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세대

늙은도령 2012. 5. 30. 23:30

하지만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시고 다시 시작하십시오. 도저히 걸어갈 수 없을 만큼 아득한 거리가 아니라면 걸어가십시오. 도저히 계산할 수 없을 만큼 난해한 문제가 아니라면 도전하십시오. 도저히 외울 수 없을 만큼 복잡한 글이 아니라면 암송하십시오. 도저히 돌파할 수 없는 일이 아니라면 부딪치십시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역경이 아니라면 피하지 마십시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 나타나면 의심하고 파고드십시오.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목표가 아니라면 꿈꾸고 꾸준히 실천하십시오. 생각하고 경험하고 회의하고 물어보고 반증하고 확인하십시오.

 

기억하고 연상하고 분석하고 종합하고 답을 내서는 몸과 정신 양면에서 체득하고 단순화해 습관처럼 몸에 익히십시오. 잘못된 현실에 대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소수가 다수의 이익을 착취하는 지배 시스템에 대한 여러분의 고통스런 투쟁이 후대의 세대에게는 당연한 권리와 삶이

될 수 있도록 당장 지금 무조건 시작해야 합니다.

 

 

제가 20대에 읽은 한 편의 영화평론이 생각납니다. 권위주의 정권에 의한 탄압이 최고조에 이른 당시에 상영은 고사하고 배우의 더빙조차 불가능해 일반인이 더빙을 해야 했던 ‘닫힌 교문을 열며’라는 초라하기 그지없던 독립영화에 대한 평론이었지요. 어느 분의 평론이었는지 가물가물하지만, 영화에 나오는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말하기를 세상에는 L자로 시작하는 세 가지 아름다운 단어가 있다고 했습니다.

 

제 기억이 맞으면 ‘Love 사랑, Liverty 자유, Lavor 노동’이었습니다. 그런데 영화평론가가 자신은 L자로 시작하는 세 가지 단어를 더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Little, Low, Lean’ 즉, 작고 낮지만 서로 기대는 사람만큼 아름다운 모습은 없다고 말하면서요.

 

저는 여러분들이 그랬으면 합니다. 마르크스의 계급혁명론은 받아들일 수 없고 이미 생명을 다했지만 그의 기념비적인 모토인 ‘견고한 것은 모두 녹아 사라진다(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는 지금도 유효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정말 안타까운 건 신자유주의의 약육강식 논리가 세상의 모든 부분을 장악한 현재에도 여전히 마르크스의 망령이 유효하다는 겁니다. 현 지배 시스템은 여섯 가지 기축 집단의 논리와 행태에 의해 움직입니다. ‘사탄의 맷돌’인 자유방임 금융자본주의, 지속적인 성장과 차익 거래로 일관하는 가격 파괴의 대규모 할인, 정치 앞에서는 반드시 타락하는 고위 관료들과 이해관계로 얽혀 있는 한정적인 인력풀, 그리고 그 시스템을 굳건히 뒷받침 해주는 거대 언론들, 유권자의 표와 단기적인 치적과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는 대다수 정치인들, 이들에게 점점 완벽해가는 통제장치인 디지털 전자기기와 인터넷을 제공하는 과학·기술만능주의자들입니다.

 

유전자 사슬처럼 단단하게 얽혀 있는 이 여섯 가지 중에서 단 하나의 고리만 끊으면 극소수에게만 유리한 현재의 지배 시스템을 일거에 무너뜨리지 못하더라도 희생하고 노력한 만큼 성장의 열매를 나눠 갖지 못하는 절대다수를 위한 거대한 전환이 시작될 것입니다.

 

모든 변화를 부정하는 플라톤의 유토피아나 모호하기 이를 데 없는 헤겔의 변증법처럼, 현 기득권의 이익과 분배되지 않는 성장에 유리한 신자유주의(또는 자유민주주의) 세계화와 인센티브 위주의 단기 수익에 집착하는 금융자본주의는 인류가 지향하거나 추구해야 할 민주주의도 경제체제도 아닙니다.

 

토크빌이 말했던 것처럼, 자유에 의해 성장하지만 그 부작용을 바로잡아 지속가능한 세상을 만드는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평등을 지향하는 민주주의’는 시민의 정치 참여의 폭을 넓히고 절대 다수의 이익을 정책에 반영하는 정치사상이자 경제이데올로기이며 인류가 지향해야 할 진정한 가치체계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깨어 있는 시민들의 참여와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순정한 분노에서 비롯된 연대와 투쟁, 실천적 삶을 통해서만 얻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존 스튜어트 밀이 노동계급의 권리에 대해 말할 때, 지금으로 말하면 주로 비정규직의 권리가 되겠지만, 밀이 그들의 권리가 의회에서 대표될 것을 호소하며 말했듯이 ‘당연한 옹호자가 부재할 경우 배제된 사람들의 이익은 항상 간과될 위험이 있다’는 것일 잊으시면 안 됩니다.

 

또한 그가 말한 ‘소신은 그 자체를 가장 위대한 적극적인 사회적 힘의 하나’이고 ‘신념을 가진 한 사람은 이해관계만을 가진 99명과 맞먹는 하나의 사회적 유산’이라며 정치적 다수의 횡포에 맞서 소수의 권익을 대변하려 했던 간절한 호소도 지금처럼 불의한 정치·경제·사회적 상황에 적용하면 ‘1%를 위한 99%의 희생’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는 저항과 동일한 게 됩니다.

 

이렇게 명경지수처럼 확고한 신념은 ‘모두가 Yes를 외치는 상황에서 No라고 말함으로써’ 세상의 물길을 바른 길로 유도할 수 있는 단초를 만들며 99%의 연대는 절대 권력을 휘두르는 1%의 정의롭지 못한 신자유주의 시스템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사형대에 서있는 사람이 내일은 기념비적인 인물로 추앙받을 수 있고 오늘은 하늘을 찌를 듯한 권세를 갖고 있는 사람이 내일은 민심의 사형대에 오를 수 있는 게 인류의 역사입니다. 여러분들이 어느 계층에 속해 있는지, 어떤 집단에 속해 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어느 누구라도 삶의 방식을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은 채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권리가 있습니다. 그 결정에 세상 누구도 간여할 수 없습니다. 다만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자식과 동반자, 친구와 동시대의 사람들, 조상과 후대에게 물었을 때, 인류가 지향해야 할 보편적 진보의 과정에서 ‘나는 어느 편에서 서서 무엇을 위해 이렇게 살았다’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자유인으로써 평등을 얘기할 수 있는 성장을 이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스스로에게도 그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은 그런 삶을 선택하십시오. 우주의 역사를 통틀어 계산 불가능한 행운이 쌓이고 축적돼 태어난 확률적으로 엄청난 경쟁을 뚫고 태어난 고귀하고 신비하기까지 한 지적생명체가 여러분들입니다. 그 무엇으로도 대체가 불가능한 존엄한 존재가 여러분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들 모두에게 주어진 삶과 죽음이란 어떤 종교적인 교의와 주장에 의하더라도 단 한 번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할 때만이 자신이 마땅히 가야할 길이 보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인류가 지향해야 할 민주주의는 그 자체로 주어지고 굴러가는 게 아닙니다. 자유와 평등 중에서 그 어느 것도 남의 수중에, 소수의 지배 시스템에, 운명이란 무책임하고 모질기만 한 것에 넘겨주지 마십시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통제하는 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야만 한다’는 정치학의 모토를 여러분의 손으로 실현하십시오.

 

스스로 움직이고 투쟁하지 않으면 어떤 것도 거저 주어지지 않는 게 세상의 이치이자 불변의 진리이며 그것이 참여 민주주의 본질이자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평등을 주장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입니다. 선택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을. 지금부터 죽음에 이르는 순간까지의 온전한 나를. 그런 나에게 조금이라도 빚진 것이 있다면 당장 지금부터 갚아나가십시오.

늙은 도령님꼐 한윤형의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책을 권해 드리고 싶습니다. 시중에 나와있는 여러 20대의 설명하는 책들 중에서 한국의 20대들이 처해있는 현실과 20대의 심리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담론들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는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읽어보려고 찜은 해두었는데 아직 구입하지 못했습니다.
최대한 빨리 구입해 읽어볼게요.
다른 분이 조선왕조에 대해서 언급을 하셨는데, 도서관에 가셔서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이라는 만화책도 한번 빌려보세요 재미있고, 조선왕들에 대해서 쉅고 자세하게 이해할 수 있는 책입니다. 참고로 개인적으로는 정조편이 가장 인상이 깊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