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ge 있는 내 발자취/의정활동 자료 & 기사

박창순 2011. 3. 27. 23:43

 

첨부파일에 박창순 선배님의 강의 내용이 있습니다.
학창시절 학생증, 수업시간 사진도 함께 들어있습니다.
소중한 추억을 함께 나누는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초청 일시 : 2011.3.22, 화요일 7,8교시

 

 

 

반갑습니다.

1978년에 졸업한 4회 졸업생 박창순입니다.

 

이렇게 초청해주신 신중식 교장선생님과 열 한분 선생님, 그리고 행정실에서 근무하시는 네 분 선생님께도 특별히 고맙다는 말을 전해 올리며, 올해 37회가 졸업하면서 사천 여명의 졸업생들을 대신하여 이런 영광스런 자리에 서게 된 것을 마음 깊이 새기고 평생 은혜로 기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애숙 도덕 선생님 고맙습니다. ^^

 

정다인학생? 여전히 수학이 어렵나요?

백용범학생? 만화 좋아해요?

 

우리 도포중학교 개교기념일이 3월 9일인데, 그 날 하루 쉬었나요? 다들 그 날 하루 쉬니까 좋았던 것 같네요! ^^

 

제가 지금 뭐 하는 사람인지 아는 학생 손들어 보세요?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기초 지방자치단체 중에 규모가 제일 큰 경기도 성남시의회 의원입니다.

 

빚을 당분간 못 갚겠다고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전국적인 이슈를 만들어 내고 있는 성남시의 핵심에서 밤낮없이 뛰었더니 제 얼굴이 보시다시피 이렇게 까무잡잡합니다. 열심히 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면 박수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4회 졸업생 박창순 선배가 무슨 말로 우리들을 감동시켜 줄 것인가라고 생각하는 학생들이 있는 듯합니다마는 화려한 말솜씨 보다 그저 제가 지금까지 살아온 이야기들과 지방의회에 대한 가벼운 이야기들을 여러분과 함께 약 한 시간 정도 나눠보고, 질문 몇 가지 받는 것으로 여러분과의 만남 시간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선배님 소개를 간략하게 할까요?

 

저는 50년 전 봉호리 영가척마을에서 태어나 도포초등학교를 40회로 졸업하고, 도포중학교에 1975년도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니까 도포중학교에 입학한지가 지금부터 36년 쯤 되었네요! ^^

 

지금 등, 하교는 어떻게 합니까? 학교 버스가 있나요?

지금은 폐교가 된 것 같던데 도신초등학교하고 수산초등학교, 도포초등학교 학생들이 모두 도포중학교에 다녔고 자전거를 타거나 주로 걸어 다니는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저기 운동장 끝 부분에 통일동산이라는 야산이 있었고, 체육관 서쪽 담 넘어 학교 밭이 있어서 풀 뽑기도 가끔 했던 기억이 납니다. 제가 3년 때 쓰던 교실은 서쪽 맨 끝 1층이었고, 담임선생님은 조수복 선생님이셨는데 지금은 용인에 사시고 서울동창회에서 초청하면 꼭 나와 주십니다.

 

중학교 때 우리 집은 내가 고등학교에 진학하지 못 할 만큼 형편이 안 좋았는데, 어떻게 하더라도 고등학교는 가고 싶어서 학비를 거의 내지 않는 전북기계공업고등학교를 가게 되었습니다.

 

당시 공업고등학교는 제법 공부를 해야 갈 수 있었던 상황이었고, 특히 국립이었던 금오공고, 전북기계공고, 부산기계공고는 지금의 특목고 이상으로 셌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공부를 잘 했다는 뜻은 아니고 공부보다 운동을 더 잘 했던 기억이 많습니다. ^^

 

당시 전북기계공고는 워낙 경쟁이 치열해서 어차피 떨어질 가능성이 많았고, 인문계 고등학교는 학비 때문에 갈 수 없는 처지라 부모님께 알리지도 않고 담임 선생님이셨던 조수복 선생님께 말씀드려 원서를 냈는데, 다행히 운이 좋았던지 합격이 되어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공개하지 않았던 1차원서 합격하던 날 에피소드 좀 말씀 드릴까요? 1977년 11월 며칠 인데요 그 날 오후 학교 파 할 때까지 전북기계공고에서 연락이 없어서 저는 떨어진 줄 알고 집에 가기 전에 명당머리 뒷산에서 짤짤이를 하고 어두워 진 다음에 들어갔더니 집에서 저를 찾느라고 난리가 나 있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도포중학교에서 전북기계공고로부터 연락을 학교가 파 한 뒤 받아서 우리 마을로 전화를 했는데, 그 때 당시 마을에는 회관에 한 대 밖에 없어서 연락이 잘 안 됐다고 합니다. 어쨌든 고등학교는 가게 됐고 여기서 짤짤이 하니까 웃으시는 분 계시는데 경험이 있으신 가 봅니다? ^^이쯤하고 넘어가겠습니다.

 

1981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빚만 잔뜩 지고 있는 시골에서 농사지으며 살겠다고 무작정 상경이 아닌 무작정 농촌 행을 감행했습니다. 경운기 몰고 농사지으며 스물세 살, 네 살 때 이장을 했으니까 지금 경남도지사를 하고 있는 김두관지사 보다 제가 먼저 한 셈이 됩니다. ^^

 

86년까지 멋도 모르고 농사 열심히 지었습니다. 그러나 빚이 줄기는커녕 점점 늘어났고, 조상 대대로 내려온 몇 마지기 안 남은 논밭까지 전부 팔아야하는 상황이 돼버렸습니다.

 

시골에서 빚잔치를 어떻게 하는지 아시는 분계십니까? 몇 마지기 안 남은 논 밭 급매해서 받을 돈 있는 사람들 와서 받아가시오라고 하는 게 시골식 빚잔치입니다. 법률적인 용어로 청산이라고 합니다. 혹시나 하는 분이 계실지 몰라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그 때 결코 모라토리엄이나 디폴트를 선언하지 않았습니다. 모라토리엄은 “다음에 주마” 디폴트는 “못준다” 이런 뜻 인데요 그 때 깨끗하게 청산했기 때문에 작년에 고향마을에 축 당선이라는 현수막이 걸리지 않았나 라고 생각해 봅니다. ^^

 

빚잔치 하고 87년 영가척 마을을 떠나 광주에서 12톤 대형화물차 운전수로 일을 했고, 89년도에 지금 살고 있는 성남시에 정착을 하였습니다.

 

제 아버님께서도 91년도에 영암군의회 의원을 하셨는데요 집안 내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안 현장 막일, 회사 생활, 식당, 슈퍼 등등 일을 하며 먹고 살만해 지니까 저도 슬슬 정치를 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우선 지방자치보다 집안자치부터 잘 하자는 생각으로 집안을 경제적인 압박에서 해방시켜놓고 나 자신은 지방의원이 갖추어야 할 전문지식을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에 마흔 세 살 때인 2003년부터 서울디지털대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때 공부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한 주차 강의도 밀리지 않고 수강을 했으며, 학교에 가야 하는 날에는 시간을 아끼려고 오토바이를 타고 성남에서 강남까지 왔다가곤 했습니다.

서울디지털대학을 졸업하고 내친김에 단국대행정법무대학원에 입학하여 여기서도 단 한 시간도 빠지지 않고 석사 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그리고 작년 선거에 뛰어들어 성남시 의원이 되었고, 제 인생에 있어서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 말 할 수 있습니다.

 

또 작년 8월부터 박사과정을 하고 있는데 사실은 오늘 오후에 수업이 있고, 지금 성남시의회가 열려있는데 수업은 빼 먹고 의회는 오늘 상임위원회가 열리지 않아 학교 후배들도 만나고 오늘 어머니도 뵐 겸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이 쯤 하고 저 중학 때 사진 몇 장 보여 드릴까요?

저 다닐 때 1, 2, 3,학년 학생증입니다.

신기한가요? 처음 봤어요? ^^

다음은 제 1, 2, 3, 학년 생활통지표입니다.

 

 

 

 

성적이 궁금한 모양인데 뭐 별로 그러니까 그냥 넘어가죠 ^^

 

여러분들도 버리지 말고 지금부터 모아두세요.

다음은 체력장 수검표와 고등학교 입학원서 접수증입니다.

 

 

 

이 사진을 찍었을 당시 중학교 3학년으로 긴 시간 여행을 떠나 보면, 운동에 상당한 재능을 보였던 나는 동네에 몇 대밖에 없던 텔레비전을 통해 우연히 체조 경기를 접하게 됩니다.

 

마루운동 안마 뜀틀 ... 그런데 철봉 경기를 보다가 Feel이 왔는지 다음 날부터 운동장 한쪽에 녹슨 체 서있는 철봉에 가서 매달리기를 자주 했던 기억이 납니다.

 

참고로 도포초등학교 앨범을 보면 나옵니다만 C A 시간에 저는 체조부 였습니다. 대차라고 합니다. 철봉을 잡고 회전운동 하는 걸 대차라고 합니다. 그냥 맨 손으로 하는 건 요즘처럼 매트리스나 에어 큐션이 없는 상태에서 매우 위험했습니다. 그렇지만 꼭 해 보고 싶었고 그래서 양승길 체육선생님께 여쭤 본 결과 손목에 안전띠를 매고 하면 된다는 말씀과 함께 체육사에 가면 팔 거라는 희망적인 말씀도 함께 들었습니다.

 

그걸 구하려면 광주 나가야 되고 집에서 만들어도 된다는 말씀을 해 주셔서 난 집에서 만들기로 했습니다. 소위home made 하기로 한 거죠. 마침 집에는 태권도 하다가 승급하고 놔둔 흰 띠가 있었습니다. 적격이었습니다. 재봉틀바늘 몇 개 부러트리는 산고 끝에 손목 안전띠가 탄생되었고 그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회전운동을 위한 워밍업이 시작되었습니다.

 

지면으로부터 처음엔 90도 135도 ... 마침내 수직으로 올라섰습니다. 안 무서웠냐고요? 당연히 무서웠죠! 거기에 비례해서 내 손바닥은 껍질(^^ 피부)이 벗겨지고 물러지기를 반복할수록

굳은살이 생기고 내성이 나타났습니다.

 

사진에 보이는 모습에서 팔목이나 손목이 꺽이면 상당한 부상의 위험이 있기도 하겠지만 저는 조금씩 실력이 향상되는 재미에

발과 허리의 반동까지 이용하게 되었던 겁니다.

 

주로 도시락(그 당시는 밴또라고들 했지요)을 얼른 해치우고 점심시간이나 6~7교시가 끝나는 오후에 운동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거꾸로 보는 세상은 너무 행복했습니다. 교무실에선 선생님들이,

교실에선 친구들 특히 여학생들이, 철봉 옆에도 떠꺼머리 친구들까지 ...

 

자신이 잘하는 것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는 것은

행복한 일 일겁니다. 아마 그 당시 나도 그런 감정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서 지금 다시 사진의 모습처럼 해본다면 가능할까 생각해봅니다. 물론 가능 하겠죠 마음뿐 일지는 모르겠지만요. ^^

 

지금부터는 제가 시의원으로써 어떤 생각을 가지고 의정활동을 하는지를 밝히겠습니다.

 

정치인들에게는 세 가지 얼굴이 있는데 평상시 얼굴, 이미지에 의한 얼굴, 권력의 얼굴이라고 합니다.

 

권력을 잡은 것이 아니라 주민들과 함께하고 주민들의 의견을 모아내는 역할을 부여한 것이기 때문에 되도록 많은 주민이 참여하고, 많은 주민의 의사가 반영되는 지방자치의 본뜻이 충실하게 지켜져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또 저라는 사람의 상품성을 믿고 보내주신 주민들의 성원 덕분이었기 때문에 저는 제가 짊어진 짐 무겁다 하지 않고 갈 것이며 머리로 하는 공학적인 정치보다 심장에서 우러나오는 정치를 하겠습니다.

 

정치하는 사람들 초선지나 재선 정도면 모르는 게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두 시간만 이야기 하다보면 아는 게 없다고도 합니다. 컨테이너는 좋은데 컨텐츠가 없는지 잘 살펴보고, 도포중학교 선배로써 지금보다 더 자랑스러운 선배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 쯤 되면 뭔가 있어야 되는데 어째 반응이 없네요! ^^

 

이제 부터는 제가 선배로써 후배인 여러분께 해 주고 싶은 말과 꼭 당부하고 싶은 몇 가지만 하겠습니다.

 

첫째, 참으면 지혜가 생깁니다.

대개 성공하는 사람들을 보면 남다른 재주나 특별한 능력이 있어서라기보다 보통 사람들한테서는 찾아볼 수 없는 뛰어난 인내력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인내를 통해서 성공한 사람이 많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포기합니다. 재능이 있어도 그 재능을 다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날은 재능이 많은 것만으로 성공하지 못합니다. 훌륭한 교육을 받은 것만으로 성공하지 못합니다. 용기가 있는 것만으로 성공하지 못합니다. 인내가 없기 때문입니다. 참을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두들 도중에 포기하기 때문에

성공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인내"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낙심할 때도 있고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고 게을러질 때도 있습니다. 미국의 사업가 강철 왕 카네기는 "승부를 가리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인내다" 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참고 있으면 반드시 기회가 생긴다" 라고 했습니다.

 

생존 경쟁에서 남보다 앞서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내가 필요합니다. 마음과 삶에 인내라는 뿌리가 내리면 성공이라는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인생의 성숙과 성공은 인내의 값을 치른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귀중한 결실이니까요. 인내를 통해 삶은 성숙해집니다.

 

마부위침(磨斧爲鍼)이라는 말은 “도끼를 갈아 바늘을 만든다는 뜻“으로 아무리 이루기 힘든 일도 끊임없는 노력과 끈기 있는 인내로 성공하고야 만다는 뜻입니다.

 

둘째,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실패를 반복하지 말라.

사람은 누구나 실패를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실패를 해 보지 않는 성공은 없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실패를 반복해서 하고 그것을 단지 운이 없다고 치부하려고 합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되 그 실패를 통해 배움으로서 다음번에는 실패를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제가 1987년 시골생활을 실패하고 떠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성공하겠다는 의지 하나만은 가슴에 꼭 품고 살아왔습니다. 실패도 자꾸 하면 습관이 됩니다.

 

셋째 미인대칭

미소 짓고 ‧ 인사하고 ‧ 대화하고 ‧ 칭찬하는 것이 인간관계를 원만히 하는 키포인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제 주위를 잘 살펴보면 결국 공부 잘 한 사람보다 대인과계가 좋았던 사람들이 잘 살고 성공한 경우를 많이 봅니다. 이것은 결국 다른 사람을 배려 할 줄 아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친구들과 잘 지내고 선생님은 물론 어른들께도 공손해야 되겠지요?

따라서 해 보겠습니다. 미인대칭... 미소 짓고 ‧ 인사하고 ‧ 대화하고 칭찬하자.

 

여러분 큰 바위 얼굴이라는 소설 읽어 보았죠? 안 읽어 봤어요? 그런 소설이 있다는 건 들어보았죠? ^^

 

호손이라는 사람이 쓴 단편 소설인데요 남북전쟁 직후, 어니스트란 소년은 어머니로부터 바위 언덕에 새겨진 큰 바위 얼굴을 닮은 아이가 태어나 훌륭한 인물이 될 것이라는 전설을 듣습니다.

 

어니스트는 커서 그런 사람을 만나보았으면 하는 기대를 가지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큰 바위 얼굴처럼 될까라고 생각하면서 진실하고 겸손하게 살아갑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돈 많은 부자, 용감한 장군, 말을 잘하는 정치인, 글을 잘 쓰는 시인들을 만났으나 큰 바위 얼굴처럼 훌륭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니스트의 설교를 듣던 시인이 어니스트가 바로 ‘큰 바위 얼굴’이라고 소리칩니다. 하지만 할 말을 다 마친 어니스트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자기보다 더 현명하고 나은 사람이 큰 바위 얼굴과 같은 용모를 가지고 나타나기를 마음속으로 바란다는 내용입니다.

 

 

경청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질문 있으면 받겠습니다.

 

원고 내용 보고 동료들과 학생들 모두 감탄하고 감동받았었습니다. 건강하십시오.
도포중학교 13회 졸업생 이우연입니다.
반갑습니다. 동문 선배님 글을 보고 부분을 느꼈습니다.
지금은 경기도 광주에 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연히 검색하다 선배님글을 보게됐습니다
개인적으로 효숙이 동기이고 선배2년 후배입니다
어려운 역경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이렇게
자랑스러운 선배가 되어 기쁘기 한량없습니다
어렸을적   선배댁에 가끔씩 놀러가곤 하였는데..선배님의 글을보니 지나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갑니다 모두에게 존경의 대상이신 조수복 선생님. 그 이름도 생생합니다   앞으로도 더욱 역동적이고 발전하는 선배님의 앞날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개인적으로 이웃신청합니다
안녕하세요.전.영암도포중학교.3회.졸업생.정효순입니다.지금은충남온양온천에살고있습니다...ㅎ.제가.일년선배인가요..올리신글잘보았습니다..좋은글..감사합니다.다른게아니라..3회동창들.모임중에서.누구라도.연락이.닿았으면하구요...제나름여러가지해보다가.어려워서..인터넷뒤지다가...이면에.글올립니다.도움받울수있었으면하구요...수고하세요
선배언니 재경도포면향우회로 초대합니다
http://cafe.daum.net/seouldopo이고
밴드도 (재경도포면향우회)입니다
여기에 오셔서 가입하심 도포면 선후배들 다 모여 계신답니다^^*
친구들아~ 잘들있었는가? 방가 방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