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골 통신-인생2막 이야기/소니골 통신-귀산촌 일기歸山村 日記

SOArt 2017. 5. 27. 23:11





이름을 지운다

                          허형만

 

수첩에서 이름을 지운다

접니다... 안부 한 번 제대로 전하지 못한

전화번호도 함께 지운다

멀면 먼대로

가까우면 가까운대로

살아생전 한 번 더 찾아뵙지 못한

죄송한 마음으로 이름을 지운다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음을 몸이 먼저 아는지

안경을 끼고도 침침해 지는데

언젠가는 누군가도 오늘 나처럼

나의 이름을 지우겠지

그 사람, 나의 전화번호도

함께 지우겠지

 

별 하나가 별 하나를 업고

내 안의 계곡 물안개 속으로 스러져가는 저녁

 

 허형만 교수님

 

허형만 시인, 대학교수

출생19451026일 전남 순천시

중앙대 국문과 졸

1973월간문학등단

목포대학교 인문대학장 겸 교육대학원장 역임

소파문학상, 전남문학상, 예술문학상, 전라남도문화상,

평화문학상, 한국크리스챤문협상, 우리문학작품상,

편운문학상, 한성기문학상 수상

시집청명,풀잎이 하나님에게,모기장을 걷는다

입맞추기,이 어둠 속에 쭈그려앉아,供草

진달래 산천,새벽,풀무치는 무기가 없다

 

젊은 시절의 수첩과 나이가 들어 사회활동도 서서히 접기 시작하는 노년에 들어선 수첩의 전화번호부를 비교해보면 왠지 모르게 존재감이 증발해버린 듯 헛헛함을 느끼게 됩니다.

 

젊은 시절엔 왕성한 사회활동을 하기에 아는 사람도 많고, 또 서로의 필요에 따라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아 수첩의 전화번호가 두툼했었다고 하겠지요.

 

그러나 나이가 들어 은퇴를 하게 되면 만나는 사람도 차차 줄어들고 사회적인 관계도 더 이상 지속할 이해관계도 없어지기 때문에 수첩 전화번호부의 이름도 하나하나 지워가며 이런저런 인간관계의 끈도 끊어지게 되는 가 봅니다.

 

남자들의 세상은 여자들의 그것과는 조금은 달라서 남자의 은퇴 후 대인관계는 고교동창이나 어릴 적 친구들과의 만남으로 연결이 되어 또 다른 자그마한 관계의 틀로 축소 변형된다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소시민의 살아가는 모습이 아닌가 싶습니다.

 

더구나 나이가 들어가면서 고교동창의 부음도 간간히 들려오다가 환갑이 지나면 더 많은 친구들이 벌써 유명을 달리 하였고, 고희가 지나면서부터는 어찌 보면 생존을 알고 있는 친구보다 세상을 떠나 연락을 두절한 친구들이 더 많다고 느껴지는 것 또한 사실이기도 합니다.

 

고교를 졸업하고 각자 다른 전공을 택하여 대학엘 들어가고 군에 입대도 하며 풍문으로 친구들의 소식을 듣기도 하다가 직장에 취직을 하여 결혼도 하고 가정을 꾸리며 사회생활에 전념하다 보면, 아주 가까운 친구 외에는 다 잊고 사는 게 보통이지만, 그래도 그리 친하지 않은 친구라 할지라도 전화번호부에서 지우는 일은 거의 없었을 테지만, 이제 나이들어 서로 은퇴와 퇴직을 하다보면 하나 둘 이름을 지워가는 숫자가 많아지게 되는 것이 어쩌면 자신의 육신과 일체가 되어 뻗어나간 나뭇가지 하나하나 잘라내는 듯 상실감과 헛헛함에 비애를 느끼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람 사는 모습이고 초라하게 늙어가는 인생의 모습인가 봅니다.

 

때로는 수첩에서 이름을 지우기도 전, 내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지인들이 세상을 하직하여 세상의 수첩에서 이름을 지우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겁니다.

 

이래저래 늙어 간다는 것은 참으로 막지 못할 슬픔입니다.

 

자손들에게는 이제는 늙은 부모와 조부모로 뒷방 신세가 되어 어른 말씀의 무게가 한없이 가벼워져 그저 의미없는 형식상 머리 끄덕임의 대상이 될 뿐, “따라야 될 부모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지도 어언 몇 해가 흘러가 버렸습니다.

 

나이가 10년 이상 인생의 선배이자 나의 낚시 제자이기도 하셨던, 다니던 공직의 청렴한 기관장이시던 분이 당연히 10년 이상 먼저 정년퇴임을 하셨지만, 그분의 퇴직 후에도 소식을 끊지 않고 가끔 식사도 대접하고 경조사에도 당연 빠지지 않고 참석도 하고, 낚시도 모시고 같이 가기도 하였지만, 본인의 유난한 성정으로 자식의 결혼식에 그분께 청첩도 보내지 않고 조촐하게 가족과 가까운 친구, 친지들만 모시고 대사를 치른 후, 어찌어찌 하다보니 수개월 그분께 소식을 전하지 못하였는데, 그 후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그 분이 이미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접하고, 앗 불싸! 내가 그간 너무 무심 했었구나!하는 후회가 엄습하였습니다.

 

퇴직 후 새로운 일을 하고자 의욕에 차 있었으나 몹쓸 무리와 일에 휘둘려 이런저런 연유로 호된 인생의 수업료를 치루고 몹시 어려울 때도 그 분과는 안부를 챙기고 연락을 끊지 않고 살았었는데 불과 수개월 사이의 연락 부재로 인하여 그 분의 사망도 모르고 있었으니 당연히 유족들께 애도의 뜻도 전하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도 아쉬웠고 그 분의 함자를 수첩에서 지우려 할 때는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여 인생의 덧없음과, 당연 하늘에서 그 선배님은 이해를 하고 계시리라 믿고 싶지만 죄송한 마음에 가슴앓이를 오랫동안 한 적이 있기도 하였습니다.

 

실로 나의 수첩에서 누구의 이름을 지운다는 것은 참으로 내 살을 저미는 슬픔이 있습니다만 반대의 입장에서 누군가 자기의 수첩에서 나의 이름을 지운다면 그것 또한 그 사람의 기억 속에서 나의 존재를 지운다는 것 같기도 해서 더더욱 허허롭고 처연해집니다.

 

그러나 사람 살아가고 또 나이 먹어 늙어 가고 저승문에 가까워지는 나이가 될 수록 초연해 지기 마련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금은 버릴 것도 내려놓을 것도 채울 것도 잊을 것도 없는 마음.

그저 사물을 아무런 오욕칠정의 감정없이 사물 그대로 바라보고 세상의 모든 일을 다 지나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마음속의 부처를 나투시게 하는 시간이 아닌가 생각을 합니다.

 

! 길다면 길고 찰나라면 찰나의 인생, 맑고 순하게 가다듬고 세상의 바람을 맞이할 뿐이지요.

 

조병화 시인의 세월은을 옮겨 봅니다.

 

기쁨보다는 슬픔을

더 많이 남기고 갑니다

봄 여름이 지나가면서

가을을 남기고 가듯이

 

가을이 지나가면서

겨울을 남기고 가듯이

만남이 지나가면서

이별을 남기고 가듯이

 

 

사랑이 지나가면서

그리움을 남기고 가듯이

, 세월 지나가면서

 

 

내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빈 자리를 남기고 갑니다.

 

시인은 빈 자리를 남기고 간다하지만, 또 혹자는 이름을 남기고 간다하지만 아무것도 남기지 않고 가는 세상이 더욱 맑은 것이 아닌가....!

 

오늘은 이런 생각을 해보아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