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 sincere(동방의 등불)

동천년노 항장곡(桐千年老 恒藏曲) : 오동나무는 천 년이 지나도 늘 아름다운 곡조를 간직하고, 매일생한 불매향(梅一生寒 不賣香) : 매화는 평생 혹한에 꽃을 피지만 향기를 팔지 않는다. 월도천휴 여본질(月到千虧 餘本質) :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은 변하지 않으며, 유경백별 우신지(柳經百別 又新枝) :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꺾여도 새 가지가 돋아난다. ☞ 조선 중기 4대 문장가 상촌(象村) 신흠(申欽. 1566 ~ 1628)

법치주의와 입법만능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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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깊은 나무

2013. 6. 12.

[여의춘추] 법치주의와 입법만능주의

“부도덕과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을 입법미비인 것처럼 호도해서는 안된다”

서구의 개념에 따르면 민주정치란 법에 따른 통치다. 법치주의로 불린다. 국민들이 뽑은 대표자로 구성된 의회가 법을 만들고, 대통령이나 총리로 대표되는 행정부가 이를 집행한다. 이 과정에 법을 어기는 일이 발생할 경우 검찰과 법원이 나서 교통정리를 하는 구조다. 3권 분립이 기본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사법기관인 대법원 또는 헌법재판소가 종국적인 결정권을 갖는다.

가령, 가장 중요한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이런저런 다툼이 생기면 대법원이 최종 결론을 내린다. 앨 고어와 조지 W 부시가 맞붙은 2000년 대선을 치른 미국이 바로 그랬다. 미국이 사법부 우월국가라 불리는 까닭이기도 하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입법보다 사법이 훨씬 중요하게 작동한다.

우리도 예외가 아니다. 헌법재판소 결정으로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된 적도 있었고, 공소시효가 지난 범죄의 당사자들을 처벌하기 위한 소급입법도 헌재에서 합헌으로 판정받았다.

동양적 법치주의 개념은 서구와 약간 차이가 있다. 중국 고대 법가 사상을 대표하는 한비자는 기본적으로 왕의 통치를 위해 논리를 구성했다. 순자의 제자인 그는 유물론적 세계관을 토대로 인간을 본질적으로 이(利) 지향적인 동물로 파악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이해가 서로 엇갈려 대립하기 때문에 선과 악이라는 도덕적 가치로는 평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유교적인 의리나 명분이 현실과 맞지 않다고 본다. 의(義)보다는 이(利)가 앞선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한비자는 빈틈없이 권력체제를 정비해 통치기반을 확립하는 것에서 법치의 의미를 찾았다. 힘에 의존하는 것을 마다하고 덕을 베풀어 백성들을 감화시키려는 것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단언한다. 물론 이때의 법은 가진 자와 강자의 논리다. 권력자들이 만든 것이기 때문이다. 전국시대의 혼란을 헤쳐 나가기 위해 필요한 논리이기도 하다. 진시황이 이를 받아들여 제국을 통일한 것이 증명하지 않는가.

사실 법치주의란 말처럼 그럴듯하고 듣기 좋은 말이 없지만 문제는 그 법의 성격에 있다. 군주나 강자가 만드느냐, 아니면 백성들이나 국민들의 대표가 만드느냐에 따라 차이가 크다. 그래서 입법권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미국이 사법부 우월국가라는 말을 듣지만 우리와 달리 행정부는 법률안제출권이 없다. 그만큼 미국 의회의 위상이 높은 것이다.

새 정부 들어 경제민주화와 같은 이슈가 제기되자 을(乙)을 보호하자는 입법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 때문에 한쪽에서는 우리 경제의 어려움이 모두 대기업 때문인 것처럼 몰아가는 분위기에 볼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유명 가수 소유의 빌딩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한 세입자 사건이 불거지자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이뿐 아니라 금품 받은 공무원을 액수에 관계없이 예외 없이 처벌하는 이른바 ‘김영란법’과 전두환 비자금을 찾아내 추징하자는 ‘전두환추징법’, 살인을 지시하고도 감방 대신 편안한 병원에서 수년간 생활해온 수감자를 없애기 위한 ‘사모님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입법권자인 정부나 국회를 압박하는 요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입법운동이 과연 헌법정신에 합당하고 우리 사회가 용인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법 제정의 합목적성이 있느냐는 말이다. 가령, 상가임대차보호법의 경우 보호 대상 금액을 지나치게 올릴 경우 과잉입법으로 되레 건물주의 재산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다른 법들도 마찬가지다.

그러기에 지금 있는 법을 잘 운용하는 것이 먼저고, 입법은 신중하게 해야 하는 것이다. 일부의 부도덕과 공무원들의 무사안일을 마치 입법미비인 것처럼 호도해서는 안 된다. 법만 만들면 모든 것이 해결될 듯이 생각하는 입법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는 말이다. 한비자의 법가사상이 끝내 주류가 되지 못하고 공맹에 밀린 이유를 잘 헤아렸으면 한다.

국민일보 쿠키뉴스 박병권 논설위원 bk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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