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자료

찾는이 2017. 5. 28. 16:41

     유두고를 살리신 하나님

 

 

사도행전 20장7-12절의 말씀을 보면 유두고의 죽음과 소생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날의 사건을 재 구성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떠나기 위하여 드로아에서 고별설교를 할 때 입니다.

대 사도인 바울의 고별설교라서인지 많은 형제들이 모였습니다. 3층 누각까지 사람들로 꽉 찼고 설교와 가르침은 밤늦게까지 이어졌습니다. 실내는 등불을 많이 밝혀서 공기가 혼탁하였고 사람들의 열기로 후끈 달아올랐습니다. 그 중에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다가 3층에서 떨어지는 불상사가 발생하였습니다. 갑자기 실내 분위기가 소란스러워졌고 불안한 심정들로 말미암아 예배모임이 자칫 중단될 위기까지 몰렸습니다.

바울은 설교를 멈추고 내려가서 유두고를 보았을 때에는 이미 죽어 있었습니다. 동행한 누가는 의사였으므로 죽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죽음이 확인되자 바울은 유두고 몸 위로 자신의 몸을 덮었습니다. 그리고 외쳤습니다.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바울은 간절한 마음으로 청년을 안고 하나님께 속으로 부르짖었읍니다.

그리고 바울의 간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유두고를 다시 살리셨읍니다.

바울은 유두고가 살았음을 확인한 후에 다시 단상으로 올라가서 준비한 떡을 떼어 그곳에 모인 형제들과 함께 나누는 성례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리고 날이 새기까지 강론을 계속하였습니다.

떡을 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연합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떡을 떼기 전 죽음과 그리고 다시 떡을 뗀 다음 부활함에 대한 의식, 즉 성찬의식 중에 유두고의 죽음과 다시 살아남을 목격한 드로아 성도들은 일생 동안 잊히지 않을 감동과 위로를 받았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일련의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우리 삶을 돌아보고 우리의 신앙자세를 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겠습니다.

 

첫째, 신앙인은 항상 성실하고 바른 예배의 자세를 지켜야 합니다.

 

유두고는 사람들로 가득차고 등불 그 으름으로 공기마져 답답한 아래쪽을 피해

바람이 잘 통하는 3층 창가라는 위험한 곳에 앉아 있었습니다(9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자세가 가장 중요합니다.

정청, 정좌, 정시의 자세여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연설이나 자기주장을 듣는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옷깃을 여미고, 경건한 자세로 앉아, 마음의 눈을 열고, 설교자를 바라보고, 귀를 기울이는 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현재의 자신을 돌아보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위험한 자리에 앉아 있지는 않습니까?

찬송 기도 충성하는 자리가 아닌 구경꾼의 자리, 방관자의 자리, 불평하는 자리, 싸움꾼의 자리에 앉아있지는 않습니까.

이러한 자리를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유두고처럼 위험을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위험한 곳에서 벗어나 축복의 자리, 안전한 자리에서 기쁨이 넘치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둘째 늘 깨어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겠습니다.

 

유두고는 깊이 졸았습니다. 잠자는 신앙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합니다.

충성도 잠자게 되고, 봉사도 잠자게 되며, 기도도 잠자게 됩니다.

그래서 성도답게 살지 못하고 사탄의 종노릇을 하게 합니다.

우리가 나태한 신앙생ㅎ활을 할 때 우리는 그런 우리 자신을 스스로 변명하고 합리화 합니다.,

유두고는 그 이름이 복된 사람 즉, 우리식으로 복돌이, 복동이란 뜻을 가진 하층민 청년이였습니다. 학자들은 당시의 이런 류의 이름을 추정컨데 아마도 노예였을거라고 말합니다.

유두고는 하루 종일 노동을 하고 주인을 따라 예배에 참석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다 몇시간씩 계속되는 바울사도의 설교말씀에 자기도 모르게 졸음이 와서 졸다가 떨어져 죽는 불상사를 겪게 되었을 것입니다.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예배에 참석한 그 마음이 기특하지 않냐고 유두고를 변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여건이 어떠하던지, 어떤 위험과 어려움이 있던지 간에 깨어 있어 주의 말씀을 사모하고 늘 기도해야 합니다.

유두고가 순교을 앞둔 마지막 여행을 떠나기 전 한 말씀이라도 더 전하려는 사도 바울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졸지 않았을 것입니다.

잠자는 신앙에서 깨어 일어나 힘차게 움직이고 충성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우리는 부활의 확고한 신앙위에 긍정적 믿음생활을 해야 겠습니다.

 

누가는 이 사건 안에 십자가의 구원과 부활의 의미가 감춰져 있다는 사실을 넌지시 전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하나님의 기적이 여러 군데에 등장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엘리야와 엘리사가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리는 기적을 행합니다.

신약시대에는 예수님께서 나사로와 나인성의 과부와 야이로의 딸을 살려내십니다.

베드로가 죽은 다비다를 살린 내용이 사도행전에 나오고, 오늘 바울사도가 살린 유두고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잊을만하면 한번 씩 죽었던 사람을 다시 살리는 이야기를 들려주셔서 우리에게 계속해서 기억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에게 가마득하게만 보이는 부활이란 진리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현실세계가 아닌 것은 아무래도 우리에겐 까마득합니다.

신자들이 가나안 복지 천국을 소망한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의 관심은 이 땅의 복지입니다.

일반인들은 더더욱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음 뒤의 삶이 심각하게 믿어진다면 다들 그렇게 막 살겠습니까?

바울 시대에도 바리새인들은 부활을 믿었지만 사두개인들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고 믿었습니다.

성경은 죽음 뒤의 부활에 대해 믿을만한 역사적 사실들을 증거로 남겨 놓았습니다.

가장 완전한 부활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 역시 그런 영화롭고 완전한 몸으로 다시 부활 할 것을 보장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유두고나 나사로와 같이 죽었다 살아나는 사람들을 통해 영혼불멸을 증명해주시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 7절의 말씀은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라고 시작합니다.

그리고 11절에 보면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라고 합니다.

떡을 떼다는 단어는 예수님의 몸이 찢기고 피 흘려 죽으심으로 우리 죄를 속죄해 주셨다는 것을 기념하고 기억하는 성찬식의 용어입니다.

유두고와 같은 인생, 평생 남의 일을 해주며 세상의 천대속에 살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사람들에게도 유두고를 살리신 예수님, 자신의 몸을 인간의 죄악에 대한 속죄 제물로 드려 몸 찢으시고 피를 흘리심으로 우리를 영원한 부활의 기쁨 속에 살아가게 하신 그 사실을 오늘 성경 본문은 유두고의 죽음과 부활사건이라는 짧은 에피소드 안에 예수님의 속죄와 구원의 복음에 대해 완벽히 정리해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지친 삶에는 매일 매일 위로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어디서 위로를 받고, 또 누가 있어 우리를 진심으로 위로해 줍니까?

세상과 그 누가 주는 위로와는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크나 큰 위로,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를 보내신 아버지의 사랑과 십자가에서 몸 찢고 피흘려 자신을 대속제물로 주신 예수님의 사랑에 대해 깨닫고 체험할 때 가장 큰 위로가 됩니다.

세상을 살아 가면서 우리는 누구나 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힘든 일을 만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무엇이든 그곳에 예수님이 동행하시고, 우리 가족과 함께 하시고, 내 영혼을 지켜 보호하신다는 이 깊은 은혜를 매일 체험하며 항상 하나님의 위로가운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