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말씀

Panna Vamsa 2009. 8. 28. 14:18

Anguttara Nikaya IV.41

Samadhi Sutta

 

앙굿따라 니까야 삼매경(A4.41)

 

"Monks, these are the four developments of concentration. Which four? There is the development of concentration that, when developed & pursued, leads to a pleasant abiding in the here & now. There is the development of concentration that, when developed & pursued, leads to the attainment of knowledge & vision. There is the development of concentration that, when developed & pursued, leads to mindfulness & alert!ness. There is the development of concentration that, when developed & pursued, leads to the ending of the effluents.

 

비구들이여, 네 가지 삼매 수행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삼매를 닦고 키우면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문다. 삼매를 닦고 키우면 알고 보는 것(知와 見)을 얻는다. 삼매를 닦고 키우면 마음챙기고 알아차리게 된다. 삼매를 닦고 키우면 번뇌를 소멸하게 된다.

 

"And what is the development of concentration that, when developed & pursued, leads to a pleasant abiding in the here & now? There is the case where a monk -- quite withdrawn from sensuality, withdrawn from unskillful qualities -- enters & remains in the first jhana: rapture & pleasure born from withdrawal, accompanied by directed thought & eval!uation. With the stilling of directed thought & eval!uation, he enters & remains in the second jhana: rapture & pleasure born of composure, unification of awareness free from directed thought & eval!uation -- internal assurance. With the fading of rapture he remains in equanimity, mindful & alert!, and physically sensitive to pleasure. He enters & remains in the third jhana, of which the Noble ones declare, 'Equanimous & mindful, he has a pleasurable abiding.' With the abandoning of pleasure & pain -- as with the earlier disappearance of elation & distress -- he enters & remains in the fourth jhana: purity of equanimity & mindfulness, neither pleasure nor pain. This is the development of concentration that, when developed & pursued, leads to a pleasant abiding in the here & now.

 

삼매를 닦고 키울 때, 어떤 것을 지금 여기에서 행복으로 이끄는 삼매수행이라고 하는가? 여기 비구가 욕망에서 벗어나고, 해로운 법에서 벗어나서, 초선(初選)에 들어 머문다. 초선은 벗어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을 가라앉히고 이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이선은 평온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으며,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없으므로 마음이 단일한 상태이며, 내면에 확신이 있다. 희열이 사라지고 평온이 유지되며,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느끼는 삼선에 들어 머문다. 삼선은 성자들이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라고 묘사하는 상태이다. 행복과 괴로움을 버리고,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사라졌으므로 사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사선은 평온과 알아차림으로 인해 마음이 청정하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

 

"And what is the development of concentration that, when developed & pursued, leads to the attainment of knowledge & vision? There is the case where a monk attends to the perception of light and is resolved on the perception of daytime [at any hour of the day]. Day [for him] is the same as night, night is the same as day. By means of an awareness open & unhampered, he develops a brightened mind. This is the development of concentration that, when developed & pursued, leads to the attainment of knowledge & vision.

 

삼매를 닦고 키울 때 어떤 것을 알고 봄(知와 見)을 얻는 삼매수행이라고 하는가? 여기 비구가 광명상(光明想)을 마음을 기울이고, ‘낮’이라는 인식에 집중한다. (그에게는) 낮도 밤과 같고, 밤도 낮과 같다. 열고 닫혀있지 않는 알아차림으로 빛이 있는 마음을 닦는다. 이것이 삼매를 닦고 키울 때, 알고 봄(知와 見)을 얻는 삼매수행이다.

 

"And what is the development of concentration that, when developed & pursued, leads to mindfulness & alert!ness? There is the case where feelings are known to the monk as they arise, known as they persist, known as they subside. Perceptions are known to him as they arise, known as they persist, known as they subside. Thoughts are known to him as they arise, known as they persist, known as they subside. This is the development of concentration that, when developed & pursued, leads to mindfulness & alert!ness.

 

삼매를 닦고 키울 때, 어떤 것이 마음챙기고 알아차리게 하는 삼매수행인가? 비구가 알아차리는 느낌들이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진다. 비구가 알아차리는 지각들이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진다. 비구가 알아차리는 생각들이 일어나고 머물고 사라진다. 이것이 닦고 키우면 마음챙기고 알아차리게 되는 삼매수행이다.

 

"And what is the development of concentration that, when developed & pursued, leads to the ending of the effluents? There is the case where a monk remains focused on arising & falling away with reference to the five aggregates for sustenance/clinging: 'Such is form, such its origination, such its passing away. Such is feeling, such its origination, such its passing away. Such is perception, such its origination, such its passing away. Such are fabrications, such their origination, such their passing away. Such is consciousness, such its origination, such its disappearance.' This is the development of concentration that, when developed & pursued, leads to the ending of the effluents.

 

삼매를 닦고 키울 때, 어떤 것이 번뇌를 소멸하게 하는 삼매수행인가? 여기 비구가 오취온五取蘊(취착하는 다섯 가지 모임)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에 마음을 집중한다. ‘이것은 물질이다. 이것은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은 느낌이다. 이것은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은 지각이다. 이것은 지각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지각의 사라짐이다. 이것은 상카라(行)이다. 이것은 상카라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상카라의 사라짐이다. 이것은 식(識)이다. 이것은 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닦고 키우면 번뇌를 소멸시키는 삼매수행이다.

 

"These are the four developments of concentration.

"And it was in connection with this that I stated in Punnaka's Question in the Way to the Far Shore [Sn V.3]:

 

이것이 네 가지 삼매수행이다. 이점에 대해서 나는 이미 숫따니빠따의 「피안에 이르는 길」에 대한 뿐나까의 질문에서 설하였다.

 

'He who has fathomed

the far & near in the world,

for whom there is nothing

perturbing in the world --

his vices evaporated,

undesiring, untroubled,

at peace --

he, I tell you, has crossed over birth

aging.'"

 

이 세상에서 높고 낮은 것을 깊이 통찰한 사람은

세상의 어떤 것에도 흔들리지 않고,

분노가 사라지며,

갈애가 없고, 괴로움이 없으며,

평화롭다.

그는 태어남과 늙음을 건넜다고 나는 말하노라.

 

삼매경에서는 아비담마에서 이야기 하는 사마타(samatha) 수행과 위빳사나(vipassanā) 수행의 차이가 없다. ‘사마타 수행으로 삼매를 얻으며 위빳사나 수행으로 통찰지를 얻어 도과를 얻는다.’라고 아비담마에서 말한다. 하지만 여기서는 사선정을 얻는 것과 마음챙기는 위빳사나 수행과 번뇌를 제거하여 해탈하는 것이 모두 삼매수행에 포함되어 있다. 삼매(samādhi)라는 말의 의미는 사선정과 같은 깊은 본삼매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고요와 집중이 유지되는 근접삼매도 모두 삼매라 할 수 있다. 곧 집중이 곧 삼매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경에서는 사선정을 얻어서 깊은 삼매를 성취하면, 집중이 계속 유지되는 근접삼매에서 위빳사나를 수행하여 도과를 얻는다고 설명하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