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말씀

Panna Vamsa 2009. 8. 28. 14:17

맛지마 니까야 셀레카 경(M8)--제거함

1. THUS HAVE I HEARD.

On one occasion the Blessed one was living at Savatthii in Jeta’s Grove, Anathapindika’s Park.

2. Then, when it was evening, the venerable Maha Cunda rose from meditation and went to the Blessed one. After paying homage to the Blessed one he sat down at one side and said to him: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물고 계셨다. 이때 마하쭌다 장로가 저녁에 명상에서 일어나 부처님께 다가가서 삼배를 올리고 한쪽에 앉아 말씀드렸다.

 

3. "Venerable sir, various views arise in the world associated either with doctrines of a self or with doctrines about the world. Now does the abandoning and relinquishing of those views come about in a bhikkhu who is attending only to the beginning [of his meditative training]?"

 

“부처님이시여, 이 세상에는 자아의 이론이나 세계의 이론에 관련된 다양한 견해들이 생겨납니다. 처음으로 명상수행을 시작하는 비구에게 이러한 견해들이 버려지고 포기되는 것입니까?”

 

*자아의 이론에 관한 견해는 쭐라웨달라 경(Cuḷavedalla sutta, M44.7) 빤짯따야 경(Pañcattaya sutta, M102)에도 자아에 대한 견해들이 열거되어 있다. 세상에 대한 견해는 8가지가 있다. 세상이 영원한가? 영원하지 않는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는가? 영원하지도 않고 영원하지 않지도 않는가? 세상이 무한한가? 무한하지 않는가? 무한하기도 하고 무한하지 않기도 하는가? 무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 않지도 않는가?(M63, M72)

*수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이란 수다원과도 도달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왜냐하면 자아에 대한 삿된 견해는 수다원도에 의해서만 제거되기 때문이다. 쭌다 장로는 수다원과도 도달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이런 견해를 제거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Cunda, as to those various views that arise in the world associated either with doctrines of a self or with doctrines about the world: if [the object] in relation to which those views arise, which they underlie, and which they are exercised upon is seen as it actually is with proper wisdom thus: ‘This is not mine, this I am not, this is not my self,’ then the abandoning and relinquishing of those views comes about.

 

쭌다여, 이 세상에는 자아에 대한 이론과 세계에 대한 이론과 관련해서 다양한 견해들이 생겨난다. 대상들에 관한 이런 견해들이 생겨나고, 견해들이 잠재되고, 견해들이 활동한다면, 이때‘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고, 이것은 내가 아니고,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견해로 보면 이런 견해들이 버려지고 제거된다.

 

* ‘생겨나다(uppajjanti)’는 전에 없었던 견해들이 생겨나는 것이고, ‘잠재되다(anusenti)’는 견해에 대한 계속된 집착으로 힘이 생긴 것이고, ‘활동하다(samudacaranti)는 몸과 말로 표현되는 것이다.

* ‘대상’은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오온 - 물질, 느낌, 지각, 상카라, 식을 말한다.

* 오온에 대해‘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이렇게 관찰하여 통찰지가 무르익으면, 수다원도에 의해서 이런 견해들이 제거된다.

 

(팔선정)

4. "It is possible here, Cunda, that quite secluded from sensual pleasures, secluded from unwholesome states, some bhikkhu enters upon and abides in the first jhana, which is accompanied by applied and sustained thought, with rapture and pleasure born of seclusion. He might think thus: ‘I am abiding in effacement.’ But it is not these attainments that are called ‘effacement’ in the Noble one’s Discipline: these are called ‘pleasant abidings here and now’ in the Noble one’s Discipline.

 

쭌다여, 여기 비구가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나고 해로운 법에서 벗어나서,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으며, 벗어남에서 생긴 기쁨과 행복이 있는 초선(初選)에 들어 머문다. 이때 그는 ‘나는 제거함에 머문다.’라는 생각이 일어난다. 쭌다여, 고귀한 분의 가르침에서 이러한 성취는 제거함이 아니고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는 것이라고 불린다.

 

* 제거함(sallekha)이라는 단어는 원래 고행을 의미한다. 붓다께서는 이 단어를 오염원의 ‘철저한 제거’라는 의미로 사용하셨다. 비록 팔선정이 경전에서 불교수행으로 중요하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사견을 제거할 수 없다. 사견의 제거는 사마타 수행으로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위빳사나 지혜(통찰지)로 제거되기 때문이다. 삼매는 단지 희열과 행복을 즐기는 것일 뿐이다.

 

5. "It is possible here that with the stilling of applied and sustained thought, some bhikkhu enters upon and abides in the second jhana, which has self-confidence and singleness of mind without applied and sustained thought, with rapture and pleasure born of concentration. He might think thus: ‘I am abiding in effacement.’ But … these are called ‘pleasant abidings here and now’ in the Noble one’s Discipline.

 

쭌다여, 여기 비구가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을 가라앉히고, 확신과 마음의 일념이 있으며,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없고, 집중에서 생긴 기쁨과 행복이 있는 이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이때 그는 ‘나는 제거함에 머문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고귀한 분의 가르침에서 그것은 제거함이 아니고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는 것이라고 불린다.

 

6. "It is possiblehere that with the fading away as well of rapture, some bhikkhu abides in equanimity, and mindful and fully aware, still feeling pleasure with the body, he enters upon and abides in the third jhana, on account of which noble ones announce: ‘He has a pleasant abiding who has equanimity and is mindful.’ He might think thus: ‘I am abiding in effacement.’ But … these are called ‘pleasant abiding here and now’ in the Noble one’s Discipline.

 

쭌다여, 여기 비구가 희열이 사라지고, 마음챙기며 알아차리고, 몸으로 행복을 느끼면서, 평온하게 머무면서 삼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삼선은 고귀한 분들이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라고 말하는 경지이다. 이때 그는 ‘나는 제거함에 머문다.’라고 생각한다. 고귀한 분의 가르침에서 그것은 제거함이 아니고,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는 것이라고 불린다.

 

7. "It is possible here that with the abandoning of pleasure and pain, and with the previous disappearance of joy and grief, some bhikkhu enters upon and abides in the fourth jhana, which has neither-pain-nor-pleasure and purity of mindfulness due to equanimity. He might think thus: ‘I am abiding in effacement.’ But it is not these attainments that are called ‘effacement’ in the Noble one’s Discipline: these are called ‘pleasant abiding here and now’ in the Noble one’s Discipline.

 

쭌다여, 여기 비구가 행복과 불행을 버리고, 이미 이전에 기쁨과 슬픔을 초월했으며, 괴로움도 즐거움도 없으며, 평온에서 생긴 청정한 마음챙김이 있는 사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이때 그에게 ‘나는 제거함에 머문다.’라는 생각이 일어난다. 고귀한 분의 가르침에서 그것은 제거함이 아니고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는 것이라고 불린다.

 

8. "It is possible here that with the complete surmounting of perceptions of form, with the disappearance of perceptions of sensory impact, with non-attention to perceptions of diversity, aware that ‘space is infinite,’ some bhikkhu enters upon and abides in the base of infinite space. He might think thus: ‘I am abiding in effacement.’ But it is not these attainments that are called ‘effacement’in the Noble one’s Discipline: these are called ‘peaceful abiding’ in the Noble one’s Discipline.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며, 다양한 인식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공무변처에 들어 머문다. 이때 그는 ‘나는 제거함에 머문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성취는 고귀한 분의 가르침에서 제거함이 아니고 평화롭게 머무는 것이라고 불린다.

 

9. "It is possible here that by completely surmounting the base of infinite space, aware that ‘consciousness is infinite,’ some bhikkhu enters upon and abides in the base of infinite consciousness. He might think thus: ‘I am abiding in effacement.’ But … these are called ‘peaceful abidings’ in the Noble one’s Discipline.

 

여기 비구가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식[識]'이라고 하는 식무변처에 들어 머문다. 이때 그는 ‘나는 제거함에 머문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고귀한 분의 가르침에서 평화롭게 머문 것이라고 불린다.

 

10. "It is possible here that by completely surmounting the base of infinite consciousness, aware that ‘there is nothing,’some bhikkhu enters upon and abides in the base of nothingness. He might think thus: ‘I am abiding in effacement.’ But … these are called ‘peaceful abidings’in the Noble one’s Discipline.

 

여기 비구가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 무소유처에 들어 머문다. 이때 그는 ‘나는 제거함에 들어 머문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고귀한 분의 가르침에서 평화롭게 머무는 것이라고 불린다.

 

11. "It is possible here that by completely surmounting the base of nothingness, some bhikkhu enters upon and abides in the base of neither-perception-nor-non-perception. He might think thus: ‘I am abiding in effacement.’ [42] But these attainments are not called ‘effacement’ in the Noble one’s Discipline: these are called ‘peaceful abidings’ in the Noble one’s Discipline.

 

여기 비구가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비상비비상처에 들어 머문다. 이때 그는 ‘나는 제거함에 머문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취는 고귀한 분의 가르침에서 ‘제거함’이 아니고 ‘평화롭게 머무는 것.’이라고 불린다.

 

(제거함)

12. Now, Cunda, effacement should be done thus;

쭌다여, 제거함은 이렇게 해야 한다.

 

(1) ‘Others will be cruel; we shall not be cruel here’: effacement should be practised thus.

1) 다른 사람들이 남을 해치더라도 우리는 해치지 않을 것이다. 제거함은 이와 같이 수행해야 한다.

*해치지 않음(ahiṁsa)는 연민과 동의어이며, 모든 공덕의 뿌리이며 도덕의 기초이다.

(2) ‘Others will kill living beings; we shall abstain from killing living beings here’

다른 사람들은 살생을 하더라도 우리는 살생을 삼갈 것이다.

(3) ‘Others will take what is not given; we shall abstain from taking what is not given here’

다른 사람들은 주지 않는 것을 빼앗더라도 우리는 주지 않는 것을 빼앗지 않을 것이다.

(4) ‘Others will be uncelibate; we shall be celibate here’

다른 사람들은 순결을 지키지 않더라도 우리는 순결을 지킬 것이다.

(5) ‘Others will speak falsehood; we shall abstain from false speech here’

다른 사람들은 거짓말을 하더라도 우리는 거짓말을 삼갈 것이다.

(6) ‘Others will speak maliciously; we shall abstain from malicious speech here’

다른 사람들은 이간질을 하더라도 우리는 이간질을 삼갈 것이다.

(7) ‘Others will speak harshly; we shall abstain from harsh speech here’

다른 사람들은 욕설을 하더라도 우리는 욕설을 삼갈 것이다.

(8) ‘Others will gossip ; we shall abstain from gossip here’

다른 사람들은 잡담을 할지라도 우리는 잡담을 삼갈 것이다.

(9) ‘Others will be covetous; we shall be uncovetous here’

다른 사람들은 탐욕스러울지라도 우리는 탐욕스럽지 않을 것이다.

(10) ‘Others will have ill will; we shall be without ill will here’

다른 사람들은 악의를 가지더라도 우리는 악의를 가지지 않을 것이다.

 

*1)~10)은 유익한 행위와 해로운 행위에 대한 것이다.

 

(11) ‘Others will be of wrong view; we shall be of right view here’

다른 사람들은 삿된 견해를 갖더라도 우리는 바른 견해를 지닐 것이다.

(12) ‘Others will be of wrong intention; we shall be of right intention here’

다른 사람들은 삿된 사유를 하더라도 우리는 바른 사유를 할 것이다.

(13) ‘Others will be of wrong speech; we shall be of right speech here’

다른 사람들은 삿된 말을 하더라도 우리는 바른 말을 할 것이다.

(14) ‘Others will be of wrong action; we shall be of right action here’

다른 사람들은 삿된 행위를 하더라도 우리는 바른 행위를 할 것이다.

(15) ‘Others will be of wrong livelihood; we shall be of right livelihood here’

다른 사람들은 삿된 생계를 하더라도 우리는 바른 생계를 할 것이다.

(16) ‘Others will be of wrong effort; we shall be of right effort here’

다른 사람들은 삿된 정진을 하더라도 우리는 바른 정진을 할 것이다.

(17) ‘Others will be of wrong mindfulness; we shall be of right mindfulness here’

다른 사람들은 삿된 마음챙김을 하더라도 우리는 바른 마음챙김을 할 것이다.

(18) ‘Others will be of wrong concentration; we shall be of right concentration here’

다른 사람들은 삿된 삼매를 수행하더라도 우리는 바른 삼매를 수행할 것이다.

 

*11)~18)까지는 팔정도이다.

 

(19) ‘Others will be of wrong knowledge; we shall be of right knowledge here’

다른 사람들은 삿된 지혜를 갖더라도 우리는 바른 지혜를 가질 것이다.

(20) ‘Others will be of wrong deliverance; we shall be of right deliverance here’

다른 사람들은 삿된 해탈을 하더라도 우리는 바른 해탈을 할 것이다.

 

*19)~20)은 가끔 팔정도에 추가되는 항목이다.

 

(21) ‘Others will be overcome by sloth and torpor; we shall be free from sloth and torpor here’

다른 사람들은 해태와 혼침에 빠지더라도 우리는 해태와 혼침에 빠지지 않을 것이다.

(22) ‘Others will be restless; we shall not be restless here’

다른 사람들은 들뜨더라도 우리는 들뜨지 않을 것이다.

(23) ‘Others will be doubters; we shall go beyond doubt here’

다른 사람들은 의심하는 자가 되더라도 우리는 극복할 것이다.

 

21)~23)은 오장애의 다섯 가지 중 세 가지이다. 나머지 두 가지는 9)와 10)과 동일하다.

 

(24) ‘Others will be angry; we shall not be angry here’

다른 사람들은 화를 내더라도 우리는 화를 내지 않을 것이다.

(25) ‘Others will be revengeful; we shall not be revengeful here’:

다른 사람들은 원한을 품더라도 우리는 원한을 품지 않을 것이다.

(26) ‘Others will be contemptuous; we shall not be contemptuous here’

다른 사람들은 남을 경멸하더라도 우리는 남을 경멸하지 않을 것이다.

(27) ‘Others will be domineering; we shall not be domineering here’

다른 사람들은 횡포를 부리더라도 우리는 횡포를 부리지 않을 것이다.

(28) ‘Others will be envious; we shall not be envious here

다른 사람들은 질투하더라도 우리는 질투하지 않을 것이다.

(29) ‘Others will be avaricious; we shall not be avaricious here’

다른 사람들은 인색하더라도 우리는 인색하지 않을 것이다.

(30) ‘Others will be fraudulent; we shall not be fraudulent here’

다른 사람들은 부정한 짓을 하더라도 우리는 부정한 짓을 하지 않을 것이다.

(31) ‘Others will be deceitful; we shall not be deceitful here’

다른 사람들은 속이더라도 우리는 속이지 않을 것이다.

(32) ‘Others will be obstinate; we shall not be obstinate here’

다른 사람들은 고집을 부리더라도 우리는 고집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33) ‘Others will be arrogant; we shall not be arrogant here’

다른 사람들은 거만하더라도 우리는 거만하지 않을 것이다.

 

24)~33)은 M7에 나오는 16가지 마음을 오염시키는 결점들 중에서 10가지이다.

 

(34) ‘Others will be difficult to admonish; we shall be easy to admonish here’

다른 사람들은 훈계하기 어렵더라도 우리는 훈계하기 쉬울 것이다.

(35) ‘Others will have bad friends; we shall have good friends here’

다른 사람들은 나쁜 친구를 사귀더라도 우리는 좋은 친구를 사귈 것이다.

(36) ‘Others will be negligent; we shall be diligent here’

다른 사람들은 게으르더라도 우리는 부지런할 것이다.

(37) ‘Others will be faithless; we shall be faithful here’

다른 사람들은 믿음이 없더라도 우리는 믿음이 있을 것이다.

(38) ‘Others will be shameless; we shall be shameful here’

다른 사람들은 양심이 없더라도 우리는 양심이 있을 것이다.

(39) ‘Others will have no fear of wrongdoing; we shall be afraid of wrongdoing here’

다른 사람들은 수치심이 없더라도 우리는 수치심이 있을 것이다.

(40) ‘Others will be of little learning; we shall be of great learning here’

다른 사람들은 배움이 적더라도 우리는 많이 배울 것이다.

(41) ‘Others will be lazy; we shall be energetic here’

다른 사람들은 방일하더라도 우리는 열심히 정진할 것이다.

(42) ‘Others will be unmindful; we shall be established in mindfulness here’

다른 사람들은 마음챙기지 않더라도 우리는 마음챙김을 확립할 것이다.

(43) ‘Others will lack wisdom; we shall possess wisdom here’

다른 사람들은 지혜가 부족하더라도 우리는 지혜를 갖출 것이다.

 

*37)~43)은 M53.11~17에 나오는 7가지 해로운 법과 7가지 유익한 법이다.

 

(44) ‘Others will adhere to their own views, hold on to them tenaciously, and relinquish them with difficulty; we shall not adhere to our own views or hold on to them tenaciously, but shall relinquish them easily’: effacement should be practised thus.

다른 사람들은 자기 견해에 집착하여 고집스럽게 붙잡고, 포기하기가 어렵더라도, 우리는 자기 견해에 집착하지 않아 고집스럽게 붙잡지 않고, 쉽게 버릴 것이다. 제거함은 이렇게 수행한다.

 

*이런 사람들은‘이것만이 진리이다.’라는 견해를 꼭 붙잡고 있는 사람이다. 이들은 붓다께서 아무리 이야기해도 자신의 견해를 포기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