패자는 낙담에 잠기네.

이것을 보고 논쟁을 삼가야 하네.

칭찬을 얻는 것 외에 다른 목적이 없기 때문이네.

 

He who is praised there

for expounding his doctrine

in the midst of the assembly,

laughs on that account & grows haughty,

attaining his heart's desire.

 

모임 가운데서 자신의 견해를 밝혀 칭찬받으면

원하는 바를 얻어

뻐기고 의기양양해 한다네.

 

That haughtiness will be his grounds for vexation,

for he'll speak in pride & conceit.

Seeing this, one should abstain from debates.

No purity is attained by them, say the skilled.

 

뻐기는 것이 괴로움의 토대이네.

왜냐면 자만과 교만에서 말하기 때문이네.

이것을 보고 논쟁을 삼가야 하네.

청정은 이렇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달자들이 말하네.

 

Like a strong man nourished on royal food,

you go about, roaring, searching out an opponent.

Wherever the battle is,

go there, strong man.

As before, there's none here.

 

국왕의 녹을 먹는 용사처럼

그대는 적을 찾아 포효하며 돌아다니네.

전쟁이 있는 곳으로

용사가 달려가지만

전과 달리 그곳에는 아무도 없네.

(*이교도가 논쟁자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붓다에게 도전하지만, 붓다는 이미 보리수 아래에서 해탈하여 논쟁을 초월한 분이다.)

 

Those who dispute, taking hold of a view,

saying, "This, and this only, is true,"

those you can talk to.

Here there is nothing --

no confrontation

at the birth of disputes.

 

‘견해를 움켜쥐고

‘이것만이 진리다.’라고 말하는 논쟁하는 자에게

그대는 이렇게 말하게나.

여기에 아무도 없다고

논쟁이 발생할 상대가 없다고.

 

Among those who live above confrontation

not pitting view against view,

whom would you gain as opponent, Pasura,

among those here

who are grasping no more?

 

대결하며 사는 사람 사이에서

견해를 견해로 맞서지 않으면

누구를 적으로 하겠는가? 빠수라여.

여기 그들 사이에서

더 이상 누가 붙잡으려고 하겠는가?

 

So here you come,

conjecturing,

your mind conjuring

viewpoints.

You're paired off with a pure one

and so cannot proceed.

 

어림짐작하면서

견해를 마음속으로 그리며

그대는 여기 왔네.

그대가 청정한 님과 한 조가 되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