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SOArt 2017. 3. 19. 15:37




그래, 어쩔래 이놈들아!

                                       조동환

 

그래, 난 성공했다 이놈들아

너희들은 서울에서 기름진 음식,

빠쎤Fashion 따라 좋은 옷 입고

항상 김치....! 하며

남에게 보이기 위한 웃음을 몸에 감고 살고 있지 않느냐?

 

모진 탐욕과 야망으로 허기진 배를 채우는

너희처럼 그렇게 살지는 않는

나는 성공한 사람이다.

! 나는 돈도 없는 비렁뱅이라고?

그래, 나는 악취에 쩔은 더러운 돈과 탐욕은

아예 모르게 살고 있다.

! 어쩔래

 

눈부신 서울

강남에 사는 특별시민의 특별구,

자동차 번호판이

“011234”....와 같이 로 시작되며

아파트 한 채에 십억, 몇 십억 하는 그 동네에서

! 하고, 사는지 죽어 가는지 모를

어여쁜 돼지로 보이기 위해

늙은 돼지들이 보톡스다, 해외여행이다, 골프다 하며

외화 한 줌씩 거침없이 뿌리고 다닐 때

 

또 정치인이다 국회의원이다 하며

뻑하면 국민을 위해”, “국민이 원하니까...” 라며

입에 침도 묻히지 않고 사기만 치는

게다가 고위직 공무원이다 관료다 하며

온갖 부정부패로 눈부시게 호화생활하며

 

청년들은 기간제다 아르바이트다 하며

최저임금도 못 받고 생존을 위해 기를 쓰고 있는데

퇴직 후에는 다른 산하기관으로

풍부한 경력의 인재 등용이라는 미명하에

정년 후에도 일자리를 꿰차고

노블레스 오블리쥬란 개에게나 주란 듯이

 

국민연금보다 몇 배 몇 십 배 되는

공무원 연금으로 해외여행이다 뭐다 하며

탐욕의 눈과 입과 똥구멍을 가진

너희들 보다 나는 행복하다

 

비록 가진 돈은 없지만

나는 아픈 사람과 공감하며 찢어져 헐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한없이 넓은 헤픈 가슴만은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성공했다

어쩔래, 이놈들아

 

 

나는 시골의 한 장터에서

때꾸정물 묻은 얼굴에

코끼리 가죽같이 얼어터진

할머니들의 손을 잡으며

산나물과 두부 한 모에

천 원짜리 몇 잎으로 장을 본다

 

강아지 대가리에 리본 메고

할머니 장에 내다 팔려고 가져온 짐 보따리 보다 더 비싼

개 미용실에서 털 깎은 애완견 옆에 차고

푸성귀 한 광주리 가지고 나와

난전에서 파와 시금치를 다듬는 할머니에게 비싸다며

그마저 백원, 이백원 값을 깎는 야멸찬 아낙

 

손주 사탕이나 사주겠다며 얼어붙는 추위에

시장 난전에서 연탄불 쬐며 쪼그린

그 찌든 마음 어루만지면서 나를 돌아보는

아프지만 행복한 시간을 갖는 나는 행복하다.

그러니 내 인생은 성공하지 않았느냐?

어쩔래, 이놈들아!.....

 

너희들이 못하고 안하는 거

나는 이렇게 하며 산다

 

내가 가진 것은 없지만

그래도 먼지만큼이나마 가진 것을 버리려고

마음마저 깨끗이 씻으며 오늘을 살고 있다

사람은 버리는 것으로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다 하지만

실로 버린다는 것은 더 많은 맑은 기쁨을

나만이 가지려는 더 큰 욕심이겠지만

 

그 욕심 채우려

나는 시골의 구석 한촌寒村에서

이렇게 살고 있다.

 

너희들이 화려한 서울에서

더 큰 욕심 채우려 그렇게 살고 있듯

나는 끝없이 버리며 또 비우며 이렇게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텅 비워지고 이래서 나는 행복하다

 

그래, 어쩔래 이놈들아.......!

 

 

조동한 수필가, 시인

1945년생

한양대학교, 성균관대학교 대학원

국책연구소 총괄본부장, 대학교수 역임

 

 

몇 해 전의 초여름의 일입니다만, 산촌의 아침은 뜰 앞마당에서 지내는 우리 믿음직스러운 충견 복돌이와 복순이, 그리고 복실이, 길동이...... 이렇게 네 녀석들이 배설한 개똥을 치우며 또 호박과 가지, 고추가 열렸나 살펴보며 오늘의 양식을 거둬드리고 서재로 들어와 새로운 메일을 확인하다가 블로그에 올라온 다음과 같은 방명록의 사연을 읽어 보았습니다.

 

인생만리: 칭구님방 마실 갔다 잠시 들렸습니다. 노후를 두 분의 공간속에서 보내신다니 부럽기도 한데....혹시 다투시진 않나요? 외롭진 않으신가요? 이두가지 궁굼해서, 산골생활 결심하기 힘들어서요 ㅎㅎ

근사한방 구경 잘하고 갑니다. 늘 행운가득 하세요.

 

이에 아침 식사를 마치고 답 글을 달기 위해 컴퓨터의 자판을 두드려 봅니다.

 

안녕하세요? 인생만리님

아내와 다툴까봐, 외로울까봐 산골생활이 걱정이 되신 다구요?

 

나이를 먹어가면서 철들어 아내가  더욱 더 소중하게 되고 나와 오랜 동안 살아준 것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이 장년을 지나서 노년에 접어드는 사람들의 공통점이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도시에서는 다투지 않고 시골에서는 다툰다는 또 외로울 거라고 생각을 하신다면 님은 아직도 팔팔한 성정을 가지고 왕성한 활동을 하고 계신 젊은 피의 소유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 세상 부부 지간에 다투지 않는 부부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는 가끔 TV에서 명사랍시고 나와서 "우리 부부는 지금까지 한 번도 큰소리 내지도 않았고 다투어 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하는 사람들을 아주 가증스러운 위선자가 아니면 살아있는 부처生佛라고 치부하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금슬이 좋은 부부도 싸움을 하고,  서로를 미워할 때도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다투면서 부부라 할지라도 알지 못했던 또는 나의 아내니까, 나의 남편이니까 하면서 간과했던 서로의 생각과 마음을 알게 되는 순기능적인 면도 있는 것이 부부싸움이 아니겠습니까?

 

완전하지 않기에 죽는 날까지 자기성찰의 길을 가는 게 사람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의 살아가는 이야기 블로그에 게재된 "동락재통신"(몇 년째 중단하고 있지만)에도 누누이 썼듯이 우리 부부는 "하루라도 다투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그러한 부부랍니다.

 

그런다고 서로를 배려하지 않는다거나 아끼고 위해주지 않는 파탄지경의 부부는 절대 아닙니다. 누구보다도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지요.

외롭지 않냐구요? 답을 대신하여 정호승의 "수선화에게"라는 시를 옮겨봅니다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않는 전화를 기다리지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 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 잎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번 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사람인데 어찌 외롭지 않을까요? 산촌에서는 집안에 기르는 개도 혼자면 매우 외로워하며 우울증까지도 걸린답니다.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요?

사람에게 외로움은 죽는 날까지 함께해야 할 버릴 수 없는 친구가 아니겠습니까?  시골에서 전원생활이 되었던, 산촌생활이 되었던 귀촌과 귀농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랍니다.

모쪼록 성공하는 귀촌인이 되시길 바랍니다.

 

위와 같이 장황한 답 글을 달았습니다.

 

귀촌을 희망하는 사람들은 대개는 자연을 사랑하고 전원에서 낭만적 생활을 꿈꾸는 비교적 마음이 선하고 맑은 분들이지만 성공적인 귀촌은 그만큼 많은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하기 때문에 귀촌일기를 겸하고 있는 저의 블로그에 귀촌에 관해서 많은 질문을 해옵니다.

대개는 귀촌에 필요한 주거에 관한 문제가 주를 이루고 이웃과의 갈등과 지혜로운 공존 그리고 귀촌 후의 여가시간의 효율적이고 의미 있는 활용방안 등에 관한 질문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이 분처럼 외로움에 어떻게 대처를 하느냐?는 다소 번외이긴 하지만 실제로 매우 중요한 질문인 귀촌 후의 외로움을 어떻게 극복 하느냐?에 대해 고민하며 깊고 본질적인 귀촌에의 질문에 나름 피상적이지만 외로움은 도시에서나 시골에서나 죽는 날까지 함께해야 하는 벗이라고 대답을 드린 것이지요.

 

시골생활이라는 것은 우선 육신이 고달픕니다. 자연과 더불어 살다보면 주변의 온갖 동, 식물 벌레 등과도 함께 일체가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과 마찬가지로 나와 더불어 살아가는 자연도 보살피고 가꾸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손길을 주면 주는 대로 그렇지 않으면 그런대로 그만한 보답이 오게 마련이지요

게으른 사람은 부지런한 사람으로 변신하지 않으면 자연은 아주 정직하고 민감하여 그 댓가는 반드시 되돌아오기 때문에 몸을 사리는 사람은 적합치 않습니다.

 

그리고 백수건달처럼 시간을 마냥 허송할 요량이면 시골의 생활은 견디지 못하지요. 너무 무료하고 재미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위의 시처럼 귀촌을 희망하는 사람이나 이미 귀촌을 한 사람은 아마도 자연과 동화되어 살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이겠지요.

대개 귀촌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마음이 맑고 순수한 사람들이 많게 마련이지요.

그래서 귀촌을 하면 자연 속에서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그 이치라는 것이 사람 사는 이치와도 같은 것이어서 결국은 마음속의 모든 욕심과 소유를 버리는 과정을 겪게 되고 자신의 성찰에의 깊은 도량에 들기 마련이지요.

 

시골생활이 도시생활과의 완전 단절은 아니기에 어쩔 수 없이 공존하게 되지만 도시의 번잡함과 탐욕으로 얼룩진 인간세계를 벗어나기 위해 또 순수한 자연 속에서 그 이치를 깨닫기 위해 모든 마음의 찌꺼기를 버리고 비우는 과정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래서 아마 위의 시인처럼 탐욕과 소유욕으로 얼룩진 도시의 사람들에게 역설적으로 반목적으로 꾸짖는 것이 아닌가도 생각이 욉니다.

 

어제인가 TV 토론에 나온 야당의 대선주자들의 얘기를 들으며 저 역시 코웃음과 그들의 엮겨운 대국민 기만 지껄임을 들었습니다.

그네들은 국민의 뜻을 거슬리지 않고 국민의 뜻을 실현하기 위해 부정부패하지 않고 오로지 국민을 위해 대통령이 되겠다고 헛소리를 지껄이는 자들을 보면서 너희들이야 말로 시골로 귀촌하여 가진 것을 버리고 탐욕을 버리고 명경지수와 같은 마음으로 반성하고 성찰한 후에 즉, 수신제가 후에 대통령하겠다고 나서라. 아무리 정치하는 자들이 뻔뻔하다 해도 그러면 못쓰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야당과 여당이 그간 뭐 한 것이 있습니까?

선거철만 되면 이합집산 하여 야합하고 끝나면 갈라서고, 국민과 민생은 안중에도 없고 저희들 사리사욕만 채웠지.

이러한 집단을 국민들이 언제까지 보고 있어야만 하는지 참 답답하지 않습니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국회의원은 각 도에 여, 야 각1, 특별시, 광역시 등에서 여, 야 각 1명씩만 선출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 쓸데없는 국회의원들 뽑아서 국민의 혈세를 퍼붓고 있으니, 그 돈으로 국민들의 복지에 전용하는 것이 실질적인 국민을 위한 길이 아니겠습니까?

 

또 정치인이다 국회의원이다 하며/ 뻑하면 국민을 위해”, “국민이 원하니까...”라며/ 입에 침도 묻히지 않고 사기만 치는/ 게다가 고위직 공무원이다 관료다 하며/ 온갖 부정부패로 눈부시게 호화생활하며/ 청년들은 기간제다 아르바이트다 하며/ 저임금도 못 받고 생존을 위해 기를 쓰고 있는데/ 퇴직 후에는 다른 산하기관으로/ 풍부한 경력의 인재 등용이라는 미명하에/ 정년 후에도 일자리를 꿰차고/ “노블레스 오블리쥬란 개에게나 주란 듯이/ 국민연금보다 몇 배 몇 십 배 되는/ 공무원 연금으로 해외여행이다 뭐다 하며/ 탐욕의 눈과 입과 똥구멍을 가진/ 너희들 보다 나는 행복하다/ 비록 가진 돈은 없지만/ 나는 아픈 사람과 공감하며 찢어져 헐은 마음을 어루만지는/ 한없이 넓은 헤픈 가슴만은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나는 성공했다/ 어쩔래, 이놈들아

 

참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뜰의 목련과 매화 등 나뭇가지에 잎눈과 꽃눈이 아주 어린 아기의 손처럼 곱디고운 모습으로 삐죽삐죽 나와 연초록의 잎과 하얗고 붉은 꽃을 피우려 합니다.

봄은 희망입니다. 우리나라에도 봄이 오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