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자료

찾는이 2017. 5. 18. 23:36

후기 왕정시대 - 솔로몬

 

1.후기 왕정시대의 사료

후기 왕정 시대의 가장 방대한 사료는 성경의 열왕기와 역대기이다.

열왕기는 종교적 관점에서 왕을 평가하며 하나님의 뜻에 배치되게 백성을 다스린 실패한 왕들과 그 결과 이방제국에 흡수된 이스라엘 왕국의 이야기를 기술하였다.

열왕기저자들은 특정한 종교적 관점에서 자신들의 목적에 봉사하는 사건들만 선택하여 기술하였다.

역대하는 열왕기 상하의 내용에 근거하지만 나름의 방향과 관점으로 역사를 서술한다.

역대하의 초점은 유다, 성전, 성전 예배 등에 있어 열왕기에 있는 내용 중 상당수가 빠져있고 열왕기에 언급된 사건들이 다른 관점에서 해설되거나 열왕기에 없는 내용들이 첨가되어 있기도 하다.

이는 역대하의 저작연대가 열왕기보다 늦은 주전 4세기경이란 점과 역대 하 저자의 문제의식 등이 관계가 있다.

 

2.후기 왕정 시대의 연대기

열왕기와 열왕기에 의존하는 역대기가 제공하는 연대는 상대적 연대이다.

이스라엘 후기왕정 시대에 대한 절대 연대를 얻기 위해서는 앗수르 자료, 특히 림무-연대를 살리는 것이 중요하다.

림무-연대를 통해 앗수르의 정확한 연대를 산출하고 이를 이스라엘 역사의 주요 사료들과 연계시켜 연대를 추산 할 수 있다.

우리는 그 고정점을 기준으로 성경자료 안에서 연대를 앞뒤로 추정할 수 있다.

고대의 연대 계산자들은 후 연대 혹은 즉위년시스템이라 불린 방법과 전 연대 혹은 비 즉위년시스템이라 불린 방법으로 통치연대를 계산하였다.

이러한 방법으로 불일치 되는 부분은 ‘공동통치’ 현상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 모든 것을 염두에 두고 후기 왕정 시대를 서술 할 때 성경전승을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가능하면 정확하게 연대도 제안해야 하나 성경연대가 단순한 사실적 연대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란 점을 인지하고 큰 그림을 놓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3.솔로몬 왕의 통치

 

1)솔로몬의 통치 초기

솔로몬의 초기 통치에 관한 유일한 사료는 열왕기와 역대기이다.

열왕기상 3:7은 솔로몬이 왕이 되었을 때 상대적으로 미 성숙 하였음을 암시한다.

솔로몬은 백성을 정의롭게 다스리는데 필요한 지혜와 능력이 없음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그것을 얻는다.

열왕기와 역대기 저자들은 이 위로부터 온 지헤를 솔로몬 통치의 토대로 간주한다.

 

2)솔로몬의 이스라엘 지배

역대기 저자들에겐 솔로몬의 통치업적 중 성전과 예배에 관한 것들이 주요 관심사 이다. 반면, 열왕기 저자들은 보다 많은 분량을 솔로몬의 통치 업적에 할애한다.

열왕기 4장은 솔로몬이 전국을 12지방으로 나누어 다스렸는데 그것은 전통적 부족 체계와 연결점은 가지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새로운 체계임을 나타내고 있다.

솔로몬은 북쪽의 단에서 남쪽의 브엘세바까지 모든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

 

 3)솔로몬과 고대 근동

딥사로부터 가사까지 이어지는 지역이 솔로몬의 영향권이였다.

솔로몬이 전마차를 위한 마굿간을 4만개나 보유했다는(4;26) 말은 문학적 관습으로 과장된 숫자가 사용 되었음을 고려해야 한다.

밀러와 헤이츠는 솔로몬의 대외적 영향력에 관한 열왕기상 4장의 주장에 의문을 제기 한다. 그러나 이는 솔로몬 제국이 다층적 지배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인정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다.

두로 왕 히랍 과는 우월한 가치를 점한 협력적 동반자로, 암몬, 모압, 에돔 왕들과는 종속 왕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강대국이 출현한 적이 없었다는 휘틀렙의 주장에도 당시 팔레스타인에 영향을 미치던 강대국 세력들이 소강상태를 이루어 솔로몬의 통치 기간 에는 그 세력들이 위축된 시기였다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4)솔로몬의 건축사업

솔로몬의 건축 사업에 강력한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에게 예루살렘, 하솔, 므깃도, 게셀에서의 고고학적 증거의 발견, 특히 예루살렘에서의 솔로몬이 지은 밀로같은 건축물은 솔로몬 건축 사업에 대한 긍정적 신호를 주고 있다.

기록된 성경에 대한 의존을 포기하고 고고학의 확실한 결과에 집착해 과거를 구성하는 것이 얼마나 부정확하며 어리석은 것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5)솔로몬과 이스라엘의 종교

열왕기와 역대기 저자들은 솔로몬을 신실한 여호와 숭배자로 제시한다. 허나 그는 나중에 외국공주 출신의 아내들의 영향으로 타락하여 이방신들을 위한 성소를 건축하였다. 후기 왕정 시대의 종교는 엄밀히 말해 혼합 종교였다.

솔로몬의 배교는 남과북으로부터 솔로몬을 괴롭히기 시작한 두명의 적, 즉 하닷과 르손의 출현을 가져 온다(왕상 11;14-25)

그리고 실로의 선지자 아히야의 예언대로 솔로몬의 사후 여러보암이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지파의 지지를 얻어 솔로몬 왕국은 유다와 이스라엘 왕국으로 분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