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사진1세대 유·보·근 遺作展' 관람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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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리포터

2021. 7. 7.

'공주사진1세대 유·보·근 遺作展' 관람기

 


▲ 2021년 6월 말에 찍은 공산성 '금서루' 전경
▲ 1991년 복원된 공산성 서문(지금의 금서루)과 서문 입구(출처 공주문화원향토문화연구소 『공주의 맥』)
▲ 故 유보근 사진가가 촬영한 연대 미상의 금서루 전경

얼만 전, 사적 제12호인 공주 공산성에 올랐다가 갑자기 비가 쏟아져 제대로 돌아보지 못하고 내려온 일이 있다. 공산성 서문에 해당하는 '금서루'에 잠시 머문 게 전부라 아쉬움이 많이 남아 있다.

공산성을 둘러본 건 6월 17일(목)~ 6월 21일(월), 공주문화원에서 열린 '공주사진1세대 유·보·근 遺作展'에 다녀온 지 며칠 되지 않은 때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나누는 흥미로운 대화를 듣고 불쑥 현장에 다녀오고 싶었다.

▲ 공주사진 1세대 '유보근 遺作展'이 공주문화원에서 개최됐다.

2019년, 타인의 손에 맡겨져 있던 공주 사진 1세대 '유보근(兪輔根)' 사진가의 유품이 유족들 품으로 다시 돌아왔다.

사진가 유보근은 한국사진작가협회 공주지부 창립에 혁혁한 공이 있고, 공주지역 사진인구 확산에 기여한 바가 큰 분으로 알려져 있다.

▲ 무령왕릉 유물 사진(유보근 遺作)

특히 공주시의 의뢰로 무령왕릉 발굴 현장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업적을 남겨 '발굴 역사의 증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유보근 유작전(遺作展)의 전시·출판·기획한 사진작가 '김혜식'은「... 따라서 지금 교과서에 발굴 당시의 사진이 실렸다면 그 사진은 모두 유보근 선생님의 자긍이란 걸 증명한다. 그러므로 기록으로서의 사진은 사명감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며 공주에 사진이 남겨진 사진기록은 유보근 작가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서문에 밝히고 있다.

▲왼쪽부터 공주 고마나루, 공산성(쌍수정), 공주중동성당(유보근 遺作)

유작전에는 세계문화유산인 송산리고분군과 공산성을 비롯해 공주의 고마나루, 계룡산, 중동성당, 도예촌 학봉리, 수원사지 등의 유적지와 각지의 명소를 담은 작품들이 전시돼 있었다.

▲ 故 유보근 사진가와 어린 자녀들이 앵산공원(현 3.1 중앙공원) 팔각정 앞에서 찍은 사진이다.

기록사진의 가치를 여실히 보여준 가족사진도 여러 점 보였다. 지금은 '3.1 중앙공원'으로 명칭이 바뀐 옛 앵산공원은 일제강점기 공주에 거주한 일본인들이 벚꽃놀이를 즐기던 장소였다. 지금은 행방이 묘연해진 팔각정을 배경으로 찍은 가족사진도 그중 하나다.

▲ 공산성 진남루와 쌍수정 (유보근 遺作)

눈에 띄는 특징으로 공주 공산성과 관련된 작품이 유독 많다는 점도 꼽을 수 있겠다.

1963년 1월 21일에 사적 제12호로 지정되면서 국가적 관심이 모아졌지만, 그 이전까지 불리던 '산성공원'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 '공원'으로서 주로 기능하던 장소였기에 유보근 사진가의 가족사진 대부분도 공산성을 배경지로 두고 있었다.

나목만 우두커니 서 있는 공산성 진남루와 쌍수정 사진도 인상적이었다. 꽃 피는 봄도, 녹음 짙은 여름도, 단풍 든 가을도, 눈 나린 겨울날도 아니었기에 얼마든지 조작이 가능한데도 정직한 기록물로서의 사진을 남기고자 했던 작가의 의지를 엿보게 했다.

▲ 1960년 10월, 충남도고적현장회 발간, 충청도 문화재 도록에 실린 사진이다.( 출처 공주문화원향토문화연구소 『공주의 맥』)
▲ 진남루(출처 공주대학교 공주학연구원 「졸업앨범 공주를 품다」)

공주 시가지로 통하는 남쪽 관문이었던 '진남루'는 가장 많은 변화를 맞은 곳이다. 조선시대에 개축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으며, 1933년에는 와편과 초석만 남기고 사적이 사라지기도 했단다. 1949년 '공주고분보존회'의 노력과 군민의 협조로 재건되었다가 1971년도에 다시 해체 복원되는 수난을 겪었다.

▲ 1960년 10월, 충남도고적현장회 발간, 충청도 문화재 도록에 실린 사진이다.( 출처 공주문화원향토문화연구소 『공주의 맥』)

쌍수정 또한 많은 변화를 거쳐 오늘날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월당 윤여헌 선생은 그의 저서 『공주 이야기』에 인조 임금이 헌괵례(적장, 즉 난을 일으킨 이괄의 머리를 왕 앞에 바치는 의식)를 바치는 의식을 행한 것을 기념하여 1735년 관찰사 이수항이 창건한 것으로 기술하고 있다.

해방 후 1947년 '공주읍보승회' 주관으로 낡고 헌 것을 다시 손대 고쳤으며, 1970년에 허물어진 것을 보수하고 신축했다고 한다. 옛 사진 자료에서 보듯 10개의 기둥 중 반이 돌기둥이었으나, 현재의 건물은 나무로 된 기둥뿐이다.

▲ 눈 내린 공북루(유보근 遺作) 앞으로 3개의 나루터가 있었으나, 인근에 신작로가 생기면서 나루터 수도 줄고 자리도 이동하게 된다.
▲ 신동아 2005년 1월 별책부록에 실린 100년 전, 산성 성안 풍경으로 원 안이 중군지역이다,(출처 장길수『공주의 땅이름 이야기』 )

1602년, 충청감영이 충주에서 공주 공산성 성내리로 옮겨왔다가 자리가 협소하여 읍내로 이전하게 되고, 조선말까지 중군이 그곳에 주둔한다. 장길수 향토연구가는 그의 저서에서 중군 해체 후 1960~1970년대의 전형적인 농촌 모습을 보이는 공산성 성안마을 사진을 한 점 게재했다.

▲ 졸업 앨범 속 성안마을(출처 공주대학교 공주학연구원 「졸업앨범 공주를 품다」)
▲ 공산성 성안마을 (유보근 遺作)

간간히 지붕을 개량한 주택도 보이나, 초가지붕이 대부분인 성안마을의 쇠퇴한 모습은 공주대학교 공주학연구원의 자료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유보근 遺作展에 전시된 공북루 일대를 찍은 사진에 성안마을의 일부가 보이는데, 지붕을 개량한 주택이 많이 포착되는 것으로 보아 공주학연구원의 자료보다는 후대에 촬영한 사진으로 여겨진다. 유보근  遺作展에서 가장 아쉽고 안타까웠던 점이다. 유족들의 說을 빌리면 늘 기록하는 모습을 보이셨다는데, 정확한 촬영 날짜 등을 적은 소중한 자료 등등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알 수가 없다고 한다. 

「공주 사진 1세대 유·보·근 遺作展」을 관람하고 변모하는 공주 공산성을 사진 자료로 확인하면서 사진기 소장, 촬영, 인화 과정이 용이한 시대를 사는 한 사람으로서 사진 한 장의 가치와 촬영에 임하는 자세에 대해 새삼 재고하게 된다.

그 때문에 본 리포터의 임의적인 편집으로 원작에 누를 끼치는 것은 아닌가 염려스러우나, 공주학연구원에서 유보근 사진가의 공로와 기록물로서의 가치를 인정하여 사진과 필름 상당 부분을 아카이브로 기증받아 보관 중이라 하니 관심 있는 분들은 자료가 공개되는 대로 꼭 열람해 보시길 권한다.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엥선생 깡언니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공주대 공주학 연구원 >

- 소재 : 충남 공주시 신관동 1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