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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년노 항장곡(桐千年老 恒藏曲) : 오동나무는 천 년이 지나도 늘 아름다운 곡조를 간직하고, 매일생한 불매향(梅一生寒 不賣香) : 매화는 평생 혹한에 꽃을 피지만 향기를 팔지 않는다. 월도천휴 여본질(月到千虧 餘本質) :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은 변하지 않으며, 유경백별 우신지(柳經百別 又新枝) :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난다. ☞ 조선 중기 4대 문장가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 ~ 1628)

무엇이 정의인가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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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百年之大計

2022. 5. 22.

[영남시론] 무엇이 정의인가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개인, 국가의 제일목표 이익 추구인 것 같아

무리한 이익 추구로 인해 부작용도 많이 생겨나

정의에 대한 교육 필요해


현재 우리나라 도처에서 사회갈등이 상당히 심하다. 정계가 그렇고 사회가 그렇고 교육이 그렇다. 교사가 학생의 눈치를 보고 어른이 어린이를 훈계하지 못하는 세상이다. 나라 곳곳에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는 소리가 하늘을 찌른다. 중국의 전국시대, 당대 제일의 현자인 맹자가 양나라를 찾게 되었다. 이를 반기어 교외에까지 나가 정중히 맞이한 양혜왕은, 맹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노인께서 천리를 멀다하지 않으시고 제 나라를 찾으셨으니, 장차 어떻게 이 나라를 이롭게 하시려는지요?”

이는 부국강병으로 천하의 패권을 추구하는데 여념이 없었던 전국시대의 군주로서 너무나 당연한 질문이었다. 그런데 맹자의 답은 완전 뜻밖이다.

“대왕께서는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仁)과 의(義)가 있을 따름입니다.”

군사력 증강이나 인재 등용, 제도 개혁, 민심 획득 등 국익이 되는 방책이 얼마나 많으련만 맹자는 ‘이로움’이란 단어가 함유하고 있는 함정과 위험성을 경고한다. 임금이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하면 대신들은 어떻게 하면 내 가문을 이롭게 할까 하는 식이 되어 온 나라가 어떻게 하면 자기 집단을 이롭게 하는가에 골몰하여, 마침내 상하가 서로 다투게 되어 나라가 위태로워진다는 것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개인과 국가의 제일목표는 이익의 추구인 것 같다. 이제 정부 부문에까지 기업경영 원리가 도입되었고 세계경제 전쟁시대에 돌입했다. 그야말로 천하가 이익을 다투는 ‘천하쟁리(天下爭利)’의 시대다. 그러므로 수천만 또는 수억 인의 생존과 복지를 책임지고 있는 정부가 대내외정책에 국익(國益)을 최우선으로 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정의(正義)에 바탕한 대의명분이 있어야 일이 바르게 되고 설득력도 있게 된다. 특히 국내정치에 있어서는 더욱 그러하다. 정부가 경제만을 앞세우고 정의라는 윤리성의 추구를 정책기준의 후순위로 돌린다면, 정부의 효율성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 그리고 국가를 경영하는 주체인 정부나 국회의 대표자들이 그들의 정치활동에 이익추구를 전면에 내세우면 그 영향권 아래에 있는 각급 기관과 단체, 기업체나 개인의 의사결정도 모두 자기들 집단의 이익추구를 제일목표로 삼는다. 그러다보면 사회갈등과 불안은 증폭되며 자칫 부정부패까지 싹틀 수도 있다. 이들 현상은 국가자원의 배분을 심하게 왜곡시킨다.

현재 우리나라는 이익추구를 최고 가치로 삼는 수많은 개인과 집단으로 인하여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익집단들이 투쟁적으로 자기이익을 주장하면서도 언필칭 정의의 실현을 앞세우기에 더욱 그렇다. 옛글에 “국가는 이익으로써 이익을 삼지 않고 정의로써 이익을 삼는다(國 不以利爲利 以義爲利也)”고 했다. 국가가 정책결정의 제일기준으로 정의를 든다면, 그 나라 국민은 서서히 당장의 이익보다는 정의로운 삶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정의로운 정부의 혜택은 결국 온 국민에게 돌아간다. 국민이 정의로울 때, 사회갈등과 불안이 사라지며, 사회건강의 유지를 위한 많은 국가예산이 절약될 것이기에.

그런데 문제는 정의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기준을 세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흔히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 돌려주는 것’을 정의라고 하는데, 이 ‘각자의 몫’이 노력인지 능력인지, 실적인지 정하기 어렵다. 주역에서는 ‘올바름의 조화(義之和)’를 이익이라 했으며, 플라톤은 국가를 구성하는 각 계층이 정의로울 때 국가가 가장 이로운, 최적 효율의 상태에 있게 된다고 했다. 정의는 고도의 지적 능력과 태도를 요구하는 개념이기에 정의에 밝은 국민은 쉽게 길러지지 않는다. 중·고등학교에서부터 정의에 관한 교육과정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이유다.

윤용섭 한국국학진흥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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