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 같은 생각!

2018. 1. 2. 14:05

김오랑과 은하수 담배

박정희 대통령 추억의 야화(野話) 10 (201812)

 

당신은 박대통령을 9년 뫼시면서 가장 추억에 남는 것이 무었인가? 라고 질문한 사람이 있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19725월 첫째주 토요일날 일어난 일들은 지금도 추억이 생생하다. 백색농업혁명의 시발지인 고향 김해에서 태어나 졸지에 대통령을 뫼시는 영광을 얻어 청와대 직원 (별정직 기능공)이 되었다. 그날 대통령과 가장 긴 시간을 보냈으니 말이다. (막정희 대통령 추억의 야화 제2편 참조)

 

철골 비닐하우스 속을 둘러보시고 , 처음 보시는 서양 채소류등을 직접 따 잡수시기도 하면서 우리 조상들은 논두렁에도 콩을 심었다고 하시면서 꽃도 버리지 말고 먹을 수 있는 품종으로 개발하라고 지시한 것에는 일제식민지와 6.25 전쟁에서 배고픔의 한이 서려있는 것을 뼈에 사무치도록 느꼈다.

그날 집사람의 초등학교 동기생이고 나에게는 일년후배인 김오랑 중위를 농장에서 만났다. 그가 육사 이학년 방학때 나는 휴가차 고향에 갔고 그때 잠깐 본 후로는 처음이라서 병화야 나 오랑이다 라는 말에 겨우 그를 알아보았다.

2편에서 언급했듯이 은사수담배가 발매되기 몇 일전 대통령께서 피우시는 것을 보고 내가 슬쩍 담배갑을 요리조리 살피는 것을 본 대통령께서는 커다란 재떨이 밑에 은하수 7개피를 놓아두고 가셨다. 당시나 지금이나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다 그날 외곽 경호 업무를 맡은 수경사 (지금의 수도방위 사령부)는 농장 앞산에 있는 마라톤 (동일방직)이라는 방직사 간판밑에 겔리버 50(소대단위 중화기)를 설치하고 있었고, 원거리 이동경호는 특전사 요원들이 맡았는데 소속이 불투명한 위장 민간 넘버(자동차번호판)를 탄 ¾톤 트럭에 군인들이 7~8명 타고 있었다. 저녁늦게 천막을 해체하고 철수하는 장교를 불러 당신들 오늘 수고 많았소 이담배는 대통령 께서 여러분 피우라고 주시고 간것이요라며 7개피를 건내 주었다.

바로 그 장교가 김오랑 이였다 나는 깜짝놀라 야임마 왜 아는체를 하지 않았냐 라는 나무람에 그는 분명히 너 같았는데 너가 특별히 공부를 잘한것도 아니어서 고시합격도 아닐테고 태권도를 잘했으니 경호원이 되었나 보다 했는데 경호원도 아니고 도무지 했갈려서 확인차 겸사겸사하여 제일 늦게 철수 하려고 했다라고 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8명중 담배를 피우지 않는 한사람을 제외하고 한 개피씩 나누어 가지고 청와대를 향하여 차렷! 대통령 각하 잘피우겠습니다 . 충성!!” 이라고 구령을 하고 라이터에 불을 부쳤다. “ 야 임마 충성이 너무 지나친 것 아니냐라는 농담에 군인이 충성 빼면 시체 아니냐라는 대꾸를 했다.

세월이 흘렀다. 791212일밤 그는 정병주 사령관을 보호하려다 전두한 장군 측 세력에 총알 받이가 되어 죽었다. 서울 국립 현충원 29번 장교 묘역에 그는 안장되어 있다. 최근 몇사람의 군인 (장군) 출신 국회의원들이 그의 공적을 기리고 훈장을 추서 했다는 보도를 보았다.

작년 1026일날 아내와 함께 박대통령 내외분 묘지를 다녀 오면서 여보 오랑이 에게 인사라도 하고 가자라며 핸들을 돌리니 아내는 당신 혼자나 가소 나는 그노무 새끼 안볼라요라며 외면하는 눈동자에 눈물을 보았다.

김오랑과 같은 참 군인이 이나라 군대를 통솔하는 날을 기다리면서 오늘 이글을 갈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