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도사(通度寺)/양산(梁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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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와 여행(국내)/경상남도

2019. 10. 13.



                     통도사(通度寺) / 양산(梁山)

 


☞ 경상남도(慶尙南道) 양산시(梁山市) 통도사(通度寺)

         


양산시 통도사 위치 <참고사진>



● 세계문화유산 양산 통도사



                세계문화유산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 경남 양산 통도사]




통도사(通度寺: 경남 양산)는 2018년 6월30일  대한민국의 산사(山寺) 7곳과 함께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山寺, 韓國의 山地 僧院·僧園)’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 되었습니다.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산사(山寺) 7곳의 사찰은 경남 양산 통도사, 경북 영주 부석사, 충북 보은 법주사, 전남 해남 대흥사, 경북 안동 봉정사, 충남 공주 마곡사, 전남 순천 선암사입니다.


               

                      <참고사진>

                     

                 

▶ 교통편


수서 ↔ 울산(통도사): SRT 이용


 - 수서역 출발시간: 08:00 AM,   울산(통도사) 도착시간: 10:02AM

                

 - 울산(통도사) 출발시간: 16:58 PM,   수서역 도착시간: 19:20 PM



● 울산역 ↔ 통도사 교통편: 양산 시외노선 버스[13번]이용

    

 

  ▷ 버스시간표[13번 버스]


   - KTX 울산역 출발: 07:12 / 07:33 / 08:28 / 09:32 / 10:10 / 10:50 / 12:25  ~~~  21:13
   - 양산역환승센터 출발: 07:00  ~~~  13:10 / 15:00 / 16:00 / 16:40 / 17:30 / 19:00 / 19:52 / 20;20  ~~~  21:00


  ▷ 주요정류장 및 대략적인 예상소요시간:


   - 울산(통도사)역에 도착 후 1번 출구 앞에서 13번 버스 이용 신평터미널(통도사)까지 갑니다. [약 30분 소요]

   - 통도사 답사 후 신평터미널(통도사)에서 13번 버스 이용하여 KTX 울산역까지 갑니다.

   - 13번 버스가 양산역환승센터[종점] 출발후 신평터미널(통도사)까지 소요시간은 대략 40분~1시간 [교통상황에 따라 다름]

      소요됩니다. 따라서 상기 버스시간표에서 신평터미널까지 소요시간을 더해 신평터미널에서 탑승시간을 맞추어야 합니다.



  

 10:02 / 울산(통도사)역 도착 <참고사진>


   

  10:10 / 13번 버스 출발 [울산역 1번 출구 앞]


 10:40 / 신평버스터미널[통도사] 도착: 이곳에서 통도사까지는 도보로 진행합니다.


신평터미널 → 통도사일주문 <카카오맵참고지도>


 10:51 / 불쑥 솟은 바위 '땅바우'공원





양산(梁山) 통도사(通度寺)



10:53 / 영축산문(靈鷲山門): 통도사 매표소


 10:55 / 두 갈래 길, 인도(人道: 무풍한송로)와 차도(車道) 그리고 통도사 안내판


 양산 통도사 (梁山 通度寺) 전경: 경상남도 기념물 제289호  <통도사 안내판 참고사진>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은 산문 입구 무풍교에서 제2주차장 앞 청류교에 이르는 1.1km구간을 마사토로 조성한 보행자 전용도로이며 무풍송림(舞風松林)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수백년된 적송(赤松)이 길을따라 아름답게 어우러져 있습니다.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의 시비(詩碑)



무풍한송로 양산천(梁山川)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의 석등(石燈)


무풍한송로에는 모두 25개의 석등이 있다고 합니다.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이 섞여있습니다만, 오래된 것들은 밤길을 밝히는 석등 역할 외에 거리를 나타내는 이정표 역할도 하였습니다.


                        <참고사진>


오래된 석등은 경봉(鏡峰)스님이 통도사 주지였던 1937년 세워져, 석등의 하대석(下臺石) 기대면(基台面)에는 일제강점기 때 사용하던 일정(一町: 약 109m ), 십삼정(十三町) 등 길이의 단위와 코끼리, 용, 사자, 호랑이, 사슴, 거북, 학 등의 동물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용피바위[龍血岩)] 표지석


 용피바위[용혈암(龍血岩)]



노천정(老天亭)/쉼터 그리고 그 오른쪽 샘터


 영축총림(靈鷲叢林) 석비(石碑)


총림(叢林)이란 승려들의 참선을 위한 시설인 선원(禪院), 경전 교육 기관인 강원(講院), 계율 교육 기관인 율원(律院) 등을 모두 갖추고 수행승들이 모여 수행하는 큰 사찰을 말합니다.


하마비(下馬碑)


하마비의 기원은 조선 태종13년(1413) 종묘(宗廟) 동구(洞口)에 표목(標木)을 세우고, 그 전면에 「大小官吏過此者皆下馬」라고 써서, 신분 고하를 막론하고 이곳을 지나는 자는 모두 말에서 내리라고 한데서 비롯되었습니다. 그런데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을 폈던 조선시대에 양산 통도사, 순천 선암사와 송광사 등 큰 사찰에도 하마비를 세울 수 있게 된 것은 조선 제11대 중종(中宗)의 계비(繼妃)이며, 명종(明宗)의 어머니인 문정왕후(文定王后) 때문이었습니다. 비록 숭유억불책(崇儒抑佛策) 을 쓴 조선왕조였지만 실제 왕실과 백성들은 음지에서 불교를 믿는 자가 많았으며 특히 왕비를 비롯한 왕실 여성 중에서도 독실한 불교신자가 있었습니다.  문정왕후(文定王后) 역시 그중의 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들과는 달리 조선시대 유생들은 사찰에서 많은 횡포를 벌렸는데, 예를들면 유람 할 때 승려들을 불러 말을 끌게 하는가 하면 사찰 안에서 기생들과 어울리는 일도 다반사였습니다. 어느 날 왕의 능을 지키는 능침사찰(陵寢寺刹)인 정인사(正因寺)와 회암사(檜巖寺)에서 유생들이 기물을 부수고 사찰의 보물을 훔치는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문정왕후(文定王后)는 격노하여 일부 사찰에는 아예 유생들의 출입을 금지해 버리고 난동을 벌인 주모자를 모두 투옥시켜 버렸으며, 전국의 큰 사찰과 능침사찰 입구에는 하마비를 세우도록 명하였습니다. 하마비가 사찰에 들어오게 된 이유입니다.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의 끝 지점인 청류교(淸流橋) 입구



부도원(浮屠園)



                                             

                                     부도원(浮屠園) <참고위성사진>




 양산 통도사 부도 (梁山 通度寺 浮屠)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85호


역대 통도사에 머물렀던 큰스님들의 부도와 탑비가 봉안되어 있는 부도원에서는 매년 개산대재(開山大齋: 음, 9월 9일)를 개최하여 절의 창건을 기념하는 법회를 열고 있습니다.


 부도원 상단(上段)의 부도군(浮屠群) 


부도원 상단에는 부도(浮屠), 하단에는 부도탑비(浮屠塔碑)와 각종 공덕비(功德碑)가 있는데, 통도사를 대표하는 역대 고승들의 부도 60여 기와 탑비 및 중수비, 공덕비 등 석비(石碑)가 60여 기가 즐비하게 줄지어 있습니다.  부도의 형식은 조선후기 일반적인 종형(鐘形)을 비롯하여 구형(球形), 전각형(前脚形)을 다른 사찰에서는 볼수 없는 통도사만의 독특한 부도가 많습니다.


 

부도원 상단(上段)                                                                       부도원 하단(下段)



석당간(石幢竿)



                        통도사 석당간 (通度寺石幢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03호


통도사의 석당간은 원래의 형태는 아니고, 후대에 보수하면서 다소 변형된 상태이며,  제작 시기는 기단(基壇)의 구조나 지주(支柱)의 규모 등으로 보아 고려말이나 조선초로 추정합니다.



                       

                   석당간(石幢竿)의 기단부(基壇部)


기단부(基壇部)는 후대 중수 때 개수, 보완한 것으로 추정되며 조금 짧은 장대석으로 기단을 만들고, 기단석 양쪽[남북]에 지주가 맞물릴 수 있도록 유구(有溝)가 있습니다.  그리고 지주(支柱) 상하에는 타원형으로 2개의 간공(竿孔)을 만들고, 동서 방향으로 장대석을 보완한 다음 다시 중앙에 간대(竿臺)를 놓고 당간(幢竿)을 세웠습니다.




당간(幢竿) 중앙에는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이라는 명문(銘文)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총림문(叢林門)



총림문(叢林門)


총림(叢林)이란 선원(禪院), 강원(講院), 율원(律院) 등을 모두 갖춘 종합 사찰을 일컫습니다. 선원은 참선을 전문으로 공부하는 곳이고, 율원은 스님으로서 지켜야 할 계율을 전문으로 공부하는 곳이며, 강원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경전을 전문으로 공부하는 곳입니다.



                 “영축총림(靈鷲叢林)”이란 현판은 조계종 종정과 통도사 방장을 역임한 노천당(老天堂) 월하(月下)스님께서 썼습니다. 


 총림문(叢林門) 안쪽면




 통도사 종합안내판 [총림문(叢林門) 입구]



통도사(通度寺) <참고사진>


통도사는 신라 선덕여왕15년(646)에 자장율사(慈藏律師)에 의해 창건되었는데,『삼국유사(三國遺事)』「자장정률(慈藏定律)」조의 기록에 의하면 자장율사가 선덕여왕12년(643)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가져 온 불사리(佛舍利), 금란가사(金襴袈裟), 대장경 400여 함 등을 봉안하고 창건하였습니다. 한편『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通度寺舍利袈裟事蹟略錄)』에는 원래 통도사가 위치하고 있는 이곳에는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을 메운 후 그곳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쌓고 통도사를 세웠다고 전합니다.  <통도사 자료>



가람의 형태 <참고사진>


통도사 가람의 배치는 세 지역으로 나누어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이라 부르고 있는데, 상로전 구역에는 대웅전과 금강계단을 중심으로 응진전, 명부전, 삼성각, 산령각을 배치하고, 중로전 구역은 불이문부터 세존비각까지의 건물들로 대광명전을 위시하여 자장스님의 진영을 모신 해장보각. 용화전, 관음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로전 구역은 천왕문과 불이문 사이의 영역으로 영산전을 중심으로 극락보전, 약사전, 가람각, 범종루 등이 있는 영역입니다. <통도사 자료>


                

             통도사 가람배치도<참고자료>


 



●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


성보박물관은 1998년에 준공하였으며, 지하 1층. 지상 2층의 한옥식 콘크리트 건물로 유물 수장고를 포함하여 통도사역사실, 불화전시실, 기증유물실, 기획전시실 등을 갖추고, 불교문화재를 중심으로 수십 건의 보물, 지방문화재를 비롯 하여 4만 여점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습니다. 


 

성보박물관은 불교회화를 중심으로 전시실을 운영하여 불교회화 전문박물관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


삼성반월(三星半月)을 해자(解字)하면 '마음 심(心)자를 나타냅니다. 즉 삼성(三星)의 별 셋은 心의 점 3개를 의미하며 반월(半月)은 나머지 한 획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삼성반월교'는 곧 '일심교(一心橋)를 의미합니다. 깨끗한 한가지 마음으로 건너야 하는 다리라는 뜻입니다. 헛된 생각을 하지않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주의를 기울이도록 이 다리에는 난간이 없고 폭도 좁습니다.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 <참고사진>


1973년 경봉(鏡峰. 1892~1982)스님이 중수한 '삼성반월교' 양쪽의 표지석에는 경봉스님의 글씨인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 ‘영조운산리(影照雲山裏)’가 새겨져 있습니다. 운산(雲山)은 통도사 북쪽의 영축산(靈鷲山)을 의미하는데 ‘영축산의 참된 모습이 계곡에 비친다’ 혹은 ‘부처님의 진리가 계곡에 비친다’로 풀이할 수 있습니다. <통도사 자료>


 삼성반월교(三星半月橋)와 양산천(梁山川)



  하로전(下爐殿) 구역





하로전(下爐殿) 구역 <카카오맵 참고사진>


하로전(下爐殿)은 일주문과 불이문 사이의 영역으로 세 개의 불전과 만세루가 삼층석탑을 에워싸고 있는 형식을 이루고 있습니다. 일주문을 지나 천왕문에 들어서면 왼쪽으로는 도량을 수호하는 가람신을 모신 가람각이 있고, 그 앞에 예불의식에 사용하는 사물(四物)을 걸어 둔 2층의 범종각과 연이어 만세루가 자리해 있습니다. 범종각의 오른편에는 서향(西向)의 극락보전과 마주보고 있는 약사전, 그 사이에 남향한 영산전이 있습니다. 영산전 앞에 통일신라 말기에 세워진 삼층석탑이 있으며, 영산전 뒤로 응향각과 명월료[종무소], 육화당 그리고 금당, 은당 등의 요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 일주문(一柱門)



 일주문(一柱門)


일주문은 절에 들어오는 첫 번째 문으로 ‘일주삼칸(一柱三間)’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므로 통도사의 일주문 역시 전면 3칸뿐이며 측면은 없으므로 기둥의 배열이 한 줄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고려 충렬왕31년(1305)에 지었으며, 현 건물은 영조46년(1770)에 중건한 것입니다.


                일주문의 현판(懸板)과 주련(柱聯)


靈鷲山通度寺(영축산통도사)란 현판은 흥선대원군의 글씨이며, ‘國之大刹(국지대찰: 나라안의 큰절), 佛之宗家(불지종가: 사찰의 종가집)’라고 씌어있는 주련(柱聯)은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선생의 글씨입니다.


 靈鷲山(영축산)과 鷲棲山(취서산)


통도사는 취서산(鷲棲山: 1,058m)의 남쪽 기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조선 중종 때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씌어있는 산 이름입니다. 그러나 일주문 현판에는 鷲棲山通度寺(취서산통도사) 라 하지않고 靈鷲山通度寺(영축산통도사)라고 씌어있습니다. 영축산(靈鷲山)은 석가모니가 법화경을 설법한 고대 인도의 마가다국에 있던 산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한자 표기는 '영축산(靈鷲山)'과 '취서산(鷲栖山)' 두 가지로 표기되어 한글로 영축산, 영취산, 축서산, 취서산 등으로 혼용되어 부르고 있습니다. 이 같은 현상은 한자 '취 또는 축(鷲)' 자에 대한 한글 표기의 문제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일반 옥편에서는 '독수리 취'라고 표기되어 있지만 불교에서는 '축'으로 발음하는 것이 보편적입니다. 그런데 '취 또는 축' 자가 원래 '축'으로 표기되었다는 근거를 세조9년(1463) 간경도감에서 간행된《법화경언해본》에서 찾을 수 있는데 산 이름의 혼용은 불교에서 유래된 '축(鷲)' 자를 취(就)자와 조(鳥)자의 합자로 된 '취(鷲)'자와 혼동하는 원인에 있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혼동을 피하기 위해 2001년 양산시 지명위원회에서는 '영축산'으로 확정지었습니다. <위키백과, 답사여행길잡이 참고자료>



                     

                    일주문(一柱門) 앞 석주(石柱)


석주(石柱)에 새긴 글씨는 통도사 주지와 초대중앙총무원장을 역임했던 九河스님(1872~1965)의 글씨로  『異姓同居必須和睦, 方袍圓頂常要淸規』이라 씌여있습니다.


             異姓同居必須和睦(좌) 이성동거필수화목: 각 성들끼리 모여 사니 화목해야 하고
           方袍圓頂常要淸規(우) 방포원정상요청규: 가사 입고 삭발했으니 규율을 따라야 하네.

                            


● 육화당(六和堂)



육화당(六和堂) 대문(大門)


육화당 대문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 영축총림 통도사 종무소』표지판이 걸려있지만 통도사 종무소는 2016년 육화당에서 명월료로 옮겼습니다.



 육화당(六和堂): 현재 육화당은 신도들을 위한 각종 전시회 등 문화공간으로 이용되고 있습니다.



● 천왕문(天王門)



 천왕문(天王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0호


하로전(下爐殿)으로 진입하는 천왕문(天王門)은 고려 충숙왕6년(1337)에 취암대사(翠岩大師)가 세웠습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쳐 조선 후기에 다시 지은 건물입니다.


                                                         

                                                           현판



천왕문(天王門) <문화재청참고사진>


천왕문은 정면 3칸, 측면 2칸, 주심포,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건물 내부 좌우에는 동서남북을 다스리며 불법과 절을 보호하는 사천왕(四天王)이 모셔져 있습니다.


  좌: 남방을 지키며 여의주와 용을 잡고있는 증장천왕(增長天王), 우: 서방을 지키며 보탑을 들고있는 광목천왕(廣目天王)


좌: 북방을 지키며 비파를 고있는 다문천왕(多聞天王), 우: 동방을 지키며 칼을 쥐고있는 지국천왕(持國天王)


천왕문(天王門)  안쪽



● 가람각(伽籃閣)



 가람각(伽籃閣)


가람각은 천왕문(天王門)의 남동쪽에 있는 작은 단칸의 법당으로 도량의 수호를 위해 가람신(伽藍神)을 안치하고 있습니다. 가람신은 본래 불교의 신이 아니라 민간신앙을 받아들여 모신 신(神)입니다. 숙종32년(1706)에 처음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근래에 원명(圓明)스님에 의해 신축되었습니다.

           

                                                현판




가람신(伽藍神) 탱화


가람신은 불교의 신이 아니라 민간신앙을 받이들여 모신 토지신(土地神)으로 그 탱화를 가람각(伽籃閣)내에 봉안하고 있습니다.

검은색 복장이 눈에 띕니다.



범종각(梵鐘閣)



범종각(梵鐘閣)


범종각(梵鐘閣)은 천왕문을 들어서면 바로 남쪽에 위치하며 2층 누각형식의 건물로 범종루(梵鐘樓)라고도 부릅니다. 건물은 숙종 12년(1686) 수오대사(守梧大師)에 의해 처음 세워졌으며 현재 건물은 원래 건물이 아닌 조선(19세기)시대에 중수된 건물입니다.



通度寺(통도사), 梵鐘閣(범종각) 현판


                



범종루(梵鐘樓)라고도 부르는 범종각(梵鐘閣)은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2층 누각형 건물입니다. 상층에는 계자난간 을 빙 둘러 장식하고 활주(活柱)는 2층 마루에 얹도록 한 것이 특이합니다.


 

상층                                                                        하층


내부 상하층에는 범종(梵鐘), 홍고(弘鼓), 목어(木魚), 운판(雲板) 등 불전사물(佛殿四物)을 비치하고 조석 예불(禮佛)의식에 사용하고 있습니다. 범종각 초창당시 조성된 대종(大鍾)과 근래의 신종(新鍾)을 주조(鑄造)하여 함께 두었습니다. 

      

    사인비구 제작 동종 - 통도사 동종 (思印比丘 製作 銅鍾 - 通度寺 銅鍾): 보물 제11-6호 <참고사진>


통도사 동종(銅鍾)은 조선 숙종12년(1686) 경기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승려 출신 주종장(鑄鐘匠)인 사인(思印) 스님에 의해서 만들어진 조선시대 종입니다. 현재 성보박물관으로 이전 되었으며, 원래 자리에는 문화재청에서 동종과 똑같이 재현한 종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카카오맵위성사진>


하로전(下爐殿)은 중심건물인 영산전(靈山殿)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극락보전(極樂寶殿), 왼쪽으로 약사전(藥師殿), 맞은편으로 만세루(萬歲樓), 이렇게 네 건물이 하나의 마당을 가운데 놓고 튼ㅁ자로 둘러서 있으며 마당 가운데에 신라말기의 삼층석탑(三層石塔)이 놓여 있습니다.




● 영산전(靈山殿)



영산전(靈山殿): 보물 제1826호


영산전이 처음 세워진 연대는 미상이나 현 건물은 숙종30년(1704) 송곡대사(松谷大師)에 의하여 중건 되었습니다. <영산전천왕문양중창겸단확기(靈山殿天王門兩重創兼丹雘記)>에 따르 면, 1713년 봄 영산전과 천왕문이 화재로 소실되었고 1714년 청인(淸印), 정안(正眼), 낭일(朗日), 치원(致源) 등 4분의 대선사가 중창하였다고 합니다. 하로전 영역에서는 가장 오래된 건물입니다.




영산전(靈山殿)


영산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기단의 정면 중앙과 양 측면 앞쪽에는 계단이 놓여 있으며, 창호는 정면과 배면에만 두고, 양 측면은 창호 없이 벽으로 폐쇄했습니다. 정면에는 매칸 사분합 정자살문이, 배면에는 두 짝의 띠살문이 있습니다.


영산전 외부 벽화 <참고사진>


외벽의 그림은 풍화(風化)로 인해 많이 훼손되었으나 남아 있는 노승(老僧) 공양도(供養圖)의 그림은 품격 높은 수작입니다.


영산전 내부 벽화[동북쪽 벽면] 


영산전 내부 주존불로 모신 석가모니불상이 건물의 정면인 남쪽을 바라보지 않고 서쪽 다보탑 벽화를 바라보는 모습으로 모셔져 있습니다. 불상 뒤 후불탱화로는 석가모니가 영산에서 설법을 하고있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가 걸려있으며, 그 주변으로 부처님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팔상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영산전 내부 벽화[서쪽 벽면] <참고사진>


건물의 내부 천장에는 우물천장을 조성하였고 대들보에는 매우 화려한 산수화풍의 그림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이들 영산전 내부 벽화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것은 서쪽벽에 그려진 다보탑 벽화입니다.  


                    



양산 통도사 영산전 벽화 (梁山 通度寺 靈山殿 壁畵) 일괄(52점): 보물 제1711호



       황룡도(黃龍圖)


 

석가모니 행적도(行跡圖)


                                

                                다보탑 벽화 <참고사진>


내부벽화 중 가로 2.2m, 세로 5.4m의  다보탑을 회화작품으로 표현한 <다보탑벽화>는『법화경(法華經)』「견보탑품(見寶塔品)」을 도해한 국내 유일의 변상도(變相圖)로 예술적 가치도 뛰어난 귀중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숙종30년(1704) 중건 당시 그려진 그림인지는 불확실하지만, 매우 독특한 그림으로 보존상태가 좋습니다.


그림은 풍령과 구슬장식을 줄줄이 매단 구층탑이 화면 중심에 우뚝 서 있고, 탑 3층 내부에는 석가여래(釋迦如來)와 다보여래(多寶如來)  두 부처님이 나란히 앉아있는 이불병좌상(二佛竝坐像)이, 탑 좌우에는 보살상과 제자상이 각기 네 분씩 그려져 있습니다. 탑의 지붕이 금빛 찬란하며, 검은색, 노란색, 흰색, 붉은색, 푸른색이 적절히 조화를 이루어 그림의 전체 분위기가 매우 밝고 화사합니다. 또한 그림 위쪽에 그려진 구름들도 매우 장엄합니다. 그림의 아랫부분이 손상되었지만 상태는 좋은 편입니다. 

<문화유산답사회 자료>



통도사 영산전 팔상도 (通度寺 靈山殿 八相圖): 보물 제1041호



팔상도(八相圖)


영산전(靈山殿) 팔상도(八相圖)는 영조51년(1775)에 조성된 것으로 석가모니의 일생을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가로 1.51m, 세로 2.33m의 비단에 채색한 그림입니다. 원래의 팔상도는 성보박물관에 이전하여 보관하고 있습니다.


                                            

       도솔래의상(兜率來義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참고사진>


팔상도(八相圖)는 석가모니가 도솔천에서 코끼리를 타고 사바세계로 내려오는 장면인 도솔래의상(兜率來義相), 석가모니가 룸비니공원에서 마야부인의 옆구리를 통해 출생하는 모습을 그린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태자가 성문 밖의 중생들의 고통을 관찰하고 인생무상을 느끼는 장면의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출가하는 장면을 묘사한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설산(雪山)에서 수행하는 모습을 그린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태자가 수행 중 온갖 유혹과 위협을 물리치는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부처가 녹야원에서 최초로 설법하는 모습을 나타낸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부처가 쌍림수 아래에서 열반에 이르는 모습을 표현한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통도사자료>



■ 통도사 영산회상탱 (通度寺 靈山會上幀): 보물 제1353호


                                    

                                 영산회상탱(靈山會上幀) [영산전 석가모니불후불탱화] <참고사진>


영산전 본존불인 석가모니불상 뒤에 걸려있는 영산회상탱은 조선 영조10년(1734)에 임한(任閑)의 주도아래 제작되었습니다. 석가가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묘사한 영산회상을 그렸는데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문수·보현보살, 10대 제자, 제석·범천, 사천왕, 팔부신중 등의 무리가 석가모니불을 에워싸고 있는 모습입니다. 크기는 가로 2.33m, 세로 3.39m 로 원래의 영산회상탱은 성보박물관에 이전하여 보관하고 있습니다. 



● 극락보전(極樂寶殿)



극락보전(極樂寶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4호



                                                      

                                        현판



극락보전


정면 3칸, 측면 3칸, 겹처마, 다포계 팔작지붕 건물로 네 곳의 지붕추녀뿌리를 받치기위해 활주(活柱)를 설치하였습니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건물이지만 건물의 짜임새와 외관이 뛰어난 건물로 18세기 후반의 양식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극락보전 불단 <참고사진>


법당 내부에는 서방정토(西方淨土) 극락세계(極樂世界)의 교주이신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좌우에 협시보살(脇侍菩薩)로 관음(觀音), 세지(勢至) 보살상을 봉안하였으며, 벽은 모두 불화와 산수화로 그려져 있습니다.



통도사 아미타여래설법도(通度寺 阿彌陀如來說法圖): 보물 제1472호



 아미타여래설법도(阿彌陀如來說法圖): 보물 제1472호  <참고사진>


극락보전 불전의 아미타불상 뒤의 아미타여래탱화로 화면의 중앙에 본존인 아미타여래가 보단(寶壇)위에 결가부좌하고 그 좌우에 관음과 세지보살을 비롯한 8대보살과 사천왕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이 그림의 화기(畵記)에 의하면 1759년 임한(任閑)이란 화사(畵史)가 그린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반야용선(般若龍船) 벽화


극락보전 건물 뒤쪽 외벽(外壁) 어칸에는 험한 바다를 건너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반야용선(般若龍船)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반야용선(般若龍船)


배의 모습은 용두(龍頭)와 용미(龍尾)를 나타내었고 그 전후에는 인로왕보살(引路王菩薩) 과 지장보살(地藏菩薩)로 보이는 양대(兩大) 보살이 서서 극락세계로 배를 인도하며, 배에는 합장한 사람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서쪽으로 10만억 불국토를 지나면 아무 고통이 없으며, 편안하고 즐겁고 아미타부처님이 설법하시는 극락세계가 펼쳐진다고 합니다.


                        인왕상(仁王像) 벽화


                        극락보전 건물 좌우 측면 뒤쪽 퇴칸에는 사찰의 수호신인 인왕상(仁王像)을 벽화로 그렸습니다.


                    

                      극락보전 좌측에 있는 감로수(甘露水)




● 약사전(藥師殿)



 통도사 약사전 (藥師殿) :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7호



                                        현판


 

                                   약사전: 정면 3칸, 측면 1칸, 겹처마, 다포계 양식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노주석(爐柱石)


약사전 앞에는 조선 중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돌기둥 위에 화반(花盤)을 올려 놓은 형태의 노주석(爐柱石)이 있습니다. "노반지주(露盤之柱)" "광명대(光明臺)". 화사석(火舍石)". 정료대(庭燎臺)" 등 많은 이름으로 부르는데, 우리말로는 '불우리'라고 하며 사찰의 야간 법회시 관솔(소나무 송진이 베인 가지)에 불을 붙여 올려놓아 어둠을 밝히는 용도로 주로 쓰입니다.


약사전 불단


약사전 내부에는 중생의 질병을 고치고 목숨을 연장케 하며, 일체의 재화를 소멸하고 병을 고친다는 약사여래불상을 모시고 있고 이 불상 뒤에는 약사여래후불탱이 걸려 있습니다.



양산 통도사 건륭40년명 약사여래후불탱 (通度寺乾隆四十年藥師如來後佛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19호



                        건륭40년명 약사여래후불탱 (乾隆四十年銘藥師如來後佛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19호


현재 박물관으로 옮겨진 원래의 후불탱화(後佛幀畵)는 영조 51년(1775)에 통도사 불화제작의 주요인물인 화사 포관(抱冠) 등이 그린 것으로 약사여래와 함께 일광(日光), 월광(月光)보살을 위시하여 제대보살(諸大菩薩) 및 신장상(神將像)등을 함께 그렸습니다.


약사전 내부 천장 가구



● 만세루(萬歲樓)



만세루 (萬歲樓):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3호 <참고사진>


만세루는 현재 불교용품점으로 활용하고 있으나 본래 법회나 법당의 주요행사를 열 때 사용하던 누각입니다. 부처의 설법이 만세를 누린다는 뜻으로 만세루 (萬歲樓)라 이름을 지었습니다. 세운 시기는 알 수 없으나 현재의 건물은 조선 영조22년(1746) 영숙대사(靈淑大師)가 중건한 것으로 여러 차례의 수리를 하였습니다.




 만세루 (萬歲樓)


만세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누각이 아니면서 누(樓)라고 한 것을 보면 처음 세웠을 때 이 건물은 벽이 없고 기둥만 있었던 누각 형식의 건물이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만세루 (萬歲樓) 현판


만세루 현판은 구하(九河)스님이 썼으며, 가운데칸 양쪽 기둥 위에 밖으로는 용머리를, 그 안쪽에는 용꼬리를 새겨 출입구를 강조하였고, 내부 역시 연등천장으로 되어있습니다.


 만세루 건물 동쪽에 놓여있는 조선시대 목조수통(木造水筒)



● 삼층석탑(三層石塔)



 통도사 삼층석탑 (通度寺 三層石塔): 보물 제1471호




            영산전 앞에 서 있는 삼층석탑(三層石塔)은 2중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통일신라시대의 일반형 석탑입니다.


 

                                 하대(下臺)                                                             기단(基壇)


석탑의 높이는 3.9m 기단폭은 1.8m이며, 기단은 4장의 장대석(長臺石)을 다듬어 높직한 지대석(地臺石)을 설치하고  이중 기단(基壇)을 형성하고 그 위에 탑신부를 놓았습니다.  하층 기단에는 안상(眼象)이, 상층 기단은 귀기둥과 버팁기둥이 새겨져 있습니다. 



                                                                                  탑신부(塔身部)


탑신부(塔身部)는 탑신과 옥개석(屋蓋石)이 각각 1개의 부재로 조성되었습니다. 탑신부 몸돌에는 귀기둥이 새겨져 있습니다. 상륜부(相輪部)는 3층 옥개석 위에 2단 받침형의 갑석을 가지는 노반(路盤)을 설치하고 그 위에 복발(覆鉢)과 보개(寶蓋)가 남아 있는데 노반 이상은 원래 이 탑의 부재였는지 의문입니다.




이 석탑은 1987년 해체 복원시 기단의 맨 윗돌에서 조선시대의 백자가 발견되어 이전에도 탑의 보수가 있었음을 알게 되었으며, 또 하층 받침돌 아래의 다진 흙 속에서는 금동으로 된 소형 불상 2구와 청동 숟가락 등이 발견되어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배례석(拜禮石)


탑 앞의 배례석은 복원된 것이긴 하지만, 직사각형으로 연화무늬를 조식하였는데 본래 놓여져 있던 것은 음각된 명문(銘文)에 의하면 고려 선종 2년(1085)에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명월료(明月寮)



명월료(明月寮)


명월료(明月寮)는 현재 종무소로 사용되는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다포계 양식의 팔작지붕 건물이며. 고려 충숙왕3년(1316) 처음 세웠으며, 경종3년(1723) 취암대사(翠岩大師)가 중건하였고, 1978년에 신축하였습니다.


                                                                     현판



● 응향각(凝香閣)



응향각(凝香閣)


영산전의 북쪽에 자리잡고 있는 응향각은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는데 1757년 건립하였으며, 19세기 후반에 신축한 건물입니다.


응향각(凝香閣)


노전(爐殿)스님이 거처하는 집을 `응향각` 혹은 `향로전` 이라 하기에 아마도 하로전(下爐殿)을 맡고 있는 스님들이 거처하는 곳으로 보입니다. 건물은 정면 4칸,측면 2칸, 맞배지붕 건물로 일반 서민 주택과 같이 온돌방과 툇마루, 부엌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현판



● 화엄전(華嚴殿)



  화엄전(華嚴殿) <참고사진>


화엄전(華嚴殿)은 원통방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 정면 7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이 자리는 원래 공민왕17년(1368)에 처음 세워진 건물이 있었고, 영조38년(1762)과 고종20년(1883)에 소실되었다가 다시 1887년에 구련대사(九蓮大師)에 의하여 중건된 건물들이 있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1970년 새로 건립된 콘크리트로 된 건물입니다. <통도사 자료>


화엄전(華嚴殿 - 기도접수처)


원래의 화엄전은 법회시 대중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만, 현재는 기도접수, 신도등록, 시주확인서 발급 등의 종무를 보는 곳이며, 신도들의 휴식공간으로도 이용되고 있습니다.



● 금당(金堂)



금당(金堂)


영조 5년(1729) 수인대사(守寅大師)에 의하여 명월료(明月寮)와 같은 시기에 중건하였습니다. 현재 종무소(宗務所) 일을 관장하는 스님들의 거처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금당(金堂) <참고사진>


 정면7칸, 측면 3칸, 팔작지붕 건물로 온돌방과 툇마루, 부엌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 은당(銀堂)



 은당(銀堂): 은당(銀堂)은 금당(金堂)과 같이 종무소 일을 관장하는 스님들의 요사로 쓰이고 있습니다. <참고사진>




  중로전(中爐殿) 구역



중로전(中爐殿) 구역  <카카오맵 참고사진>


중로전(中爐殿)은 불이문부터 세존비각까지의 건물들로 대광명전, 용화전, 관음전의 세 전각이 하나의 중심축에 일렬로 배열되어 있습니다. 하로전 구역을 지나 불이문을 들어서면 중로전 구역에서 튀어나온 듯한 관음전과 석탑을 지나 멀리 대웅전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관음전 뒤로는 세존비각, 개산조당, 해장보각, 장경각, 전향각이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맨뒤에는 서쪽으로 약간 틀어진 

대광명전이 그리고 용화전 앞에는 미륵불의 출현을 기다린다는 의미로 세운 봉발탑이 서있습니다. 또한 스님들이 경을 공부하는 강원건물인 황화각과 3동의 요사와 황화각 뒤로 통도사의 역대 고승들의 진영을 봉안한 영각이 있습니다. 그리고 관음전 앞에는 경을 공부하는 감로당과 원통방이 있고, 이 두 건물 지하에 대중들이 식사하는 공양간이, 이외에도 작은 객실과 원주실, 후원 등이 있습니다.



● 불이문(不二門)



통도사 불이문 (通度寺 不二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2호


통도사의 세번째 문인 불이문(不二門)은 고려 충렬왕31년(1305)에 처음 지은 후, 조선 후기에 다시 지어졌습니다. 모든 것이 평등하고 차별이 없음을 불이(不二)라 하며, 불이(不二)의 진리로써 세속의 모든 번뇌를 벗어난다는 뜻에서 해탈문(解脫門) 이라고도 합니다.



 불이문(不二門) <참고사진>


불이문은 약 1.5m 되는 석축 위에 올라선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 건물로 정면 3칸에는 모두 판문을 달아 출입하게 하였으며 측면은 벽체로 마감하였습니다. 특이하게 통도사 경내에서 유일하게 다른 전각의 기와와는 다르게 청기와를 올렸습니다.



                                        현판


불이문(不二門) 현판과 ‘원종제일대가람(源宗第一大伽藍)이라는 글씨는 중국 북송(北宋)의 서예가 및 화가인 미불[米芾, 1051~1107:  자(字) 원장(元章)]의 글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통도사가 한국불교의 근원으로서 화엄도량임을 나타내는 현판이라 할 수 있습니다.  


 내부 천장


내부 천장은 매우 단조롭게 처리되어 중앙의 종보를 코끼리와 호랑이가 이마로써 받쳐 이고있는 형태를 취하였습니다.


불이문(不二門) 뒷면: 불이문 뒷면에는 판문도 벽체도 달지 않았습니다.



       중로전(中爐殿) 구역의 전각 위치 <카카오맵 자료>



● 관음전(觀音殿)



통도사 관음전(痛度寺 觀音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51호


관음전은 중로전(中爐殿) 구역에 있는 3개의 법당[용화전과 대광명전 포함] 가운데 가장 나중에 지어졌습니다. 조선 영조원년(1725)에 용암대사(龍岩大師)에 의하여 처음 세워졌고, 그 이후 여러번 중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현판


관음전(觀音殿)  <참고사진>


관음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겹처마, 다포양식의 팔작지붕건물로 내부에는 따로 기둥을 세우지 않아 공간을 넓게 꾸몄으며,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는 문화재입니다. 법당 앞에는 높이 2.4m에 달하는 석등(石燈)이 있습니다.


 관음전(觀音殿) 관세음보살상


법당 안에는 주존불로 관세음보살상을 모셨으며 벽면에는 32응신을 상징하는 여려 모습의 관세음보살을 표현하였습니다. 관음신앙은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시대 및 현대에 이르기까지 널리 신봉하고 있습니다.



● 석등(石燈)



 통도사 석등(通度寺 石燈):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0호



                                         

                                          석등(石燈) <참고사진> 


관음전 앞의 높이 2.4m의 석등으로 통일신라의 석등양식을 따르고 있으나 꽃장식이 세밀하지 못한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하고 있습니다. 관음전이 석등보다 훨씬 후대에 세워진 것으로 보아 석등의 원래 위치가 현재의 자리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 용화전(龍華殿)



통도사 용화전(龍華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04호


                                                      

                                                       현판



용화전(龍華殿) <참고사진> 


용화전(龍華殿)은 대광명전과 관음전 사이에 위치하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매우 화려한 다포계양식의 맞배지붕 건물로 공민왕18년

(1369)에 처음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은 조선 영조원년(1725)에 청성대사(淸性大師)에 의해 중건되었다고 합니다. 용화전 앞 마당에는 봉발탑(奉鉢塔)이 있습니다.


       용화전(龍華殿) 측면: 건물 측면 중앙칸에 문짝을 달은 것이 특징입니다.  <참고사진> 



석조미륵불좌상(石造彌勒佛坐像)


전각 안에는 고려말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약 2미터 정도의 호분칠(胡粉漆)을 한 석조미륵불좌상(石造彌勒佛坐像)을 봉안하였습니다. 미륵불은 석가모니 다음에 출현하실 미래불(未來佛)이며, 그 부처님의 탄생하실 곳이 용화수(龍華樹) 아래이고 또 설법회상(說法會上)을 용화회상(龍華會上)이라 하므로 법당의 명칭을 용화전(龍華殿)이라 하였습니다.



               통도사 가경3년명 미륵후불탱(通度寺嘉慶三年彌勒後佛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420호  <참고사진> 


미륵후불탱은 1798년에 통도사에서 활동한 중요한 화승인 옥인(玉仁) · 경보(璟甫) · 승활(勝活) 등에 의해서 제작된 작품입니다. 진품은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입니다.


 

                        서측면 벽화                       서유기(西遊記) 벽화 <교육과건강신문 자료>                   동측면 벽화


용화전 법당에 들어서면 내부 동. 서측면 벽체에 모두 7폭의 대형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모두 ‘서유기(西遊記)’ 내용을 표현 하고 있는데 서유기가 사찰의 벽화로 그려진 것은 현존하는 유일한 예입니다.



黑松林三衆尋師(흑송림삼중심사)  <참고사진> 


『서유기』내용 중 선림사에서 쉬다가 요괴에 잡혀간 현장을 찾던 손오공이 三頭六臂(삼두육비)의 괴물로 변해 광분하는 모습입니다.



● 봉발탑(奉鉢塔)



통도사 봉발탑(通度寺 奉鉢塔): 보물 제471호


봉발탑(奉鉢塔)은 용화전(龍華殿) 앞에 서있는 것으로 무슨 용도인지는 알 수 없으나, 석가세존의 옷[가사(袈裟)]과 밥그릇[발우(鉢盂)]을 미륵보살이 이어받을 것을 상징한 조형물인 것으로 여겨집니다.  “석가모니의 발우(鉢盂)를 미래세(未來世)에 출현할 미륵불에게 드리기 위해 부처님의 상수제자(上首弟子)인 가섭존자(伽葉尊者)가 발우와 함께 가사(袈裟)를 가지고 인도의 계족산(鷄足山)에서 멸진정(滅盡定: 번뇌를 소멸시키는 선정의 경지)에 들어 기다리고 있다”는 불경의 내용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입니다.





   봉발탑(奉鉢塔) <참고사진>


약 230cm 높이의 발우(鉢盂)모양의 봉발탑(奉鉢塔)은 만들어진 연대는 고려시대로 추정되며 기본형태는 받침부분 위에 뚜껑 있는 큰 밥그릇을 얹은 듯한 희귀한 모습입니다.

     

                           봉발탑(奉鉢塔) <참고사진>


봉발탑(奉鉢塔)은 지대석(地臺石) 위에 하대석(下臺石)을 놓고 그 위에 부등형(不等形) 8각 간석(竿石)을 세우고 간석 위에 상대석(上臺石)을 놓았으며 그 위에 뚜껑을 갖춘 발(鉢)을 올려놓았습니다.



● 대광명전(大光明殿)



 통도사 대광명전(通度寺 大光明殿): 보물 제1827호



대광명전(大光明殿)


대광명전은 통도사 창건 당시에 처음 세웠으며, 영조원년(1725)에 축환대사(竺環大師)중수하였으며, 1756년(丙子)에 화재로 불탄 후 1758년(戊寅)에 중건되었습니다.


대광명전(大光明殿) <참고사진>


대광명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식 팔작지붕 건물로 구조와 장식은 조선중기의 특징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대광명전(大光明殿) 법당 내부 <참고사진>


법당 내부 천장은 우물천장이며 불단에는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봉안되어 있는데 비로자나는 광명편조(光明遍照: 자비가 넓고 커서 염불하는 온 중생에게 두루 비춤)라는 뜻이므로 이 건물의 이름을 대광명전(大光明殿)이라고 하였습니다.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법당 내부에는 화엄경의 주불(主佛)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이 봉안되어 있으며 ‘비로자나’는 광명의 빛을 두루 비춘다는 광명편조(光明遍照)라는 뜻을 지니고 있기에 이 건물의 이름을 대광명전(大光明殿)이라고 하였습니다. 비로자나불은 불가에서는 진리요 우주의 본체를 상징하는 법신불(法身佛)입니다. 



■  통도사 대광명전 삼신불도 (通度寺 大光明殿 三身佛圖): 보물 제1042호




      석가모니후불탱(釋迦牟尼後佛幀)      비로자나후불탱(毘盧遮那後佛幀) <참고사진>       노사나후불탱(盧舍那後佛幀)


불상 뒤편에 조성된 삼신불탱은 영조35년(1759) 통도사를 기점으로 활동하였던 임한(任閑)스님에 의해 조성되었습니다. 불교에서는 불(佛)을 법신불(法身佛: 비로자나불)ㆍ보신불(報身佛: 노사나불)ㆍ화신불(化身佛: 석가모니불)의 삼신불(三身佛)로 나누고 있습니다.  비단에 채색하여 삼신불(三身佛)을 세 폭에 각각 그린 이 삼신불탱은 원래 대광명전에 봉안되어 있었으나 현재는 대광명전에는 이를 모사하여 봉안하고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관리하고 있습니다.



통도사 대광명전 신중탱화(通度寺大光明殿神衆幀畵):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9호



         

                        ‘제석천룡탱(帝釋天龍幀)’                      <참고사진>                    ‘금강탱(金剛幀)’


대광명전 신중탱화는 순조4년(1804) 화사인 계한(戒閑) 성인(性仁) 등이 그린 길이 238㎝, 폭 183㎝ 크기의 탱화로, 원래 통도사 대광명전의 신중단(神衆壇)에 봉안되었던 것인데 지금은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으며, 현재 신중단에는 모사하여 봉안하고 있습니다. 


                                                 묵서(墨書): 화마진언(火魔眞言) <참고사진>


내부 동. 남. 서 평방부에는 화재를 막기 위한 묵서(墨書)가 있는데, 이는 건물의 화재를 방지하기 위한 일종의 방화부적(防火符籍)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吾家有一客(오가유일객) : 우리 집에 손님이 한 분 있는데

                                定是海中人(정시해중인) : 틀림없는 바다의 사람이라 

                                口呑天藏水(구탄천장수) : 입으로 하늘에 넘치는 물을 뿜어

                                能殺火精神(능살화정신) : 능히 불의 귀신을 죽일 수 있으리


천창수(天藏水)는 '하늘에 넘치는 물'로 해석하는데 이는 곧 비를 의미하며 용왕이 비를 내려 화재를 막아낸다는 뜻입니다.


  대광명전(大光明殿) 측면 용(龍)그림 벽화


    

정광여래부도(定光如來浮屠)



 정광여래부도(定光如來浮屠) <참고사진>


대광명전 뒤에는 작은 부도 1기가있습니다.  이 부도는 사찰에서 정광여래부도(錠光如來浮屠)라고 구전되어 오는데, 어떤 의미로 세웠는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또한 현존 유물의 상태로 보아 오랜 세월동안 무너져 방치되었던 것을 임시로 복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 개산조당(開山祖堂)



 개산조당(開山祖堂) <참고사진>


개산조당(開山祖堂)은 용화전 옆 서쪽에 위치하며 통도사의 개산조(開山祖)인 자장율사(慈藏律師)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해장보각(海藏寶閣)으로 출입하는 정문입니다. 원래는 담장을 쌓고 솟을삼문을 세웠었는데 언젠가 담장이 헐리고 삼문(三門)만 남아있습니다.



개산조당(開山祖堂)


개산조당은 영조3년(1727)에 창건되어 여러차례 중수되었으며 현재의 모습은 고종4년(1867) 크게 수리한 후의 모습입니다. 해장보각(海藏寶閣)으로 통하는 이 문은 3칸 건물로 중앙 칸이 양 측면 칸보다 높아 ‘솟을삼문’이라고 합니다.



                                                  현판


개산조당(開山祖堂) 뒷면 중앙칸


                    개산조당(開山祖堂) 석등(石燈)


높이 약3m정도되는 이 석등은 일반적인 석등과 달리 그 모양이 특이한데 조선시대 후반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석등의 화사석(火舍石)은 기둥 네 개를 세우고 지붕돌을 올려 화창이 큼직하며, 특이한 것은 지붕돌 위에 작은 몸돌을 놓고 지붕돌과  보주를 얹은 2층의 석등 형식입니다.



삼십칠 조도품탑(三十七 助道品塔)


 

                        개산조당(開山祖堂) 삼십칠 조도품탑(三十七 助道品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수행하는 37가지의 수행방법을 말합니다. 즉 4염처(念處), 4정근(正勤), 4여의족(如意足), 5근(根), 5역(力), 7각지(覺支), 8정도(正道) 등을 모두 합한 것입니다. 37보리도법(菩提道法)이라고도 하는데, 이러한 수행 방법을 통해서 깨달음을 성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삼십칠 조도품탑(三十七 助道品塔): 탑에 새겨진 몇가지 수행방법을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참고사진>


정명(正命): 올바른 생활 수단을 말하는 것으로 전체적인 생활에 있어 바른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이는 곧 정당

                  한 방법으로 의식주(衣食住)를 구하는 것으로 남과 나를 다같이 이롭게 하는 바른 직업을 갖는 것도 그 뜻의 하나입니다.

 정업(正業): 올바른 행위, 살생이나 도둑질 따위의 악한 행위를 하지 않고 선한 행위를 하는 행동이고 바른 생각과 바른 이치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 정어(正語): 올바른 말, 곧 온갖 망령된 허망한 말[妄語], 삿된 말[邪語] 등을 하지 않는 말이 정어입니다.  즉 거짓말, 꾸며대는 말,

                  서로 이간시키는 말, 남을 성나게 하는 말 등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 오층석탑(五層石塔)



                        개산조당(開山祖堂) 앞 오층석탑(五層石塔)


개산조당(開山祖堂) 앞쪽에 세워져있는 오층석탑(五層石塔)은 1920년 일제강점기 때 건립되었으며 전체 높이는 약 6m로 1층 4면의 몸돌에는 인왕상(仁王像)이 하나씩 조각되어 있습니다.



 


 

4면에 새겨진 인왕상(仁王像)


인왕상(仁王像)은 사찰이나 불전의 문 또는 불상 등을 지키는 불교의 수호신으로 금강역사(金剛力士)·라고도 합니다.


        지대석(地臺石) 위 하대석(下臺石)에는 봉헌(奉獻)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누군가의 시주(施主)에 의해서 세워진듯 합니다.



● 해장보각(海藏寶閣)



해장보각(海藏寶閣)


해장보각(海藏寶閣)은 통도사의 창건주 자장율사(慈藏律師)의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건물입니다. 이 전각을 해장보각이라고 한 것은 불교경전이 용궁(龍宮) 속에 보관되어 있었다는 인도 고대의 전설을 따서 지은 것이라 하며, 또한 대장경(大藏經)의 내용이 바다 속의 수많은 보배와 같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도 지닌다고 합니다.  즉 용궁보각(龍宮寶閣)에서 유래된 것으로도 짐작하고 있습니다.



                                              현판 <참고사진>




해장보각(海藏寶閣) <참고사진>


해장보각은 영조3년(1727) 처음 세워졌고, 광무4년(1900) 고산대사(古山大師)가 중수하였다고 전합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타포형식의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해장보각(海藏寶閣) 동측면 까치호랑이 벽화 <참고사진>


우리나라 민가(民家) 산신신앙의 대상인 호랑이를 벽면에 그린 것은 불교와 민간신앙 융합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벽화입니다. 이 그림에서 소나무는 새해, 까치는 기쁨, 호랑이는 알림을 상징하며 전체적으로 새해의 기쁜 소식을 알린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해장보각(海藏寶閣) 내부


고종 때 명성황후의 시주로 해인사 팔만대장경 4질을 인출하여 그중 한질을 통도사에 모시기 위해 장경각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자장스님의 영정 좌우로 대장경을 보관하던 선반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현재 대장경은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보관 중입니다.



                         통도사 자장율사 진영(通度寺 慈藏律師眞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76호 <참고사진>


신라의 승려인 자장율사(590∼658)의 초상화는 조선 순조4년(1804)에 제작되었습니다. 긴 술이 달린 불자(拂子)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긴 술의 끝 부분을 받쳐들고 있는 모습입니다. 불자(拂子)는 수행자가 마음의 티끌과 번뇌를 털어낸다는 상징적인 불구(佛具)의 하나입니다. <문화재청 자료>



● 장경각(藏經)



통도사 장경각(通度寺藏經閣):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4호


장경각(藏經閣)은 통도사에 전해지는 혹은 외부에서 유입된 경판(經板)들을 보관하는 곳입니다. 현재 성보박물관으로 이전된 장경각의 목판은 통도사에서 약 10km 떨어진 울산 운흥사(雲興寺)가 조선말기에 폐사될 때 옮겨온 중요한 경판들입니다. 이 경판들은 승려들이 공부하던 교과 과정의 경전인 능엄경(楞嚴經), 기신론현수소(起信論賢首疏) 등 15종의 경판입니다. <통도사자료>


                                                                 현판<참고사진>



       

      통도사 장경각(通度寺藏經閣):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44호<참고사진>


정면 3칸, 측면 1칸, 주심포 맞배지붕 건물로 창건 및 중수연대는 확실치 않고 주변 건물과 비교해 18세기 이후의 건물로 판단합니다.



● 전향각(篆香)



 전향각(篆香閣): 참선수행처


 



● 세존비각(世尊碑)



세존비각(世尊碑閣)


세존비각(世尊碑閣)은 숙종(肅宗) 32년(1706) 계파대사(桂坡大師)가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중수(重修)하고 금강계단에 봉안된 부처님 진신사리의 유래와 역사에 대해서 기록한 석가여래의 영골사리비(靈骨舍利碑)를 세우면서 건립(建立)한 것입니다.


세존비각(世尊碑閣): 금강계단 옆에 바짝 붙어 있는 세존비각은 정면1칸, 측면2칸의 작은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현판<참고사진>


                                 

       통도사 석가여래 영골 사리 부도비 (通度寺 釋迦如來 靈骨 舍利 浮屠碑):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4호<참고사진>


영골사리비(靈骨舍利碑)의 높이는 2.5m, 폭 1m로 비의 정면 첫줄은 ‘裟婆敎主 釋迦如來 靈骨 舍利 浮屠碑’(사파교주석가여래영골사리부도비)를 병서(竝書)하였으며 비석(碑石)에는 불사리의 행적을 소상히 밝히고 있습니다.


  영골사리비(靈骨舍利碑) 비문(碑文) <참고사진>


비문(碑文)은 수사간(守司諫) 채팽윤(蔡彭胤 1669~1731)이 짓고, 글씨는 승정원(承政院) , 도승지(都承旨) 이진휴(李震休)가 썼습니다. 석비 뒷면의 비음(碑陰)은 성능대사(性能大師)가 짓고 보윤대사(普允大師)가 썼는데, 석가모니 행적내용을 적고 있습니다.


                                             비각 천장에서 비석을 내려다 보는 용의 모습  <참고사진>


                        단순한 꽃무늬를 조각한 비석받침 <참고사진>




● 황화각(皇華閣)



황화각(皇華閣)


황화각(皇華閣)은 천자각(天子閣)이라고도 하는데, 원나라 왕실과 고려 왕실 사람들이 부처님의 사리탑[적멸보궁]에 참배하기 위해 자주 통도사에 왕래하므로 이들의 숙소로 지어졌다고 합니다. 황화(皇華)는 당시 원나라 사신(使臣)의 이름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황화각(皇華閣)


황화각(皇華閣)은 고려 충숙왕 4년(1317)에 처음 세워졌으며, 인조27년(1649) 탄변화상(坦卞和尙)이 중건하고 1906년 성해화상(聖海和尙)이 중수하고, 또한 1988년에 중수한바 있습니다.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ㄴ자 평면으로 두 개의 건물을 합친 큰방입니다. 이곳은 통도사의 스님들이 경(經)을 공부하는 강원(講院)과 학승(學僧)들이 거처하는 기능을 갖고 있는 건물입니다.


                           통도사에 주석하셨던 취산(鷲山) 구하 천보(九河 天輔, 1872∼1965)스님의 글씨


            敎融海嶽 恩廓乾坤 [교융해악 은확건곤]:  가르침은 산과 바다처럼 크고, 은혜는 하늘과 땅처럼 넓다.


 황화각 동쪽면 <참고사진>


                                    패엽실(貝葉室): 승가대학의 교육 전반을 관장하는 강주(講主)스님의 주석처



황화각 동쪽 곷사과나무




● 영각(影閣)



 영각(影閣): 역대(歷代) 주지(住持) 및 큰스님들의 진영(眞影)을 봉안한 건물입니다.


                                                   현판: 취산(鷲山) 구하 천보(九河 天輔, 1872∼1965) 스님의 글씨



영각(影閣)


영각(影閣)은 정면 8 칸 측면 3칸의 긴 장방형(長方形) 평면(平面)으로 된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초창연대는 분명치 않으며 현재의 건물은 숙종30년(1704)에 지었다고 전하며, 처음 영자전(影子殿)으로 불리다가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영각(影閣) 앞의 자장매(慈藏梅)



영각 앞 약사전 뒤의 청단풍나무




영각 앞 약사전 옆의 홍도화




영각 앞 약사전 옆의 오향매(五香梅)



영각 앞 영산전 옆의 매실나무




● 원통방(圓通房)




원통방(圓通房)


원통방은 고려 충혜왕 복위2년(1341) 처음 세워졌으며 영조 때 탄해대사(坦亥大師)가 중건하였고, 1886년 감로당과 함께 소실된후 다음해에 중건되었는데  법회시 대중을 수용하는 공간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원통방(圓通房)


원통방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2칸 맞배지붕 건물로 현재 강원(講院)의 학인(學人) 대중방으로 쓰이고 있으며 이 건물과 동, 서 그리고 남쪽에 객실 3채가 있어 口자형 평면으로  구성되어 중앙에 중정(中庭)이 생겨 주택의 평면형과 같은 구조입니다.


                                                           현판은 원통소(圓通所)


원통방의 현판은 흥선대원군 석파 이하응(李昰應, 1820~1898)의 글씨로 원통소(圓通所)라고 쓰여있습니다.  ‘원통(圓通)’ 의미는 ‘관음보살 이근원통(耳根圓通)’에서 유래된 것으로, 관세음보살의 공덕이 주원융통(周圓融通: 두루 원만하고 서로 통함)하다는 의미입니다.


                                         <카카오맵 참고사진>




● 감로당(甘露堂)



 감로당(甘露堂)


감로당은 스님들의 일상생활에 따른 후원(後院: 식당, 주방)으로 사용 되었습니다. 고려 충혜왕 원년(1340)에 건립되었으나 조선 고종19년(1882)에 화엄전, 원통방과 함께 소실되었고, 잇따른 화재로 1887년 덕명(德溟)대사가 중건하였습니다. 


                                               감로당(甘露堂) 현판


감로당(甘露堂) <참고사진>


정면 7칸, 측면 2칸 맞배지붕 건물로 동, 서 그리고 남쪽에 객실 3채가 있어 口자형 평면으로 구성되어있어 중앙에 중정(中庭: 중앙 마당)이 생겨 주택의 평면형과 같은 구조입니다.



● 원주실(院主室)



원주실(院主室)


원주실(院主室)은 공양간(供養間)과 후원(後院: 식당, 주방) 의 사무, 노무를 주관하는 곳으로 공양과 천도재나 49재 등의 각종 재(齋)를 준비하며, 숙박을 위한 객사(客舍)를 관리하는 곳입니다.


원주실(院主室)


원주실(院主室)의 뒷면


원주실(院主室)과 공양간(供養間)



● 공양간(供養間)




공양간(供養間 - 공양 짓는 곳) <참고사진>


사부대중[출가자로서 구족계를 받은 남녀]과 일반 내방객의 공양을 짓는 곳입니다. <통도사 자료>



공양실 입구: 공양시간 조공(朝供) 오전 6:00 ~ ,  오공(午供) 11:30~ ,  약석(藥夕) 오후 5:30~


사찰에서는 아침공양을 조공(朝供)이라 하는데 예전에는 주로 죽을 먹었기에 신죽(晨粥), 조죽(朝粥)이라고도 부릅니다. 점심공양은 오공(午供). 재식(齋食) 등이라 부릅니다. 재식이란 ‘계율에 따른 법다운 식사’를 뜻하여 오후불식을 규범으로 삼았던 초기불교의 식사법을 나타냅니다. 저녁예불 전의 저녁공양은 도를 구하고자 쇠약해진 몸을 다스리기 위해 먹는다는 뜻에서 약석(藥夕)이라 부릅니다.



후원(後院 - 식당, 주방)


사부대중과 일반 내방객이 자유롭게 공양을 할 수 있는 곳으로 약 천여명의 동시에 공양할 수 있습니다. <통도사 자료>




  노전(上爐殿) 구역



노전(上爐殿) 구역 <카카오맵 참고사진>


상노전 구역의 중심인 대웅전은 평면은 정방형이지만 지붕은 丁자형을 하고 있습니다. 대웅전의 정면에는 대중법회와 행사를 하는 설법전이 있으며, 좌우로는 명부전과 응진전이 있습니다. 서쪽으로는 삼성각과 산신각이 배치되어 있으며, 그 가운데 구룡지(九龍池)가 있습니다. 상노전의 가장 서쪽은 일반인들이 들어갈 수 없는 선원구역입니다. 이곳에는 주지스님의 처소인 탑광실 그 옆에 보광전과 부속건물 그리고 그 뒤에 방장스님의 거처인 정변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대웅전(大雄殿) 및 금강계단(金剛戒壇)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通度寺 大雄殿 및 金剛戒壇): 국보 제290호 <참고사진>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  대웅전(大雄殿)


통도사 대웅전(通度寺 大雄殿) - 동쪽면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를 모시는 법당을 가리키지만, 이곳 통도사의 대웅전은 사리탑에 부속된 예배처로 지어진 것이기에 불상을 따로 모시지 않고 건물 뒷면에 금강계단(金剛戒壇)을 설치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 때문에 통도사라는 절 이름도 금강계단을 통하여 도를 얻는다는 의미와 진리를 깨달아 중생을 극락으로 이끈다는 의미에서 통도(通度)라고 하였다고 전합니다.


                                                           대웅전(大雄殿): 동쪽면 현판


대웅전의 크기는 남북 15.8m, 동서 10.1m로서, 정면 3칸, 측면 5칸의 규모로 되어 모두 15칸 건물이며, 겹처마, 타포계 팔작지붕의 복합형인 T자형 건물입니다. 두 개의 건물을 복합시킨 평면형이라 건물내부의 기둥배치가 다른 건물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예입니다.


  대웅전(大雄殿) <참고사진>


대웅전 건물의 중앙 어칸의 위치에 계단이 놓이지 않은 것이 이상한 점입니다. 그런데 기단부를 살펴보면 금강계단 쪽으로 난 2칸은 후대에 증축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건물의 어칸 위치에 계단이 놓이지 않은 이유일 것으로 판단합니다. <답사여행 길잡이 자료>


통도사 대웅전(通度寺 大雄殿) - 남쪽면


지금 건물은 신라 선덕여왕 때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조선 인조 22년(1644)에 다시 지은 것이지만, 건물의 기단은 신라시대의 것으로 보입니다.


다포계 양식의  공포구조



                                              금강계단(金剛戒壇): 남쪽면 현판


                             대웅전 '금강계단' 현판 글씨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1820~1898)의 글씨로 알려져 있습니다.


대웅전 내부 불단 <참고사진>


내부에 불상을 모시지 않아 참배의 기능만을 갖고 있는 건물임을 알 수 있습니다.  불상을 모시지 않은 대신 동서방향으로 길게 놓인 불단 뒤 북쪽으로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된 금강계단이 바라다 보이도록 유리창을 냈습니다.


                          대웅전 내부 가구(架構) <참고사진>


대웅전의 내부 천장은 우물천장으로 목단, 국화문 등을 조각하고 단청(丹靑)하여 매우 화려하고 장엄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습니다.



통도사 대웅전(通度寺 大雄殿) - 서쪽면


대웅전 서쪽면의 대방광전(大方廣殿)은 바닥이 높아진 까닭에 동쪽 면이나 남쪽 면에서 보았던 기단부 자체가 낮아져 장식이나 계단은 없어졌으며, 5칸이지만 금강계단 쪽의 퇴칸인 두 칸은 문을 달지않고 벽체로 마감하였습니다.


                                              대방광전(大方廣殿): 서쪽면 현판[흥선대원군의 글씨입니다]


통도사 대웅전(通度寺 大雄殿) - 북쪽면 <참고사진>


                     적멸보궁(寂滅寶宮): 북쪽면 현판[ 통도사에 주석하셨던 천보구하(天輔九河)스님의 글씨입니다.


대웅전에는 4면에 각기 다른 현판을 걸었는데 동쪽이 대웅전(大雄殿), 서쪽이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이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에는 적멸보궁(寂滅寶宮)이란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대웅전(大雄殿)이란 대운 곧 석가모니불을 모신 전각을 나타내며, 대방광전(大方廣殿)이란 진리요 우주의 본체인 법신불(비로자나불)이 상주하는 도량이라는 뜻이며, 금강계단(金剛戒壇)이라함은 영원히 깨어지지 않는 금강과도 같은 계율을 지킨다는 뜻이고, 적멸보궁(寂滅寶宮)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적멸보궁(寂滅寶宮) <참고사진>


적멸보궁(寂滅寶宮)’이란 말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있는 사찰을 말하는데, 적멸(寂滅)이란 번뇌의 경지를 완전히 벗어남 을 뜻하는 말입니다. 보궁(寶宮)이란 불상을 모신 전(殿), 각(閣)이라 표현하는데 대하여 한층 더 높여 보배로운 궁전이라고 한 것입니다.


대웅전 지붕은 정면을 향해 [T]자형을 이룬 특이한 구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참고사진>





 활주(活柱): 건물의 네 귀퉁이에는 활주(活柱)를 놓아 추녀의 하중을 지탱하도록 하였습니다. <참고사진>


                                           활주(活柱) 상부(上部) <참고사진>


 기단(基壇)과 활주(活柱) 초석 <참고사진>


기단은 창건 당시의 것으로 지대석을 놓고 귀기둥(우주,隅柱)과 버팀기둥(탱주,撑柱)을 세운 뒤 그 사이에 연꽃이 조각된 면석을 끼우고 윗면에 갑석을 놓아았습니다.


 대웅전 돌계단의 소맷돌 <참고사진>


대웅전 오르는 돌계단 양쪽 소맷돌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양식의 화려한 연꽃장식을 볼 수 있습니다. 계단 중앙에 용 문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구룡지(九龍池)에 사는 용의 꼬리라고 전합니다.


대웅전 앞의 석등(石燈)과 괘불대(掛佛臺)


            찰간대(刹竿臺) <참고사진>


지붕의 기와 가운데에는 철제(鐵製)기와도 올려져 있고 지붕 정상에는 청동제(靑銅製) 보주(寶珠)가 있는데 직경 약 70㎝에 달하는 이 보주의 윗부분에는 다시 높이 50㎝ 가량의 길다란 철주(鐵柱)를 설치해 놓았습니다. 이를 가리켜 통칭 찰간대(刹竿臺)라 하며 이는 대찰 또는 부처님의 연궁(蓮宮)을 뜻하는 상징물입니다. 그리고 지붕의 막새기와 상부에는 연대미상의 도자기 연봉장식이 있습니다.


                                 대웅전 동쪽 꽃살문: 연화문, 옥단문, 국화문 등을 장식 <참고사진>



금강계단(金剛戒壇)



 대웅전과 금강계단(金剛戒壇) <참고사진>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通度寺舍利袈裟事蹟略錄)』에 의하면 원래 통도사가 위치하고 있는 이곳은 아름다운 연못이 있었는데 연못을 메운 후 그곳에 금강계단을 쌓고 통도사를 창건하였다고 합니다. 창건 당시의 가람은 금강계단 및 몇 동의 건물만이 있었습니다.


 금강계단(金剛戒壇) 수계의식(受戒儀式) <참고사진>


금강계단(金剛戒壇)이란 부처님의 계율을 받는 단(壇)을 이르며, 특별히 금강계단이라고 부르는 것은 계를 지키는 마음이 금강과 같이 굳건하여 자칫 파계하는 일이 없기를 기원하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고 합니다. 수계(受戒)란 출가자(出家者), 재가자(在家者)의 구별 없이 계율(戒律)에 따를 것을 맹세하는 것으로 일정한 의식법이 있습니다.



금강계단(金剛戒壇) <참고사진>


창건 이후 금강계단은 그 안에 안치된 사리를 친견하고자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의 참배가 이어졌습니다. 특히 고려시대 왕실과 사신들이 수차에 걸쳐 사리를 친견하였으며, 몽고의 황실도 참배하는 등 참배객이 끊이지 않는 성(聖) 스러운 장소로 여겨져 왔습니다.



금강계단(金剛戒壇): 석종형(石鍾型) 부도(浮屠)의 몸통에 새겨진 비천상(飛天像)


금강계단은 창건 이후로 고려말기 왜구에게 그리고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왜적 등에게 많은 수난을 당했는데, 그로인해 금강계단은 중수되는 일이 잦았습니다. 현재의 금강계단은 숙종31년(1705)에 중수된 이후의 모습으로 추정됩니다.


금강계단(金剛戒壇) <참고사진>


대웅전 북쪽 공간에 장방형의 울타리를 두르고 그 안에 지대석을 깔아 만든 방형의 이중기단 중앙에 앙련과 복련으로 만든 대좌를 놓고 그 위에 석종형 부도(浮屠)를 모신 모습입니다. 울타리는 한변의 길이가 13.7m이며, 하층기단은 한 변의 길이가 약 9.8m, 높이가 0.82m이며 상층 기단은 한 변의 길이가 약 7m, 높이가 0.4m크기입니다. 대좌의 지름은 1,5m 정도 그리고 부도는 높이가 1.5m 정도입니다.


 기단(基壇) <참고사진>


금강계단(金剛戒壇)  하층 기단 네 모서리에 높이 1.12m, 폭은 0.43m 정도의 사천왕상(四天王像)이 각기 하나씩, 그 밖에도 금강계단 정면에 놓인 석문의 신장상(神將像), 하층 기단 면석의 여래좌상(如來坐像) 및 천부좌상(天部坐像)  그리고 상층기단 면석(面石)에 새겨진 비천상(飛天像), 부도를 받치고 있는 대좌(臺座)에는 연꽃 조각이 새겨져 있습니다. 



● 구룡지(九龍池)



구룡지(九龍池)


자장율사(慈藏律師)께서 중국 오대산 문수보살로부터 부처님 진신사리와 가사 및 발우를 전해 받고 귀국하여 사리를 모시고자 할 때 당시 통도사는 큰 연못자리였습니다.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연못을 메우고 계단을 쌓고자 할 때 연못 속에는 아홉 마리의 악한 용이 살고 있었습니다. 자장스님께서 설법을 하여 교화시키니 그중 다섯 마리는 통도사 앞산 넘어 오룡골로 날라 가고 세 마리는 울산 삼동골로 급 히 도망가면서 산문 어귀 큰 바위에 부딪혀 피를 흘리고 갔는데 지금도 바위 표면에 핏자국이 남아 있어 사람들이 ‘용혈암(龍血岩)’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나머지 한 마리는 눈이 멀어 떠나지 못하고 사찰에 남아서 도량을 지키고자 간청하여 연못 한 귀퉁이를 메우지 않고 남겨 살도록 하였습니다. 이 용은 지금까지도 연못 속에 살면서 통도사를 수호하고 있다고 합니다. 구룡지는 심한 가뭄에도 물의 양이 절대 줄어드는 법이 없다고 합니다.




  대웅전(大雄殿)과 삼성각(三聖閣) 사이에 있는 작은 연못 구룡지(九龍池) <참고사진>


 구룡지(九龍池)



● 삼성각(三聖閣)




삼성각(三聖閣)


삼성각(三聖閣)은 고종7년(1870) 영인대사(靈印大師)에 의하여 세워졌으며, 현 건물은 1935년 경봉선사(鏡峰禪師)에 의해 중건되었습니다. 삼성(三聖)은 고려말의 고승이었던 지공(指空). 나옹(懶翁). 무학(無學) 세 분의 큰스님을 지칭하는데, 모두 고려 말기에 고승으로 추앙받는 분 이기에 세분의 진영(眞影)을 모시고 삼성각(三聖閣)이라고 하였습니다. <통도사 자료>


                                                          현판



삼성각(三聖閣)


건물 형식은 정면 3칸, 측면 1칸, 주심포 맞배지붕의 건물로, 건물내부 중앙에 석조독성좌상(石造獨聖坐像)과 독성탱화(獨聖幀畵)를, 오른쪽에 삼성탱화(三聖幀畵). 왼쪽에 칠성탱화(七星幀畵)를 봉안하였습니다.



석조독성좌상 (石造獨聖坐像)과 독성탱화(獨聖幀畵)


독성(獨聖)은 나반존자(那畔尊者)라고도 하는데 인연(因緣)의 이치를 홀로 깨달아 성인의 지위에 올라 독성이라고 합니다.


  삼성탱화(三聖幀畵):  삼화상 진영 (三和尙 眞影) <참고사진>


               왼쪽-무학대사(無學大師)                       가운데-지공화상(指孔和尙)                      오른쪽-나옹선사(懶翁禪師)


칠성탱화(七星幀畵) 


칠성(七星)은 북두칠성을 신격화한 것으로 인간의 수명과 재복(財福)이나 강우(降雨)를 관장하는 신입니다.



● 산령각(山靈閣)



 산령각(山靈閣)


산령각[산신각]은 삼성각의 동북쪽에 위치하며, 정면과 측면 각 1칸으로 아주 작은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조선 영조37년(1761) 처음 세웠으며, 철종대(哲宗代: 1850 - 1863)에 중수(重修)하고, 현 건물은 1986년에 불탄 후 주지 원명(圓明)화상에 의하여 중건되었습니다.


                                                           현판


 산령각(山靈閣) 내부의 산신탱화(山神幀畵)


산신은 가람의 외호신(外護神)인 까닭에 조각상보다 탱화로 도상화하여 봉안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응진전(應眞殿)



 통도사 응진전(應眞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6호


응진전은 조선 숙종3년(1677)에 지섬대사(智暹大師)가 처음 세웠습니다. 현존하는 건물은 원래의 것인지 확실치 않으나 조선 중기 이후 여러 차례 중수된 것으로 보입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柱心包式) 맞배붕 건물로 비교적 간결합니다.



                                                      현판


 응진전(應眞殿)  내부 불단 <참고사진>


내부에는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왼쪽에는 미륵보살, 오른쪽에는 제화갈라보살을 같이 모시고 있으며. 그 주위에 16나한상을 모시고 있는데 이것은 과거, 현재, 미래 모습의 석가모니와 16제자를 뜻합니다.


 내부 중앙의 석가여래좌상을 중심으로 왼쪽에 미륵보살, 오른쪽에 제화갈라보살 <참고사진>



■  통도사 응진전 영산회상도(通度寺 應眞殿 靈山會上圖):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8호



                               응진전 영산회상도(通度寺 應眞殿 靈山會上圖) <참고사진>


응진전 영산회상도(應眞殿 靈山會上圖)는 1775년에 불화승 정총(定聰), 유성(有誠) 등 7인이 제작한 작품으로 18세기 응진전의 영산회상도 가운데 16나한을 전면에 내세워 배치한 형태는 유일한 작품입니다.


 측면 외벽 중앙의 신장상(神將像)과 그 위의 달마도(達摩圖) 벽화 



● 명부전(冥府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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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도사 명부전(冥府殿):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95호  <참고사진>

 

명부전(冥府殿)은 정면 5칸, 측면 2칸, 겹처마, 다포계 양식의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건물 양쪽 끝은 판장문을 달아 창고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명부전(冥府殿)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시왕(十王)을 모시기 때문에 지장전(地藏殿) 또는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합니다.



                                                        현판[구하(九河)스님의 글씨]


명부전(冥府殿) 정면 어칸 위의 공포와 벽화


 

                     삼고초려도(三顧草廬圖)                   <참고사진>                   탄금주적도(彈琴走賊圖)


건물 외부 측면 공포 사이에 그린 벽화에는 유비가 관우, 장비와 함께 제갈량을 찾아 온 장면인 삼고초려도(三顧草廬圖)와 제갈량이 서성에서 달밤에 거문고를 타서 위나라 병사를 물리치는 탄금주적도(彈琴走賊圖) 등 삼국지 내용을 표현한 벽화가 그려져 있습니다.



명부전(冥府殿) 불단


명부전 내부 불단에는 지장보살상(地藏菩薩像)과 그 좌우에 저승의 염라대왕 등 시왕도(十王圖)가 모셔져 있습니다. 세상에서 온갖 나쁜 짓을 하면 사후에 저승의 시왕(十王)으로부터 심판을 받게 되며, 지장보살은 지옥 문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보살입니다.



■  통도사 명부전 지장보살도, 시왕도, 사자도 (通度寺 冥府殿 地藏菩薩圖, 十王圖, 使者圖):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549호



                     명부전 지장보살도(冥府殿 地藏菩薩圖) <참고사진>


                     통도사 지장보살도는 1798년 지연(指演)을 비롯한 화승들이 동참하여 제작한 것입니다.


                         

                             제1시왕: 진광대왕(秦廣大王)          <참고사진>         제5시왕: 염라대왕(閻羅大王) 




● 보광선원(普光禪院)


 

           보광선원(普光禪院) 위성사진 <카카오맵 참고사진>


보광선원(普光禪院)


경내 서쪽에는 보광선원(普光禪院)이라 하여 통도사의 선원(禪院)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구역에는 보광전(普光殿)과 방장(方丈) 스님[선원의 주지스님]의 거처인 정변전(正徧殿), 부속건물로 요사(寮舍)와 욕실(浴室) 등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능견난사문(能見難思門) <참고사진>


보광선원과 대웅전 앞마당 사이로 난 보광선원(普光禪院) 출입문에 해당하는 일각문(一角門)에는  "능히 보기는 해도 그 이치는 생각하기 어렵다"는 의미의 능견난사(能見難思門)이란 현판이 걸려있습니다.



보광전(普光殿)


보광전(普光殿)과 요사(寮舍) <참고사진>


보광전(普光殿) <참고사진>


보광전(普光殿)은 영조33년(1757)에 범음대사(梵音大師)가 처음 세웠으며, 현 건물은 정면 9칸, 측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1970년 당시 주지인 청하(淸霞) 스님이 건립하였습니다.



 보광전(普光殿) <참고사진>


보광전(普光殿)은 선방(禪房)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매년 하안거(夏安居)와 동안거(冬安居) 때 전국의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입니다.


산호벽수(珊瑚碧樹) <참고사진>


보광전 현판 뒤에는 "산호벽수(珊瑚碧樹)"라는 현판이 있습니다. 추사 김정희 선생의 행서글씨로 바다산호와 푸른 숲처럼 크게 번성한다는 의미입니다.


보광선원(普光禪院) 너머 '영남알프스' 능선



■ 정변전(正徧殿)



정변전(正徧殿): 방장(方丈)스님[선원의 주지스님]의 거처 <참고사진>


                   

                         정변전(正徧殿) 현판                       <참고사진>                        방장(方丈) 현판



탑광실(塔光室)



          탑광실(塔光室) 위성사진 <카카오맵 참고사진>


탑광실(塔光室) <참고사진>


탑광실(塔光室)은 통도사 주지스님의 요사 및 집무실로 설법전(說法殿) 서쪽에 위치합니다. 조선 영조33년(1757)에 범음대사(梵音大師)가 처음 세웠다고 전하며, 1968년 청하(淸霞)스님이 중건하였습니다. 정면 8칸. 측면 3칸으로 주심포 양식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현판 <참고사진>


탑광실(塔光室)은 '부처님의 은덕이 있는 방'을 뜻합니다. "노곡소축(老谷小築)" 현판은 주지실[탑광실(塔光室)] 현판 오른쪽 문 위에 걸려있습니다. 추사 김정희선생의 행서체 글씨로 '노곡(老谷)'은 추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졌던 스님의 낭호같은데 정확히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소축(小築)'은 소실(小室)과 같은 뜻입니다.



통도사 주지스님의 처소인 탑광실(塔光室)] 동쪽의 출입문입니다.



● 설법전(說法殿)



설법전(說法殿)


정면 9칸, 측면 11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큰 법회를 열 때 강당의 역할을 하는 건물입니다. 건물에는 ‘설법전(說法殿)’, ‘국지대원(國之大院)’, ‘불지종전(佛之宗殿)’, ‘대방광전(大方廣殿)’ 등의 현판을 달았습니다.


            

         불지종전(佛之宗殿)                                                          국지대원(國之大院)



              

          대방광전(大方廣殿)                                                           설법전(說法殿)


 설법전(說法殿)



국내 단일 목조건물로는 가장 큰 규모로 약 500평 넓이에 동시 수용인원 2천명까지 가능한 법당입니다. 조석예불과 각종 큰 법회는 모두 설법전(說法殿)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설법전(說法殿) 동쪽 측면


                                 설법전 내부 <참고사진>


설법전 법회장면 <참고사진>



템플스테이 수련관


설법전 지하에는 오백여명의 대중을 수용 할 수 있는 수련시설과 남녀 샤워실, 화장실, 대방을 갖추고 있으며, 템플스테이, 연수, 산림법회 등의 연수 신행공간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 통도사~신평버스터미널



14:43 / 부도원(浮屠園) 앞 선자교(煽子橋)


 무풍한송로 길가 바위에 새긴 이름들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


 15:13 / 신평버스터미널[통도사] 도착



신평버스터미널~울산역



 15:21 / 신평터미널


신평터미널 대합실에서 13번 버스도착예정시간을 오른쪽 모니터에서 확인 후 해당 플랫폼에서 대기 후 승차합니다.


버스시간표[13번 버스]


   - 신평터미널(통도사)에서 13번 버스 이용하여 울산역까지 갑니다.


   - 13번 버스가 양산역환승센터[종점] 출발후 신평터미널(통도사)까지 소요시간은 대략 40분~1시간 [교통상황에 따라 다름]

      소요됩니다. 따라서 아래 13번 버스의 양산역환승센터 출발버스시간에서 신평터미널까지 소요시간을 더해 신평터미널에서

      탑승시간을 맞추어야 합니다.



    - 양산역환승센터 출발시간표: 07:00  ~~~  13:10 / 15:00 / 16:00 / 16:40 / 17:30 / 19:00 / 19:52 / 20;20  ~~~  21:00


▷ 실제탑승 및 운행시간:


   - 15:00시에 양산역환승센터[종점]에서 출발한 13번 버스는를 신평터미널(통도사)에서 15:50 탑승 후 16:18에 울산역에 도착함




● 울산역~수서역


 울산(통도사) ↔ 수서 : SRT 이용 / 울산(통도사)역 출발시간: 16:58 PM,   수서역 도착시간: 19:20 PM


 



                 통도사(通度寺) / 양산(梁山)

                                                                       (201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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