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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6. 30. 13:29
●내가 경험한 북한사람들의 사고방식(2)●

◇.남한사람을 완전 호구 취급하드라.

ㅡ90년대말에서 2천년 초입 까지 남한사람을 가장 많이 접촉한 사람은 '민경련'회장 정운업과 사장 안복일이다.(얼마후 민경련은 민화협으로 남.북한 동시 같은 이름으로 개명 했다)
정운업회장 만나는데 10만달러 고여야 한다는 황당한 소문이 돌때다.
1999년 11월 민경련이 직활하는 개선무역총회사 정운업회장 명의로 연해주에서 생산하는 "Wild rice"를 보내주면 은혜를 갚겠다고 펙스를 중국 조선족 협의회를 통하여 왔다.
나는 즉시 조선족협회 사무실에 '미친놈들 그냥 " 나락이나 벼"라고 하면되지 유식한 것처럼 와일드 라이스라고 표현하냐,이렇게 표현하면 곡물이 아니고 종자로 취급되기 때문에 국경넘기 어렵다.그냥 조선말로 나락으로 표기해라' 라고 일러주었다.그후 3개화차 방통에 180톤을 나누어 러시아령 마지막 역인 핫산에서 식물 검역을 하는데 무려 4일을 소비했다.
두만강구역에 도착한다는 날짜가 3일이나 지나버렸다.개선무역에서 연락왔다.3일 초과 벌금을 3만달러 지불하라는 고지서같은 것이였다.
참으로 황당했다. 공짜로 주는데 성의도 모르고....그들의 설명은 평양에서 특별 기관차대가리 차출하여 왔다는 것이었다.
당시만 해도 두만강 다리를 통하여 매일 아침 저녁 한차례 경운기 발통기로 움직이는 반칸짜리 우편배달 화물칸이 핫산역에 왕복하기 때문에 나는 조선말 통역관 및 부역장인 고려인 '죠안나曺'여사에게 특별기관차 대가리가 진짜로 왔는가 확인 해 달라고 했드니 그럴 필요없이 전망대에서 망원경으로 두만강역이 훤히 보이니 확인하자고 했다.
화차번호까지 확인 될 정도로 휜하게 보였다. 그날 오전에 발송한 나락3개 화차는 1520밀리 러시아광궤 구간에서 1435밀리 남.북한 표준궤 구간으로 옮기는 대기선에 진입 상태였다.나는 즉각 '미안 하다 3만달러 보낼태니 대신 도착한 나락은 회수한다' 라고 통보했다.1시간후에 보니 화차3개가 사라졌다.정운업은 기관차 보낸적도 없고 그냥 공갈 쳐 본것 이였다.
얼마후 개선무역은 나에게 산삼 몇뿌리 보냈는데 잔뿌리는 없고 크기가 볼팬 굵기 만큼하여 거래 하려고 했어나 잔뿌리 없는것은 매매 불가하다 하여 우리장모님께 드렸다.
훗날 들려오길 정운업회장 말은 남조선 사람들 내가 말하면 모두가 꼼짝없이 벌벌 뜨는데 아나톨리李 는 공갈협박이 안먹히 드라고 전했다.
도대체 한국정부나 대북지원단체는 북측에 얼마나 고개숙이고 고여 받쳤는지 상상도 못할 지경이었다.
얻어먹는 놈이 큰소리치고, 주는 놈이 받아달라고 거지 구걸하는 식의 주객이 전도된 이놈의 현상은 지금도 계속된다.
누가 이들의 버릇을 이 모양으로 만들었나?

◇.알제 식민지시절 왜놈순사처럼,조선시절 양반처럼 행세하는 북측 고위관리들.

ㅡ은퇴 하신 미국대통령 지미 카트가 두만강 북한령 녹둔도와 번포일대에서 Habitat사업 일환으로 조립식 주택32채 지워줄 시기에 또 곡물을 보냈다.
조선불교협의회 허길수총재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
그날 나선 인민위원회 농업담당 위원장을 마났다 그는 풍체가 참으로 당당했다.족히 0.1톤은 나갈것으로 보였다.먼저온 똘마니가 0.1톤나간다고 제미있게 표현했다.
타고온 차량이 벤즈 D-450 S급 이였다.한국에서도1억 이상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서 나는'아이고 남조선에서는 장관도 이런 고급차 탈수 없는데 대단합니다'라는 아부성 발언에 식사대접 잘받았다.
문재는 이사람을 쳐다보는 인민들의 눈에는 조롱이나 경멸의 눈빛이 아니고 지극히 당연하다 식의 그런 눈빛이었다.
그는 가는곳 마다 임금님의 행차처럼 당당했고 이조시대 양반이 하인이나 종년 부리듯 가관 이였다.
한편으로는 일본식민지 시절 왜놈 순사 처럼 보였다.
관리를 상전처럼 받들수 밖에 없는 인민들의 모습도 참으로 꼴 불견이였다.
그날 나는 북한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이 아니고 "조선 간부민주주의 노동자 착취공화국"이라고 표현해 봤다
혹시나 자금 한국의 노조와 공무원이 0.1톤 처럼 행세 하지않을까 엉뚱한 생각이 문득 든다.
항상 이박사님의놀라운기억력에감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