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 sincere(동방의 등불)

동천년노 항장곡(桐千年老 恒藏曲) : 오동나무는 천 년이 지나도 늘 아름다운 곡조를 간직하고, 매일생한 불매향(梅一生寒 不賣香) : 매화는 평생 혹한에 꽃을 피지만 향기를 팔지 않는다. 월도천휴 여본질(月到千虧 餘本質) :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은 변하지 않으며, 유경백별 우신지(柳經百別 又新枝) :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난다. ☞ 조선 중기 4대 문장가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 ~ 1628)

도둑맞은 정의, 상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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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Leader

2020. 11. 2.


[월요칼럼] 도둑맞은 정의, 상실의 시대

▲ 지도자불혹(知道者不惑), 지명자불우(知命者不憂)
소설가 박완서씨가 1975년 '세대'를 통해 발표한 단편 '도둑맞은 가난'은 꽤 오래 주목을 받았다. 필자도 오래전 청년기에 읽었지만 내용 상당 부분이 뇌리에 남아있다. 그만큼 소설의 전개와 주제가 보기 드물게 참신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흔히 우리는 '부(富)'를 도둑 맞지 훔쳐 갈 것도 없는 '가난'을 도둑 맞는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그런데 박 작가 발상의 전환이 대단했다.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가난마저 숙명으로 받아들이면서 억척스레 산동네에서 사는 한 공장 근로 여성이 소설 주인공이다. 그녀가 동거하게 된 부자 대학생 상훈은 아버지의 지시로 방학 기간 신분을 속이고 고난 체험을 하던 상황이었다. 여주인공은 진실을 알고 난 후 가진 자의 놀음에 절망하게 된다.

시인 서정주는 1954년 시 '무등을 보며'에서 '가난이야 한낱 남루에 지나지 않는다'고 읊었다. 하지만, 가난은 주인공처럼 처절하게 겪은 어떤 이에게는 자랑스런 훈장과 같은 것이다. 소설 종말부 문장은 이렇다. '내 가난을 구성했던 내 살림살이들이 무의미하고 더러운 잡동사니가 되어 거기 내동댕이쳐져 있었다. 내 방에는 이미 가난조차 없었다. 나는 상훈이가 가난을 훔쳐갔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았다. (중략) 나는 우리가 부자한테 모든 것을 빼앗겼을 때도 느껴보지 못한 깜깜한 절망을 가난을 도둑맞고 나서 비로소 느꼈다.

' 2020년이 저물어 가는 지금 하필 필자는 왜 고전 '도둑맞은 가난'을 소환했을까? 작금 우리가 처한 시대상황 때문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비리와 고위 정치인들의 특혜 사건에서 드러났듯 우리 사회에는 아전인수식 '내로남불'과 '제식구 감싸기' 행태가 도를 넘고 있다. 온라인에서 '정의도 도둑 맞았다'는 지적이 들끓는 시점이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부적절한 검찰 감찰권 행사로 인한 검찰과의 파열음도 이와 무관치 않다. 추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간 갈등으로 인해 오히려 윤 총장만 뜨는 형국이다. 법무부 장관이 독립 수사기관 검찰총장에게 '감 놔라, 대추 놔라'하는 건 온당치 못한 처사로 국민들 눈에 읽힌다. 검사들도 현정권파와 반대파로 갈라져 있고 일부 검사는 애완견에 빗대 '애완검(檢)' 소리를 듣는 웃지 못할 형국이다. 얼마 전에는 유력 중앙지 정치면에 '바람보다 먼저 눕는 판사들'이라는 제목이 뽑혔다. 형평과 공정만 추구해야 할 판사들이 권력 눈치를 보고, 일부 권력 편에 기우는 판결을 했다니 믿기 어렵다. 이런 현실이니 대한민국에서 과연 법과 정의, 공정이 제대로 구현될 수 있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가슴 아픈 것은 우리 사회 공정·정의가 서서히 무너지고 있어도 이를 제어할 대책이나 대안이 없다는 사실이다. 정의는 뼈를 깎는 고행과 인고의 세월을 통해 축적된 가치였다. 진보 세력의 전유물로 주장되기도 했지만 이는 사회를 지탱하는 금자탑이다. 그런데 공든탑은 어느 구석에서 한번 무너지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원도혁 논설위원
여야를 막론하고 특혜를 누리면서 불공정한 작태를 일삼아 온 위정자들은 처절한 반성을 해야 마땅하다. 공정과 정의가 이렇게 쉽게 무너지다니 너무 허망하다. 더 이상 현 정권에서 비리와 불공정, 불의가 나와서는 안 된다. 조국 사태로 촉발돼 속속 드러나고 있는 위정자들의 위선(僞善)은 국민에게 회복하기 어려운 상실감을 주기에 이미 충분하다. 가난도 도둑 맞고, 정의도 도둑맞고…. 우린 지금 소중한 가치들을 잃어버리는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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