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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7. 4. 08:06
●내가 경험한 북한사람들의 사고방식(3)●

ㅡㅡ1990년9월30일 한.소수교, 이듬해 12월27일 소련권리 물러받은 러시아와 수교.
1992년 8월24일 중국과 수교.
다시 따져서, 사회주의 국가와 노태우의 한국정부는 3년사이에 무려15개국가와 수교를 체결했다.
이기간에 나는 러시아 프리모리예스키 농업아카데미에서 학위수업차 북한 주체과학 아카데미에서 파견된 교환교수인 북한박사들 로부터 강의를 들었다.
한국 국적자가 외국에서 북한교수 강의 듣는 유일무이한 사람이 되었다.
간혹 저녁식사 시간중 토론에서 3명의 교수들은 현재 우리가 있는 이곳이 옛날 에는 大震國 渤海(대진국발해)영토였다.
그런데 남조선에서는 통일신라시대만 가르치고 '남.북조 시대'의 발해역사를 외면 하드라 등 역사 이야기를 자주했고, 또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과 멘델의 유전의 법칙인 "선천성 획득형질의 법칙"만 가르치는 남조선의 과학교육 문제 있다 라는 지적도 있었다.
맨델의 반대이론인 루이센코박사의 "후천성획득형질의 법칙"은 남조선에서 외면하면 안된다. 이유는 조선 영조시절 용인출신 師朱堂 李氏가 지은[胎敎新記]가 루이센코보다 2백년은 앞서는데 남조선에서 이것을 제대로 연구하는 전문가가 없는것 같다, 라는 푸념도 했다.
사주당 이씨의 자료들이 주체 사상연구소에서도 몇권 있다는 사실도 밝혔다.
사실 태교의 역사는 한국이 최고의 경지에 있다.어머니 뱃속의 열달교육이 새상 나와서 80나이 까지 간다는 속담은 북한에도 있다고 했다.

이즈음에 일본 오사카 經法大學의 교수 들이 블라디보스토크 호텔에 자주 온다는 소문에 나도 그곳에 여장을 풀고 자주만났다.
그들은 모두 북한 국적자로써 일본영주권을 가지고 있었고 바로 북한 김일성수령이 세운 '經濟法科大學'의 주임교수들이었다.
그들은 김일성의 부탁으로 일본산 黑牛인 구로우시와 쿠슈지방 특산 赤牛인 아까우시를 연해주산 토종인 長角 赤長毛(사실은 일제 식민지 시절 달구지끌고 밭갈이 하는 役牛)종자소와 교배하여 송아지를 북한과 일본에 가져가서 시험사육 하려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불행이도 연해주에는 없고 연변 조선족자치주에는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도 했다.
교수들 중에서 북한에도 이름난 두사람의 석학이 있었는데 南廷元박사와 高泰保박사다.
이중 고박사와 나는 같은방 생활도 했는데 김일성수령은 해외거주 동포들에게 학교도 많이 지어 주었다고 자랑 했다.
특히 자신이 몸담고 있는 경법대학과 소학교.중.고등학교 등인데 우리가 tv로간혹 본적있는 흰저고리 검은치마 바로 그 학생들 다니는 학교다.고박사로부터 들은 일본내 북한학교와 김일성의 교육관을 아번코너에 소개 할까한다.

◇.김일성이 세운 해외학교

1).일본의 북한(조련계)학교.
ㅡㅡ1945년8월 일본의 무조건 항복 당시 일본거주 조선사람은 무려 100여만명.재일본 조선인연맹은 국어강습소(민족학교)를 600개 개설했다.이후에 일본의 교육법에 따라정비를 계속한 결과 지금은 초.중.고등과 대학교 한개 합하여 약 70여곳만 남아있다.(최근에 내가 조사해 보니 40여곳 만 운영하고 있었음)
반면에 친한파 계열인 민단소속 학교는 겨우 4개뿐이다.
김일성의 敎育觀은 남쪽 지도자 보다 앞선것 아닌가 판단 된다.좀더 연구해볼 영역이다.
유명 축구선수 장대세의 아버지는 민단계 소속이지만 장선수를 조련계학교 학교에 보낼수 밖에 없었다.민단계는 학교가 없었다.장선수의 조국은 북한이 될수밖에 없는 환경을 우리는 뭐라고 표현해야 하나?

2)중국 길림성 매화구 제7중학교와 제9중학교.
ㅡㅡ김일성이 해방직후 투자하여 재 건설한 학교들이다.동북3성 조선족 학교들 중에서 칭화(淸華)대학 입학자를 가장많이 배출했다.
한.중수교 직후 한때는 매화구시 주민들은 한국입국이 거부되기도 했다.
나는 그곳 학교에 심양에 있는 삼보콤푸터회사(이용태화장)로 부터 특별혜택으로 아주 실비에 컴푸터.복사기. 펙스밀리등 교재를 수십대 구입하여 8톤트럭 2대에 나누어 실고 기증했다.매화구 조선족 동포들과 학생들 모두 얼싸안고 울었다.그들은 운동장에 흑판을 3개로 연결하여 색깔 분필로 고맙답고 흑판 플랭카드 만들어 환영해 주었다.
국내 보수 인사들은 이병화가 빨갱이 되어버렸다고 수군거렸다.
중국에도 김일성은 대학 만들다가 미완에 끝났는데 중국.조선족.국내인사들이 단결하여 개교한 학교가 대련에 있는 渤海大學이다.지금은 종합대학으로 성장
했다.
김일성의 교육관은 어릴때 투철한 사상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또 돈 아끼지 않고 투자하면 효과는 비록 늦게 나지만 절대로 배신없는 투자가 교육사업이라고 강조한 사실이 여러곳에서 확인되기도 했다.국내에도 김일성 교육에 영향 입은 문화생들이 출세하여 한국정치권을 좌지 우지하고 있다.

☆.한국도 중국 연변조선족 자치주 내에 연변과기대와 북한 평양과기대 설립했다.
이것은 정부 예산 아니고 순수 기독교단체인 소망교회와 사랑의 교회에서 모금한 돈으로 건설했다.

☆.중국의 孔子學堂이 한국에 50여개가 들어와 있다.말이 학당이지 한국정보와 기술 훔쳐가는 연락사무실 다름아니다.대부분 국내 대학속에 또아리 틀고 있다.
한국도 이와 대비 되는 세종학당이 있다.
중국과 미국에 제일 많다.
나는 세종학당과 해외 태권도 도장과 결합하여 운영하면 시너지 효과는 대단할것 이라고 누차에 강조했다
태권도 용어32개가 순수 우리말이고 도장에서 가르치는 예의범절교육은 세종학당보다 열배 백배 앞선다.
잔취성있는 국회 외무위 의원 또는 교육부공무원이 조금만 관심가져도 될일을 나는 지난 세월 청개구리처럼 울어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