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역사탑방

제주빡빡이 2020. 2. 24. 10:48

 

이곳은 외정때 일본군이 제주도민을 '강제동원' 하여 구축한 도내 최대의 탄약고였다 한다.

해방 이후 미군에 의해서 폭파된 곳이라 한다.

1948년~1949년 1만5천명~3만명(미군 정보자료 추정치, 제주도 의회 접수 2000년1월 현재 약 1만5천명)외 양민이 군경토벌대에 의해서 제주사건 (통칭 4.3사건:Red Hunt')이 진정국면에 접어들 무렵, 1950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치안국의 불법적 '예비검속(Preventive Detention) 광풍이 몰아쳐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경찰에 의하여 '강제검속'을 당하였다 한다.

예비검속자들 중 약 1천명(추청-모슬포 252명, 서귀포 240~250명, 성산포6명, 제주500~600명)이 넘는 제주인들은 당시 계엄군 (육균본부 정보국 CIC<방첩대>와 해병대 사령부 정보과)에 의해서 아무런 법적 절차 없이 한 밤중에 무참히 총살 이름모를 산야에 암매장되었거나 깊은 바다에 수장 하였다 한다.

현재까지 이곳만이 당시의 비참했던 상황을 보여줄 수 있는 제주도내의 유일한 학살터라 한다.

50년8월20일(음7월7일) 모슬포 경찰서에 예비 검속된 357명 중 252명(숫자는 극비 문서에 의함)을 새벽 2시경과 5시경 2차에 걸쳐 밤중에 총살(해병대 모슬포 주둔군 3대대)돌 무더기와 함께 암매장 하였다 한다.

그러나 만행은 당일 새벽 유족들에 의해서 발각 되고 그 시신 인도를 시도하였으나 당시 계엄군이 무력으로 저지 하였고 이곳을 7년동안 '출입금지' 구역으로 만들어 버렸다 한다.

1956년 3월 29일 새벽 한림지역 유족들이 61위를 수습하여 한림읍 명월리 개꼬리 오름에 안장 하였다 한다.

(현재 46위 남았음 ? ) 1956년 5월 18일 백조일손 유가족의 끈질긴 탄원으로 당국의 허가를 받아 149위를 수습하여 그중 132위를 상모리 지경 백조일손지지 ( 조상이 다른 132명 죽어 뼈가 엉퀴어 하나 되었다 한다,)에 안장 하였다 한다.(5.16쿠테타 당시 23위 강제이장 현재 109위 암아 있다 한다) 1962년 9월경 이곳에서 철근을 채취하던 인부들에 의해서 유해 2위가 발견되어 윗동산에 이장 하였다 한다. (현재 그 위치를 정확히 추적중 ? ) (발굴 총계212위) 약 90위가 아직도 이곳에 매장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 현재 재 발굴을 국방부 의 허가를 얻고 제주도의 추원으로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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