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의 길라잡이

Panna Vamsa 2009. 5. 20. 16:38

사후세계의 갈림길

라스트라팔 지음
우 철 환 옮김

저자에 대하여

이 글의 저자인 라스트라팔(Rastrapal) 큰스님은 인도의 보드가야(Bodh-Gaya) 지방에 있는 <국제선원> (International Meditation Center)의 선원장으로 계시면서 명상을 지도하고 있다.


들어가는 말

사후세계나 망령의 존재에 관한 문제는 철학자, 심리학자나 인간을 대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곤혹스러운 일이고 이 주제에 관해서는 온갖 이야기들이 무성하다. 아무튼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우리는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이다. 죽어 가는 사람은 흔히 죽기 직전에 저승사자의 힘과 같은 무엇인가에 사로잡힌 듯 정신이 몽롱한 행동을 하곤 한다. 이런 정신상태는 심리학적으로 환상, 환각, 몽환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진지한 관찰자에게는 공상소설보다 훨씬 신기하게도 이런 현상 모두가 사실로 드러나기도 한다. 이와 같은 놀라운 경험을 수년 전에 나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승려로서 죽어 가는 사람 곁에서 임종을 지키고 있었다. 이 경험이 내게 너무나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에 그 후 나는 빠알리 삼장 속에 나타나는 여러 신들의 의미에 대해 철저한 연구를 하게 되었다.


각계의 끈질긴 요청을 받고 나는 이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다. 이 기록이 호기심에 찬 많은 사람들에게 사후문제에 대한 관심과 깨우침을 불러일으키는 작은 횃불이 되기를 진정으로 바라마지 않는다. 이 기회에 나는 명상 지도자 아나가리까 무닌드라, 법정변호사인 아라빈다 바루아 박사, 수닐 바루아 교수, 크리슈나 바루아 님들의 격려와 도움에 깊은 감사를 표하고자 한다.

라스트라팔 합장




지금 이야기하고자 하는 사건은 1957년, 내가 비구계를 받은 지 4년이 되던 해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나는 초발심자답게 불법에 관한 것이라면 뭐든지 알려고 들었다. 그때 법구경 주석서를 읽던 중 담미까 이야기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담미까는 부처님을 따르는 신심 깊은 재가신도였다. 그와 그의 온 집안 식구는 모두 불법의 가르침이라면 아주 작은 것이라도 어기지 않으려고 애썼다. 병이 깊어진 어느 날 그는 죽을 때가 가까워졌다고 느꼈다. 그래서 자신의 임종에 송경해줄 스님들을 보내 주십사고 부처님께 사람을 보냈다. 이에 스님들이 와서 염처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스님들의 송경이 중반쯤에 이르렀을 때 담미까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관둬요! 관둬!" 이 말에 놀란 스님들은 담미까가 송경을 그만두라는 줄 알고 하던 일을 멈추고 부처님께로 돌아갔다.


부처님께서는 왜 벌써 돌아왔느냐고 물으셨다. 그들은 담미까가 그만두라고 해서 송경을 마치지 못하고 중간에 돌아왔다고 말씀드렸다. 부처님께서는 그들이 담미까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다고 하시고 담미까가 소리친 데는 다른 까닭이 있었다고 하셨다. 담미까는 하늘에서 내려온 신들이 자기를 마차에 태워 천상으로 데려가려 하자 그만 두라고 소리친 것이지 스님들에게 송경을 멈추라고 한 말은 아니라고 설명해 주셨다.


이 담미까 이야기말고도 나는 삼장과 주석서들을 읽다가 사람이 죽는 바로 그 순간 한 평생 지어 온 자신의 업에 따라 천신이 나타나기도 하고 악귀가 나타나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우연히 본 적이 있다. 나는 그런 이야기들이 어딘가 잘 수긍이 가지 않아 당혹스러웠다. 그래서 교학에 밝으신 즈나니쉬와르 큰스님을 찾아갔다. 그분은 방글라데시의 우나인푸라에 있는 큰절에 머물고 계셨다. 그 스님께 궁금한 점을 여쭈어보자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어주셨다.

"지옥에 떨어질 사람은
불덩어리 환상을 보고,


아귀계에 떨어질 사람은
사방에서 어두움과 음침한 것을 보고,


축생계에 태어날 사람은
숲과 짐승이나 다른 동물의 환상을 보고,


인간계에 태어날 사람은
죽은 친척의 환상을 보고,


천상계에 태어날 사람은
천국의 환상을 본다.


이것이 죽어 가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다섯 가지 환상이다."


큰스님은 이 게송을 상세히 설명해 주셨지만 좀처럼 믿기지 않았다. 확실히 믿을 수 있기 위해서는 이 게송의 내용을 실제로 경험하는 수밖에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바라던 경험을 하게 되었다. 그 무렵 나는 방글라데시의 치타공에 있는 테코타라는 마을의 한 절에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이십여 리 쯤 되는 대학에 갔다온 나는 너무 피곤하여 누워 쉬고 싶었다. 바로 그때 마을 사람 하나가 내게 와서 자기 처남 찬드라 쵸드후리가 병이 깊어 임종이 가까왔으니 같이 가달라고 했다. 임종을 맞고 있는 그 사람은 그때 쉰 여섯 살이었는데 독실한 불교 신자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우리는 서둘러 집을 나섰다.


우리가 도착했을 때 그 집에는 식구들과 이웃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그들이 길을 열어주어 가까이 다가가면서 보니 환자는 방바닥에 펴놓은 보료에 누워 있었다. 그때가 8시 반쯤이었다. 나는 그들이 내준 의자에 앉았다. 임종 전에 하는 송경을 시작하려 하자 방안이 조용해졌다. 모인 사람들 사이에는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나는 전에 마을 사람들에게 법문을 할 때 앞서 인용한 게송에서 이르고 있는 것처럼 임종 때 다섯 가지 환상이 실제로 나타나는지 밝혀보고 싶다고 말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바로 그런 순간이 온 것이다.


나는 송경을 시작했다. 두어 가지 송경을 마쳤을 때, 죽어 가는 그 사람이 꺼져 가는 소리로, 띄엄띄엄 "불 - 법 - 승", "무상 - 고 - 무아" 그리고 "자 - 비 - 희 - 사"를 간절히 뇌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 순간 나는 그의 의식이 급속히 혼미해지는 것을 보았다. 나는 게송에 나오는 다섯 가지 환상이 실제로 일어나는지 가늠해 보기 위하여 그를 면밀히 살펴보고 싶었다. 그래서 그 사람 곁에 앉을 자리를 만들어달라고 했고 바닥에 자리가 마련되었다.


그는 나를 향해 왼편으로 누워 있었다. 나는 오른손을 그의 오른팔 위에 얹고 좀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이제 세상을 떠날 시간이 되었다고, 더 이상 버티지 못할 것 같다고 대답했다. 겨우 쉰 여섯 살밖에 안되었는데 그렇게 일찍 죽기야 하겠느냐고 그를 위로해 주었다. 평생 동안 옳은 일을 많이 해왔으며 모든 마을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어왔는데 이렇게 갑자기 갈 수는 없는 일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그에게 오계를 받기 원하고 경의 독송을 원하는지 물어 보았다. 그러마고 해서 나는 오계를 베풀고 독경을 했다. 그는 온 마음을 다해 귀 기울여 들었다. 잠시 멈추었을 때 그에게 어떤 환상이 나타나는지 나는 알고 싶었다. 내가 그의 머리맡에 앉아 있는 동안 그는 내내 두 눈을 감고 있었다. 나는 무언가 환상이 보이는지 거푸 물어 보았다. 그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밤 11시 30분 경 그가 무어라고 중얼거렸다. 그의 곁에 있던 우리 모두는 그가 부다가야의 보리수가 보인다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부처님이 성도하신 부다가야의 보리수가 보이는 것은 단지 그가 부다가야를 가보았던 기억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밖에 또 무엇이 보이는지 물었다. 그는 돌아가신 부모가 보이며 보리수 아래에 있는 금강좌에 꽃을 바치고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이 말을 두 번이나 거듭했다. 나는 그의 부모에게 오계를 받고 싶어하는지를 물어보라고 했다. 그의 부모가 수계를 원하며 이미 합장하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계를 베풀고 나서 나는 그의 부모가 독경을 원하는지 다시 물었다. 그가 그렇다고 하여 나는 자비경을 독송했다. 모든 일이 다섯 가지 환상에 대한 게송 구절과 똑같이 진행되는 것을 보고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다른 사람들도 전율을 느끼는 것 같았다. 전에 겪어보지 못한 경험이었기에 사람들은 그 장면을 긴장 속에서 지켜보았다.


그 게송을 근거로 할 때 부모의 환상을 보았으니 그가 분명 인간의 몸을 받을 것이고, 또 부모와 함께 보리수 환상을 보았으므로 인간계 중에서도 높은 신분으로 태어날 것이 틀림없었다. 이 사람처럼 깊은 신앙심으로 헌신적 삶을 산 사람은 더욱 높은 차원의 세계에 다시 태어나는 것이 마땅하다고 느끼면서 나는 또 어떤 환상이 보이는지 계속해서 물었다.


잠시 후 나는 무언가 그에게 변화가 일고 있음을 알았다. 그의 생각이 세속사로 되돌아온 듯했고 친척들에게 자기가 진 빚을 갚아달라고 했다. 바로 그때 나는 그에게 다른 환상이 나타나는지를 물어 보았다. 그는 길게 늘어진 머리칼이 보인다고 힘없이 말했다. 그때가 밤 1시 40분이었다. 두 눈도 보이느냐고 묻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은 머리로 뒤덮여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나는 이 허깨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이 사람이 그 순간에 숨이 끊어진다면 인간계보다 낮은 차원에 태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후일 내가 즈나니쉬와르 큰스님과 실라랑카르 큰스님께 그 환상이 무슨 뜻이냐고 여쭈었더니 두 분의 생각이 같았다. 그 허깨비를 본 것은 그가 만약 그 순간에 숨을 거두었다면 아귀계로 갔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 때 나는 허깨비를 몰아내려고 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그러자 바라는 대로 되었다. 허깨비가 아직도 거기 있느냐고 했더니 이제는 사라졌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의 생각은 여전히 세속적 삶에 매달려 있는 듯했다. 잠시 후 새로 만든 보료를 미리 치워두었다가 자기 외아들에게 주라고 친척들에게 말했던 것이다. 그의 외아들 수가타 비카쉬 쵸드후리는 당시 인도의 두르가푸르라는 먼 곳에 있었다. 방글라데시의 치타공 지방에 사는 불교도들의 관습에 따르면 그 보료가 자기 시신과 함께 태워질 터였는데, 그는 그것을 원치 않았던 것이다. 그 후 그는 또다시 극도로 기진맥진해졌다.


그 때 나는 그에게 무엇이 보이는지 물었다. 그는 검은 비둘기 두 마리를 보고 있다고 했다. 나는 그것이 그가 동물계에 태어날 환상임을 바로 알았다. 그 때가 밤 2시였다. 나는 그가 동물계에 태어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래서 나는 또 경을 외우기 시작했다. 경을 몇 가지 외우고 난 후 또다시 그에게 어떤 환상이 보이는지 물었다. 이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이어 나는 법문을 설했고 잠시 후 그에게 또 다른 어떤 환상이 보이는지 물었다. 여러 번 되풀이해서 물어보자 마침내 그가 외쳤다. 천국의 마차가 다가오고 있는 것이 보인다는 것이었다. 천국의 마차가 가는 길은 어떤 장애물도 가로막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천신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임종을 맞고 있는 이의 친척들에게 그 마차가 오도록 길을 비키라고 말했다. 그리고 나서 그 마차가 어디쯤 왔는지 그에게 물었다. 그는 마차가 그의 곁에 있다고 손짓으로 가리켰다.


그 마차 안에 누군가 보이는지 물어보니 남녀 천신들이 타고 있다고 말했다. 나는 그 천신들이 오계를 받기 원하는지 물어보라고 일렀다. 천신들이란 스님들은 물론 신심 깊은 재가자들을 따르고 존중한다는 것을 경전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천신들이 응낙한다고 해서 나는 오계를 베풀어 주었다. 그리고 나서 그들이 자비경을 듣고자 하는지 다시 물었다. 그들이 듣겠다고 해서 나는 자비경을 외웠다. 이어 길상경(망갈라 숫따)을 듣고 싶은지 물었고 그들이 승낙해서 독송했다.
또 보배경(라따나 숫따)도 듣고 싶은지 물었을 때, 이번에는 그가 손을 내저어 천신들이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곧이어 천신들이 내가 절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 때 나는 천신들이 그를 천상으로 빨리 데려가고 싶어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내가 중간에 들어 이승에서의 그의 명을 좀더 이어주고 싶었다. 아직은 죽을 때가 아니니 천신들은 떠나달라 하라고 그에게 말했다. 쉰 여섯 살밖에 안된 그를 데리러 온 것은 분명 천신들이 실수한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의 명을 더 이을 수만 있다면 우리가 지어온 공덕을 모두 천신들에게 바칠 수도 있다는 것이 나와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간절한 심정이었다.


나는 그에게 다른 어떤 환상이 보이는지 다시 물었다. 그는 보리수 아래 아직도 부모의 모습이 보인다고 대답했다. 부모의 환상이 보인다는 것은 그를 여전히 인간계로 끄는 힘이 매우 강해서 인간계에 다시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앞서 천신들에게 했듯이 돌아가신 그의 부모를 떠나 보내기 위해 우리가 지어온 모든 공덕을 바칠 것을 거기 모인 사람 모두에게 제안했다.


이 죽어 가는 사람이 자기 아버지는 나의 제안에 따르지만 어머니는 싫다고 하는 듯한 표현을 했다. 어머니의 반대에 나는 짐짓 역정을 내면서 천신들도 나의 제안에 순순히 동의했는데 부모가 거절하다니 어찌 그럴 수가 있느냐고 그를 통해서 부모에게 강경하게 말했다. 그렇게 처신한다면 부모에게도 해가 될 수 있다고 해주었다. 이러한 경고를 거듭 반복하고 나서야 내가 의도한대로 되었다. 드디어 부모가 떠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에게 나타났던 환상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자 그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그는 깊은 숨을 쉬면서 생기를 되찾았다. 친척 한 사람이 그를 자세히 보려고 손에 등불을 들고 가까이 갔을 때, "이제 걱정하지 마세요. 저 안 죽어요."라고 말했다. 죽어가던 사람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을 보고 우리 모두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방안은 기쁨으로 술렁였다.


우리는 만화경처럼 눈앞에 펼쳐진 이 놀라운 장면에 압도되었다. 때는 새벽 5시였다. 그곳에 있던 사람들은 한숨도 자지 않고 밤을 꼬박 새웠지만 신기하게도 아무도 피곤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만큼 그 사건은 우리를 긴장감 속에 사로잡았던 것이다. 나는 그곳을 떠나 절에 돌아와서 목욕을 하고 아침을 먹고 잠시 눈을 붙였다.


오전 10시 30분 경,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났다. 나가보니 전날 밤 나를 데리러 왔던 사람이었다. 나는 왜 왔느냐고 물었다. 그의 말은 쵸드후리가 다섯 시간쯤 괜찮더니 이제는 완전히 탈진하여 거의 임종이 가까워진 듯해서 나를 데리러 왔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사람과 함께 쵸드후리의 집으로 서둘러 갔다. 동네 사람들이 줄지어 그 집 쪽으로 가는 것이 보였다. 내가 당도했을 때 그 집에는 전날 밤에 일어난 놀라운 이야기를 듣고 모여든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내가 죽어 가는 사람 가까이 갈 수 있도록 길을 터 주었다.


나는 임종을 맞는 사람 곁에 앉아서 좀 어떠냐고 물었다. 그는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을 것 같다고 힘없이 말했다. 나는 그에게 기운 차리라고 했고 그가 일생 동안 해온 선행을 떠올리라고 독려했다. 나는 어떤 환상이 보이는지 자주자주 물어보았지만 매번 보이는 것이 없다고 했다.


오전 11시 20분이 되자 그의 친척인 86세의 노인 마헨드라 쵸드후리가 오후불식을 지키는 나의 낮 공양 시간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나에게 공양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공양 때문에 죽어 가는 사람 곁을 어찌 떠날 수 있겠느냐고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은 일이 어떻게 진행될지 보려고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기에 내 말에 방안 분위기는 더욱 긴장되었다. 나는 죽어가는 사람에게 어떤 환상이 보이는지 다시 물어 보았다. 이번에는 "또 보여요. 마차 탄 천신들이 다시 왔어요."라고 대답했다.


내가 공양도 사양한 채 죽어 가는 사람 곁에 머물러 있기를 고집하는 그 시점에 천신들이 다시 출현한 것은 그 뒤로도 내내 풀지 못할 의문점이었다. 이 일을 나중에 즈나니쉬와르 큰스님과 실라랑카르 큰스님께 자세히 설명해 주십사고 청하자, 두 분 모두의 말씀은 천신들이 내가 공양하러 떠나기를 기다렸음에 틀림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없는 사이에 그 사람을 천상세계로 데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죽어 가는 사람 곁에 계속 머물러 있겠다고 고집하자 결국 천신들이 그를 데리러 왔던 것이다.


잠시 후 죽어 가는 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천신들은 내가 절에 되돌아가기를 간절히 원하며 꼭 그래야 한다는 것이었다. 왜 그런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천신들이 내 앞에서 그를 데려가지 못하고 망설이는 것은 내가 그들에게 오계를 베풀고 독경해 주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중에 그 일을 큰스님들께 여쭈어 보고 내 생각이 옳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의 죽음이 임박했다고 느꼈을 때 그 사람에게 "내가 있는 데서 이 사람을 데려가도 좋습니다. 당신들이 그렇게 하는 것에 전혀 이의가 없습니다. 이 사람이 우리를 떠나는 것을 기꺼이 허락하겠습니다."라고 천신들에게 말하도록 일렀다. 내가 이렇게 허락한 이유는 그가 천상계로 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공덕으로 천상계에 갈 자격이 충분했고 나는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리고 나서 나는 그의 아내와 가까운 친척들에게 기쁜 마음으로 그와 작별인사를 하게 했다. 모두가 그에게 흔쾌히 작별을 고했다.


그는 금생을 떠나는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다. "저는 이제 갑니다."라는 말로써 그는 우리 모두에게 마지막 작별을 고했다. 이것이 그 죽어 가는 사람의 마지막 말이었다. 그의 환해진 얼굴은 그지없는 행복으로 충만했다.


그 후 나는 그의 머리와 어깨를 잡고 다른 사람에게 그의 다리를 잡으라고 하고는 그의 몸을 똑바로 펴서 뉘었다. 그리고 깨끗한 물 몇 방울을 그의 입에 흘려 넣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오른손을 그의 가슴에 얹었다. 그의 가슴은 여전히 따뜻했다. 내가 추측했던 대로 그 죽어 가는 사람은 아직도 의식이 있었고 그가 평생 즐겨 외우던 경전 구절을 속으로 외는 것 같았다.


그 때 그는 있는 힘을 다해 오른손을 들어올려 무언가를 찾는 듯이 움직였다. 나는 그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전날 밤에도 몇 번 그랬듯이 그가 내 발을 만지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지 모른다고 누군가가 말했다.


그래서 나는 오른발을 가까이 내밀어 그가 만질 수 있게 했다. 그것이 그를 얼마나 기쁘게 했는지 그의 얼굴 표정에 확연히 드러났다. 그 다음에는 그 손으로 자기 이마를 만졌다가 자기 몸 옆에 똑바로 내려놓았다.


그의 가슴에 손을 대보니 체온이 조금씩 내려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 2분이 지난 후 갑자기 몸을 움칫하더니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 그의 몸은 꼼짝하지 않았다. 그의 몸에서 온기가 사라졌을 때 나는 그의 가슴에서 손을 떼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앉은 사람이나 서 있는 사람이나 모두 조용한 가운데 고인을 추모하고 있었다.


아무도 울지 않았고 어느 구석에서도 통곡하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죽어 가는 사람에 대한 적절한 작별의례로서 내가 법문 때 강조했던 가르침과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 집을 떠나며 나는 죽은 이의 친척과 친구들에게 이제는 울거나 통곡해도 좋다고 말해 주었다. 어떤 곡성도 죽은 사람에게 더 이상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 일은 임종시에 나타나는 다섯 가지 환상에 대한 게송과 이에 관한 즈나니쉬와르 큰스님의 말씀이 사실인지 아닌지 궁금했던 나의 의문에 드디어 종지부를 찍게 해주었다. 나중에 그 죽어 가는 사람의 사례를 분석해 보니 단계마다 그 사람의 마음 상태에 상응하는 환상들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돌아가신 부모의 모습과 보리수의 환상은 그 사람의 업상(kamma-nimitta)의 결과였다. 다시 말해, 업상이란 금생에서 지은 일체 행위의 업력으로 인해 일어나는 지배적인 의식 성향을 말한다. 그러나 그가 검은 머리칼로 뒤덮힌 사람이나 검은 비둘기 또는 무서운 귀신을 보기도 했는데, 그것은 세속적 집착이나 살아있을 때 저지른 악행에 대한 기억이 일시적으로 그의 마음을 지배했다는 징후이다.


독경이 좋지 못한 생각들을 몰아내었고 그러자 허깨비들이 사라졌던 것이다. 경을 외는 소리를 듣기도 하고 오계를 받아들이기도 함으로써 마음이 정화되어 천신들이 나타날 수 있게 되었다. 정화된 마음의 상태가 그의 마지막 순간까지 강력하게 이어졌다. 그것은 끈질기게 남아있던 부모의 환상보다도 더 강했다. 그 사람이 이승을 떠나 천상계로 가도록 확실하게 길을 열어 주기 위해서는 부모의 환상조차도 사라져야 했던 것이다.

* * *

이 사건에서 얻은 결론은, 요약컨대 한 사람의 생명이 끝나는 마지막 그 순간의 마음 상태가 그 사람이 보다 높은 단계의 존재로 재생할지 아니면 낮은 단계에 재생할지를 결정짓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죽는 사람에게 복을 빌어주는 사람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은 그가 이 생에서 행한 선행을 상기시켜 주고 경전과 게송을 외움으로써 그의 마음을 진정시켜 주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울거나 슬퍼해서도 안 되고 세상사에 생각을 돌리게 함으로써 그의 마음을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


내가 깨달은 또 한 가지는 아무리 경건하고 열렬한 신앙심을 가진 사람이라도 선행을 많이 한 것만으로는 해탈을 하거나 인생의 최상 목표인 열반에 이를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선행은 내생에 행복한 단계의 존재로 재생하도록 이끌어 주는데, 그 중에 가장 높은 단계라고 해봐야 천상계의 범천이다. 인간이 열 가지 족쇄를 극복하고 네 단계, 즉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 그리고 완전 해방이자 해탈의 경지인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명상수행의 길뿐이다.


이 가운데 자아가 있다는 믿음, 법에 대한 의념, 의례 의식에 대한 집착 등 처음 세 가지는 해탈을 향한 첫 단계인 예류과를 증득함으로써 극복될 수 있다. 이 단계를 증득한 사람은 지옥·아귀·축생의 삼악도에 재생하지 않고, 금생 이후 많아야 일곱 번까지만 몸을 받게 된다. 예류과에 든 사람이 임종할 때는 삼악도의 환상이 보이지 않고 인간계나 천상계의 환상만 보일 것이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 장애인 감각적 욕망과 악의를 극복함으로써 수행이 한층 진전되어 일래과에 이른 사람은 단 한 번만 더 몸을 받게 된다. 임종시 그에게도 역시 삼악도 환상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인간계나 천상계의 환상 중 하나만 나타날 것이다.


수행이 더욱 더 향상되어 감각적 욕망과 악의를 완전히 소멸시킴으로써 불환과를 증득한 사람은 다시는 이 세상에 몸 받지 않고 범천에 재생하여 해탈의 기회를 기다리게 될 것이다. 그런 사람은 임종시 천신들의 환상만 보게 될 것이다.


수행이 더욱 더 깊어져서 나머지 다섯 가지 장애, 즉 색의 세계에 대한 집착, 무색의 세계에 대한 집착, 우열의식, 도거, 그리고 무명을 소멸시킨 수행자는 아라한의 단계에 들어간다. 이러한 사람은 이제 해탈을 이루었기 때문에 다시는 몸을 받지 않는다. 따라서 임종시 그에게는 어떤 종류의 환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열반은 부처님께서 찾아내신 삶의 궁극적 지향점이다. 부처님께서는 명상수행이라는 직접체험을 통해 몸소 이 열반을 이루어내신 것이다.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이 길을 따르는 사람들이 곧 그 분의 진정한 제자이다. 열반이라는 최종 목표는 '지금 여기' 금생에서 명상수행을 통해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임종시에 나타나는 환상들은 윤회의 미로에서 어느 때는 어둡게, 어느 때는 밝게 비추는 등대 구실을 할 뿐이다. 삶의 최종 목표는 궁극적으로 진정한 빛인 열반의 성취에 있다. 열반은 예류과, 일래과, 불환과를 거쳐 아라한과에 이르는 철저한 통찰 수행을 통해서만 비로소 성취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