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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숨결을 간직한 수덕사 대웅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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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리포터

2015. 12. 22.

 

 

천년의 숨결을 간직한 수덕사 대웅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사람들을 만나다.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강미애' 님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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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불교 조계종 제7구 본사인 수덕사는 덕숭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한국 불교의 5대총림 (해인사, 송광사, 수덕사, 통도사, 백양사) 중의 하나입니다. 우리나라에서 오래된  대웅전은  고려시대의 불전으로  1962년에 국보 제 4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대웅전은 백제후기에 처음 건축한 건물로 현존하는 목조건물중에 봉정사의 극락전과 영주 부석사의 무량수전 다음으로 오래된 목조건축물입니다.
 
1937~1940년 수리했을 당시에 발견된 상량문의 묵서 명에 의하면 고려 충렬왕 34년 (1308년)에 재건축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  중의 하나입니다. 대웅전 앞에 있는 수덕사 3층 석탑은 신라 문무왕 5년에 건립하고 원효대사가 중수한 통일신라 시대의 양식을 한 고려초기의 석탑으로 추정됩니다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4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입니다. 앞면 3칸에는 모두 3짝 빗살문을 달았고 뒷면에는 양쪽 창을, 가운데에는 널문을 두었습니다. 대웅전 앞 뜰안에는  좌청룡 우백호의 풍수지리설에  따라 왼쪽에는 범종각이 있는 청련당과 오른쪽에는 스님이 거주하는 요사체인 백련당이  있습니다.
 

 

 


 대웅전은 백제 계통의 목조건축 양식을 이은 고려시대 건물로 특히 건물 측면엔 단청하지 않고 708년 된 나무결을 그대로 간직한 자연미와 조형미가 아름다운  목조건물입니다.  우아한 곡선과 가로선 세로선 대각선이 황금 비율로  세모와 네모를 빚고 있습니다. 대웅전의 양쪽 맞배지붕 사이를 이어주는 쇠는 지네를 닮아 지네 철이라고 하며 지네 철 밑에 서까래를 바치고  있는 11개의 도리 중에 가운데가 중종도리 양쪽이 상중 도리, 하중도리, 주심도리, 외 목도리가 있습니다.
 
이 건축미의 최고 백미는 우미량과 화반을 연결한 가구미로 종도리 밑에 양쪽 소스라창이 있고 그 안에 나비가 활짝 핀 모습의 화반이 있습니다. 화반 밑에 종보가 있고 종보 아래에  보를 바치고 있는 보하지가 있습니다. 종보 가운데 밑에 양쪽화반이 있고 큰 대들보 아래에 보를 바치고  있는 보하지가 상중도리, 중종도리, 하종도리가 우미량을 아름답게 곡선으로 연결합니다. 위의 장식들을 통해 기와의 힘을 분산시켜 주어 708년 동안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대웅전은 부처님을 모시고 예불을 드리는 곳으로 우측에는 약사여래좌상 좌측에는 아미타 부처님이 모셔져 있습니다. 덕숭산 495m에 자리잡은 수덕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 7교구 본사로 창건 기록은 정확하지 않으나 백제 법왕 원년9599)에 지명법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수덕사는 구한말에 경허스님이 선풍을 크게 일으키셨고 그의 제자 만공 스님은  조선시대 숭유억불정책으로 비구니 스님들이 공부할수 있는 선원이 없던 시대에 1930 년 국내 최초로 비구니 선원을 세워 여승들이 공부할수 있는  환경을 만드셨고 그 수계자 1호가 '수덕사의 여승' 노래 주인공으로 유명한 일엽 스님이십니다.
 

 


착시현상을 없애고 안정감을 주기 위해 세운 대웅전의 배흘림기둥. 708년 된 대웅전 배흘림기둥의 자연 그대로 겨자색의 나무결에서 느껴지는 색감과 질감은 고색창연합니다. 측면벽면과 노출된 나무기둥의 선 분할이 기학학적으로 치밀하고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하고 절제된  모습에서 고고함을 느낍니다.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가사에 나오는 아침 저녁 예불을 드릴 때 치는  수덕사의 쇠북입니다. " 인적 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속세에 두고 온 임 잊을 길 없어 법당에 촛불 켜고 홀로 울적에 아~ 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
 자유연애론과 신정조론을 주장한 우리나라 최초 여성운동가 본명 김원주 일엽 스님은 1960년대 중반에 베스트 셀러가 되었던 '청춘을 불사르고"  를 쓴 저자입니다. 한때 스캔달을 일으켰던 춘원 이광수가  김원주의 아름다운 필체에 반해  '일엽('一葉)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합니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우리 나라 최초의 서양 여류화가이자 문학가인 나혜석과 일본 공연에서 마지막으로 '사의찬미'를 부르고 현해탄을 건널 때 사랑하는 애인과 함께 바닷물에 몸을 던진 오폐라 가수 윤심덕, 그리고 우리나라 최초 외국 유학생이자 문학가인 일엽스님 김원주, 위 여성들은 남존여비 시대에도 사랑에 목숨을 걸었고 불꽃처럼 살았던 시대를 앞서간 여성들입니다.
 

 


법장스님께서 재건축하신 각종 세미나와 실내 행사가 열리는 황화루입니다.

황하루 지하에는 불교 관련 유물을 전시한 '성보박물관'이 있습니다. 

 이곳에는 궁중에서 전해져 내려오던 고려시대 공민왕 재위시에 만든 가야금을

 고종의 둘째 아들 의친왕 이강이 만공스님께 선물한 실제 가야금을 볼 수 있습니다.

 

 

 

  
위 거문고는 고려말 공민왕에서 조선후기 최고의 수집가 이조묵을 거쳐, 구한말 의친왕, 수덕사 만공스님 유물 거문고로 수덕사의 성보박물관에 있습니다. 거문고 뒷면에는 조선 후기의 대감 식안이었던 이조묵이 1837년에 초서로 쓴 찬무과 만공스님의 게송이 새겨져 있습니다. 찬문에는 이 거문고가 본래 공민왕 소장품이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공민왕이 죽은 노국공주를 그리워하며 연주할 때마다 향기가 나도록 거문고 끝 부부분에 매단 향낭주머니입니다.
 

 

 

 

 


거북이 등껍질을 말려 붙인 대모는 술대를 내리칠때 나는 잡음을 방지하거나 거문고 머리부분을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예술적 감성이 남달랐던 공민왕은 신령한 오동나무를 구해다가 거문고를 만들고 노국공주가 죽은 후에는 매일 이 거문고를 뜯으며 슬픔을 달랬다고 합니다. 공민왕이 시해당하고 길재의 손에 보관되어 오다가 길재가 죽자 조선왕조의 왕궁으로 모셔져 보물로 전해져 내려왔습니다. 특별한 날에는 흥선대원군이 악사에게 이 거문고를 타게 했다는 일화도 있고 1895년 명성왕후 시해사건에는 피에 흥건히 젖은 체로 시체옆에 있었다고 합니다.

이후 운현궁으로 옮겨져 의친왕이 소장하다가 불교에 귀의 하겠다는 신표로 만공스님이 의친왕에게 거문고를 받았습니다. 만공스님은 그 답례로 경허스님에게서 물려받은 염주를 주었다고 전해집니다. 600년을 궁중에서 살아온 신령한 거문고를 받은 만공스님은 휘영청 달밝은 밤이면 술한잔 얼큰하게 취하여 금선동 바위위 소림초당에 갱진교에 앉아 거문고를  뜯으며 놀았다고 합니다. 풍류를 아는 만공스님은 불교에서 금기시하는 갖은 기행에도 불구하고 만해 한용운, 김좌진 장군과 교유했다고 전해집니다.
 

 

 

 


 수덕사 황하루 성보박물관에 보관된 만공스님이 평생 입었던 옷을 보며  비록 의복은 남루 했지만,

종소리를 들으며 깨달음을 얻고 바람처럼 물처럼 살다간 만공스님은 거문고를 타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수덕사의 일주문과 금강문을 지나면 사천왕 편액이 있고  비선도와 이절을 지키는 역사들의 그림이 있으며 네 명의 사천왕상들이 있는 천장은 화려한  단청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천왕문에는 수행자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인간의 선악을 관찰하고 불법수호신들로  '지국천왕, 광목천왕, 증장천왕, 다몽천왕의 사천왕상으로 동서남북을 지키는 불국정토의 신들입니다. 남쪽을 지키는 증장천왕은 오른손에 용을 움켜쥐고 왼손에는 여의주를 쥐고 있고  삼지창과 보탑을 들고 서쪽을 지키는 광목천왕이 있습니다. 
 
 왼손은 비파를 잡고 오른손은 줄을 팅기는 북쪽을 지키는 다문천왕이 있습니다. 동쪽을 지키는 지국천왕은 손에 보금을 쥐고 있습니다.

 

 

 

 


아이들과 어울리며 넉넉한 미소를 짓고 있는 포대 화상은 명나라시대 불교도로서 서달이라는 승려습니다. 포대화상은 생전에 뚱뚱하고 웃는 얼굴로 지팡이 끝에 항상 포대자루를 매달고 다녀 포대화상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항상 웃는 동안의 얼굴로 보는 이로 하여금 항상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고 아이들이 늘 뒤따라 다녔습니다. 자루에는 먹을 것들을 넣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었고 바람처럼 이마을 저마을을 돌아다니며 차별없이 사람들을 대하고 자연과 더불어 살았다고 합니다
 

 

 

 


 7층석탑은 1931년 만공대선사께서 건립한 석탑으로 사각 테두리가 기단부 없이 바로 옥개석과 탑신으로 되어 있습니다.

기단면석 밖으로 두드러지게 우주를 표현하였고 면석에는 두께 10cm 정도의 삭가 테두리가  돌려져 있습니다.

 옛사람들에 얽힌 역사의 무수한 이야기를  간직한 수덕사를 되돌아보면

인간의 삶은 발밑에서 뒹구는 낙엽처럼 허무하지만, 그 숨결은 영원함을 느끼게 하는 계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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