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서강해

Carpe diem 2019. 11. 7. 01:01


(여호수아14장)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한 이후에 열두 지파에게 기업의 땅을 나누게 됨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여호수아의 조력자였던 갈렙이라는 사람이 분할에 참여할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면서 신앙의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때 갈렙의 나이가 85세였습니다.

 

8절 하반절을 보면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였으므로...”

이 신앙의 고백은 인생의 석양인 나이 여든 다섯의 생을 정리하면서 한 고백입니다. 우리도 과연 이런 나이에 이런 고백을 할수 있을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자 이러한 갈렙의 고백은 객관성이 없는 자기 혼자만의 허무맹랑한 주장은 아니었습니다.

본문 14절이 이 고백의 진실성은 뒷받침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기자는 14절에서 헤브론이 그니스 사람 여분네의 아들 갈렙의 기업이 되어 오늘까지 이르렀으니 이는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음이라

 

저자는 갈렙의 생을 평가하면서 그가 여호와를 온전히 좇았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 그렇다면 어떻게 이런 갈렙의 고백이 가능할까요?

첫째로, 갈렙은 하나님을 향하여 개인적인 결단을 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는 8절에서 고백했듯이 나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라면서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않고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철저히 개인적인 결단입니다.

 

본래 이 말은 모세가 자주 사용하는 말입니다. 그는 늘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하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모세의 후계자인 여호수아도, 갈렙이 모세의 하나님으로 고백하지 않고 나의 하나님으로 개인적인 신앙고백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교인들의 교회 생활은 열심히 하지만 이상하게도 신앙의 진보는 그리 눈에 띄지는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으나 저는 무엇보다도 신앙의 개인적 결단 없이 신앙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을 부르실 때마다 나를 따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명령앞에 우리는 어물쩍 거릴 수가 없습니다.

 

따르겠다든지, 아니면 안 따르겠다든지, 분명한 결단을 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결단을 하되, “우리의 하나님이 아닌 나의 하나님인 개인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시편 231절에서도 시편 기자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분은 우리의 목자가 아닌 나의 목자이십니다.

즉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모세의 하나님이 아닌 바로 나의 하나님입니다.

 

무디 신학교의 학장이었던 죠지 스위팅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녀가 있을 뿐이지 손자는 없다

즉 이것은 개인적으로 예수를 믿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아버지, 우리어머니가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내가 자동적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가끔 모태신앙을 자랑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물론 모태교인이 된다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내가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이 자동적으로 나를 그리스도인으로 만든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여기에도 철저히 개인적이 결단이 필요합니다.

 

자 그렇다면 그 개인적인 결단은 어디에서 비롯되며, 그 결단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결단은 소유의식과 주인의식에서 비롯됩니다.

소유의식과 주인의식이 부정적으로 사용될 때에 탐욕의 길로 인도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의식을 긍정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곧바로 책임의식을 낳습니다.

 

예컨대 만약 내가 세 들어 산다고 했을 때에 집 관리와 내 집을 마련했을 때의 그 집의 관리는 엄연히 다르게 나타납니다. 바로 소유의식과 주인의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의식을 긍정적으로 사용하게 되면 손님노릇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교회라는 책임감을 갖고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소유의식과 주인의식이 책임의식을 낳고 결국은 결단의 행위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저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나타난다는 사실입니다.

 

둘째로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살았습니다.

9절하반절을 보게 되면 네 발로 밟는 땅은 영원히 너와 네 자손의 기업이 되리라하였나이다

자 이처럼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갈렙은 늘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얼마나 말씀에 의지해서 살아왔는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면서 10절에서는 이제 보소서 여호와께서 이 말씀을 모세에게 이르신 때로부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방황한 이 사십 오년 동안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를 생존하게 하셨나이다 오늘 내가 팔십 오세로되...”

그러니까 갈렙은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에게 주신 말씀으로 붙들고 광야의 길로 걸어 왔던 것입니다.

이어 12절에서 그날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이 산지를 지금 내게 주소서...여호와게서 말씀하신 대로 그들을 쫓아내리이다 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결국 갈렙의 이러한 신앙고백과 결단은 불가능하게 보였던 여리고성의 성벽과 아이성 전투에서 승리하게 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을 좇아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심도 있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내가 얼마나 존중 하는가?를 보면 내가 얼마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현대 기독교인들의 두 가지 비극이 있다면 하나는 말씀에 대한 무지이고, 또 하나는 말씀을 알아도 그 말씀을 주장하면서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시편 1199절에서 말씀하는 바와 같이 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고 주의 말씀을 내 마음속에 두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마지막으로 갈렙은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였다는 사실입니다.

12절에서 말씀하신 바와같이 갈렙은 자기가 아직은 힘이 있으니 헤브론 산지를 맡겨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하시면 거기에 있는 아낙자손이 크고 성읍이 크더라고 내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들을 쫓아낼 것입니다.라고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에서의 그 힘은 자기의 능력이 아닌 하나님의 힘입니다.

즉 갈렙의 낙관은 단순히 나는 아직 할수 있다는 그런 피상적인 자기 신념이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이라는 전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자기의 신뢰가 아닌 하나님능력에 대한 신뢰입니다.

 

기독교의 잠언은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가 아니라 하늘은 스스로를 도울 수 없다고 깨달은 사람을 돕는다는 것입니다.

즉 스스로를 도울 수 없음을 깨닫고 하나님앞에 나와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순간, 그분이 나의 강함이 되십니다.

 

링컨의 평생의 좌우명이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면...”입니다.

그래서 그는 늘 낙관주의자였습니다. 그의 삶 가운데 굉장한 역경속에서도, 위태로운 지경속에서도 그는 늘 웃음을 잃지 않았습니다.

링컨의 이 놀라운 낙관은 어디서 나온 것일까요?

그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내편에 계시기 때문이라고말했습니다.

 

이에 대해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나님이 내편이 될 수 있을까요?

링컨은 대답하기를 하나님이 당신 편에 어떻게 계실까를 생각하지 말고 당신이 하나님편에 서십시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신앙의 사람, 갈렙이 여호와를 온전히 쫓는 삶의 평가를 받을수 있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개인적이 결단,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드는 삶,

하나님의 능력을 신뢰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생애도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 좋겠습니다.

너는 여호와를 온전히 쫓았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