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자료

찾는이 2010. 10. 7. 12:20

이스라엘의 역사와 성경

 

                                                                                                    염철호 사도요한

 

들어가면서

 

  오늘 함께 이스라엘의 역사와 성경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요즘 여기저기서 성경을 주제로 특강을 하곤 하는데, 대개 성경이 왜 중요한지에

관한 강의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성경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교우는 아무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기회가 되면 성경이 왜 중요한지를 설명하기보다, 성경을

읽는데 도움이 되는 지식이나 강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임신부님께서 이스라엘의 역사에 관해 이야기를 조금 해 달라고

부탁하시니, 아 이것이다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을 읽으려면 이스라엘 역사를

반드시 알고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강의를 준비하면서 어떻게 하면 쉽게 이스라엘 역사를 접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도 해 보고, 또 어떤 것들을 말씀드려야 교우분들이 성경을 읽는데

도움이 될까 하고 고민도 해 보았습니다.

아무래도 처음 다루는 주제다 보니 어려울 수도 있을 듯 합니다.

혹시 강의 중에 이해가 안 되시면 표시를 내어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눈치 보고 조절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시작하면서 여러분들이 성경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을 가지고 있는지

테스트를 좀 해 보겠습니다.

   성경이 무엇일까요? 성경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성령의 영감으로 인간 저자가

인간 언어로 적은 하느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성경은 그것을 적는 인간 저자가

 살던 시대에 그것이 적힐 당시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적혔는데,

 이것은 단순히 인간의 말이 아니라 하느님 영감을 적은 말로 하느님의 뜻이 담겨

있는 그런 책이란 말입니다.

성령께서 글을 적는 사람 마음을 움직이시어 당신의 뜻을 담도록 하셨고, 사람들은

그 글을 읽으면서 하느님의 뜻을 깨닫게 되는 거죠.

이때 그 글 안에서 하느님 뜻을 발견하는 것 역시 성령의 이끄심 덕분입니다.

  이것이 바로 성경인데요. 자, 그러면 성경은 한 사람이 하루 아침에 적은 글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성경만 보아도 거의 800-900년에 걸쳐 적힌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은 거의 50년에 걸쳐 적힌 책입니다.

곧 성경은 하루 아침에 만들어진 책이 아니라 여러 시대에 성령의 영감을 받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각각의 시대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적은

하느님 말씀들을 모아 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겠죠.

   이런 의미에서 보면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와 함께 적히고 만들어진 책

이라고 할 수 있겠고, 신약성경은 교회가 처음 생길 시대의 역사와 함께 적힌 것

이라고 할 수 있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성경을 이해하려면 구약성경이 태어난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와

교회가 생길 당시의 시대 분위기나 역사를 잘 알아야 하겠죠.

왜냐하면 성경은 그 당시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글로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강의 시간에는 특별히 이스라엘 역사 전체를 한 번 쑥 흝어 볼 생각입니다.

교회의 역사까지 다루기는 어렵기 때문에 오늘 강의는 구약성경의 배경이 되는

이스라엘 역시 부분만을 다룰 겁니다. 상세하게 다룰 수는 없지만 여러분들께 귀중한

 시간이 되시길 바랍니다.

1. 아브라함

   제일먼저 이스라엘 역사 하면 기억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누구냐 하는 건데요.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후손이라고 여깁니다. 창세기는 바로 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

그리고 야곱의 12 아들 가운데 막네 아들인 요셉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창세기 1장에서 11장, 그러니가 우리가 원역사라고 부르는 부분에 나오는 창조 이야기나 아담과 하와의 범죄 이야기, 카인과 아벨, 바벨탑 이야기,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모두 아브라함이라는 인물이 어떻게 등장하는지를 보여주는 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노아는 아브라함이 태어날 때까지 죽지 않고 아브라함이 태어나는 것을 보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어쨌든 하느님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를 약속해 주시죠?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과 자손을 많게 해 주리라는 약속입니다.

그리고는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고 할례를 맺으시죠. 아브라함과 그 후손들이

하느님을 잘 섬기면 이 약속을 반드시 지켜 주실 거라고 말입니다.

 

2. 야곱, 요셉, 모세

   그런데 어떤 일이 벌어지나요?

바로 야곱, 그리니까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가진 야곱의 아들들이 요셉을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아 넘겨 버리죠. 그래도 우여곡절 끝에 요셉은 파라오의

최측근이 되고, 그 덕에 큰 기근에 야곱 집안은 파라오 그늘 아래서 목숨을 건집니다.

재미있게도 바로 이 파라오의 그늘 아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의 후손은 급속도로 불어

납니다. 하느님이 아브라함에게 자손을 많게 해 주겠다고 했던 약속이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덩치가 점점 커지자 파라오 후손들은

그들을 겁내어 그들의 제물을 빼앗고는 강제 노역을 시켜 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너무나도 힘에 겨운 나머지 하느님께 애원을 하게 되고, 하느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파라오의 손아귀에서 데리고 나와 홍해를 건너

광야로 데리고 갑니다.

그리고는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과 계약을 맺게

되는데 이 이야기가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 잘 나와 있죠.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신들의 조상 아브라함과 구원역사를 기록해 다섯 권의 책을

율법서라고 부르며 자신들의 헌법처럼 생각하죠. 그 핵심내용은 신명기 6,1-9에

잘 나옵니다. 함께 읽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3. 40년간의 광야생활

   이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율법서에 나오는 대로 하느님만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런데 힘들 때는 그토록 하느님을 외치면서도 조금만 살만 하면 하느님을 버리곤

했는데, 이미 계약을 맺은 직후 광야에서부터 그랬던 겁니다.

결국 하느님은 당신이 처음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즉시 데려

가지 않으시고 광야에서 40년 가까이 헤매도록 만들어 버리시죠.

하느님의 벌을 받은 겁니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은 하느님의 벌, 그러니까 40년을

헤매는 이 광야생활을 통해서 이스라엘은 점점 정화되어 갔고, 하느님의 백성으로

거듭났다는 겁니다.

하느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들을 깨닫게 된거죠.

어쨌든 40년을 마치는 무렵 모세는 느보산에서 죽음을 맞게 되는데 이 이야기가

모세가 적은 것으로 여기는 율법서 다섯권 책 마지막 부분에 나옵니다.

 

4. 가나안 땅 정착, 여호수아와 판관들

   드디어 대략 기원전 1200-1000년 경 여호수아의 인도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보여주신 땅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고고학 조사에 따르면 당시 팔레스티나에 있던 88개의 촌락이 678개로 급증하는데 93퍼센트에 해당하는 촌락이 새로운 이주민으로 구성되었다고 그래요.

   여호수아는 땅을 점령하면서 12부족에게 각각의 땅을 나누어 주고, 그 땅을 온전히 점령하도록 명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사람들은 대충 적절이 섞여 사는 것이 좋았나 봅니다. 여호수아의 명을 따르지 않고, 대충 그 땅 사람들의 종교를 받아들이게 되는데 바알 신상도 숭배하고, 또 아세라 목상을 세우기도 했다고 합니다. 결국 하느님께서는 노하시어 다른 백성들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벌하기도 하시는데, 이 이야기가 판관기에 나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은 어김없이 죄를 뉘우치며 하느님께 매달리는데, 그럴 때 마다 하느님은 판관들을 일으키셔서 백성들을 구해 주시죠. 하느님께서 또 속으신 거죠.

 

5. 사울과 다윗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느님을 믿고 의지하기보다 다른 나라에서처럼 임금만 있으면 자신들이 안전하게 되리라고 여겼나 봅니다. 그래서 사무엘 예언자에게 청해서 임금을 달라고 청하죠. 이 이야기가 사무엘 상권에 잘 나옵니다.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사울이라는 임금을 얻게 되는데요. 사무엘 예언자는 분명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께 의지 않고 다른 것에 의지하게 되면, 결국 그들이 의지하는 그 임금 때문에 힘들어질 것임을 분명히 경고했었습니다(1사무 8,10). 그러나 이미 귀와 눈이 멀어 버린 백성들은 상관없다고 말해 버리죠. 결국 하느님은 그들에게 임금을 허락하십니다. 이제부터 이스라엘의 불운의 역사가 시작되죠. 하느님의 뜻이 아닌 것을 청한 죄의 댓가를 치르게 된 겁니다.

   사울과 다윗 임금의 싸움으로 사울은 왕좌에서 밀려 나고 다윗 임금이 왕권을 잡게 됩니다. 그나마 다윗 임금은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었습니다. 그러나 열왕기 상권을 보면 잘 알 수 있듯이 다윗은 때때로 하느님의 눈밖에 벗어나는 일들을 하죠. 예를 들면 자기 장수 우리야의 아내 바세바의 미모에 눈이 멀어서 우리야를 죽이고 바세바를 취하죠. 그 외에도 여러 잘못을 저지름으로써 하느님의 눈 밖에 난 경우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다윗은 기본적으로 하느님을 두려워 하는 이였기 때문에 하느님은 다윗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당신의 뜻은 아니었지만 다윗이 저지른 잘못으로 인해 얻게 된 바세바를 통하여 하느님께서는 솔로몬 임금을 내어 주시죠. 지혜로운 임금 솔로몬 임금을 통해 이제 이스라엘은 온전한 부귀영화를 누리는 듯 보이게 됩니다. 이 임금은 예루살렘에 처음으로 성전을 지은 인물입니다.

 

6. 솔로몬

   열왕기 상권에 따르면 솔로몬 임금 시대 때 한 해 동안 솔로몬에게 들어오는 금의 무게만도 육백육십육 달렌트였다고 합니다(1열왕 10,14).1) 특별히 솔로몬 임금은 부와 지혜에서 세상의 어느 임금보다 뛰어났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모두 하느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넣어 주신 지혜를 들으려고 그를 찾아왔다고 전합니다(1열왕 10,12-13). 그러나 그가 이루어 놓은 이스라엘의 영화는 그리 오래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아들 대에 이르러 이스라엘은 두 나라, 곧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로 쪼개어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열왕기 상권은 솔로몬이 하느님에게서 돌아서서 이방인 여자들과 관계를 맺으며 다른 신을 따라나섰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합니다(1열왕 11,1-13). 솔로몬은 파라오의 딸 뿐 아니라 모압 여자와 암몬 여자, 에돔 여자와 시돈 여자, 그리고 히타이트 여자 등 많은 외국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다고 하는데, 왕족 출신 아내만도 칠백 명, 후궁이 삼백 명이나 되었다고 하니, 시나이 산에서 주님과 맺은 계약을 어겨도 좀 도가 지나치게 어긴 듯 합니다(탈출 34,11-16 참조). 솔로몬의 이런 사치스러운 삶은 백성들에게 큰 짐과 멍에가 되었습니다(1열왕 12,4).

 

7. 왕국의 분열

   결국 그의 아들 르하보암이 대에 이르러 나라는 둘로 갈라지고 말죠. 물론 나라가 갈라진 탓을 솔로몬에게만 돌리는 것은 도가 지나친 듯합니다. 비록 하느님께서는 조상의 죄악을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대 사대까지 벌하는 분이시기는 하지만, 분노에 더디고 자애와 진실이 충만하여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풀고 죄악과 악행과 잘못을 용서하는 하느님이시기 때문입니다(탈출 34,6-7). 그렇기 때문에 솔로몬의 아들 르하보암이 마음을 고쳐 먹고 주님을 제대로만 섬겼다고 한다면, 하느님은 이스라엘이 갈라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르하보암은 그러지 못하고 솔로몬의 잘못된 악행을 그대로 물려 받습니다. 이스라엘의 영화가 천년만년 가리라고 여겼던지, 그는 자기 주변에서 귀에 듣기 좋은 조언들만 골라 들으며 백성들의 어려움에는 아랑곳 하지 않고 주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죄만 저지르며 살았습니다. 성경은 그가 지은 죄가 자기 조상들이 지은 모든 죄보다 더 컸다고 하니, 그가 백성들을 얼마나 억누르며 다스렸는지, 하느님의 눈에서 얼마나 벗어났는지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1월왕 14,22).

   이 때 등장했던 인물이 예로보암이었습니다. 그는 백성들의 이러한 어려움을 해결해 주고자 하는 듯 르하보암에게서 북쪽 지파를 떼어내어 나라를 세웠습니다. 이 나라가 바로 북쪽 왕국 이스라엘이었는데요. 이제 이스라엘은 남쪽 왕국 유다와 북쪽 왕국 이스라엘로 갈라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예로보암 역시 하느님 뜻에 따라 살지 않고 악행을 저지릅니다. 열왕기를 보면 그는 북쪽 왕국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주님의 집에 희생 제물을 받치는 것 자체를 금했다고 합니다. 게다가 금송아지 둘을 만들어 하나는 베텔에 놓고, 하나는 단에 두어서 백성들이 이곳에서 제사를 올리도록 만들어 버립니다. 탈출 32장에서 백성들의 성화에 못 이겨 금송아지를 만든 아론의 잘못을 다시금 반복한 것입니다. 아마도 돈이 남왕국 유다로 흘러가는 것이 아까웠을 것이고, 백성들이 남 왕국 예루살렘을 자꾸 방문하게 되면 자신에게서 마음이 멀어질까 두려웠을 것입니다 (1열왕 12,26-33).  

 

8. 북왕국의 멸망

   예로보암 이후의 북왕국 임금들 역시 예로보암의 잘못된 모범을 따라 하느님과 등을 지고 살았습니다. 비록 엘이야와 엘리사가 그들을 회개시키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그들은 하느님께 완전히 등을 돌리고 살다가 하느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고 맙니다. 결국 기원전 722년 경 아시리아 임금 살만에세르에 의해 함락되고 맙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시리아로 유배를 끌려가게 되는데, 열왕기 하권의 저자는 이스라엘 백성이 주 저희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않고, 그분의 계약을, 주님의 종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어겼기 때문에 이 모든 일을 당하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2열왕 18,9-12 참조). 그 지도자에 그 백성이란 말이다.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잘못 이끌어 간다면 백성들이 지도자들을 바로 잡아 주어야할 텐데도 그러지 못했던 것입니다. 결국 잘못된 길을 걸었던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나라를 잃고 유배생활을 하게 되는 어려움을 겪게 된 것입니다. 이 때 탄생한 이들이 바로 사마리아 인들입니다. 아시리아 임금은 사람들을 유배로 끌로가고 사마리아 땅에 이방인들을 이주시켰는데, 사마리아 인들은 이때 이주한 이들과 유다인들의 혼혈족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더러운 종족이라고 싫어하고, 서로 서로 원수처럼 지냈던 것도 바로 이 때 부터입니다.

 

9. 남왕국의 멸망

   그나마 남 유다는 훌륭한 임금들, 곧 아사, 히즈키야, 요시야 임금들이 있어 다시금 하느님께로 돌아서고자 했었기에 북 이스라엘 처럼 순식간에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이사야, 예레미야, 에제키엘과 같은 여러 예언자들의 활동 덕분에 백성들도 하느님께 돌아서서 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서 그럴까요? 북쪽 이스라엘 임금들과 마찬가지로 남쪽 유다의 임금들 역시도 주님께 등을 돌리며 선대의 악한 임금들처럼 살게 됩니다. 결국 주님의 분노는 계속되었고, 남 유다 왕국 유다 역시 기원후 597년과 587년 두 번에 걸쳐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의 손에 넘어가 철저하게 파괴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유다 주민들은 모두 바빌론으로 끌려가 버립니다(2열왕 24,1-21).

 

10. 유배생활

   유배생활을 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왜 자신들이 하느님께 벌을 받았는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됩니다. 결국 그들은 모든 것이 자신들의 잘못 때문임을 깨닫게 됩니다. 곧 자신들이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지 않았기 때문에 이와 같은 벌을 받고 있다고 여겼습니다. 예언자들이 이야기 하던 것들을 비로소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배를 거치면서 다시는 이런 잘못을 반복하지 않으리라 다짐 했을 것이고, 이런 자신들의 아픈 역사, 슬픈 역사를 후손들이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글이라는 형태로 남겨 둔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접하고 이는 구약성경이라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하느님께서는 이런 백성들에게 새로운 계약을 약속하십니다. 예레 32,31-34을 보면 이 내용을 잘 알 수 있습니다.    

 

11. 유배 이후 생활

   그렇다면 이스라엘은 이후에도 이것을 기억하며 하느님께 돌아와 충실한 신앙을 고백하며 살았을까요?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기원 후 515년 이스라엘 백성들은 유배생활에서 풀려나게 되는데요. 50년간의 유배생활에서 풀려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금 하느님 계명에 따라 살기로 다짐하고, 새로운 이스라엘을 재건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비록 온전한 독립은 불가능했지만 나름대로 종교의 자유도 얻어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즈라와 느헤미야서에 잘 설명된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의 잘못을 뉘우치며, 새로운 삶을 다짐합니다. 그러나 그 노력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기억을 잊어버린 채 다시금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됩니다. 시리아의 셀레우코스 왕조가 다스릴 적에는 많은 변절자들이 생겨나면서 이민족들의 풍습에 따라 예루살렘에 경기장을 세우고, 할례 받은 흔적을 없애며 거룩한 계약을 저버린 채 악을 저지르는 데에 열중하게 됩니다(1마카 1,10-15). 물론 마카베오를 중심으로 유다왕국은 독립을 쟁취하는 듯하지만 그들 역시 대사제직을 수행하던 사독 가문을 몰아내고, 자신들이 사제직을 빼앗는등 하느님 눈에 벗어나는 일들을 저질렀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또 다시 다른 민족, 곧 로마의 손아귀에 넘어가고 맙니다. 결국 예수님께서 태어나셨을 때 이스라엘의 상황은 이런 분위기였습니다.

 

 

나가면서

 

   자,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 사람들의 역사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떻습니까? 어찌 보면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느님 사랑을 끊임없이 배신하는 한 백성과 그들을 끊임없이 당신께로 데려오려는 하느님이 이끌어간 역사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배신하면 하느님이 그들을 부르고, 그리고 야단을 치며 벌을 좀 주시다가, 그들을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잘 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느님은 왜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못하시고 그들을 당신 백성으로 남겨 두시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아브라함에게 했던 약속 때문입니다. 하느님이 당신 약속에 충실하신 것, 이것을 두고 구약성경은 ‘하느님께서는 정의로우시다’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곧 당신 약속에 충실하시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그들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것 이것이 바로 하느님의 정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세상의 정의와는 다른 하느님의 정의로움은 바로 하느님 사랑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창세 15장 참조). 어찌 보면 구약성경 전체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하느님 사랑의 연서라고도 할 수 있겠죠. 그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힘들 때 마다 성경을 읽으면서 하느님 사랑의 역사를 되새기며, 자신들이 다시금 하느님 자녀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얻어 왔고, 이것은 예수님과 우리 초대 교회, 그리스도 교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다시금 처음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면, 성경은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와 더불어 자리 잡은 하느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 성경이 아닙니다. 지금 나에게도 성경이죠. 다시 말해서 지금 나 역시 성경을 읽으면서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사랑과 이끄심을 읽고, 내 삶의 중요한 지침으로 삼아야 해야 합니다. 만약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 자신과 아무런 상관없는 이야기로 듣는다면 이것은 나에게 결코 성경일 수 없습니다. 결국 우리는 각자 지금 읽고 있는 이 성경이 하느님 말씀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성령께 도움을 청해야겠습니다. 성령께서 나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드셔서 내가 읽고 있는 이 글이 하느님 말씀으로 자라나도록 이끌어 주실 수 있도록 기도해야겠습니다. 그 때 비로소 이스라엘의 역사 안에서 우리는 참된 생명의 길이 어디에 있는지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1) 바빌론 시대에 금 한 탈렌트는 대략 금 30.3키로그램 정도였다고 하니 666 탈렌트가 얼마나 큰 가치가 있었는지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대략 5,381,270돈으로 현재 시가로 치면 9,000 억원 정도이다. 요한 묵시록은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을 뜻하는 숫자가 육백육십육이라고 말하는데 매우 의미심장해 보인다 (묵시 13,17).

좋은글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