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시

새벽 2020. 6. 16. 11:16

보낸사람: 조병화문학관 20.06.16 08:05

 

  

길(조병화 칼라詩畵選, 동문선1987) 삽도

 

시간과 생명과 인간의 존재

 

    의자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오는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어요.
    먼 옛날 어느 분이
    내게 물려주듯이,
    지금 어디메쯤
    아침을 몰고오는 어린 분이 계시옵니다.
    그분을 위하여
    묵은 의자를 비워 드리겠습니다.

 인문계 고3 국어 국정 교과서에서 실려있는 나의 시 「의자」는 1964년 가을 양지사에서 출판한 시집 『시간의 숙소를 더듬어서』속에 실려 있는 작품이다.
 이 「의자」는 10편으로 되어 있는 연작시(連作詩)이며, 교과서에 실려 있는 시는 그중 일곱 번째의 것이다.
 나는 여기 10편을 통해서 시간이라는 걸 생각했다. 그리고 생명이라는 걸 생각했다. 그리고 인간의 존재라는 걸 생각했다.
 우리들의 생명은 무한한 것이 아니라 지극히 짧은 유한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것은 시간성을 지니고 있다는 걸 생각했다. 40이다, 50이다, 60이다, 70이다, 그만큼의 시간을 배당받고 인간은 살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 배당받은 시간을 인간은 살아가는 거다. 그 동안을 어떻게 사느냐?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인생이요, 인생관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다시 말하면, 우리 인간은 누구나 한동안을 살다가 떠나는 거다. 이 보이는 세상(現世)에서 저 보이지 않는 세상(來世)으로 떠나야 하는 거다. 자기에게 배당된 시간(목숨)을 다 살고선 ‘죽음’이라는 한계선을 넘어서 내세에로 이사를 해야 하는 거다. 시체는 이 지구 위에 버려두고, 그 영혼이.
 생•애•사, 이러한 인간 현상을 10편의 작품에서 다루어 본 거다. 실로 인간 현상은 변화무쌍이어서 인간은 누구나 그 무상을 살다가 가는 거다.
 그 첫 시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 자릴 비워 주세요 / 누가 오십니까 / 네 / 그 자릴 비워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누가 오십니까 / 네 ••••••’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는 장소는 나의 영원한 장소가 아니라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는 남, 타인(他人)의 자리라는 생각이다. 항상 떠나야 하는 숙명, 그 생각이 짙게 나에게 있었다. 그 떠나야 하는 남의 자리에서 떠나는 연습을 하며, 떠나는 시각을 생각하며, 그 때를 응시하고 있다는 거다.
 두 번째 시는 ‘그렇습니다 / 이 자린 저의 자린 아니오나 / 아무런 생각 없이 / 잠시 있는 자리 / 떠나고 싶을 때 떠나게 하여 주십시오 ••••••’
세 번째 시는 ‘내일에 쫓기면서 / 지금 / 내가 아직 생각하고 있는 건 / 지금 앉아 있는 자리의 어제들이다 / 그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 먼저 살다 먼저 떠난 사람들을 생각한다는 거다.
 그 사람들은 지금 어디서 무얼하고 있을까? 하고.
 네 번째의 시는 ‘가을마다 이 자리에 돌아오는 건 / 무언가를 이 자리에 잊은 거 같은 / 생각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
 다섯 번째의 시는 ‘떠나야 할 시간이오나, 아직 / 떠나지 못하옵는 건 / 내일? 어디라 장소를 정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 내일의 장소를 내가 아직 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금 떠나지 못한다는 거다. 아직 내세관이 정립되어 있지 않다는 말도 된다.
 여섯 번째의 시는 ‘시간은 마냥 제자리에 있는 거 / 실로 변하는 건 / 움직이는 것들이다 ••••••’ 시간은 변하지 않으나 생자무상(生者無常) - 생자만이 변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일곱 번째의 시가 교과서에 있는 시이다.
 여덟 번째의 시는 ‘보이는 자리엔, 낙서를 하지 말자 / 옛날에 어느 분이 이 의자에 •••••• / 하고 / 나를 찾을 때 / 그 생각 속에 있자 ••••••’ 이렇게 시작을 한다. 영혼적인 흔적을 만들자는 거다. 그러한 정신적인 전통과 계승, 그 유대를 생각한 거다.
 아홉 번째의 시는 ‘인사말을 이야기하기엔 너무 어림에 / 옛날 어느 분이 내게 한 / 말이 이 자릴 사랑하라 ••••••’ 인간은 누구나 현재 자기가 머무르고 있는 자리를 자중자애(自重自愛) 해야 한다는 철학이다. 아무리 좌절적이고 고독한 장소(자리)라 하더라도 그걸 사랑하면서 그 곳에서 비약해야 한다는 말이다. 실패한 자리라 할지라도 그 자리를 깊이 생각하고 넓게 활용해서 그 곳에서 얻은 인생 철학이나 그 경험으로 다음에 올 자기가 원하는 자리로 이동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끝의 시엔 ‘가을 공원에 / 빈 의자 하나 놓여 있다 ••••••’ 전체를 마무리 짓고 있다.
 모든 것이 떠난 텅 빈 가을의 의자, 그러나 또 누군가가 올 것이 아닌가? 이러한 생자무상 변화무쌍한 인생을 이 「의자」 10편 속에 담아 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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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간속에 지은 집 』  1990.5.20. 인문당

     책 머리에

 이곳에 신작 수필을 전부 털어넣어서 수필집을 하나 꾸미기로 했다.
 참으로 지금까지 수많은 수필집을 냈지만 지금 나의 인생은 그대로 시요, 수필이요, 그림입니다. 그림은 취미였고, 인생의 휴식이었지만, 시와 수필은 모두 나의 철학이요, 인생관이요, 그 사생관이었다. 나는 그렇게 한평생을 외골로 살라왔으니까.
 내가 나를 생각해보아도 실로 순수일념으로 나를 살아온 것 같다. 그저 부지런한 나의 운명, 그 인생의 길을.
 요즘은 매일 매일을 나에게 주어진 생애의 마지막 날이라고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그러니까 이 원고들도 마지막으로 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인생 마지막 편지처럼 생각을 하고 있다.
 마지막 원고, 마지막 편지, 마지막 인사, 이러한 생각으로,
 이 수필집에 그러한 원고들을 모았다. 참으로 많은 언어들, 그 속에 묻혀 있다. 나, 그 내가 그 어느 분에게 발견되어 위로 받았으면 한다. 그 분을 나도 위로 시키면서.
 
                                                              1990. 2. 4. 입춘절
                                                               안성 편운재에서
                                                                   조병화

떠나야 할 의자군요.
정리 정돈해야 겠는데 미련과 허망으로 쉽지않는 작업입니다.
고맙습니다.
고마워요.
좋은 하루를 보내세요.
퍼갑니다
고마워요.
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