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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의 요람 신리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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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리포터

2014. 11. 10.

 

 

 

 

 

천주교의 요람 신리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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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느낌의 신리성지는 조선천주교회의 요람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지금거리에 있는 솔뫼성지가 더 유명하기는 하지만 신리성지도 괜찮은것 같습니다.
탁 트인 신리성지는 순교자들이 경작하던 농토와 그들의 자취가 그대로 남겨져 있습니다.

 

 

▲ 신리성지의 소녀

 

 성지개발이 본격화되고 지금은 십자가의 길, 생가, 기념성당, 묘지 휴게실같은것이 이곳에 있습니다.
제5대 조선교구장 다블뤼 주교가 거처하던 신리성지는 1845년 10월 강경 나바위에 첫 걸음을 내디딘 후
1866년 갈매못에서 순교하기까지 21년까지 조선에서 활동하였다고 합니다.

 

 

▲ 드 넓은 잔디밭

 

 천주교를 믿으면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듯한 느낌입니다.
이곳은 대부분 노출콘크리트로 만들어졌습니다. 신리는 1800년대 천주교 탄압기 때 가장 큰 교우 마을로 자리잡았으며
선교사들이 비밀스럽게 들어와서 머물던 곳이기도 했습니다.

 

 

▲ 사형선고받으심

 

 예수의 일생이 이곳에서 간단하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내포지방이 조선시대에서 가장 문화적 개방성이 높았다는 사실이 조금 의외입니다.

 

 

▲ 성지의 쉼터

 

관광객들이 쉴 수 있는 시설이 적잖게 이곳에 지어져 있습니다.
거더리에서 붙잡혀서 보령의 수영(갈매못 성지)에서 참수되었습니다. 갈매못 성지는 이전에 갔다와서 소개한 적이 있습니다.

 

 

▲ 박해후기 사적지

 

 여사울성지가 초기에 자리잡은 교회의 못자리였지만
신리성지는 박해 후기의 사적지입니다.

 

 

▲ 순교자가 많았던 곳

 

한 마을의 모든 주민이 천주교 신자였던 만큼 병인박해때 초토화되면서 이곳에는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처럼 변해버렸습니다.

순교자만 41명, 신리의 거더리에서 다블리주교, 위앵신부, 오메트르신부가 체포되었습니다.
사제들은 교우에게 피해가 갈까봐 대신해서 붙잡혀서 죽음을 당했습니다.

 

 

▲ 높은곳에서 낮은곳으로

 

 멀리 보이는 저 건물은 높은곳에서 낮은 곳으로 임하시라는
그런 의미의 건물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모든 주민이 천주교 신자


 신리 이곳 근처 마을에는 천주교 박해기 시절에는 400여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규모가 큰 마을이었는데
모든 주민이 천주교 신자였다고 합니다.  

 

 

 

▲ 토마스 성인 생가

 

 저기보이는 초가집은 손자선 토마스 성인의 생가입니다.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 다블뤼 안토니오 주교의 주교관이자 조선 교구청이기도 하죠.
현존하는 유일의 조선박해기의 주교관이 이곳에 있습니다.

 

 

충남 당진시 합덕읍 신리 62-3

041-363-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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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의 요람 신리성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