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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는 탄생 설화와 함께하는 충남 예산 덕숭산 수덕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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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리포터

2021. 10. 4.

재밌는 탄생 설화와 함께하는

충남 예산 덕숭산 수덕사 여행


이제는 긴팔 겉옷 하나쯤 걸쳐야 하는 계절이 왔다.
가끔 코끝이 간지러워 재채기가 나오는 걸 보면 확실히 우리 곁에 가을이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오늘은 고즈넉한 충남 예산 수덕사를 소개한다.
너른 들판 사이와 꼬불꼬불한 산길이 이어진 예산의 한적한 도로를 달려 수덕사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여유로운 공간에 차를 세우고 카메라 등을 챙겨 길을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절에 들어가기 전 각종 기념품과 특산품, 식당 등이 들어선 상가지역이 있다.
충남 여행으로 많은 분들이 찾는 곳이기에 상가지역은 시내 다운타운의 거리처럼 북적이고 있었다.

첫 번째 문인 선문을 지나 약간의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을 오른다.
하늘을 덮은 나무숲 사이의 길은 상쾌함과 시원함을 안겨주어 한 발 한 발 내딛는 발걸음이 가볍다.
나는 느릿느릿 여유롭게 숲길을 오른다.
잠시 후 일주문을 도착했다.
1960년 세워진 일주문을 지나면 드디어 예산 수덕사 경내로 들어서는 것이다.

일주문 옆으로는 돌다리가 놓여있고, 그 다리 건너에는 선미술관과 수덕여관이 있다.

수덕사 창건에는 두 가지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첫 번째는 덕산황토지에 실려있는 내용이다.
홍주 마을에 훌륭한 가문에 수덕도령이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진 후 상사병에 걸린다.
그 낭자는 건너편 마을의 덩숭낭자였고 수차례 청혼을 했지만 거절당한다.
끈질긴 청혼으로 결국 허락을 받아내지만 집 근처에 절을 지어달라는 요청을 한다.
수덕도령은 절을 짓기 시작했지만 탐욕이 있어 절은 완성을 앞두고 불이 났다.
낭자를 생각하고 절을 다시 짓지만 다시 불이 나고, 세 번째는 부처님만을 생각하며 절을 지어 완성한다.
덕숭낭자는 하는 수 없이 수덕도령과 결혼했으나 수덕도령이 손도 못 대게 한다.
수덕도령이 억지로 덕숭낭자를 끌어안자 뇌성벽력이 일고 덕숭낭자는 사라지고 버선만 손에 쥐어져 있다.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버선 모양의 하얀 꽃이 피었다고 한다.
이 꽃이 버선꽃(물단초)이다.
수덕사가 있는 산의 이름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 덕숭산이 되었다.
두 번째 창건 설화는 아래 관음상 바위에서 소개한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길을 오르니 금강문이다.
불법을 수호하기 위해 두 명의 금강역사를 봉안한 2000년 건립되었다고 한다.

금강문을 지나 이어진 길을 오르니 사천왕문에 도착한다.
수미산의 4주를 수호하는 사천왕상이 안치되어 있어 악귀를 쫓아내고 사찰을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역할을 한다.
무서운 표정의 사천왕상을 보고 있노라면 내가 무슨 잘못을 한게 있나 싶어 조금은 마음이 오그라든다.
불법을 수호하는 이곳의 사천왕문은 1999년에 건립되었다.

1992년에 건립된 황하정루이다.
대웅전 앞에 놓인 전위 누각인 황하정루는 부처님의 정신이 강물처럼 흐른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사천왕문과 황하정루 사이에는 칠층 석탑과 코끼리 석등, 포대화상 등이 있다.
1930년에 건립되어 충북문화재자료 제181호로 지정된 칠층석탑이다.

오르막 경사로와 계단이 이어지면서 드디어 대웅전 앞 넓은 마당에 올라섰다.
백제에 지어진 12개의 사찰 중 유일하게 남아있는 수덕사는 충남 일대 5개 지역의 80여 개 사찰을 관할하고 있다.

범종각이다.
1973년 이곳에서 직접 주조한 무게 6,500근, 높이 2.7m, 둘레 4.5m, 청동제 대종이 있는데, 한번 타종을 하면 2분 30초간 울리며 30리 밖에서도 들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 크기라고 한다.
범종은 중생을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하고, 깨달음을 얻도록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충남 문화재자료 제103호로 지정된 대웅전 앞 삼층석탑이다.
고려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통일신라시대 말기의 양식을 모방했다고 한다.

국보 제49호로 지정된 예산 수덕사 대웅전이다.
백제 양식과 고려 시대의 목조 기술로 충렬왕 34(1308)년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역사에서 목조건축물로 중요한 사료가 되어주고 있다.
이곳에 모셔진 목조 삼존불상은 1938년 남원 귀정사에서 이운한 석가모니불과 약사불, 아미타불로 석가모니불과 연화대좌, 육각수미단은 일괄로 보물 제1381호로 지정되어 있다.
삼존불 뒤로는 대형 괘불함에 노사나불 괘불도(보물 제1263호)가 모셔져 있다.
괘불도의 크기는 가로 7.27m, 세로 10.59m로 큰 법회나 의식이 있을 때 대웅전 앞에 걸어놓는다.

앞서 소개한 첫 번째 설화이 이어 두 번째 설화를 소개한다.
백제시대에 창건한 수덕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 까이 불사금 조달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던 중 어느 날 묘령의 여인이 찾아와 불사를 돕기 위해 공양주를 하겠다고 하였다.
여인의 미모가 빼어나 수덕각시라는 불리며 소문이 퍼져, 이 여인을 보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고 한다.
신라의 대부호 재상 아들인 정혜라는 사람은 수덕각시에게 청혼을 하였는데, 수덕각시는 불사가 원만성취되면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정혜는 자신의 가사를 보태 10년 걸릴 불사를 3년 만에 끝내고 낙성식을 한다.
낙성식 중 정혜는 수덕각시에게 떠날 것을 독촉했고, 수덕각시는 구정물 묻은 옷을 갈아입겠다고 옆방으로 들어간 뒤 기척이 없어 청년이 들어가려 하니 여인이 다른 방으로 가려 하고 여인을 잡으려는 순간 바위가 갈라지고 버선 한 짝만 남기고 사라졌다.
봄이 되면 갈라진 바위에서 버선꽃이 피어난다고 한다.
이 여인의 이름은 수덕으로 이후 수덕사라 불리게 되었다.
청년은 무상함을 느껴 산마루에 절을 지어 정혜사라 불렀다. 
이 바위는 모든 소원이 성취된다는 소문이 퍼져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고 있고, 관음상을 봉조되었다.

수덕사는 불자와 충남 여행으로 방문한 여행객들로 분주하다.
나는 너른 마당 한쪽의 벤치에서 산사의 향기를 맡으며 잠시 쉬어간다.
나는 대웅전을 출발해 황하정루, 사천왕문, 금강문, 일주문, 산문을 지나 처음 출발지였던 주차장까지 내려왔다.
낭자과 도령에 관련된 설화가 있어 더 흥미롭게 예산 수덕사를 돌아볼 수 있었다.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호우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예산 수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