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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년노 항장곡(桐千年老 恒藏曲) : 오동나무는 천 년이 지나도 늘 아름다운 곡조를 간직하고, 매일생한 불매향(梅一生寒 不賣香) : 매화는 평생 혹한에 꽃을 피지만 향기를 팔지 않는다. 월도천휴 여본질(月到千虧 餘本質) :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은 변하지 않으며, 유경백별 우신지(柳經百別 又新枝) :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난다. ☞ 조선 중기 4대 문장가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 ~ 1628)

리콴유와 두 朴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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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

2013. 1. 3.

[칼럼] 리콴유와 두 朴대통령


싱가포르의 국부 리콴유(李光耀)는 아시아 역사의 산증인이다.

중국 혁명과 굴기를 이끈 마오쩌둥과 덩샤오핑,
군국주의 일본의 부침을 겪은 히로히토,
한국의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을 모두 만났다.
지난 한 세기 아시아 역사를
그보다 생생하게 들려줄 이는 드물 것이다.
잠시 그의 눈을 빌려 한국을 보자.

1979년 10월.
리콴유 총리는 청와대에서 박정희 대통령을 만났다.
"박정희는 금욕주의자처럼 보이고
날카로운 얼굴을 한 작지만 강단 있는" 모습이었다.
리콴유는 2000년에 낸 회고록(From Third World To First)에서
"한국의 성공을 위한 그의 강한 의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그가 없었다면 한국은 결코 산업화를 이루지 못했을지도 모른다"고 썼다.
리콴유는 방한 닷새 후 그의 암살 소식을 들었다.

리콴유는 박정희 시대 경제개발에 후한 점수를 준다.
그 자신 박정희와 개발독재에 대한 비판까지 공유하는 처지라
더 많이 공감하게 됐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34년 전 처음 만난 박근혜를 이렇게 기억한다.
"박정희는 만찬 자리에서 가벼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20대의 딸이 영어로 대화가 계속 흘러가도록 했다."

1999년 10월.
리콴유는 전경련 국제자문단 일원으로 서울에서 재벌 총수들을 만났다.
한국은 아직 환란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다.
리콴유는 한국이 갈림길에 서 있다고 했다.
"한국 기업들은 일본 모델에 바탕을 둔 낡은 성장 패러다임을 계속 끌고 갈 수 없다"는 경고였다.

그해 8월 기자가 런던에서 만난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도 패러다임 변화를 이야기했다.
그는 "자본 축적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경제개발 초기에는
재벌이 성장의 견인차 구실을 할 필요가 있었다"며
"재벌 위주 성장의 부작용이 드러난 1980년대 들어 이를 고쳤어야 했지만 시기를 놓쳤다"고 했다.
또 아버지가 계속 집권했더라면 80년대에는 재벌 주도형 경제를 고쳤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3년 1월. 리콴유는 멀리서 박근혜 정부 출범을 지켜보고 있다.
정치인 박근혜와 몇 차례 만나 개인적 친분을 쌓은 그는 대통령 박근혜의 등장을 예견했을까.

90세의 리콴유가 박근혜 정부를 얼마나 오래 지켜보고 평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가 박 당선인을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줄지는 짐작할 수 있다.
그의 회고록 중 맺는 말을 보면 된다.

"우리가 지난 세대에 이룬 성공이 미래의 성공을 보장하는 건 아니다.
그러나 진보의 기본 원칙을 지킨다면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진보의 혜택을 나눔으로써 사회통합을 이루고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이다.
또한 가장 뛰어난 인재들이 실력을 발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 지도자와 국민 사이에 새로운 사회계약을 주문했다.
"성공한 자와 못한 자, 교육을 잘 받은 자와 못 받은 자, 기업가와 근로자 사이에
공정한 게임이 이뤄지리라는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인은 가장 역동적이고 부지런하며 확고한 신념을 가졌으므로
새로운 사회계약만 이뤄지면 열정적으로 전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리콴유는 잘 드러나지 않는 강인함을 지닌 박 당선인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그 아버지를 연상할 것이다.
하지만 두 박 대통령을 바로 비교하는 것은 무리다.

18년 동안 권력을 잡았던 아버지에 비해 박 당선인은 5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뜻을 펴야 한다.
1인당 소득이 100달러에도 못미쳤던 시대의 선진국 따라잡기전략은 소득 2만달러 시대에는 의미가 없다.
이제 저임 노동자의 헝그리 투혼도 정부와 한몸처럼 움직이는 재벌도 없다.
오늘날 대통령은 가부장적 권위로 국민의 땀과 인내를 요구하기도 어렵다.

박근혜 정부는 포용적 성장이라는 실험을 앞두고 있다.
아시아에서 어느 나라도 성공한 적이 없는 역사적 실험이다.
리콴유는 조언자라기보다 관찰자로서 그 실험을 지켜볼 것이다.
아시아 역사의 증인은 5년 후 한국과 그 지도자를 보며 어떤 기록을 남길까.

장경덕 논설위원매일경제기사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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