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자료

찾는이 2017. 5. 11. 20:35

팀 켈러의 탕부 하나님을 읽고....

 

 

1.내용 요약

 

 누가복음 15장 11절-32절의 말씀은 아버지의 재산을 미리 분배받아 외국으로 가서

그 많던 재산을 환락 속에 모두 탕진하고 걸인이 되어 귀향하는 방탕한 아들의 모습과 그런 아들을 따뜻이 맞이하고 잔치까지 베푸는 아버지의 사랑을 그리고 있고 한편으론 아버지를 모시고 성실히 살아 온 맏아들이 아버지의 처사를 못마땅히 여기며 불평을 이야기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 주변에도 이 탕자의 비유에 등장하는 형제와 같은 두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함을 강조한다.

 한 부류는 도덕과 인륜을 저버리고 죄를 범하며 환락을 쫓아 사는 탕자와 같은 사람들이고 또 다른 한 부류는 도덕과 계율을 엄격하게 지키며 절제하는 생활을 하려 노력하는 성실한 부류이다.

 교회에도 두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하며 저자는 이 두 부류의 사람들을 모두 다 잃어버린 아들로 본다.

 아버지 말씀에 불순종하고 방탕했던 작은 아들은 당연히 범죄하여 아버지를 멀리 떠난 잃어버린 아들이지만 아버지 곁에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며 열심히 일했던 큰 아들도 역시 아우와 다를 바 없는 아버지 앞에선 잃어버린 아들이라는 것이다.

 얼핏, 큰 아들은 칭찬 받을 만하고 선한 아들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자신의 도덕적 이력에 대한 교만을 가지고 스스로의 의를 내세우며 아버지의 잔치 권유에 동참을 거부하는 아버지에 범죄한 아들이긴 마찬가지란 말이다.

 교인들 가운데도 성경속의 율법을 지키려 애쓰며, 도덕적인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자신도 모르는 새에 그것을 내세워 하나님을 수단으로 이용하고 그분을 통제하고 자기 생각대로 그분에게 의무를 지우려는 죄악을 범하기 쉽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을 도덕적인 착한 사람들과 부도덕한 나쁜 사람들로 가르지 않으신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력 구원 사업에 몰두해 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에 대한 진정한 사랑과 그로인한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면 우리는 두려움에 기초한 맹종 속에 스스로 만들어낸 감옥에서 살아가는 바리새인과 진배 없다

 두려움에 기초한 도덕은 오히려 악을 심화시킨다.

 큰 아들과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그들이 나누는 대화에는 경이로움이나 경외심이나 친밀함이나 즐거움이 없다.

 맏아들을 구원의 잔치에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것은 자신의 나쁜 행실에 대한 회개의 부족이 아니라 선한 행실에 대한 교만 때문이다.

 그렇다면 바리새인과 같은 신앙을 가진 맏아들과 같은 신앙인들은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바리새인들은 죄만 회개하지만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어 구원을 받으려면 자신이 잘한 일의 동기까지 회개하여야 한다 .

즉, 자신의 의의 뿌리까지 회개하여야 한다

 아버지 집을 떠나 환락을 쫒은 탕자도 아버지 곁에서 착한 행실을 한 장자도 양쪽 모두의 배후에 스스로 구주와 주인이 되려는 갈망이 도사리고 있음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악행의 해법이 단지 선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신 은혜로움을 체험해야 하는 것이다.

 이 세상은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 귀향의 여정이요 집이란 우리가 그곳으로 갈 때 우리를 받아 주어야만 하는 곳이다.‘

 우리는 이러한 복음을 믿고 예수님이 이루신 일안에 안식하며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와 새로운 정체성을 받아 죄와 은혜와 희망에 대한 예수님의 메시지에 기초해 살아가면 예수님이 베푸시는 구원의 잔치에 동참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모든 변화가 이루어지려면 그리스도의 구원을 깊이 이해해야 하고 그 이해에서 비롯된 마음의 변화들이 삶으로 옮겨져야 한다.

 복음을 믿으면 우리의 동기, 자아에 대한 이해, 정체성, 세계관등이 뜯어 고쳐진다.

 마음의 변화없이 규정만 지키는 행동은 피상적이고 일시적일 뿐이다.

 그러므로 복음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출발점 일뿐만 아니라 종착점이다.

 변화된 삶을 결실하는 부류는 더 열심히 노력했거나 더 순종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들이다(마 13;25)

 

2.저자의 강조점

 우리는 잃어버린 두 아들처럼 방탕과 타락의 죄악뿐만 아니라 충성과 순복을 가장한 자력구원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는지 스스로 살펴보아야 한다.

 하나님의 천국잔치에 들어 갈 수 있는 사람은 더 열심히 노력했다거나 더 순종한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닫고 누린 사람들이다.

 우리는 순전히 은혜로만 구원받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성으로 통제된 믿음이 아닌 평화롭고 기쁨이 충만한 가운데 그분이 주시는 자비의 단맛을 체험하여야 한다.

 

 

3.평소에 누가복음 15장의 비유의 말씀을 읽고 알던 것과 다른 점.

누가복음 15장의 비유의 말씀은 회개하고 돌아 온 탕자의 귀향을 용서해 주시고 따뜻하게 맞이해 주시고 잔치를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끝 모를 사랑과 자비를 깨닫게 하는 말씀의 장으로 알아 왔다.

그러나 우리가 자칫 깨닫지 못한 채 저지르고 있는 맏아들의 범죄 즉, 성실하게, 도덕적으로, 경건하게, 선하게 교회생활과 믿음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마음속에 바리새인같이 자력구원의 강요된 신앙생활은 하고있지 않은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음을 가르쳐 주고 있다.

구원은 두려움 속에 강요된 믿음과 선한행동의 결과가 아니라 무한히 베프시는 탕부하나님의 값없는 사랑이요 그것을 이해하고 맛보고 누리는 기쁨의 잔치임을 깨닫게 한다.

 믿음과 구원은 객관적이고 법적일 뿐만 아니라 또한 주관적이고 체험적이다.

 하나님의 거룩과 은혜를 믿는것에서 더 나아가 맛보고 변화된 신앙인이 되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의지력만으로는 변화될 수 없고성경의 원리들을 배우고 실천에 힘쓴다고 될 수 있는게 아니다.

 영속된 변화는 복음을 더 깊이 이해하고마음에 속속들이 배어들게 해야만 가능하다.

 우리들은 끊임없이 복음으로 돌아 가 그것을 내면화하고 생활화 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