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 sincere(동방의 등불)

동천년노 항장곡(桐千年老 恒藏曲) : 오동나무는 천 년이 지나도 늘 아름다운 곡조를 간직하고, 매일생한 불매향(梅一生寒 不賣香) : 매화는 평생 혹한에 꽃을 피지만 향기를 팔지 않는다. 월도천휴 여본질(月到千虧 餘本質) :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은 변하지 않으며, 유경백별 우신지(柳經百別 又新枝) :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난다. ☞ 조선 중기 4대 문장가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 ~ 1628)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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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Leader

2014. 10. 22.

[대구논단]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

으스름 새벽에 홀로 깨어 찬이슬이 내리는 가을날 바짓가랑이 적셔가며 길을 걸어보라. 해가 떠오르기 직전 금호강변에 피어있는 코스모스를 보노라면 이슬을 머금은 청초한 모습이 너무나 아리땁다. 10월 중순임에도 피고 진 꽃보다 끈질기게 남아서 피어있는 코스모스들이 더 청초한 기품을 지님은 공기가 차고 맑아서이리라.

가냘프면서도 맑은 인상을 주는 분홍색, 자주색, 흰색의 여러 색깔의 코스모스들이 카드섹션 하듯 자태를 뽐내고 있음 또한 차가워지는 계절의 변화에도 의연하게 꽃자리를 양보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각각 여덟 개의 꽃잎에 싸한 습기를 안으로 품고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강물 위의 물안개를 수술과 암술은 서로간의 꽃가루처럼 마시며 햇빛을 기다리는 양 서 있는 모습은 정말로 경이롭다.

동녘에서 발그스름한 햇빛이 부채빗살로 솟을 때쯤이면, 영롱한 방울방울 이슬은 반짝반짝 찬란한 빛을 발하고 코스모스는 조화롭게 완전한 우주를 품고 강물에 데칼코마니 되어 떨리는 듯이 물결 위에 하늘거린다.

아! 아름다움이여, 우주를 마주하고 질서를 지키는 코스모스의 아름다움이여.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할 ‘의리’, 남을 이해하고 돕는 ‘사랑’의 꽃말을 간직한 코스모스의 청초함이여! 꽃은 꽃답게 꽃으로 피어 아름다움을 만끽하고 싶어서일 것임일레라.

이제 계절이라는 굴레에서 식물들은 생존의 본능을 위하여 차츰 옅은 색깔로 지워져 가고 있다. 나무의 껍질 속에서 안으로 안으로만 가득차고 넘치기 위하여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침잠하고 있다. 우주의 질서 속에서 푸름은 여러 가지 색깔로 변색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저기 저기 저, 가을 꽃자리/초록이 지쳐 단풍드는데//눈이 나리면 어이 하리야/봄이 또 오면 어이 하리야//내가 죽고서 네가 산다면?/네가 죽고서 내가 산다면!//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서정주, 푸르른 날)

궁산에 오르니 여기저기에서 초록이 지쳐 가고 있다. 오래지 않아서 단풍이 들고 또한 가을바람에 낙엽이 한잎 두잎 떨어지리라. 그 낙엽을 밟고 지나면서 갈색의 추억들이 낱낱이 들춰지기 시작할 즈음이면 눈이 나리리라. 또 어김없이 봄이 오리라.

코스모스는 다른 한편으로는 우주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우(宇)는 사방과 상하의 여섯 방위의 공간적 부피를 더 크게 하는 것을 말한다. 주(宙)는 옛날부터 현재까지 시간적으로 서로 벌어져 있는 격차를 말한다. 그래서 우주는 질서와 조화를 이루는 세계를 말하는 것이니 천지간의 모든 것을 내포함일레라.

하늘과 땅 사이에 오직 인간만이 최고의 귀한 존재라 한다. 그 귀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다섯 가지 사람이 지켜야 할 오륜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 어른과 어린아이의 차례가 있다는 장유유서는 인간관계의 엄격한 질서이다. 그런데 시공을 넘어 순서가 바뀌는 장유유서가 되면 사람도 자연현상의 가을에 해당할 수 있다.

송의 시인 구래공(寇萊公)의 육회명(六悔銘)을 속으로 읊조려 본다.

관직에 있으면서 올곧게 일하지 않고 사사로이 갈팡질팡한 행동을 하면 그 자리에서 물러났을 때 후회하게 되고, 부자가 평소에 검소하게 쓰지 않으면 가난해졌을 때 후회하게 된다.

그리고 재주 있는 사람이 어려서 힘써 공부하지 않으면 때가 지나면 후회하게 되고, 사물을 살펴보고도 배우지 아니하면 사용할 때 후회하게 된다.

또한 술에 취하여 횡설수설 망언을 하면 깨어나서 후회하고, 건강할 때 휴식을 취하지 않고 무리하면 병이 들어 후회한다는 것이다.

가을이라는 계절 탓일까 아니면 당시 감상적이고 아름다운 문장만을 일삼았던 서곤체를 탈피하고 자연의 애수를 읊은 시인이기 때문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나이라는 세월의 흔적으로 처연히 가슴에 와 닿는 일이라면 마음을 서글프게 하는 눈물 잦음 때문일까?

고운 최지원도 ‘가을바람에 괴로이 시를 읊건만/세상엔 날 알아주는 벗이 없어라/창 밖에는 삼경에 비 내리는데/등불 앞 내 마음은 만 리 먼 곳에 있구나.’하였다.

눈이 부시게 푸르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진정으로 그리워하라. 그렇게 할 때 우리의 마음은 안온하게 진정되고 자연스레 치유되리라.

박동규 전 중리초등학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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