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같은 생각!

2010. 3. 22. 18:42

 

국제농업개발원 만세!

김홍서 국제농업개발원 연구위원

(2005. 6.)

 

꽃 소식이 조금 이른 때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 내에 있는 재단법인 국제 농업개발원을 찾았다. 25년 넘게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게 되었지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구미에 당기는 어느 광고 문구를 상기하면서 뭔가 할 일을 찾던 중이었다. 단발성 정보라도 얻을 수 있을 것이란 일말의 기대를 하면서 만난 이병화 원장님께서 선뜻 내게 큰 선물을 주셨다. 국제농업개발원이 축적한 정보와 역량을 활용하여 새로운 일을 도모해 보라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나는 국제농업개발원이 해온 일과 하는 일, 그리고 원장님 자신의 정말 한 편의 드라마 같은 경험담을 듣고 또 듣고 흥미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다(3개월째 진행형). 원장님과는 작년에 중국 농산물 시찰단에서 만난 인연이 있다. 철 수세미처럼 자라지도 않을 것 같은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을 쓴 환갑연세의 용모가 󰡐시원스럽고 분명하고 자상한 성격󰡑으로 비치던 그 날, 나는 외모는 선입견일 뿐이라 생각했다.

농림부(농촌진흥청과 산림청 포함) 인허가 단체인 사단법인이 2004년말 현재로 약 280개, 재단법인이 25개가 있다. 사단법인은 회원위주의 결집체로서 정부로부터 용역을 받거나 회원들의 세를 앞세워 󰡐금전적 수혜의 관행화󰡑가 작금의 추세다. 최근에는 은퇴한 농림 공직자들까지 가세하여 몇 사람만 모여도 사단법인을 만들고 사회에 기여보다는 혼란을 야기시키는 활동을 하기도 한다. 반면에 재단법인은 기금을 조성하여 사회에 베푸는 시혜의 입장에 서있다. 그 대표적인 조직으로 대산 농촌문화재단과 가나안 복민회, 그리고 농촌문화재단을 꼽을 수 있겠다. 재단의 속성상 연구 조사 용역을 맡아 수행하거나 기금 마련을 위한 영리사업을 영위하지만, 후원금이나 기부금을 보태서 기금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건전한 사회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에 그 존재 가치를 둬야 할 것이다.

국제농업개발원도 기금조성이 풍족한 시절도 있었고 지금처럼 쪼들리는 시절도 있다. 원장님으로부터 지난 말씀을 들으면서 의아한 것은 수지타산이 몸에 배는 것이 사업의 기본일 진데, 베푸는 쪽에 치우쳐 있는 그것도 많이 치우쳐 있는 이분의 재단 운영솜씨는, 기업체에서 관리본부를 맡아 봤던 내 관점으로는, 󰡐제로󰡑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느낀다.

이쯤 하여 국제농업개발원에서 한 일과 할 일을 소개하고자 한다. 물론 원장님께 들은 말씀과 짧은 시간동안 보고 느낀 것을 중심으로 했으니 다소 차이는 있겠지만….

 

● 북한에 식량 6,300톤 전달

국민의 정부 시절 연해주에서 벼농사를 지어 무려 6,300여톤을 북한 곳곳에 전달하다. 당시 통일부에도 신고하지 않았다고 하니 대통령의 특별 재가를 받았지 않았겠는가 짐작이 된다.

● 연해주 고려인과 북한 벌목공들에게 의류 8천벌 전달

안경렬 신부님(서부성당주임)으로부터 헌 옷을 한 콘테이너(약 8,000벌)분을 받아 빨고 수선하여 전달하다.

● 연해주에 종자(3억5천만원상당) 전달

종자협회로부터 씨앗을 전달받아 보내주다.

● 대형소방차 러시아에 전달

고건 서울시장 당시 교체되는 대형소방차를 불하받아 러시아에 보내주어 친선을 도모하다.

● 중국 심양과 할빈에 연수원을 건립

건립자금이 총 17억원(부지포함)이 소요되었으나 한중 공동재산으로 되어 있다. 그 외에 마사회 자금 1천만원을 운영자금으로 지원하고 24인승 버스와 12인승 봉고를 각각 1대씩 지원하다.

● 할빈 연수원에 PC 10대, 용정 여명 농민대학에 PC지원, 교수전용호텔 건설과 기숙사 자재 지원(일부는 외교통상부에서 지원)하다.

● 길림성 매하구시 제9중학교 기숙사 난방시설과 PC 10대, 복사기, 팩시밀리 등 교육기자재를 지원하다.

● 몽골 및 조선족 동포 1,583명을 원장님 부담으로 한국에 초청(이중 33명은 정부부담)하다.

● 미국 헌츠 포인트 도매시장에서 일하는 한인 동포를 위한 장학금으로 매년 5천불씩 1987년부터 2002년까지 전달하다.

● 연해주 우수리 농업 아카데미에도 1990년부터 매년 5천불씩 전달하다.

● 그 외 국가기밀과 관련된 사업을 지원하다.

 

이상의 사업들을 개략해도 백억 원은 넘어 보이는데, 정부로부터 지원 받은 자금은 일억 원도 안된다니, 그 차액은 원장님 자비와 독지가(단체)의 기부금, 그리고 본 재단의 일부 영리사업으로 조성된 기금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 며칠 후면(5월 19일~22일) 재향군인회를 비롯한 주요단체 책임자 190여명을 뫼시고 중국, 러시아, 북한 국경(일명:방천)에 다녀올 것이다. 국민운동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단초적인 행사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지방도시에 세계수석박람회를 유치하려는 계획도 하고 있다.

국제농업개발원은 서울에 본부가 있고, 세계에 32개 지사 또는 에이전트를 두어 국제 농업관련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조직망을 갖추고 있다. 얼마 전 칠레지사장은 그 곳을 방문한 우리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받았는데, 칠레에서 치료가 불가능한 환자를 한국보훈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해준 공로였다. 서울 본부에는 상근직원이 10명도 되지 않지만 월간지 상업농경영과 계간지 기계화 농업을 만든다. 또, 사이사이 큼직한 단행본들도 발간한다. 원장님의 명성을 듣고 본부로 찾아오는 사람들은 영농상담을 하는 농민들보다도 더 많게는 전현직 정보기관(국가정보원, 기무사, 정보사 등) 사람들과 경찰고급 간부들이다. 원장님의 과거 대통령을 모신 근무경력과 경찰대학, 육군행정학교에서 강의한 인연일 것으로 생각되는 대목이다. 그리고 북한을 상대로 비즈니스 상담을 원하는 사업가와 북한으로부터 귀순한 동포들이다. 이들과의 인연도 과거 원장께서 시베리아, 몽골, 중국 등지에서 서로 관계했던 사람들과 더 나아가 한국에 입국시킨 사람일 것으로 생각된다. 이들은 한결같이 정보를 얻고 조언과 도움을 요청하며, 원장님은 언제나 흔쾌히 들어 주고 해결해 주신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지인들에게 하루에도 수차례 직접 전화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는다. 원장님의 폭 넓은 대인관계와 정보력, 그리고 어떤 도움의 손길도 뿌리치지 않는 넓은 마음가짐이 국제농업개발원을 그 어느 재단이나 단체보다도 사회에 크게 공헌한 단체로 키워오셨고, 앞으로도 더 큰 일을 수행할 역량이 충분한 재단이라고 나는 의심치 않는다.

세상에는 다양한 직종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하지만, 원장님처럼 특이한 분도 드물다. 정부로부터 훈장, 표창장, 상장, 감사장 등 수 많은 상패들이 서재에 꽉 차게 진열되어 있으나 막상 재단의 감독 기관인 농림부나 농업에 관련된 상장하나 없는 것도 희한한 일이다. 국제농업개발원은 자기의 덩치에 비해서 정말 큰 일을 하고 있다. 연말이면 각종시설에 찾아가 선물꾸러미 앞세워 생색내는 가련한 모습들을 헤아리시며 남에게 홍보하지도 않고 주위 사람들에게 폐끼치는 행동도 하지 않고…

국제농업개발원 만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