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개항장일대)

댓글 0

답사와 여행(국내)/인천광역시

2008. 4. 4.

 

                     인천(개항장일대)

 

 

인천 중구 / 개항장(開港場)일대

 

 

인천역(仁川驛) 

 

                                            인천역(仁川驛) 

 

인천광역시 중구 북성동에 있는 경인선 철도의 종착역입니다. 1900년 5월 건평 91평의 역사에서 운수영업을 시작했으며, 현재의 역사는 1960년 6월에 신축된 현대식 철근 콘크리트 건물로 건평 774.9㎡이다. 원래 인천역은 여객취급 설비라기보다는 인천항을 통하는 화물을 취급하기 위해 부두를 따라 선로가 부설되어 있어, 전용선, 지선을 포함하여 총 1,315 량의 화차를 수용할 수 있도록 구내가 넓습니다. 

 

 

          

                                                  경인선 개통당시 인천역

 

 

▶ 의선당(義善堂)

 

 

          

 

     

                                                        의선당(義善堂)

 

인천 중구 북성동에 위치하는 의선당(義善堂)은 사당 한채와 부속채 한채로 이뤄진 중국식 절입니다. 부처와 관음보살, 용왕(용왕), 관운장(관운장) 등을 모셔놓고 제사를 지냅니다. 불교와 도교 풍습이 섞여 있어 독특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다른 지역에 있는 중국절은 모두 현대식으로 바뀌었거나 없어져 이곳이 한국에 거의 유일하게 남은 중국식 절로 알려져 있으며, 100년 전 쯤 황합경이라는 스님이 세웠다고 전합니다.

 

                                                            사당(祠堂)

 

          

 

건축 양식이나 색채에서 중국풍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의선당에는 구한말 인천에 온 중국인들이 여기에 모여 불공을 드렸다고 합니다. 한때 이 절에서 일반인들이 소림사 무술 등 쿵푸를 연마하기도 하였답니다.

 

          

                                        의선당 마당에 있는 탑과 그 뒤로 부속채

 

          

                                        관광기념품 파는 상점을 겸한 의선당

 

 

▶ 내동 성공회 성당

 

  

                                                          성공회성당

 

성공회는 영국의 국교이며 천주교에서 갈라진 기독교의 한 파이며, 영국성공회는 1890년 9월 인천을 통하여 전파되었습니다. 영국해군의 종군신부 고요한 주교 등 선교사 6명이 인천항에 첫 발을 내딛어 1890년 9월29일 성당을 건축한 후 선교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02년에는 한때 러시아 영사관으로 1904년에는 성공회 신학원으로 1956년까지 운영되었습니다. 당초 건물은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으며,1956년 6월23일 현재와 같은 교회를 건축하였습니다. 

 

                      

 

건물 형태는 지붕의 목조트러스를 제외하고, 외벽과 주요부재는 화강암으로 견고하게 쌓아올린 중세풍의 석조이나 한국의 전통적인 목구조 처마양식을 가미하였으며 창호 및 벽체 부분의 처리가 뛰어납니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1호(2002.12.23 지정) 입니다.

 

        

                                     성공회(인천 최초의 성공회)

 

1890년 9월29일 영국 해군 종군 신부 고(高)요한 주교(主敎) 등 선교사 6명이 인천항에  첫발을 내딛어 선교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인천지역의 선교책임은 미국 의사(醫師) 엘리 바 랜디스(Eli Barr Landis)에게 맡겼다.

 

동시에 성공회는 선도 및 일반인에게 의료활동을 전개하였으며 당초 교회는 1891년 9월30일 축성(준공) 되었으나 6.25동란시 소실하여, 이곳에 옮겨 1955년 8월28일 정초식(定礎式)을 갖고, 1956년 6월23일 준공 오늘에 이른다.     <안내판에서..>

 

                                 

                                   성공회 성당 (前 성누가병원)

 

성공회 성당이 위치하고 있는 이 자리는 약대인(藥大人: 서양의사라는 뜻)이라는 높은 칭송을 받아오던 랜디스가 세운 성 누가병원이 있던 곳이다. 성공회 전도는 고요한 주교가 랜디스 의사를 대동하고 인천에 상륙하면서 비롯되었는데, 고요한 주교는 교회를 중심으로 전도에 전력을 기울였고, 랜디스 박사는 현 교회터전에 성 누가병원을 개설하고 의료구호사업에 전심하며 교세를 확장하였다. 이곳이 인천 최초의 성누가병원이며, 인천에서 병원이란 간판을 처음 건 서구식 병원의 효시다.

   

▶ 내리교회

  

                       

                        남한 최초 교회의 역사 - 한국감리교회 포교지 내리교회

 

인천은 개항 이후 서구문물 유입의 길목이었다. 구한말 당시 부터 외국 선교사들은 인천을 국내 포교의 「거점지역」으로 인식하고 활동영역을 넓혀 나갔다. 무엇보다 인천은 서울과 인접한 데다, 항구도시로서 선교사들이 필요로 하는 각종 자재와 물품 등을 확보하는 데 더 없이 좋은 장소였기 때문이다.

 

1883년 새롭게 축조된 인천항이 개항되고 2년 뒤인 1885년 4월 미국감리교회 아펜젤러목사 부부와 함께 장로교회 언더우드목사가 인천항을 통해 우리나라에 첫발을 내디뎠다. 선교를 목적으로 입국했던 이들 세사람이 처음 묵은 곳은 화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인천시 중구 중앙동 1가 현 오림포스호텔 근처에 작은 초가집을 빌려 한달간 머물렀다. 이곳에서 예배를 몇차례 올린 후 아펜젤러 부부는 한양으로 옮겨 갔고, 그 이듬해 5월 전도를 위해 노병일을 인천으로 내려 보냈다. 이어 노병일은 아펜젤러부부가 구입해 머물던 초가집교회를 처분하고 1901년 중구 내동 지금의 내리교회 자리로 이전해 벽돌을 쌓아 교회다운 교회를 세웠다.

 

인천내리교회는 1964년 화재로 인해 전소된 후 66년 개축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에 앞서 1955년 교회확장을 위해 교회 머릿돌을 해체했을 때 1901년 처음 교회를 지을 당시 사용되던 국내 최초의 서울 간행판 성경을 비롯 신앙관련 서적 및 문서 12가지가 나와 교계 및 학계에 비상한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이들 성경과 서적 등은 한국 교회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내리교회(한국 최초의 감리교회)

 

이곳은 고종 22년(1885) 7월19일 아펜젤라 목사에 의해 감리교 제물포(내리)교회를 설립한 것이 한국 최초의 선교지가 되었다. 

 

          

 

1985년 4월5일 아직 어둠 깊고 온갖 사슬이 백성 옭아매고 있었을 때 아펜셀러는 빛과 자유의 복음을 들고 비 젖은 제물포항에 내려, 1902년 6월11일 순직하기까지 이 땅의 險路마다 헤치고 다니며 교육과 선교의 초석을 놓으시었다.

 

1988년 5월14일 20세 靑年童顔으로 제물포에 첫발을 내디딘 존스는 1911년 본국으로 돌아갈 때까지 빼어난 한국어 실력으로, 내리교회를 거점삼아 교육, 선교, 행정, 출판, 이민, 학술 연구 등에 눈부신 업적을 남기시었다.

 

1901년5월14일 한국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은 金箕範은 제물포 선교의 첫 열매로서 초대 교인들의 존경과 신임을 한 몸에 받으면서 한국적 교회의 만세반석을 다시 지었다.

 

실로 아펜셀러는 씨앗을 뿌렸고, 존스는 김메고 물을 주었으며, 김기범은 그 첫 열매로서 토착화 목회의 序章을 여시었도다, 이제 여기 세 분의 흉상을 세워 만고의 師表로 삼고자 하노라.

 

                                                         2005년 7월17일

 

                                    

                                              A pioneer of Korean Methodism

                                                   Henry G. Appenzeller

                                                           (1858-1902)

 

    

       The First Ordained Preacher of Korea                           A Farther of Methodist

                      Kim keui Pom                                     Mission in Incheon - Kangwha
                     한국 최초의 목사                                            George H. Jones

                    金箕範 (1869-1920)                                                (1867-1919)

 

                                 

                                         미주 한인 선교 100주년기념비

 

교회 마당에 설치된 이 기념비는 조각가 심재현 장로에 의해 제작되어 2002년 11월17일 세웠다. 

 

                                 

                                     한국 선교120주년 기념비

 

               기독교대한감리회 내리교회,   아펜젤러 선교120주년 기념회,  2005. 4. 5

 

 

                      

 

                      

 

           

 

조원시(G.H.Jones)목사를 쓰시어 1903년 1월13일 미주땅에 한인디아스포라를 허락하셨다. 그해 11월10일에 인천내리교회 성도들이 중심이 되어 하와이 한인감리교회를 설립하니 해외에 설립된 최초의 인천내리교회 지교회이다.


밀알 한 알이 미주 땅에 떨어져 썩으므로 미국에 3,197개의 한인교회로 자랐다. 미주한인교회설립 100주년을 맞아  지난 118년 동안 인천내리교회를 쓰시어 맑은 영성이 주님의 은혜로 미주한인교회에 꾸준히 흘러가도록 기도하며 여기 새깁니다.

 

2003년 11월 9일

 

                                           

                                               1800년대 내리교회 <자료사진>

 

                                 

 

                      

 

 

▶ 색깔있는 거리

 

          

                                                      신포 문화의 거리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신포동은 인천 패션을 주도하던 거리였으나 곳곳에 백화점이 들어서고 신도시가 형성되면서 고객을 빼앗겨 예전의 명성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웨딩거리

 

신포동 사거리에서 경동 방향이 웨딩거리의 시작입니다. 토탈 웨딩을 지향해 웨딩드래스뿐 아니라 혼례에 필요한 모든 것을 대행해주는 곳이 많습니다.

 

          

                                            신포먹거리골목

 

분식의 대명사인 쫄면은 인천 신포동이 원조이며, 신포동 시장 안에 들어서면 원조 쫄면은 물론, 인천 최고의 닭강정을 비롯 신포우리만두, 온갖 재료로 만든 퓨전 순대 등의 맛을 볼 수 있습니다.

 

          

                                                           신포동 시장

 

 

▶ 인천 답동성당 (仁川 畓洞 聖堂)  

 

 

          

 

                                  인천 답동성당 (仁川 畓洞 聖堂)   

 

1890년대에 건축된 한국성당 중 가장 오래된 서양식 근대 건축물 중 하나입니다. 프랑스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 빌렘신부가 초대 본당 신부로 부임하면서 답동언덕에 설립하였습니다. 1890년 7월 성당 건축 정초식을 갖고 1894년 착공해서 1897년 고딕식의 단층건물로 세워졌습니다. 현재 모양의 답동성당은 1933년에 옛 성당건물을 보존하면서 외곽을 벽돌로 쌓아올려 1937년 드뇌신부에 의해 완공된 성전으로 로마네스크양식을 띠고 있습니다. 중앙의 탑상부와 양측의 소철탑의 상부에 뾰족돔을 얹어 아름다운 외관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사적 제287호(1981.9.25 지정)

 

                      

 

1937년에 세워진 현 성당은 전면에 세개의 종탑을 갖춘 웅장하고 화려한 형태를 갖추고 있습니다. 평면은 라틴십자형 삼랑식(三廊式)이고 건축양식은 로마네스크 양식입니다. 적벽돌이 주 재료이나  디자인 상 중요한 곳에는 화강석으로 마감하여 아름다움을 더했습니다. 정면 중앙과 좌우에 반원아치로 된 출입구가 나 있고 상부에는 반원아치의 창을 두었습니다. 또 정면 중앙에는 원화창(圓花窓 ; Rose Windows)을 두고 석재의 띠돌림으로 장식하고 중앙 탑상부와 양측 소첨탑의 상부에는 뾰족한 돔을 얹었습니다.  <자료:해반문화사랑회>

  

                                                            답동성당

 

1886년 한·불 조약으로 당시 제물포로 불리던 인천에는 파리외방전교회의 홍 요셉 신부가 파견돼 1889년 7월1일 제물포교회를 창설하고 포교활동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홍신부는 병인박해를 피해 고잔지역에 정착한 민종황(요한) 일가한테 답동 부지를 기증받아 성당건축을 계획하였습니다. 그러나 홍신부는 곧 신학교로 전임해 성당건축을 마무리짓지 못했습니다.

 

 

단층벽돌 구조의 답동성당이 세워진 것은 제3대 서요셉 신부 시절인 1897년 7월이었습니다. 그 무렵 종탑 위에 종은 없었고 매우 우아한 작은 뾰쪽탑이 있어 시내 곳곳에서 그것을 바라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답동성당이 신축된 지 3년 뒤인 1900년에는 신자들의 기부금으로 성당에 3개의 종을 설치하게 되었습니다. 그후 답동성당은 확장공사를 통해 1937년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됩니다. 19세기 말에 건축된 본래의 성당을 세워둔 채 외곽에 벽돌을 쌓아 올리는 까다로운 공사였습니다. 공사기간만 무려 4년 2개월이 걸렸을 정도였습니다.  <자료:해반문화사랑회> 

 

   

                                

          

 

           

 

 

 

▶ 인천우체국

 

 

                                              인천우체국

 

일본이 일본인의 우편사무를 취급하기 위하여 인천의 일본영사관내에 우체국을 처음 설치한 것이 고종21년(1884) 4월이며, 한국정부가 인천우체사를 설치한 것은 고종32년(1895) 6월입니다. 노일전쟁이 일어나자 일본은 강제로 한일의정서를 체결하고 한국의 통신기관을 점유하려고 꾀하여 오다가 광무9년(1905년) 4월1일에 한일통신합동운영협정을 체결하여 한국의 통신기관을 일본의 통신기구로 합동 흡수하였습니다. 인천우체사는 이해 5월20일 일본의 인천우체국에 인계되었습니다. 광무10년(1906) 통감부가 설치되자 인천우체국은 통감부통신관리국 소관이 되었으며, 그후 조선총독부 체신국 소관이 되었다가 해방 후 인천우체국이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1923년에 건축된 현 건물은 당시 주류를 이루고 있던 절충주의 양식을 단순화하여 건축한 것으로 입구 양족에 큰 기둥형식의 탑부를 세우고 그 사이를 주두없는 여러개의 기둥이 받치고 있습니다. 외부는 하단을 화강석으로 2단을 쌓고 그 윗부분은 시멘트 몰탈로서 석조모양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지정 유형문화재 제 8호 (1982년 3월 2일).    <자료:해반문화사랑회>

 

 

▶ 중구청사(구 일본 영사관)

 

 

                                               중구청사(구 일본 영사관)

 

구식 목조건물의 일본영사관은 1882년 10월에 완공되었습니다. 일본, 영국, 러시아 등의 열강이 자유공원 일대를 각각 자신들의 임의로 조계를 설정해 앞 다투어 영사관을 짓던 시기에 일본이 제일 처음으로 영사관을 지었습니다. 일본 영사관은 1906년 인천 이사청으로 바뀌고, 1910년 9월 이후 인천부청으로 사용하게 되지만, 1932년에 개항 당시 구식 목조 2층 건물을 헐고 지금의 2층 규모로 새로 짓게 되었습니다. 현재의 3층은 1970년대에 증축한 것으로 8.15 해방이 되자 인천시청으로 사용하였다가 현재는 중구청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중구청사 앞

 

 

▶ 구(舊) 일본18은행 인천지점 

 

 

                                    구(舊) 일본18은행 인천지점   

 

일본이 한국 금융계를 일본 식민지(植民地)화 하려는 목적으로 세워진 일본 나가사키에 본점을 둔 제18은행 인천지점은 1890년 준공되어 그 해 10월에 광목과 같은 직물중개무역에 관련된 금융업무를 위해 개점하였으나 은행으로서의 업무가 언제까지 계속 되었는지는 기록이 없습니다. 

1954년에는 신탁은행과 상공은행이 합병한 한국흥업은행 인천지점으로 사용되었으며, 1992년 까지는 카페로 사용되었고, 그 후 중고가구도매상으로도 사용되기도 하였으며, 현재는 비어있는 것을 보수하고 있는 중입니다. 

 

축조양식은 단층으로 고전적 장식의 절충주의 양식으로 벽체는 조적 위에 몰탈마감으로 기둥부위와 기단부위는 돌로 마감되어 있습니다. 출입구의 석주 양식은 아주 정교하게 시공되어 있으며 지붕은 목조 트러스 위에 일식기와로 모임지붕 형태를 하고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50호(2002.12.23 지정) 

 

 

▶ 구(舊) 일본58은행 인천지점 

 

 

                                   구(舊) 일본58은행 인천지점   

 

이 건물은 일본 오사까에 본점을 둔 제58은행이 설치한 인천지점으로 1892년 7월에 개점하였습니다. 그 후 제58은행은 제3은행 등 군소은행과 합병하여 야스다 은행이 되었습니다. 광복후인 1946년 4월1일 조흥은행이 인천 지점을 개설하고 이 점포를 사용하기도 하였으나 1958년 7월 신사옥을 건축하여 이전함에 따라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로 사용되다가 현재는 인천 중구 요식업조합에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지상 2층 건물로서 1층은 석조 기단으로 되어 있고 2층 발코니와 도머 (Dormer)창이 특징이며, 지붕은 맨사드(Mansard) 지붕(2중으로 경사를 이루 고 있는 지붕)이 조합된 프랑스식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이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19호(1993.7.6 지정)      

 

          

                                                 일제강점기때의 거리사진

 

           

                   (舊) 일본58은행 인천지점(좌)와 구(舊) 일본18은행 인천지점(우)

 

 

 구(舊) 일본제일은행 인천지점

 

 

                      인천 일본 제일은행지점 (仁川 日本 第一銀行支店)   

 

일본제일은행 인천지점은 당초 금괴와 사금을 사들일 목적으로 부산지점의 출장소로 출발하였는데 이것이 인천지역 근대 은행업무의 효시였습니다.1889년 인천지점으로 승격되었고, 1909년 한국은행이 창립되면서 한국은행 인천지점으로 변경되었으며, 1911년 한국은행이 조선은행으로 바뀜에 따라 조선은행 인천지점으로 바뀌었습니다.

 

                                 

 

 

1899년에 64평의 석조 단층 건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설계를 일본인이 하고 모래·자갈·석회를 제외한 벽돌·석재·시멘트, 목재를 일체의 건축자재로 일본에서 반입하여 사용하였다. 외벽은 다듬어 쌓고 처마부조에는 동그란 구멍이 뚫린 파라벳 난간을 설치하였다. 또한 용마루에는 바로크풍의 장식창(현재는 없음)을 설치하였으며, 지붕 중앙에는 돔을 설치하는 등 후기 르네상스 건축양식을 반영하고 있다.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1982.3.2 지정)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

 

자유공원 아래 인천역 근처에는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과 기념동상이 있습니다. 이 동상의 주인공들은 선교사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부부입니다. 인천은 기독교가 처음 들어온 곳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기도문

 

오늘 사망의 빗장을 부스시고 부활하신 주님께 간구하오니 어두움 속에서 억압을 받고 있는 이 한국 백성에게 밝은 빛과 자유를 허락하여 주옵소서

 

                                                   -1885년 부활 주일에-

 

                      

 

1885년 4월5일 부활절,

 

미국선교사 아펜젤러 목사 부부와 언더우드 목사가 진리의 큰 빛,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생명을 걸고 이곳에 상륙하였습니다.

 

그로부터 100년, 한국 개신교회는 신도 1천만을 헤아리는 놀라운 성장을 이룩하였으며, 고난속의 민족에게 구원의 안식처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 백주년을 맞아 세 선교사의 뜻을 기리며, 이곳에서 발원한 복음의 물결이 온나라와 바다 건너 땅끝까지 파도치기를 기원하면서 이 자리에 기념탑을 세웁니다.

 

선교백주년기념탑보존회

 

 

 

 

2008.03.30 / 2008.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