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종사(水鐘寺)/남양주(南楊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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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와 여행(국내)/경기도

2019. 10. 29.



                 수종사(水鐘寺) / 남양주(南楊州)

 



경기도(京畿道) 남양주시(南楊州市), 운길산(雲吉山) 수종사(水鐘寺)




수종사 위치 <카카오맵 참고사진>


운길산(雲吉山: 610m) 수종사(水鐘寺) 위치도 <참고사진>


운길산(610m)은 서울에서 동쪽으로 40km,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되는 양수리에서 서북쪽으로 4km 거리에 솟아 있는 산입니다. 고종27년(1890)에 지은 《수종사중수기》에는 운길로 나오고, 그보다 오래된 《동국여지승람》에는 조곡산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산 중턱에 있는 수종사(水鐘寺)에는 지방문화재 제22호인 팔각 5층석탑과 500년이 넘는 수령을 자랑하는 은행나무가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남한강과 북한강을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경관이 뛰어나 해동 제일의 사찰이라 옛사람들은 전했습니다. 서거정, 초의선사, 정약용, 송인, 이이 등이 머물던 곳으로 시 몇 수가 전해지며, 물 맛이 좋아 차와도 인연이 깊은 곳입니다.   <다음백과>


운길산역: 운길산역울 출발하여 운길산을 오른 후 수종사(水鐘寺)에 들렀습니다.




▶  수종사(水鐘寺)




수종사 위성사진 <카카오맵 참고사진>


수종사(水鍾寺)는 남양주시 조안면 송촌리 운길산의 정상 부근에 위치하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입니다. 창건연대는 확실하지 않으며, 조선 후기 전국의 절에 대한 사정을 조사해 놓은 책 『범우고(梵宇攷)』에 의하면 세조가 이 절에 친히 행차하여 땅을 파서 샘을 찾고, 혹은 종을 발견했다고 해서 수종사라 하였다고 전하며, 1939년 석조 부도를 중수하면서 세종21년(1439)에 조성된 정의옹주(貞懿翁主) 부도로 추정하기에 조선 초기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가람 배치도


1. 대웅보전  2. 경학원  3. 선불장  4. 응진전  5. 산령각  6. 삼정헌  7. 은행나무  8. 사적기  9. 범종각  10. 보광전   11. 팔각오층석탑  12. 사리탑  13. 불이문 


남양주 운길산 수종사 일원 (南楊州 雲吉山 水鍾寺 一圓): 명승 제109호


운길산 수종사에 대한 유래는, 1458년(세조 4) 세조가 금강산(金剛山) 구경을 다녀오다 이수두(二水頭 : 兩水里)에서 하룻밤을 묵게 되었는데, 한밤중에 난데없는 종소리에 잠을 깬 왕이 부근을 조사하자, 주변에 바위굴이 있고, 굴 안에 18나한(羅漢)이 있었으며, 굴 안에서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울려나와 이곳에 절을 짓고 수종사라고 하였다고 전해옵니다. 예부터 많은 시인묵객들이 이곳의 풍광을 시·서·화로 남겼으며, 조선 세종 때 문신 서거정(徐居正,1420~1488)은 아래와같이 수종사를 ‘동방에서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격찬하며 지은 시를 남겼습니다.


양수리 수종사

가을아오매 경치가 구슬퍼지기 쉬운데

묵은 밤비가 아침까지 계속하니 물이 언덕을 치네

하계(下界)에서는 연기와 티끌이 피할 곳이 없건

상방(上方, 절) 누각은 하늘과 가지런하네 

흰구름은 자욱한데 뉘게 줄꺼

누런잎이 휘날리니 길이 아득하네

내 동원(東院)에 가서 참선이야기 하려 하니

밝은 달밤에 괴이한 새 울게 하지 말아라


수종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양수리)를 바라볼 수 있는 저명한 경관 전망지점으로 봄·여름·가을·겨울 연중 내내 신록·단풍·설경이 신비스러우며, 일출·일몰·운해 등 어느 시간의 풍광이라도 대단히 아름다운 전망을 지니고 있는 조망지점으로서 경관가치가 큰 곳입니다. 조선후기 유학자 및 실학자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은 일생을 통해 수종사에서 지낸 즐거움을 ‘군자유삼락’에 비교할 만큼 좋아 했던 곳으로 역사문화 가치가 높은 곳이며, 또한 다선(茶仙)으로 일컬어지는 초의선사가 정약용을 찾아와 한강의 아름다운 풍광을 즐기며 차를 마신 장소로서, 차문화와 깊은 인연이 있는 곳이며, 현재는 삼정헌(三鼎軒)이라는 다실을 지어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어 차 문화를 상징하는 사찰로 이름이 높습니다. <문화재청자료>


겸재 정선의 독백탄(獨栢灘) <참고사진>


겸재 정선(1676~1759)의 경교명승첩(한강의 북한강·남한강 주변경관과 한강과 서울의 인왕산, 북악산 등의 경관을 그린 화첩으로 총 33점으로 이뤄짐)중 독백탄(獨栢灘)은 현재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양수리’의 경관을 보여주는 고서화로서 그 시대의 명승지 경관과 현재의 경관을 비교 감상할 수 있어 회화 가치가 높습니다. <문화재청자료>





● 일주문(一柱門)



일주문(一柱門)


 雲吉山水鐘寺(운길산수종사) 현판



● 미륵석불(彌勒石佛)



                        미륵석불(彌勒石佛)은 2000년에 봉안된 대불(大佛)입니다.



● 불이문(不二門)



불이문(不二門)


수종사는 천왕문이 없는데 그래서인지 불이문에 사천왕상을 그려놓은 것이 특이합니다.



불이문(不二門) 내부 판벽(板壁)에 그린 사천왕(四天王)


불이문(不二門) 뒷면

 

해탈문 오르는 길


해탈문 오르는 길에서 보는 두물머리[兩水里]



● 해탈문(解脫門)



해탈문(解脫門); 번뇌의 속된 마음을 돌려서 해탈의 세계에 이르게 한다는 의미의 문입니다.


해탈문 뒷면



●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


약사여래불의 좌대는 가로 2.3m, 세로 2.3m, 높이 3.6m이며, 불상의 높이는 3.6m, 광배 높이가 4.5m, 두께 0.6m, 폭은 4.5m 입니다.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


약사여래불(藥師如來佛)



● 선불장(選佛場)



선불장(選佛場): 승방 및 종무소로 이용하고 있습니다.


                                              현판




 

 寺下淸江江上烟(사하청강강상연):

 절 아래로는 맑은 강물, 강 위로는 자욱한 물안개

 峰巒如畵揷蒼天(봉만여화삽창천):

 그림같은 산봉우리는 하늘 높이 솟았네

 有力雷公藏不得(유력뇌공장부득):

 뇌공의 큰 업적을 감출 수 없어

 玄冥榻在殿中間(현명탑재전중간):

 아득한 탑 하나가 불사(佛舍) 속에 있구나!

 百花香動鷓鴣啼(백화향동자고제):

 꽃들이 향기 풍기고 자고새 우는 것을 생각함이로다


선불장 주련(柱聯)은 초의선사 시(詩)입니다.


 수종사 선불장 앞에서 바라본 두물머리

 

수종사에서 바라본 두물머리 풍광은 아름답고 한강으로 합류하기 직전 북한강의 물길은 장관입니다. 사진 오른쪽 교각부터 신양수대교, 양수대교 그리고 북한강철교와 경의중앙선 철교가 북한강을 가로지르고 있습니다. 



● 삼정헌(三鼎軒)



 삼정헌(三鼎軒)


수종사는 삼정헌(三鼎軒)이라는 다실을 1999년 3월 지어 차 문화를 계승하고 있어 차 문화를 상징하는 사찰로 이름이 높습니다.


시다선(詩, 茶, 禪) 일체를 이룬다 하여 세 다리를 가진 솥이라는 의미의 이름을 가진 삼정헌(三鼎軒)



삼정헌(三鼎軒) 내부 <참고사진>


 삼정헌(三鼎軒) 뒷면


응진전 오르는 계단 옆의 샘


초의선사(草衣禪師)가 다산 선생 만나려고 수종사에 머물렀을때 '차(茶)하고 같이 먹으면 수종사 물이 천하일품이다' 라고 찬탄한 바 있는데, 이렇듯 수종사의 물은 예로부터 그 물맛이 일품이었습니다.  



● 응진전(應眞殿)



응진전(應眞殿)


응진전(應眞殿)을 나한전(羅漢殿)이라고도 부르는데 '응진(應眞)'이란 온갖 번뇌를 끓고 수행을 완성하여 공덕을 갖춘 부처님의 제자인 아라한(阿羅漢) 즉 '나한(羅漢)'을 뜻하는 데 나한(羅漢)은 진리에 따르므로 응진(應眞)이라고도 부릅니다. 사찰에서는 일반적으로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부처님의 10대제자 중 아난(阿難)과 가섭(迦葉)존자를 협시(夾侍)로, 다시 그 주위에 16나한이나 5백 또는 백팔나한상을, 끝부분에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을 함께 봉안합니다. 때로는 아난과 가섭존자 대신에 미륵보살(彌勒菩薩)과 제화갈라보살(提和竭羅菩薩)을 안치하여 삼세불(三世佛)이 이루어지게 배열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후불탱화(後佛幀畫)로는 주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나 16나한도가 많이 봉안됩니다.


 응진전(應眞殿): 암반 위에 자리잡고 있는 응진전은 정면3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현판


 응진전(應眞殿) <참고사진>


수종사 응진전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측에 제화갈라보살, 우측에 미륵보살이 봉안되어 있으며 삼존불의 좌우에는 16나한상과 그 위쪽에 108나한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삼존불의 좌우의 16나한상과 그 위쪽에 108나한상 <참고사진>



응진전(應眞殿) 백(白)삼존불: 수종사 응진전의 삼존불은 흰색의 삼존불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 산령각(山靈閣)



 산령각(山靈閣): 산신탱화를 모신 전각으로 산신각이라고도하며 정면1칸, 측면 1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입니다.

        

산신도(山神圖)


현재 불교에서는 산신을 가람수호신과 산 속 생활의 평온을 지켜주는 외호신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산신각은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을 모시는 건물이기 때문에 ‘전(殿)’이라 하지 않고 ‘각(閣)’이라 하며, 이는 한국 불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입니다. 현재 국내 대부분의 사찰에는 산신각이 갖추어져 있으며, 자식과 재물을 기원하는 신신기도가 많이 행해지고 있습니다.


  조망(眺望) 두물머리: 수종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산령각(山靈閣)에서 바라보는 두물머리의 풍경입니다.



● 사리탑(舍利塔), 삼층석탑(三層石塔), 팔각오층석탑(八角五層石塔)



 사리탑(舍利塔), 삼층석탑(三層石塔), 팔각오층석탑(八角五層石塔)


수종사(水鐘寺)에 전해오는 사리탑(보물 제2013호)과 팔각오층석탑(보물 제1808호) 및 삼층석탑(비지정)은 함께 대웅보전(大雄寶殿)과 선불장(選佛場) 사이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사리탑(舍利塔), 삼층석탑(三層石塔), 팔각오층석탑(八角五層石塔)


  사리탑(舍利塔), 삼층석탑(三層石塔), 팔각오층석탑(八角五層石塔)



■  사리탑(舍利塔): 보물 제2013호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南楊州 水鐘寺 舍利塔): 보물 제2013호[2019년 1월 25일 지정]

 
수종사 사리탑(水鐘寺 舍利塔)은 1995년 8월 7일 '수종사부도'로 경기도의 유형문화재 제157호로 지정되었다가, 2019년 1월 25일 '수종사사리탑'으로 대한민국 보물 제2013호로 승격되었습니다. 수종사 사리탑은 지대석으로부터 기단부와 탑신부 그리고 옥개석과 상륜부를 완전히 구비하고 있으며, 조선초기 양식으로 건립연대가 분명하고 각 부에 새겨진 문양의 우수성과 승탑의 형식으로 정혜옹주를 추모한 특이성으로 보아 조선 초기 왕실의 불교신앙과 그 조형의 새로운 경향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보물로 지정가치가 있습니다.

<문화재청 자료>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 (南楊州 水鐘寺 舍利塔): 보물 제2013호 <참고사진>


사리탑은 총 높이 2.3m로, 형태는 전체적으로 8각을 기본으로 하여 2단을 이루는 기단(基壇) 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옥개석과 머리장식을 얹은 모습입니다.



  기단부(基壇部) <참고사진>


기단부는 일반적으로 상·중·하의 3단으로 구성되는데, 이 부도는 지대석 위에 2개의 팔각돌을 간략하게 올렸습니다. 하층 기단석의 각 모서리에는 동자주를 새기고, 그 위의 각 모서리 부분에 두꺼비 형태의 동물을 새겨 장식하였습니다. 상층 기단은 직사각형의 액(額)을 상하로 구획하여 그 안에 문양을 새겼습니다.



 탑신부(塔身部) <참고사진>


탑신석은 둥근 구형(球形)으로 표면에는 구름과 용을 조각하였으며, 탑신석 상부를 돌출하여 옥개석 하면에 조립한 특색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마가 두터운 옥개석의 낙수면에는 “太宗 太后 / 貞惠 翁主 / 舍利 造塔 / 施主 文化 柳氏 / 錦城 大君 正統 / 四年 己未 十月日”의 명문이 음각되어 있습니다. 이를 통해 조선 세종 21년(1439)에 왕실의 발원으로 제작되었으며, 그 주인공은 태종(太宗) 이방원(1367-1422)의 딸 ‘정혜옹주(貞惠翁主: ?-1424)’로 확인됩니다.



 옥개석낙수면명문(屋蓋石落水面銘文) <참고사진>


 太宗 太后 / 貞惠 翁主 / 舍利 造塔 / 施主 文化 柳氏 / 錦城 大君 正統 / 四年 己未 十月日

(태종 태후 / 정혜 옹주 / 사리 조탑 / 시주 문화 류씨 / 금성 대군 정통 / 사년 기미 십월일)


                               상륜부(相輪部) <참고사진>


상륜부(相輪部)는 옥개석과 한 돌로 조성된 노반(露盤: 머리장식 받침) 위로 복발(覆鉢: 노반 위에 얹히는 것으로 사발을 엎어 놓은 듯한 형상)과 보주(寶珠: 구슬모양 장식) 등의 머리장식이 잘 남아 있습니다. <이상 문화재청 자료>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 사리장엄구 (南陽州 水鍾寺 舍利塔 舍利莊嚴具): 보물 제259호





                      금제구층탑(金製九層塔)


   청자유개호(靑磁有蓋壺), 은제 도금 사리기(銀製 鍍金 舍利器)


남양주 수종사 사리탑 사리장엄구(南陽州 水鐘寺 舍利塔 舍利莊嚴具)는 경기도 양평군에 있는 수종사 석조 사리탑을 1939년 해체, 수리할 때 청자유개호(靑磁有蓋壺), 금제구층탑(金製九層塔), 은제 도금 사리기(銀製 鍍金 舍利器)가 발견되었고, 당시 금제구층탑과 은제 도금 사리기는 청자유개호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은제 도금 사리기 안에서는 청, 백색 사리 14알이 들어있는 수정사리함이 나왔습니다.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보물 제259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문화재청 자료>



 ■  삼층석탑(三層石塔)



                      삼층석탑(三層石塔): 내용을 알 수 있는 자료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  팔각오층석탑(八角五層石塔): 보물 제1808호



                        남양주 수종사 팔각오층석탑 (南陽州 水鐘寺 八角五層石塔): 보물 제1808호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조선시대의 석탑으로 조선초기 석탑의 형태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원래 이 석탑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모이는 양수리 지역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동편의 능선 위에 세워져 있었으나 현재는 석조사리탑, 삼층석탑과 함께 대웅보전 옆으로 옮겨져 있습니다. 수종사 팔각오층석탑은 고려시대 팔각석탑의 전통을 이어 조선시대에 건립된 석탑으로 출토된 사리장엄과 명문을 볼 때, 건립연대는 늦어도 1493년에 건립된 이래 1628년에 중수했음을 알 수 있으며, 왕실 발원의 석탑임도 확인됩니다. 또 양식을 보면 기단부는 불상대좌의 양식이고, 탑신부는 목조건축의 양식이며, 상륜부는 팔작기와지붕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런 형식은 현재까지 조사된 조선시대에 조성된 석탑 중 유일한 팔각오층석탑입니다.  <문화재청 자료>




                       금동불감(金銅佛龕) <자료사진>


수종사 오층석탑의 1층 탑신에서 발견된 높이 20.15cm, 폭 18cm의 이 불감은 성종의 후궁인 영빈 김씨가 발원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으며, 옥개석 내부에 홍치6년으로 기록된 묵서에 의해 1459년과 1493년 사이에 제작되었던 작품으로 추정됩니다. 동판을 조립하여 만든 전각형의 불감으로 정면에는 여닫이문을 달았고 상면에 팔작지붕을 얹어 전각의 형상을 나타내었으며, 앞면에는 꽃살문과 보상화문으로 장식하였고 좌,우면과 뒷면에 그림을 그려 넣었습니다. 여닫이문을 열면 표면을 두드려 나타낸 돋을새김으로 표현된 감실 내부의 삼존불과 문 내부의 인왕상을 볼 수 있습니다. 삼존불과 인왕상은 투박한 형상으로 표현되었지만 당당한 어깨와 세장한 신체를 통해 조선 전기 불상의 특징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관음·지장과 아미타설법장면을 나타낸 것으로 보이는 좌·우면과 뒷면의 그림들도 역시 간략화·경직화된 필선들에서 고려시대 불화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금동불상군 <자료사진>


이 탑에서는 1957년 해체수리 시에 1층 탑신과 옥개석, 기단 중대석에서 19구의 불상이 발견되었고, 1970년 이전 시에는 2층, 3층 옥개석에서 12구의 불상이 발견되었습니다. 불상 가운데는 1493년(성종 24)과 1628년(인조 6)의 명문이 각각 새겨진 것이 있어 이 탑의 창건과 보수 시점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불상들은 대체로 서로 비슷한 양식을 하고 있으며, 신체에 비해 얼굴이 크게 표현되었고 다소 웅크린 듯한 형태 등에서 조선시대 금동불의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함께 발견된 묵서명을 통해서 이 불상들 가운데 태종의 후궁이었던 명빈 김씨(?-1479)가 발원조성하고, 성종의 후궁들이 홍치 6년(1493)에 납입했다고 하는 불상 2구(석가여래 1구와 관음보살 1구)와 인목대비(정의대왕대비)의 발원으로 조성된 금동불·보살상들, 숭정원년(1628)에 화원[조각승] 성인(性仁)이 조성한 금동비로자나불좌상(대좌바닥에 명문음각)이 확인되어, 석탑 건립의 하한은 1493년이며 1628년에 중수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문화재청 자료>

기단부(基壇部)


탑의 형태는 지대석 위에 팔각의 대석을 올리고 그 위에 불상의 팔각연화대좌와 같은 형식의 기단이 올려져 있습니다. 팔각 대석의 각 면을 2등분하여 장방형의 액(額)을 새기고 그 안에 안상(眼象)을 표현하였으며, 같은 형태의 안상은 기단의 받침과 탑신 받침에도 통일되게 새겨져 있습니다. 기단부는 상대 앙련석과 하대 복련석에 16엽의 연화문이 장식되어 있는데, 연판(蓮瓣)에는 고려중기부터 유행했던 화려한 꽃머리 장식이 새겨져 있고, 팔각 중대석에는 각 모서리에 원형의 우주(隅柱)가 입체적으로 조각되었어 있습니다.

<문화재청 자료>


                                              탑신부(塔身部)


5층의 탑신 역시 팔각 모서리에 원형의 우주가 새겨져 있고 옥개석에는 각각 3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습니다. 옥개석 처마의 부드러운 곡선과 원형 기둥, 옥개받침 등은 목조 건축을 석재로 옮긴 모습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상륜부(相輪部)


정상부에는 합각지붕 형태의 삼각형 문양이 조각된 복발과 보주가 올려져 있습니다.



● 대웅보전(大雄寶殿)



 대웅보전(大雄寶殿)


대웅보전은 1975년에 지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입니다.  대웅보전은 사찰의 중심인 대웅전(大雄殿)을 격을 높여서 부를 때 쓰며, '대웅(大雄)'이란 부처의 덕호(德號)입니다.


대웅보전 주련(柱聯)에는 화엄경 "여래현상품"의 핵심 게송이 적혀있는데 이는 지혜의 자리에서 조금도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합니다.


佛身充滿於法界(불신충만어법계)   부처님 몸이 온 세계에 가득하니

普現一切衆生前(보현일체중생전)   일체 중생 앞에 모두 나타나셨네

隨緣赴感靡不同(수연부감미부동)   인연따라 가지 않는 데 없지만

而恒處此菩提座(이항처차보리좌)   언제나 보리좌에 계시네


대웅보전의 삼존불(三尊佛)


내부에는  주불(主佛)로 비로자나불(법신불/法身佛)을, 오른쪽에는 노사나불(보신불/報身佛)을, 왼쪽에는 석가모니불(응신불/應身佛)을 모신 삼세불상 및 칠성탱 앞에 나한상 존상 1위가 있습니다. 불화로는 영산회상도를 비롯해서 지장탱, 칠성탱, 신중탱 등이 있으며 그밖에 근래에 조성한 범종 1구가 있습니다.


 대웅보전(大雄寶殿)의 좌,우에는 해치(獬豸)가 지키고 있습니다.



● 경학원(經學院)



경학원(經學院)


경학원은 사찰에 따라 다르나 도서관으로 이용되거나 스님들의 공부방으로 사용되는 건물입니다.



 경학원(經學院)



● 범종각(梵鐘閣)



범종각(梵鐘閣)과 은행나무


                                             

                                              도일(度一)스님 글씨


범종각(梵鐘閣)


                                               범종(梵鐘)


                                     수종사 범종의 당좌(撞座)위에는 "雲吉山 水鐘寺, 羅漢神鐘"이라고 새겨져 있습니다.


석축(石築) 위의 범종각(梵鐘閣)



● 은행나무(銀杏木)



보호수, 은행나무



세조를 감동시킨 종소리(은행나무)


부스럼을 앓던 세조가 오대산 상원사에서 문수보살을 만나 깨끗이 낫고 한강을 따라 환궁하는 길이었다. 양수리까지 오니 밤이 이슥해 쉬어 가는데 운길산에서 종소리가 들려왔다. 신하가 알아보니 천년고찰 터 암굴 속에 십팔 나한상이 앉아 있고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떨어지면서 종소리를 내는 것이라 했다. 세조는 이곳에 절을 복원해 수종사라 부르고 이 은행나무(500년)를 하사했다고 한다. <안내판참조>


은행나무 옆에는 '송촌리'로 향하는 하산길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있습니다. 이정표 옆에는 '운길산 수종사와 한음 이덕형 선생' 안내문이 있습니다.




● 사적기(寺跡記)



                                              수종사 사적기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이곳 운길산 수종사는 멀리 신라시대부터 내려오는 옛 가람이다. 고려 태조 왕건이 상서로운 기운을 좇아 이곳에 이르러 구리종을 얻음으로써 부처님의 혜광을 통해 고려를 건국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1439(세종21년)에 이르러 세종의 여섯째아들 금성대군이 정의옹주의 부도를 세우고 금제 9층탑 수정사리함(사리 14과)을 청자 항아리에 담아 부도안에 모셨다. 1458(세조4년) 세조가 두물머리에서 머물다 새벽에 들려오는 종소리를 따라 올라와보니 그 종소리는 다름아닌 바위굴 속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였다. 세조는 굴속에서 18 나한을 발견하고 5층 돌계단을 쌓았으며 팔도 방백에 충창을 명하였다. 도량은 이러한 연유에 의해 수종사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때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고 다음해인 1459년에 수종사 탑을 건립하였다.
1493(성종24년) 후궁 명빈 김씨가 목제 불감과 설법도가 그려진 금동불감에 금동불보살상등 14좌를 봉안하고 후궁들의 발원문도 함께 넣어 탑안에 모셨다. 1628(인조6년) 정의대왕대비가 금동비로자나불좌상을 시주 하였으며 1890년 주지 풍계혜일은 고종황제로부터 두 차례 시주를 받아 수종사를 중창하였다. 이때 불상에 빛이 발하였다. 1939년 일조 태욱 화상이 중수하였으나 6.25 전쟁때 불에 탔다. 1974년 혜광화상이 대웅보전을 1981년 규원당 대웅화상이 약사전과 종각을 지었다. 1999년부터 금해당 동산은 응진전 선불장 삼정헌 경학원 미륵불 일주문 등을 세워 사적을 완성하며 서거정이 천하 제일의 명당이라 찬탄했던 절의 풍광을 다시 복원하였다.
수종사는 조선후기 초의 다산, 추사를 비롯한 다선 묵객들이 당색과 신분을 따지지 않고 함께모여 담론을 했던 사회변혁의 꿈이 깃든곳이다. 후인을 위해 수종사와 함께했던 선인의 발자취를 따라 사적기를 적는다.

                                           <불기 2551년 동산짓고 선주석 쓰다>



● 보광전(普光殿)



보광전(普光殿);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 건물입니다.






                                      수종사(水鐘寺) / 남양주(南楊州)

                            (19.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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