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자료

찾는이 2017. 4. 18. 06:45

초기 왕정 시대 (1)

 

사무엘 상 하는 심오한 정치 종교적 결과를 가지는 이스라엘 사회내의 구조적 변화를 기록한다. 사무엘서의 시작은 사사 시대 말을 배경으로 하며 이스라엘 사회가 왕정을 향한 움직임을 시작할 때였다.

사무엘서가 사무엘, 사울, 다윗의 중첩되는 사역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려 나간

탁월한 문학이라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사무엘 상하는 문학비평가나 신학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역사가들에게도 가치를 가지는가? 즉 그것은 올바른 역사 서술로 간주될 수 있는가? 에는 학자들 간에 대립이 있다.

일부 성서학자들은 다윗과 솔로몬의 실존여부에 의문을 품어 왔으나 1993년 텔 단 비문의 발견으로 의문은 잣아 들었다. 텔 단 비문은 모압 석비인 메사 비문과 이집트 왕 쇼생크 1세의 지명 목록에서 “다윗”이 언급되었음을 종합하여 볼 때 성경 본문은 자신의 역사적 가치를 확립하는데 외적인 검증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원칙에도 불구하고 성경 본문을 역사적 자료로 인정하려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의미를 부여 한다.

사무엘, 열왕기, 역대기는 이스라엘의 통일 왕정시대를 기록한 성경 본문이다.

일부 학자들은 역대기의 저자를 사무엘- 열왕기의 표절자 혹은 왜곡자라고 비난하나 사무엘- 열왕기와 역대기는 공관 역사서로 각각은 자신의 관심, 개성, 관점으로 역사를 그려 나갔음을 알아야 한다. 특히 역대기 기자는 그 독자들이 사무엘- 열왕기의 내용을 알고 있음을 전제로 기술했음을 고려하여야 한다.

역대기의 역사 서술의 목적은 귀환 이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격려하고 그들에게 힘을 주는것 이였으며 그 목적에 무관한 것은 생략될 수 있었으며 한편 열왕기에 없는 많은 부분들이 첨가되기도 하였다.

따라서 성경 본문을 문자적으로 해석하여 그 둘이 상호 모순적이라고 의문을 제기하는 일부 학자들의 독해 방법엔 찬성할 수 없다.

한편 성경 본문의 일관성과 구성적 통일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은 성경 본문에 접근할 때 그것이 가지는 문예적 특징, 즉 배경모드, 표현의 경제성, 침묵과 간접적 표현, 언어유희와 핵심어, 비교-대조법, 반복변화, 이야기 패턴, 비유 등의 보다 정교한 문예기법이 사용되었음을 간과하고 있다고 보아진다.

초기 왕정시대의 연대기도 앗수르나 바벨론 왕명록의 고정 연대를 성경적 사건과 연관하여 성경 본문에 제시된 왕들의 통치연도 형식구를 근거로 유다와 이스라엘 왕들에게 비교적 합리적 연대를 제공 할 수 있다.

 

 

초기 왕정 시대 (2)

 

다윗의 역사적 실존 여부, 다윗의 업적의 역사적 사실성, 다윗의 등극에 대한 성경 이야기의 역사적 개연성 등에 이의를 제기하는 성서학자들은 다윗의 존재를 부정하고 따라서 다윗에 대한 전승이나 그의 업적을 증명할 수 없다는 이유로 부인한다.

허나 우리는 1993년의 텔 단 석비의 발견과 1994년 두개의 편비문의 추가 발견으로 종래의 메사석비와 이집트 쇼생크 1세의 지명목록 등과 종합하여 볼 때 적어도 다윗의 존재에 대해서는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한편 전승속의 다윗을 살펴보면 성경은 결함많고 독특한 다윗을 유년부터 노년까지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이는 다윗의 전승이 칭찬일색의 허위적 기술이 아니라 비교적 정확하게 역사적 다윗을 포착한다는 신뢰로 이어질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성경 본문이 다윗을 변호한다고 해서 역사적인 다윗은 그러한 변호를 받을 가치가 없는 인물이라는 것은 추정할 수 없다.

사무엘 상 17장의 다윗의 업적으로 묘사된 골리앗의 죽음이 사무엘 하 21;19 에 서의 베들레헴 사람 야레오르김 엘하난의 업적으로 묘사되어 상충되는 점과 다윗이 사울을 위해 악기 타는 자로 입궁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엘 상 17;12에서 사울과 아브넬은 그때까지 다윗을 전혀 알지 못하는 것처럼 그리고 있는 것을 들어 성경의 역사성과 진실성을 의심하는 것은 다윗에게 죽은 골리앗과 엘하난에게 죽은 또 하나의 골리앗 즉, 골리앗의 동생을 추정 해 볼 수 있고, 사무엘 상 16장과 17장이 연속된 사건임을 감안한다면 사울과 아브넬이 다윗을 알지 못했다는 뜻이라기보다 다윗의 아버지에 관하여 알지 못했다는 뜻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다윗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에서 주전 10세기 유물이 발견되지 않아 고고학적 증거부족으로 역사성이 없다는 주장은 수천년동안 그곳이 단절없는 정착이 지속되어 청동기 시대의 건축 석재들이 재사용 되었다고 추정해 볼 수도 있다.

다만 도자기 파편들이 발견 되지 않았다는 점이 약간의 의문으로 남아 있을 수 있으나 예루살렘은 여러 이유로 광범위한 발굴을 한번도 행한 적이 없다는 사실에 좀 더 주목하여야 한다.

한편 주전 14세기 아마르나 편지에 언급된 예루살렘 시장으로 불린 아브디 헤바의 여섯통의 편지는 예루살렘이란 도시가 그전부터 존재했다는 증거로 볼 수 있다.

다윗 제국이란 개념도 레반트지역에 성립된 다충적 제국이라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크게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정 전환과 다윗의 일대기에 대한 성경의 기술에 부정적 생각을 가진 학자들도 “그 부정적 관점”이 결국 성경 본문으로부터 재구성된 것이라고 본다면 우리는 성경의 역사성에 더 큰 신뢰를 가질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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