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비판 에세이

선거맨 2011. 10. 25. 16:28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면서 민주주의도 새로운 형태로 진화하는 듯했다. 엄청난 비용과 시간 때문에 감히 이루지 못했던, 인류의 오랜 꿈인 직접 민주주의가 디지털의 힘을 빌려 그나마 조금이라도 발현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희망을 가졌었다.

 

그래서 디지털에 대한 기대와 관심이 폭증하고, 급기야 ‘디지털 민주주의’라는 새로운 단어까지 창출되었던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거치면서 디지털 민주주의가 커다란 위기에 봉착하고 있는 게 분명해 보인다. 지난 시기에 조금씩 싹 터온 민주주의적 기운이 디지털 세상에서 다시 발 붙이지 못할 정도로 위축되고 왜곡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 때문이다.

 

몇 일 전, 트위터에서는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다. 박원순 후보 지지자에 의해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알바’ 취급을 당한 것이다. 그 지지자는 닥치는 대로 ‘알바’ 딱지를 붙였다. 급기야는 트위터를 통해 선거운동을 하고 있던 한나라당의 선거 총책임자까지 ‘알바’라고 지칭하며 조롱해 버린 것이다.(자세한 내용은 위키트리 기사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트위터 알바 된 사연’을 참고하기 바란다)

 

타 진영(특히 한나라당) 지지자에 대한 ‘알바’ 지칭과 과격한 공격성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이번처럼 적나라하게 그 문제점이 드런난 적은 없어 보인다.

 

도대체 자신들만 ‘진정한 지지자’이고, 다른 진영은 싸그리 ‘알바’라고 칭해 버리는 그 저의는 무엇일까. 이건 가히 본인들만 디지털 세계의 정당한 활동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특권 의식’의 또다른 표현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모두 ‘알바’고 자신들만 디지털 성전을 치르는 십자군이라면, 양 진영 사이에 무슨 대화가 가능하겠는가. 이런 식의 극단적 공격성과 수준 낮은 폄하는 결국 디지털 세계 전체를 소통 불가능한 거대한 벽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데, 소위 진보 진영이라고 부르는 네티즌들의 공격성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단순히 타 진영의 네티즌을 ‘알바’라고 부르는 것을 뛰어 넘어, 소위 ‘알바’로 인식된 그 계정을 ‘폭파’시켜 버리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번 선거운동 기간에 소위 ‘나경원 후보 지지 성향’의 트위터 계정이 얼마나 많이 폭파를 당했는지는, 객관적 데이터를 산출할 수도 없을 만큼 수두룩 하다. 문제는 이러한 ‘계정 폭파’가 의도적으로 모의되고 실행되는 듯한 분위기가 감지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일이다. 디지털 세상에서 한 사람의 계정은 그 사람의 인격 자체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계정 폭파’가 또 하나의 ‘인격 살인’으로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것은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위축시키는 일이다. 소위 진보 진영에 비우호적이라고 해서, 상대방 진영의 트위터 사용자를 아예 ‘인위적으로 없애버리는’ 일은 언론탄압과 마찬가지다. 실제로 요즘 SNS가 1인 미디어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이러한 계정 폭파는 미디어의 기능 자체를 차단해버리는 것과 같다는 말이다.

 

따라서 이제는 ‘인터넷 파시즘’을 걱정해야 할 때가 왔다. 자기 편 말만 옳고, 자기 주장만 옳고, 다른 주장은 아예 들어보지도 않는 편협함과 극단적 폐쇄주의는 ‘인터넷 파시즘’을 낳는 온상이다.

 

만약 지금, 이러한 흐름에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면, 이는 분명 향후 디지털 민주주의 구현에 엄청난 장애요인이 될 것이다. 그리하여 디지털 세상에서 민주주의는 제대로 꽃 피워 보지도 못하고 파시즘의 암울한 그림자를 그대로 뒤집어 쓰고 말 것이라는 얘기다.

 

그 단초가 하나 있다. 박원순 후보 진영에서는 10.26 32주년을 맞아, 삽화를 하나 그렸다. 그런데 박정희 전 대통령은 물론 나경원 후보의 머리에도 총알을 관통시킨다.

 

어떻게 이런 발상을 했을까. 선거에서의 적은 그냥 정책적 경쟁자일 뿐이다. 그런데 상대 후보를 이렇게 총살시키는 그런 삽화를 어떻게 버젓이 유통시키고, 또한 그걸 그린 사람을 자랑스러워 할 수가 있을까. 이게 도대체 제 정신 가지고 할 수 있는 짓인가.

 

이탈리아의 파시즘 체제도 갑자기 들이닥친 것은 아니다. 내부에서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 그러한 사회적, 정치적 무드가 무르익어 갔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의 디지털 세상도 이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서울대 법대 교수, 우리 나라 최고의 지성이라는 사람도 트위터 세상에 들어오면 잠시 이성을 잃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선전과 선동에 유난히 민감한 감수성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수많은 ‘장삼이사’ 트위터리안들은 더 말해 무엇하랴. 서로가 서로를 견인하며, 점점 더 인터넷 파시즘 체제로 빠져들고 있음은 이미 명확해 보인다.

 

제발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고,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라. 여기에는 어떤 ‘알바’도 없다. 단지 여러 사람들의 생각과 견해 차이에 따라 존재하는 다양한 주장들이 있을 뿐이다. 만약 그러한 다양한 주장들이 싫다면, 그래서 그런 것들을 ‘알바’로 규정하고, 아예 계정을 폭파시켜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게 바로 ‘파시즘’이 아니고 뭐겠는가.

 

공존할 줄 아는 지혜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상대방의 말에도 깊이 고민해보는 합리적 여유를 가져야 한다. 그게 디지털 민주주의의 기본이다.

 

부디, 지금 준동하는 인터넷 파시즘 세력들은 자신들의 과함을 알고, 이제 그만 정상적인 자리로 돌아오길 바란다. 함께 꽃 피우는 디지털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의 소망이 아니던가.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시고 비 조심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