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늙은도령 2012. 10. 15. 19:15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정책 공방이 가열되고 있지만, 그 방향이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줄푸세’를 포기하지 않은 한 박근혜 후보의 경제민주화 정책들은 논의의 대상조차 되지 못하는 형용모순이기 때문에 언급할 필요를 느끼지 못합니다.

 

 

먼저 본인과 필자 형과 동생의 경험을 먼저 얘기함으로써 현재 경제민주화 논의들이 얼마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인지 밝히고자 합니다.

 

 

여러 글에서 밝혔듯 필자의 동생은 S그룹 중 플라스틱 사업을 하고 있는 회사의 유럽법인장입니다.

필자의 동생은 과장 시절에서 임원에 이르는 10여 년간 노키아나 IBM, 도요타, 폭스바겐, 소니, 마쓰시다와 중국의 국영기업 등 초대형 기업에 플라스틱 제품을 납품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습니다.

 

 

이중에서 전성기 시절의 소니와 노키아를 필두로, 전세계 자동차 부품 기업이면 누구나 납품하기를 원하는 도요타의 협력업체 리스트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에서 실무자들을 설득하는 데에도 10여 년이 걸렸습니다.

 

 

그 기간이 길었던 만큼 요구 조건도 까다로웠고 설득에 필요한 출장비용 등 동생이 지출해야 할 비용도 만만치 않게 들었습니다.

아무리 S그룹 계열사라고 해도 이미 거래하고 있는 업체(우리나라의 기준으로 하면 거의 대부분 대기업이다)를 밀어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좋은 조건을 제시해야만 했습니다.

 

 

독일이나 유럽의 기업처럼 선발 주자가 아니면, 현재의 삼성이나 현대, LG 정도의 거대 재벌이 아니면 이 정도까지 오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아예 그들이 만나주지도 않는데 무슨 수로 그들을 뚫을 수 있단 말입니까?

 

 

필자가 문자메시지 사업 때문에 북경에서 차이나모바일의 부장과 미팅을 가질 때도 그는 저에게 명함조차 주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유인즉슨 그 명함으로 사기 치는 기업관계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냥 속아넘어가는 척 해주었지만 그것이 현실이었습니다. 

 

 

하긴 필자가 미팅 중에도 MS니 IBM이니, 모토로라니 하는 초국적기업들의 임직원들이 수시로 들락거렸으니 한국의 작은 벤처기업 사장이야 눈에 들어오기나 했겠습니까?

당시에 공산당 고위 간부를 끼고 들어갔으니 만나주기는 한 것이었지만, 그들은 몇 백 억짜리 사업을 운운하며 우리가 어떻게 대형 납품을 담보할 수 있는지 그것부터 확인하려 했습니다.

완곡한 거절이었지요.

 

 

아무튼 필자의 동생이 오랜 투자 끝에 실무 책임자(대부분 부장급)를 설득했다 해도 최종 사인을 받아내는 것은 하늘에서 별 따기보다 더욱 어려웠습니다.

그들의 판매가 전세계적으로 이루어지는 어마어마한 양이라 만에 하나 품질 사고가 일어났을 경우에 어떤 보상책을 제시할 수 있는지, S그룹 계열사의 임원이라고 해도 믿을 수 없다는 것이었죠.

 

 

결국은 최종 사인을 위해 이른바 오너 가문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그제야 최종 사인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납품이 시작된 이후에도 이익은 거의 없었습니다.

요구 조건이 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것도 있었지만, 서로 간에 신뢰가 쌓이기 전까지는 납품 자체를 영광으로 여기고 알아서 기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나마 노키아의 경우에는 5년 단위로 까다로운 조건을 맞춰주느라 이익도 별로 내지 못한 협력사에게 자신들의 성과급을 나누어주기 때문에 애플이나 도요타처럼 자기들 이익에만 집착하는 기업에 비하면 상당히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기업이었습니다.

사실 미국이나 일본 기업들은 외국의 협력사들과의 이익 공유라는 것을 일절 하지 않습니다.

 

 

물론 힘겨운 납품 초창기(길게는 2~3년)를 넘기면 이익이 발생하기는 합니다.

제조업의 경우 제품의 세팅이 일단 이루어지면 쉽게 부품을 교체하기 힘들기 때문이죠.

그렇게 이익이 나기 전까지는 노키아나 도요타 납품이란 레퍼런스를 활용해 다른 기업과의 거래에서 이익을 챙길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대기업들이라고 해도 그들에게 납품하려면 상당한 자금 여력과 수년 간의 손해를 감수할 수 있을 정도의 자생력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중견기업까지 죽어라고 재벌 업체를 끼고 해외진출을 모색하는 것이며, 외국의 초국적기업들도 그것을 원하지 작은 회사와 다이렉트로 거래하는 경우란 벼락에 맞을 확률보다 높다고 봐야 합니다.

 

 

즉, 지랄 같지만 해와 수출 위주의 제조업체의 경우 재벌 체제라는 것이 얼마나 유리한 것인지 인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규모가 거대할수록 유리하게 전세계 산업구조가 구축됐기 때문에 민주적이고 윤리적인 기업이라 해서 특별 대접을 받는 것이란 있을 수도 없습니다.

 

 

경제민주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시대의 정신이자 과제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세계 기업과의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데 절대적으로 유리한 재벌 체제의 경쟁력을 흔드는 것이라면 정말 위험한 발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제 안철수 후보가 주장한 계열사분리명령제 같은 경우에도 삼성이나 현대자동차그룹 같은 경우에는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필자의 동생이 임원으로 있는 기업도 지난 2008년 금융 위기가 발생했을 때, 공장을 돌리는 것이 유리한지 불리한지 계산해 일정 기간 가동을 중지하기도 했습니다.

 

 

즉, 삼성이나 현대자동차그룹에 속한 기업군 중 이익을 내지 못하는 부실 계열사인 경우 살아남을 방법이 없다는 뜻이지요.

만일 정부가 부실한 계열사분리명령을 내려준다면 오히려 환영하면 했지 반대할 이유가 없습니다.

 

 

LCD사업에서 이익이 나오지 않자 삼성그룹이 회사를 분사한 것이 무엇을 뜻하겠습니까?

회사를 정리하거나 대량해고를 하면 엄청난 저항을 받기 때문에 그룹 전체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아예 부실 부분을 따로 떼서 분사시키는 것입니다.

헌데 정부에서 대신 처분을 해주니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중소기업 문제도 그렇습니다.

필자의 형이 전직 회사의 연구소장으로 있으며 햇반 포장용기를 개발했으며 링거팩을 국산화한 당사자라는 것을 밝힌 글에서 논했듯, 영업적인 면에서 대형 제약사의 벽에 막혀 대형 병원들을 뚫을 수 없었습니다.

 

 

필자의 형은 거대 제약사들과의 경쟁에서 이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며, 이것은 민간 기업 간 거래라 국가가 도와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본인도 국내 굴지의 재벌과 계약했다가 그 재벌이 계약을 지키지 않아서 모든 재산을 날리고 온갖 병까지 얻었습니다.

 

 

헌데 그 재벌과 재판을 하려면 공탁금을 걸어야 했고, 판결이 나오기까지 재판을 끌고가는 것이 부지하세월이라 필자가 다 뒤집어쓰고 무너져 내린 것이지요.

정부가 나선다 해도 사법부까지 가야 결론이 나기 때문에 경제민주화라는 것이 법을 바꾼다 해서 쉽게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국가가 대량 구매할 수 있는 소프트웨어 산업과 제조업의 차이는 현장 경험이 없으면 이해하기 힘듭니다.

애플이 자신의 시장을 갉아먹은 삼성전자의 도전에 흔들리는 것을 방지하고자 소송을 걸고 납품처를 옮기는 과정이 몇 년이나 걸리는 것도, 노동 착취의 악명으로 드높은 폭스콘 노동자들의 정당한 파업에 발 빠르게 생산처를 옮길 수 없음도 마찬가지의 이유입니다. 

 

  

경제민주화를 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것과 실제 현장에서의 경험하고는 상당한 정도의 간극이 존재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경제민주화를 통해 재벌의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제조업과 소프트 산업을 분리해서 봐야 하고, 수출기업과 내수기업도 분리해서 봐야 합니다.

 

 

그리고 정책도 실질적인 면에서의 도움이 되는 쪽으로 개발되어야 합니다.

최근에 환경오염을 일으키는 기업의 대다수는 양대 재벌 소유의 기업이 아닙니다.

그들은 해외 환경단체의 감시도 받기 때문에 작은 실수 하나로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될 무리수를 두지 않습니다.

 

 

내부의 청렴도도 양대 재벌이 다른 재벌이나 대기업보다 높습니다.

그들은 이미 세계적 차원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지금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경제민주화에 크게 흔들릴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논의 방식은 양대 재벌 이외의 기업들에게 효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결국 필자가 하려는 말은 경제민주화를 하려면 제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다장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최저 임금의 현실화와 노동시간 단축, 그에 따른 일자리 나누기 같은 노동권 강화에 있습니다.

 

 

아울러 모든 국민에게 이익이 돌아갈 수 있도록 소득과 자산 면에서 상위층에 속하는 사람들에 대한 증세에 집중해 달라는 것입니다.

경제체제라는 것은 정부가 의도한다고 좋아지는 것도 아니며, 이명박처럼 재벌이나 대기업 친화적인 자가 정권을 잡으면 얼마든지 왜곡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경제 체제를 정부의 힘으로 바꾼다는 것은 상당한 시일이 걸린 뿐만 아니라 저항이나 부작용도 상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재벌의 대주주들이 외국인들이고, 전세계 경제가 그물망처럼 얽혀있으며, 자본의 이동이 자유로운 상황에서 국민들과의 사회적 대타협이 없이 개혁을 강행한다는 것은 순진하기까지 합니다.

 

 

헌데 대통령에 오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을 것처럼, 백화점식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남발하는 것을 보면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공정시장의 조성과 기회의 평등은 매우 중요한 가치이지만, 보편적 복지가 이루어진 나라에서조차 제대로 실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공자님 같은 말씀들은 그만하시고, 정부가 재벌에 맞서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에 초점을 맞춰달라는 것입니다.

헌법에 나와 있는 노동권이 실현될 수 있는 환경 조성과 법적이며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달라는 것입니다.  

산업별 노조가 힘을 가지면 분야별 평균임금도 제대로 반영될 수 있으며, 원청업체와의 협상에서도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신자유주의가 범람하기 전에 이미 입증된 사실 아닙니까?

 

 

지난 30년간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노조의 파괴 때문에, 정규직에서 비정규직으로 밀려나고 빈곤선 전후에서 허덕이는 노동자들에게 숨통이라도 터주어야 정치개혁과 경제민주화라는 거창한 시대정신에 합류하기라도 하지 않겠습니까?

 

 

『평등이 답이다』라는 책을 보면, 경제 성장의 초기에 인간의 행복이 성장과 비례한다고 나옵니다.

부와 평등을 이룩한 선진국들이 1인당 국민소득이 25,000달러에 이른 후에는 성장이나 소득의 증가가 행복이나 기대 수명의 연장 같은 것과 무관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입증한 책이지요.

 

 

그러니 1인당 국민소득이 2만5천 달러 근처에 이른 우리도 그 동안 성장의 혜택을 받지 못한 노동자들을 위한 제도와 환경 정비 등 실질적인 노동 정책에 전념하는 것만이 진정한 의미의 경제민주화를 이룰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런 면에서 노동운동의 대명사며, 청렴하게 일생을 매진해온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것은 작은 희망의 불씨를 보는 것 같습니다.

신자유주의 세력들이 노조의 파괴와 복지를 확대를 막기 위해 정부재정의 균형과 긴축에 그렇게 매달렸던 것도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 대항세력인 노조의 힘과 근거을 아예 말살해버리기 위해서입니다.

 

 

신자유주의 세력들에 의해 완벽하게 몰락한 노동권이 다시 강화되고 가사노동자와 비정규직까지 포함한 노동자들의 힘이 세지면, 완전한 평등을 이루기 위해 부자의 소득에서 얼마나 떼내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 되는지를 나타내는 ‘로빈후드 지수’나, 재산의 유무와 상관없이 모든 국민에게 일정 금액을 줘 자생력을 키워주는 기본소득제라도 꿈이나 꿔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문재인 캠프에 합류한 문성현씨처럼 진정으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대변할 수 있는 사람들의 견해를 경제민주화 정책에 담아주십시오.

통합진보당의 이정희 대표처럼 소수의 운동권 엘리트들의 기득권과 이익에만 매달려 기본적 사리 분별도, 시대정신도, 국민의 요구도 헤아리지 못하는 자들은 무시해버리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