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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위에서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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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와 영성]/성미술이야기

2016. 10. 9.


카르파초, <아라라트 산에서의 만 명의 십자가 처형>, 1515년, 캔버스에 유채, 307x205cm, 아카데미아 미술관, 베네치아


 페르시아의 사산조 제10대 제왕인 샤푸르 2세(309~379)는 로마제국과 맞서 기민하고 외교적인 시도와 군사전술로 제국을 최고의 전성기로 이끌었다. 그러나 그는 그리스도교 지역인 아르메니아에 조로아스터교를 전파하려는 의지와 제국이 그리스도교화 되어가는 것을 보고 그리스도교인들을 박해하기 시작했다. 샤푸르가 원정을 나간 동안, 후방이 교란될 것을 우려하여 병사들을 박해하고 강제로 개종을 요구했다. 샤푸르 2세에 의해 아르메니아의 아라라트 산 위에서 만여 명에 달하는 그리스도교인 병사와 지휘관 아카티우스가 학살되었다.   

 베네치아 화파인 빅토레 카르파초(Vittore Carpaccio, 1460경~1525/26)는 작품의 풍부하고 조화로운 색채와 빛 처리, 안정된 공간 안에서 수많은 병사의 박해 장면을 다양한 모습으로 묘사하고 있다. 화가는 인물들의 묘사나 배경을 당시 르네상스 회화의 특징인 고전성과 해부학, 원근법을 통해 충분히 나타내고 있다.

 이 작품은 베네치아 오토보니 가문이 성 안토니오 경당 제단화를 위해 주문한 것으로 그림의 아래 왼쪽에 작은 종이에는 화가의 서명과 제작 연도(V. / CARPATHIVS / MDXV)가 기재되어 있다. 커다란 화면 전체는 수많은 병사가 십자가에 매달려 죽임을 당하는 모습이다. 화가는 우뚝 솟은 나무에 매달려 죽어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다양한 각도에서 인체를 바라본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다. 오른쪽 아래에 말을 타고 지휘봉을 손에 들고 있는 인물이 바로 그리스도교인들을 박해하고 있는 샤푸르 왕의 모습으로 잔인한 사형 집행을 주도하고 있다. 이에 왼쪽 병사들은 옷이 벗겨진 채 십자가 형벌을 겪기 시작한다. 십자가 처형을 준비하는 모습, 십자가 틀에 뉘어져 못에 박히는 모습, 서 있는 십자 형상 나무에서 죽음을 맞은 모습, 마치 예수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가슴에 창을 찔렀던 것처럼, 오른쪽 가슴에 창이 찔린 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 등으로 화면은 박해를 지휘하는 사람부터 박해를 당하는 사람들의 인상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예수님 때문에 목숨을 버린 이들의 죽음은 영원한 생명의 길로 암시되고 있다.

 그림의 중앙 위쪽에는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양팔을 활짝 벌리고 나무에 매달리신 예수님이 계신다. 예수님께서 매달리신 나무는 하늘과 거의 맞닿은 아라라트 산 정상과 연결되어 있다. 하늘의 천사들은 예수님을 위해 자기 목숨조차 아끼지 않은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의 공간인 천상으로 인도하고 있다. 이미 왼쪽 위에 한 명의 천사는 그들을 하늘로 데려갈 준비를 하고 있다. 십자가의 수난은 죽음에 대한 승리의 서막인 셈이다. 영원한 생명의 상징은 나무에 매달린 잎으로도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예수님께서 매달리신 나뭇잎과 왼쪽 병사들이 매달린 나뭇잎의 무성함은 거의 같다. 그러나 예수님을 중심으로 왼쪽과 오른쪽의 두 사람이 매달린 나무에는 잎이 거의 없다. 하물며 오른쪽 나무는 꺾이어 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실 때 두 강도의 모습으로, 회개한 강도는 새잎이 돋아나는 나무로, 그렇지 않은 강도는 잘려진 나무로 그려져 있다. 이렇게 화가는 당시 만 명의 순교 사건을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죽음과 관련짓고 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해 주신 분의 도움에 힘입어 이 모든 것을 이겨 내고도 남습니다.”
(로마 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