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말씀

Panna Vamsa 2009. 9. 25. 16:49

기리마난다 경(A10.60)

 

Girimānanda sutta: To Girimananda (A10.60)

 

이 경은 열 가지 산냐(인식) 수행에 대한 가르침이다. 이 경은 부처님께서 병을 앓고 있는 기리마난다 장로를 위해 설한 가르침이며, 부처님의 예언대로 기리마난다 장로가 이 경을 듣자마자 병에서 회복한 기적이 일어났다. 그래서 요즈음도 병석에 누워있는 환자에게 보호주(빠릿따)로 낭송하곤 한다.

 

I have heard that on one occasion the Blessed one was staying near Savatthi, in Jeta's Grove, Anathapindika's monastery. And on that occasion Ven. Girimananda was diseased, in pain, severely ill. Then Ven. Ananda went to the Blessed one and, on arrival, having bowed down to him, sat to one side. As he was sitting there he said to the Blessed one, "Lord, Ven. Girimananda is diseased, in pain, severely ill. It would be good if the Blessed one would visit Ven. Girimananda, out of sympathy for him."

 

한때 부처님께서 사왓티의 제따 숲 아나타삔디까 사원에 머무셨다. 그때 기리마난다 장로가 병에 걸려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다. 이때 아난다 장로가 부처님께 가서 삼배를 올리고 한쪽에 앉아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기리마난다 장로가 병에 걸려 심한 고통을 겪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그에 대한 연민심으로 기리마난다 장로를 방문하시면 좋겠습니다.”

 

"Ananda, if you go to the monk Girimananda and tell him ten perceptions, it's possible that when he hears the ten perceptions his disease may be allayed. Which ten? The perception of impermanence, the perception of not-self, the perception of impurity, the perception of drawbacks, the perception of abandoning, the perception of dispassion, the perception of cessation, the perception of distaste for every world, the perception of the undesirability of all fabrications, mindfulness of in-&-out breathing.

 

“아난다여, 그대가 기리마난다 장로에게 가서 열 가지 인식(샨냐)에 대해 말해주면 그가 열 가지 인식을 들을 때 병이 가라앉을 것이다. 열 가지가 무엇인가? 무상에 대한 인식, 무아에 대한 인식, 부정에 대한 인식, 위험에 대한 인식, 버림에 대한 인식, 탐욕 없음에 대한 인식, 소멸에 대한 인식, 모든 세상이 즐겁지 않다는 인식, 모든 상카라들이 무상하다는 인식,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이다.

 

*Aniccasaññā(무상에 대한 인식), anattasaññā(무아에 대한 인식), asubhasaññā(부정에 대한 인식), ādinavasaññā(위험에 대한 인식), pahānasaññā(버림에 대한 인식), virāgasaññā(탐욕 없음에 대한 인식), nirodhasaññā(소멸에 대한 인식), sabbaloke anabhiratasaññā(모든 세상이 즐겁지 않다는 인식), sabbasankharesu aniccasaññā(모든 상카라들이 무상하다는 인식), ānāpānasati(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

 

[1] "And what is the perception of impermanence? There is the case where a monk — having gone to the wilderness, to the shade of a tree, or to an empty building — reflects thus: 'Form is impermanent, feeling is impermanent, perception is impermanent, fabrications are impermanent, consciousness is impermanent.' Thus he remains focused on impermanence with regard to the five aggregates. This, Ananda, is called the perception of impermanence.

 

무엇이 무상에 대한 인식인가? 여기 비구가 숲으로 가거나 나무 아래로 가거나 또는 빈집으로 가서 이렇게 관찰한다. ‘물질은 무상하다. 느낌은 무상하다. 지각은 무상하다. 상카라는 무상하다. 식은 무상하다.’ 이렇게 그가 오온을 무상하다고 관찰하며 머문다. 아난다여, 이것을 무상에 대한 인식이라고 한다.

 

[2] "And what is the perception of not-self? There is the case where a monk — having gone to the wilderness, to the shade of a tree, or to an empty building — reflects thus: 'The eye is not-self, forms are not-self; the ear is not-self, sounds are not-self; the nose is not-self, aromas are not-self; the tongue is not-self, flavors are not-self; the body is not-self, tactile sensations are not-self; the intellect is not-self, ideas are not-self.' Thus he remains focused on not-selfness with regard to the six inner &outer sense media. This is called the perception of not-self.

 

무엇이 무아에 대한 인식인가? 여기 비구가 숲으로 가거나, 나무 그늘로 가거나, 빈집으로 가서 이렇게 관찰한다. ‘눈은 무아이고 형상도 무아이다. 귀는 무아이고 소리도 무아이다. 코는 무아이고 냄새도 무아이다. 혀도 무아이고 맛도 무아이다. 몸도 무아이고 촉감도 무아이다. 마음도 무아이고 마음의 대상도 무아이다.’ 이렇게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영역을 무아라고 관찰하며 머문다. 이것을 무아에 대한 인식이라 한다.

 

[3] "And what is the perception of impurity? There is the case where a monk ponders this very body — from the soles of the feet on up, from the crown of the head on down, surrounded by skin, filled with all sorts of unclean things: 'There is in this body: hair of the head, hair of the body, nails, teeth, skin, muscle, tendons, bones, bone marrow, spleen, heart, liver, membranes, kidneys, lungs, large intestines, small intestines, gorge, feces, gall, phlegm, lymph, blood, sweat, fat, tears, oil, saliva, mucus, oil in the joints, urine.' Thus he remains focused on impurity with regard to this very body. This is called the perception of impurity.

 

무엇이 부정에 대한 인식인가? 여기 비구는 발바닥에서 위로 올라가며, 머리에서 아래로 내려가며 이 몸이 피부로 둘러싸여있고, 온갖 더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음을 관찰한다. ‘이 몸에는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빨, 살갗,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심장, 간, 늑막, 신장, 허파, 큰창자, 작은창자, 위속의 음식, 똥,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지방, 눈물, 기름기, 침, 콧물, 관절액, 오줌이 있다.’ 이렇게 이 몸에 대한 부정을 관찰하며 머문다. 이것을 부정에 대한 인식이라 한다.

 

[4] "And what is the perception of drawbacks? There is the case where a monk — having gone to the wilderness, to the foot of a tree, or to an empty dwelling — reflects thus: 'This body has many pains, many drawbacks. In this body many kinds of disease arise, such as: seeing-diseases, hearing-diseases, nose-diseases, tongue-diseases, body-diseases, head-diseases, ear-diseases, mouth-diseases, teeth-diseases, cough, asthma, catarrh, fever, aging, stomach-ache, fainting, dysentery, grippe, cholera, leprosy, boils, ringworm, tuberculosis, epilepsy, skin-disease, itch, scab, psoriasis, scabies, jaundice, diabetes, hemorrhoids, fistulas, ulcers; diseases arising from bile, from phlegm, from the wind-property, from combinations of bodily humors, from changes in the weather, from uneven care of the body, from attacks, from the result of kamma; cold, heat, hunger, thirst, defecation, urination.' Thus he remains focused on drawbacks with regard to this body. This is called the perception of drawbacks.

 

무엇이 위험에 대한 인식인가? 여기 비구는 숲으로 가거나, 나무 그늘로 가거나 또는 빈집으로 가서 이렇게 관찰한다. ‘이 몸 안에는 많은 고통과 위험이 있다. 이 몸 안에는 많은 병이 일어난다. 이는 눈병, 속귀의 병, 콧병, 혓병, 몸살, 두통, 겉귀의 병, 입병, 잇병, 기침, 천식, 콧물감기, 열병, 노쇠, 위통, 기절, 이질, 독감, 콜레라, 나병, 종기, 백선, 결핵, 간질, 피부병, 가려움, 딱지, 건선, 옴, 황달, 당뇨, 치핵, 치루, 궤양, 담즙에서 생긴 병, 점액에서 생긴 병, 풍병, 합병증, 환절기병, 몸의 불균형에서 생긴 병, 상해(傷害)로 생긴 병, 업에서 생긴 병, 추위, 더위, 배고픔, 목마름, 똥, 오줌이다. 이렇게 그는 몸에서 위험을 관찰하며 머문다. 이것을 위험에 대한 인식이라 한다.

 

[5] "And what is the perception of abandoning? There is the case where a monk does not tolerate an arisen thought of sensuality. He abandons it, destroys it, dispels it, &wipes it out of existence. He does not tolerate an arisen thought of ill-will. He abandons it, destroys it, dispels it, &wipes it out of existence. He does not tolerate an arisen thought of harmfulness. He abandons it, destroys it, dispels it, &wipes it out of existence. He does not tolerate arisen evil, unuseful mental states. He abandons them, destroys them, dispels them, &wipes them out of existence. This is called the perception of abandoning.

 

무엇이 버림에 대한 인식인가? 여기 비구는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 대한 생각을 내버려두지 않고, 버리고 파괴하고 쫒아버리고 씻어낸다. 그는 일어난 악한 생각들을 내버려두지 않고, 버리고, 파괴하고 쫒아버리고, 씻어낸다. 그는 일어난 해로운 생각들을 내버려두지 않고, 버리고, 파괴하고, 쫒아버리고, 씻어낸다. 그는 일어난 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내버려두지 않고, 버리고, 파괴하고, 쫒아버리고, 씻어낸다. 이것을 버림에 대한 인식이라 한다.

 

[6] "And what is the perception of dispassion? There is the case where a monk — having gone to the wilderness, to the shade of a tree, or to an empty building — reflects thus: 'This is peace, this is exquisite — the stilling of all fabrications, the relinquishment of all acquisitions, the ending of craving, dispassion, Unbinding.' This is called the perception of dispassion.

 

무엇이 탐욕 없음에 대한 인식인가? 여기 비구가 숲으로 가거나, 나무 아래로 가거나 또는 빈집으로 가서 이렇게 관찰한다. ‘이것은 평화이고 수승한 것이다. 이것은 모든 상카라의 가라앉음, 모든 얻음의 포기, 갈애의 소진, 탐욕 없음, 닙바나이다.’ 이것을 탐욕 없음에 대한 인식이라 한다.

 

[7] "And what is the perception of cessation? There is the case where a monk — having gone to the wilderness, to the shade of a tree, or to an empty building — reflects thus: 'This is peace, this is exquisite — the stilling of all fabrications, the relinquishment of all acquisitions, the ending of craving, cessation, Unbinding.' This is called the perception of cessation.

 

무엇이 소멸에 대한 인식인가? 여기 비구가 숲으로 가거나, 나무 아래로 가거나 또는 빈집으로 가서 이렇게 관찰한다. ‘이것이 평화이고 수승한 것, 모든 상카라의 가라앉음, 모든 얻음의 포기, 갈애의 소진, 소멸, 닙바나이다.’ 이것을 소멸에 대한 인식이라 한다.

 

[8] "And what is the perception of distaste for every world? There is the case where a monk abandoning any attachments, clingings, fixations of awareness, biases, or obsessions with regard to any world, refrains from them and does not get involved. This is called the perception of distaste for every world.

 

무엇이 모든 세상이 즐겁지 않다는 인식인가? 여기 비구는 온 세상에 대한 갈애와 집착, 고정관념, 선입견, 강박관념을 버리고, 삼가고,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이것을 모든 세상이 즐겁지 않다는 인식이라 한다.

 

[9] "And what is the perception of the undesirability of all fabrications? There is the case where a monk feels horrified, humiliated, &disgusted with all fabrications. This is called the perception of the undesirability of all fabrications.

 

무엇이 모든 상카라들이 무상하다는 인식인가? 여기 비구는 모든 상카라들이 무섭고, 부끄럽고, 혐오스럽다고 느낀다. 이것을 모든 상카라들이 무상하다는 인식이다.

 

[10] "And what is mindfulness of in-&-out breathing? There is the case where a monk — having gone to the wilderness, to the shade of a tree, or to an empty building — sits down folding his legs crosswise, holding his body erect, and setting mindfulness to the fore. Always mindful, he breathes in; mindful he breathes out.

 

무엇이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인가? 여기 비구가 숲으로 가거나 나무 아래로 가거나, 빈집으로 가서 가부좌를 하고 앉아 상체를 곧추 세우고 전면에 마음챙김을 확립한다. 그는 마음챙기면서 들이쉬고 마음챙기면서 내쉰다.

 

"[i] Breathing in long, he discerns that he is breathing in long; or breathing out long, he discerns that he is breathing out long. [ii] Or breathing in short, he discerns that he is breathing in short; or breathing out short, he discerns that he is breathing out short. [iii] He trains himself to breathe in sensitive to the entire body, and to breathe out sensitive to the entire body. [iv] He trains himself to breathe in calming the bodily processes, and to breathe out calming the bodily processes.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관찰한다. 길게 내쉬면서 길게 내쉰다고 관찰한다. 짧게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고 관찰한다. 짧게 내쉬면서 짧게 내쉰다고 관찰한다. ‘온 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라고 수행하고 ‘온 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라고 수행한다. ‘몸이 작용을 고요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라고 수행하고, ‘몸의 작용을 고요히 하면서 내쉬리라.’라고 수행한다.

 

"[v] He trains himself to breathe in sensitive to rapture, and to breathe out sensitive to rapture. [vi] He trains himself to breathe in sensitive to pleasure, and to breathe out sensitive to pleasure. [vii] He trains himself to breathe in sensitive to mental processes, and to breathe out sensitive to mental processes. [viii] He trains himself to breathe in calming mental processes, and to breathe out calming mental processes.

 

‘희열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라고 수행하고, ‘희열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라고 수행한다. ‘행복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라고 수행하고, ‘행복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라고 수행한다. ‘마음의 작용을 고요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라고 수행하고, ‘마음의 작용을 고요히 하면서 내쉬리라.’라고 수행한다.

 

"[ix] He trains himself to breathe in sensitive to the mind, and to breathe out sensitive to the mind. [x] He trains himself to breathe in satisfying the mind, and to breathe out satisfying the mind. [xi] He trains himself to breathe in steadying the mind, and to breathe out steadying the mind. [xii] He trains himself to breathe in releasing the mind, and to breathe out releasing the mind.

 

‘마음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라고 수행하고, ‘마음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라고 수행한다.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들이쉬리라.’라고 수행하고, ‘마음을 기쁘게 하면서 내쉬리라.’라고 수행한다. ‘마음을 집중하면서 들이쉬리라.’라고 수행하고, ‘마음을 집중하면서 내쉬리라.’라고 수행한다.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들이쉬리라.’라고 수행하고, '마음을 해탈케 하면서 내쉬리라.‘라고 수행한다.

 

"[xiii] He trains himself to breathe in focusing on impermanence, and to breathe out focusing on impermanence. [xiv] He trains himself to breathe in focusing on dispassion (lit. fadint), and to breathe out focusing on dispassion. [xv] He trains himself to breathe in focusing on cessation, and to breathe out focusing on cessation. [xvi] He trains himself to breathe in focusing on relinquishment, and to breathe out focusing on relinquishment. This, Ananda, is called mindfulness of in-&-out breathing.”

 

‘무상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라고 수행하고, ‘무상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라고 수행한다. ‘탐욕 없음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라고 수행하고, ‘탐욕 없음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라고 수행한다. 소멸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라고 수행하고, ‘소멸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라고 수행한다.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들이쉬리라.’라고 수행하고, ‘놓아버림을 관찰하면서 내쉬리라.’라고 수행한다. 아난다여, 이것을 들숨날숨에 대한 마음챙김이라 한다.

 

"Now, Ananda, if you go to the monk Girimananda and tell him these ten perceptions, it's possible that when he hears these ten perceptions his disease may be allayed."

 

아난다여, 이제 그대가 기리마난다 비구에게 가서 이 열 가지 인식을 말해주고, 그가 이 열 가지 인식을 듣는다면 병이 가라앉을 것이다.

 

Then Ven. Ananda, having learned these ten perceptions in the Blessed one's presence, went to Ven. Girimananda and told them to him. As Ven. Girimananda heard these ten perceptions, his disease was allayed. And Ven. Girimananda recovered from his disease. That was how Ven. Girimananda's disease was abandoned.

 

그때 아난다 장로는 부처님에게서 열 가지 인식을 배우고 기리마난다 장로에게 가서 말해주었다. 기리마난다 장로가 이 열 가지 인식을 듣자, 병이 가라앉았고, 병에서 회복하였다. 그것이 기리마난다 장로의 병이 떠나게 된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