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자료

찾는이 2018. 5. 25. 23:28

   (월터 부르그만의) 구약개론 서론 내용 요약

 

1. 상상적 기억

 

 20세기까지는 구약의 서론과 관련하여 제기되는 질문과 제시되는 답에게 일반적인 합의가 있었다고 보아진다.

신앙에 깊은 기초를 두는 방식과 비평적으로 판단하는 방식이 하나의 미묘한 방법으로 유지되었는데 학자들은 대체로 이러한

신앙과 비평의 공조라는 불편한 기반을 유지하는 것을 정직하고 성취 가능한 일로 보았었다.

그러나 최근에 이런 일반적인 합의는 다양한 시각과 방법론이 대두되어 성서학자들 사이에 의견의 일치를 보기엔 불가능에

가깝게 되었다.

현재 구약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널리 행해지고 되풀이 되는 문제점은 크게 네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구약(Old Testament)이라는 용어 자체는 난해한 문제들이 터를 잡고 사는 둥지와 같다는 성급한 사고와 인식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항상 신약을 염두에 두고 구약과 관련하여 신약을 읽는다는 것을 분명히 반영하기 때문이다.

 ‘구약‘과 ’신약‘은 ’옛것‘과 ’새것’의 관계성을 가진다 보고 ‘옛부분’은 메시아 예수에 중점을 두고 있는 ‘새것’ 안에서

  결실과 성취에 이르게 된다고 본다.

   그러나 ‘옛것’과 ‘새것’의 관계성은 옛것을 완전히 무시하고 새것을 지향하는 읽기 이외의 어떤 읽기도 배제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더 나아가 구약이라는 용어를 자주 대체주의(Superses-sionism)를 확증하는 용어로 이해되고 있다.

   이러한 전제는 신약에서 부분적으로 드러나고 있으며 많은 기독교적 해석과 신앙관습을 통해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그렇지만 이것은 ‘옛것’ ‘새것’을 올바르게 이해한 것이 아니다. 사실 구약이라는 용어는 고대 이스라엘의 신앙과 예수를

   증거하는 초대교회의 신앙사이에 있는 밀접하고도 깊은 연관성을 입증하려는 표현이기 때문이다.

   구약은 기독교의 신약이해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중요하다. 구약은 신앙과 해석의 범주들을 제공함으로서 이를 통해

   신약성경이 이해되며 이것 없이는 신약성경이 신앙적으로도 논리적으로도 읽혀 질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2)구약의 문헌에 대한 연구이며 이 연구로 나타나게 되는 ‘신학적’ 주장에 대한 고찰인 구약개론을 ‘이스라엘 역사’나

     ‘이스라엘 종교역사’ 연구와 혼동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와 그 종교에 대한 관심과 지식 없이 구약 문헌과 그 신학적 주장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이다.

     문헌과 입증 가능한 역사적 배경 사이에 항상 밀접한 연관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생산적인 상상 행위의 결과인 문헌에는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을 의도적으로 연결시키려는 특정한 목적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이스라엘의 신앙과 구약 문헌의

     역사적인 부분들에 상당히 문제가 많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는 이 문헌들이 ‘사건들’의 산물이 아니라 상상적 해석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성경문헌이 현대인이 ‘역사’라고

    부르는 것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다.

     이 문헌들은 종교적 주장을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매개체이지 비평적인 역사 재구성으로 인해서 좌지우지될 성격의 것은

     아니다.

 

    3)구약 연구가 근대 이후 수세기 동안 주로 역사적 작업이였던 반면에 아주 최근에 와서야 구약 연구는 정경(canon)

        이라는 이름으로 새롭게 진행되었다.

 

     이것은 ‘역사‘라는 이름으로 이루어 졌던 기존의 연구 경향에 대한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된 접근법으로 성경의 문헌이

    한 공동체를 위한 규범과 법규로 기능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구약 연구에서 이 정경은 유대교와 기독교 신앙공동체 모두를 위한 성경 문헌집을 구성하고 있는 책들의 목록을 지칭하는

   용어이다.

    유대교 신앙의 규범이 되는 히브리 정경은 세 가지 분명한 책들로 구성되어 있다.

   토라는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통적으로 ‘모세의 다섯 책’으로 불리고 있다.

   이 문헌집은 유대 전통에서는 최고의 경전적 권위를 가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이를 기초로 기독교 전통 또한 동일하게

    받아 드리고 있다.

    정경으로서 선지서는 여덞 권의 ‘책들’로 구성되는데 크게 둘로 구분된다.

    전 선지서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 열왕기가 포함되며 후 선지서는 이사야, 에레미야, 에스겔, 그리고 열두 권의

    소선지서로 구성된다.

    이 문헌집은 그 최종적인 형태가 주전 2세기에 이루어 졌으며 토라보다는 낮은 권위를 가지고 있다.

    성문서는 열한 권의 책들로 이루어진 모음집이다.

    시편, 욥기, 잠언으로 이루어진 세 권의 긴 시가서 오축의 룻기, 에스더, 전도서, 에레미야 애가, 아가, 개정된 역사서인

    역대상하, 에스라, 느헤미아서와 단권 묵시 두루마리인 다니엘서 등이 그것인데 이 자료들은 아주 늦은 시기 즉

    기독교시대로 보이는 때에 와서야 그 정경적 형태와 지위에 이르게 되었고 토라나 선지서들 즉 ‘율법과 선지자’보다는

    그 정경적 권위에 있어 비중이 크지 않다.

    개신교의 정경과 로마 카톨릭 및 그리스 정교의 정경사이에 뚜렷한 구별이 존재하는데, 후자는 제2의 정경적 책들

     즉 외경(Apocrypha)으로 알려진 일곱 권의 책도 포함된다.

    그러나 책들의 이해나 순서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서 정경이 우리의 흥미를 끌 수 있는 것은 최근에 정경이 단순히 역사적

    발전이나 문예적 결정으로 이해된 것이 아니라, 신학적 실천으로 이해된 데에 있다.

   이것은 문헌의 발전이 이제 신학적으로 자극과 신학적 확신에 따라 문헌을 형성하려는 관심에서 일어났다고 하는 이해를

  말한다. 문헌은 철저히 규범적 신학의 진술이 되는 것이고 열정적인 신학적 확신에 따라 만들어 진다고 보는 것이다.

 

   4)역사 사건에 대한 보도와 정경 형성의 상호작용은 한없이 복잡하다. 이 상호작용의 과정은 전승의 작업, 즉 우리가

    ‘ 창의저 기억’이라는 용어로 표현할 수 있는 성경의 형성, 전달, 해석에 대한 규정 작업이다.

 

    기억은 공동체의 여러 세대를 통해서 수행되고 있는데, 이는 전세대가 후세대에게 공동체 구전 중에서도 대체로 소중히

    여겨지고 있는 것에 대해 말하고 그것이 다음세대에 반복됨으로 이루어진다.

     우리는 기억된 것이 어떤 사건에 기원을 두고 있다고 가정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사건이며 ,

     우리는 그 사건의 ‘발생’에 대해 특정한 주장을 할 수 없다.

      더구나 ‘발생’했을 가능성이 있는 어떤 것이든 그 너머에까지 나아 갈 수 있고 추정할 수 있는 창의적 자유로 가득 채워진

    것이 기억이다. 때때로 이 창의적 재해석은 그 사건에 대한 기억이 새로운 세대에 적합해지도록 만들기 위해 계획적으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발생한’것을 넘어서는 상상적 해석은 무가치하며 입증될 수 없는 것이 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반복되는 전승과정은 후세대들의 기억이 과거에 발생한 사건 자체에 머물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수용하는 세대가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자신들의 삶에 맞는 일관성과 경이로움을 가진 생생한 의미의 세계를 재창조

    할 수 있도록 의도된 것이다.

     이 상상적인 기억에 의한 작업은 여전히 우리가 가진 최고의 비평적 지식을 진지하게 수용하면서, 동시에 성경을 신앙에

     대한 믿을 수 있는 음성으로써 가치를 부여하게 하는 실마리이다.

     비평학계는 오랫동안 상상적 추론과 ‘신뢰할만한 기억’을 구별해 내려고 했으며 이로써 문제들을 최소화하려고 했다.

    그러나 현재 학계의 분위기는 상당히 회의적이다. 한편으로 학자들은 구약의 ‘역사성’에 대한 주장을 대체로 신뢰할 수

    없고 입증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때로는 가망없는 것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다른 한편으로 학자들은 본문에 실린 이념의 짐 때문에 이것을 신뢰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Barr2000).

    이들 비평적 판단에 대한 인식은 중요한 것이며 이것은 본문에 무책임하게 주장하는 일을 경고한다.

   그러나 동시에 본문의 신뢰성에 대한 현대주의자의 시험들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며 이들은 본문이 전달하고자 의도하지

   않았던 것을 질문해온 것으로 판단할 수 있다.

   그러므로 부모가 그들의 자녀에게 규범적 전승으로 제시해온 것은 YHWH(야훼), 즉 실재에 대한 믿을만한 표현인

  이스라엘의 내러티브와 노래들 안에서 역사하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그 중심인물로 두고 있는 의미의 세계이다.

  온갖 종류의 비평적 제한사항과 인식들이 주어지는 가운데, 우리는 이러한 전승과정이 훈련되고 자유로운 창조적 행위라는

  점을 수용할 수 있을 뿐이다.

  전승과정의 역동성에 대한 개념은 구약연구에서 전혀 새로운 인식은 아니나 18세기와 19세기의 계몽주의적 합리성의

  기반에서, 전승의 과정은 구약의 역사적 본문들이 몇 가지 문서들에서 나온 것이라는 특정한 가설 안에서 설명되었다.

   이 문서 가설은 이제 더 이상 적합하지 않은 이스라엘 종교의 진화론적 발전이라는 개념에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비록 아주 상이한 형태들로 나타나기는 했어도 , 과정자체가 갖는 역동성은 지속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학계가 ‘문서들’로부터 ‘전승들’로 관심을 옮기기 시작한 것은 겨우 20세기 중엽의 일이었지만 이 역동성의 핵심은

   양자의 경우에 동일하다. 그 최종형태까지 포함해서, 전승은 창의적 기억에 의하여 수행된 것이다.

  다음 세대에 신앙을 지속시키기 위한 말하기(Telling)와 다시 말하기(Retelling)의 전승과정에서 각각의 다시 말하기의

   틀은 이 특정한 다시 말하기가 ‘최종적인 것’이며 분명히 올바른 것이어야 한다는 의도를 내보인다.

  하지만 결국 전승 이야기의 어떤 경우도 ‘최종적인 것’이 죄지 못했으며 각각의 전승행위는 결국 더 새로운 틀에 의해

  극복되고 사실상 대체되었다.

  교회의 성경을 형성해 왔던 전승의 과정은 있는 그대로의 보도행위가 아니라 긴 시간에 걸쳐 각각의 변화를 겪는 중에 다음

  세대의 세계가 신앙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하려는 의도를 가진 변증이다.

 성경이 되어 진 전승은 창의적 상상력, 이념, 그리고 그 과정에 개입하신 하나님이 주신 영감 등 세 가지 사실의 상호작용에

  의해 이루어져 갔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사실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상호작용은 본문이 항상 다시 해석 되어야 한다고

  요구되기도 한다.

  특별히 전승과정을 종결시키기 원하는 두 가지 입장이 있다.

  하나는 교회 안에 ‘참된’ 해석이 이미 주어졌으며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그저 되풀이 되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분위기이다.

  다른 하나는 ‘세련된 종교 경멸자‘들로 전승과정의 ’두터움‘을 인지하는데 실패하고 성경의 제안은 표면적인 의미에서 취하며  

  현대적 합리성이라는 프리즘을 통하여 문제를 대충 훓어 보고 전승을 부적절한 것으로 몰아내 버리는 것이다.

  어느 방식을 통하든 이 경우에는 성경 안에서 풍부하게 반복되는 경이로움으로 제시된 ‘낯설고 새로운’세계를 놓치게 되는

  것이다.

 

   2. 내러티브와 시

 

  성경 히브리 내러티브의 스타일은 많은 경우 단순하며 심지어 원시적이기까지 하다.

  고전 시의 엄격한 운율구성이나 후기 영시의 운율과 같은 규칙을 볼 수 없는 히브리 시는 대개의 경우 “시다운 시”로

 인식되지 못했다. 하지만 히브리 내러티브와 시의 특징적 양태에 대해 눈을 뜨게 되면 구약 성경의 깊은 문학적 기교를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된다. 그뿐 아니라, 성경의 문학적 양식과 형태에 관해 알게 되면 본문의 윤리적 신학적

   차원에 대한 보다 갚은 이해가 가능해 진다.

 

   1) 성경 내러티브의 성격과 기능

 

    성경 내러티브는 매우 한정된 어휘로 구성되며, 유의어를 활용해 다채롭게 표현하기보다는 한 단어를 몇 번이고 반복한다.

    성경 내러티브의 구문론 또한 현대인의 눈에는 지극히 초보적이다. 종속절로 이루어진 복문을 사용하는 대신, 간단한

   접속사 ‘그리고’로 절과 절을 연결시켜서 각 절들이 어떤 구문론적 관계를 맺는지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다.

   성경 내러티브의 과감한 간결함이 스타일의 부재를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배경으로 가득 찬 자신만의 독특하고 심오한 문학

  양식으로 보는 견해(Erich Auerbach)처럼 성경 내러티브는 사물이나 사람의 겉모습에 대한 묘사에 거의 관심이 없다.

   또한 인물의 기질에 대한 묘사 역시 찾아보기 어렵다.

   성경 내러티브는 인간과 하나님의 내면뿐만 아니라 역사도 그 자체로는 계산이 불가능할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 있으며

   결코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임을 보여주려 하기 때문이다.

 

    2) 성경 시(詩)의 성격과 기능

 

     구약 성경 시의 대다수는 지난 2,000년동안 대개의 경우 산문과 다름없는 형태로 표시되어 왔다. 성경에 시가 존재하느냐의  

    질문은 시에 대한 고전적 기준에 성경의 시가 부합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기인하여 왔는데 이는 성경 운문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한 주된 이유였다.

    또 성경해석 학자들의 관심이 주어진 본문의 ‘내용’과 ‘의미’로 집중되어 성경이 종교문헌으로서의 지위가 고착된 이유도

     컷다.

    그러나 히브리 시를 연구한 옥스퍼드대학의 로우스가 1753년도에 출판한 <히브리 시 강론>에 고대 히브리 운문의 주된

   구성 원리로 행간 평행법(parallelis membrorum)을 파악하고 기술한 이후 운문으로서의 히브리 시에 대한 관심은 계속

    되었다.

    최근의 연구는 행들간의 관계가 복잡하고 재미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벌린(AdeleBerlin), 오커너(Michael O'connor), 답스-알솝(F.W.Dobby-Allsop)등의 학자들은 평행법이 ‘의미론적 특징‘

    뿐만 아니라 문법적, 구문론적, 은율론적 패턴과도 관계있으며 복잡한 구문론적 규칙들이 고대 히브리 시(詩)행의

     기초를 이루고 있음을 증명했다.

   성경의 시는 일반적으로 시의 묘사가 모호하지만 또한 적절하다. 또한 성경 산문 내러티브모다 언어적으로 훨씬 ‘창조적’이다.

   시는 시편에서 볼 수 있듯이 매우 관습적인 심상으로부터 욥기에서 볼 수 있는 보다 창조적인 심상들, 그리고 아가서의

   이중 어구에 이르기까지 수사적인 언어들로 가득하다. 성경의 잠언은 운문 형식으로 표현된 경구로 가득하다.

    성경 내러티브가 성격 묘사에 있어 모호함을 제공한다면 성경 시는 화자의 감정이나 생각을 전달 하는 등 내면적 삶을

    기꺼이 드러내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