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방송

늙은도령 2012. 10. 11. 02:15

싸이의 초대형 성공이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것은 마치 김연아 선수가 세계를 정복했을 때를 떠올린다.

모든 언론과 방송이 싸이로 시작해 싸이로 끝나는 형상이니 말이다.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모든 것이 무조건 미화되는, 그런 광기까지 느껴지는 치기 어린 찬사들.

그에 기생하는 방송들의 싸이와 한류 우려먹기.

 

 

귀국 기자회견장에서 빌보드 메인 차트 1위에 오르면 서울시민들이 가장 많이 모일 수 있는 곳에서 반나체 무료 공연을 하겠다는 다분히 마케팅적 발언에 서울시 전체가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야 했던 모습들.

 

 

이미 오래전에 약속된 행사가 있어 공연을 허락할 수 없다고 하면 네티즌들의 뭇매를 견딜 수 없을 것이 분명하기에, 서울페스티벌의 공연마저 하루 미루는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박원순 시장의 공적 약속의 파괴들.

 

 

공연이 하루 미뤄지는 것까지 감수했던 분들이 하룻밤 사이에 차갑게 식어버린 공간에서 쓸쓸하게 공연하며 느낄 수밖에 없었을 자괴감.

 

 

점점 매스 미디어를 가득 채워가는 싸이의 광고들.

성공한 자의 이미지를 마지막 한 방울까지 빨아먹는 기업들의 흡혈귀 마케팅.

그들만의 경제가치 운운하는 것은 불변의 레퍼토리.

 

 

승자독식에 열광하며 평등을 외치는 자들.

김연아의 주류광고를 욕했으면서도 싸이가 공연 중에 소주를 들이키는 것을 그냥 넘어가는 사람들.

 

 

B급 정서의 세계 제패를 얼른 주류로 편입시키려는 문화평론가들의 싸이 찬양들.

김장훈과의 불화설에서 드러나는 지적재산권에 대한 이중적 시선들.

 

 

싸이가 대학공연 다닐 때냐며, 국위 선양을 떠벌리며 흥분하던 일부 네티즌들.

그래서 김장훈을 공격해 싸이와의 아름다운 화해(?)를 강요한 사람들.

 

 

싸이의 ‘right now’만을 풀어줄 수 없어, 19금딱지를 붙였던 여러 가수들의 곡들을 동시에 풀어준 여성가족부의 발 빠른 항복.

 

 

참으로 천박하고 천지개벽할 변화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다.

지난 날 욕먹은 것들이 이제는 미담이 되는 화려한 변신들 속에서 아직도 아날로그적 감성에 빠져 있는 필자는 시대의 가치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모르겠다.

 

 

모든 곳에서 소통되는 디지털 시대에 꼼짝없이 갇혀버린 소외된 인간의 시대유감이 이것 말고는 다른 것이 어디 있겠는가?

빛의 속도로 연산하는 양자 컴퓨터가 나오면 나 같은 소통의 단절자들도 디지털 시대의 유목민에서 벗어날 수 있기는 할까?

 

 

피할 수 없다면 즐기라 했지만, 나는 그것이 도무지 안 된다.

몇 주만에 한 사람의 노동의 가치가 이렇게까지 달라져도 되는 것인지, 매스 미디어에 의해 포위된 신자유주의 세상의 단면이 싸이와 대한민국을 중심으로 무섭게 타오르고 있다.

 

 

정체성이 참 모호한 분인듯... 흠~
저는 현상의 이면을 보고자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특히 그 현상이 너무나 급작스러워 휩쓸리기 쉬울 때는 의식적으로라도 한 발 물러서 봅니다. 내가 대세라고 하는 흐름에서 놓치고 있는 것이 있지 않을까, 그런 관점으로 보면 좀더 객관적인 눈을 갖게 되지요. 싸이의 성공과 상관없이 말입니다.

사실 저는 YG 식구들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싸이의 성공이 우리나라 음악의 다양성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요.
우리는 한 발 물러서는 여유가 필요할 듯합니다
아이티 강국답게? 신속하게 시선집중하고 아님 왕따되는 나라...
우리 아니면 넘, 놈이 되는 나라 아니되길 바라며
공감, 썸업!!!
묵묵한 걸음이 성공으로 이어지는 것들이 아직도 많은데, 정보통신의 특징이란 속도에 있다 보니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받아들이고 너무 쉽게 소모해서 버리지요. 안타까운 삶의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