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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재고택의 겨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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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리포터

2022. 1. 19.

명재고택의 겨울 풍경


논산을 떠올린다. 43년 전 고향에서 가까운 강릉역에서 입영 열차를 타고 밤새 달려 도착한 연무대역.
육군 훈련소 정문을 들어가면서 ‘이제, 내 의지대로 어디론가 갈 수가 없다’라는 사실이 나를 우울하게 했었던 기억.
대기병 시절 동료들이 사제담배를 사기 위해 부모님들이 쥐여주셨을 큰 금액의 돈을 담 밖으로 던지면 담배 한 갑만 안으로 던지고 거스름돈을 주지 않고 도망가던 아이들.
낄낄거리며 사라지던 웃음소리와 그 여름내 군기 세기로 유명한 30연대에서 훈련을 받으면서 뒹굴던 야외 훈련장의 누런 진흙 벌판, 이런 것들이다. 

아마도 대한민국에서 논산훈련소로 입대한 남자들에게 논산은 그다지 썩 좋은 곳으로 기억하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일까 한 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살면서 몇 해 전 입대하는 조카를 훈련소로 데려다주러 한 번 와보았을 뿐, 갈 곳 많고 볼 것 많은 논산을 애써 외면하다가 많은 것이 사라진 이 겨울에야 길을 나선다.
 
23번 국도를 타고 계룡을 지나면 나타나는 논산시 노성면 일대에는 호서삼대족이라 불릴 만큼 충청도를 대표하는 양반 가문인 파평윤씨들이 터를 잡고 살면서 기라성 같은 인물들을 배출했던 유서와 전통이 살아 있는 곳이다.
종학당, 선영과 영당, 종가 고택 등이 있어 조선 시대 호서 지역 양반들의 유교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곳 중 사진 촬영 명소로 알려진 명재고택을 찾았다.
 
내가 파평윤씨를 생각하면 군대 시절 호랑이보다도 무섭다는 바로 위 고참이었던 윤창렬이 떠오른다. 생각하는 것이 비슷해 틈만 나면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었다. 그는 파평윤씨 가문임을 자랑스러워했다. 좋은 목소리로 노래를 잘 불러 훈련 중이거나 작업 중이거나 휴식 시간이 되면 가끔 불려 나와 ‘노래 일발 발사’를 하게 되면 가곡이나 가요나 가리지 않고 멋들어지게 노래를 불렀었다. 1979년 늦가을 우리 중대가 머물던 비무장 지대에서 그가 불렀던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깊은 계곡 양지 녘에”로 시작하는 <비목>은 지금도 눈 감으면 아련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명재고택은 조선 시대 숙종 때 논산 출신의 학자 명재 윤증이 1709년에 지어 칩거했던 고택으로 윤증은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과거를 보지 않고 후학을 양성하는 데 전념하였다고 한다. 지금이나 예나 이렇게 덕망있는 사람을 가만히 두지 않았던 모양이다. 윤증의 학덕과 덕망을 높이 산 조정에서 그를 열여덟 차례나 불렀고, 말년에 우의정으로 천거되기도 했다고 한다.
 
정면에서 바라보니 노성산 아래 따뜻한 볕이 들어오는 남쪽을 ‘ㄷ’ 자의 안채와 ‘ㅡ’ 자의 사랑채가 안정적으로 배치되어 있고 담과 솟을대문이 없어 편안한 느낌이다. 앞뜰 연못 위 좁은 공간의 굵은 배롱나무가 연륜을 말해주는 듯하다.

▲ 명재고택

명재고택이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진 것은 사랑채 옆 마당에 가지런히 놓인 수백 개의 장 항아리가 오래된 고택과 잘 어울리면서 이곳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들이 한몫했을 것 같다. 아주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 커다란 항아리에 담긴 장들은 불어오는 바람과 종일 들어오는 햇볕과 흐르는 시간이 풍부한 맛을 내게 할 것 같다.

▲ 명재고택과 항아리

많은 것이 사라진 겨울이지만, 그럼에도 찾아온 사람들이 사랑채 마루에 앉아 따사로운 햇볕은 받으며 문화해설사가 들여주는 그 날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이들이 떠나간 자리에 앉아 배롱나무에 붉은 꽃이 미처 다 지기 전에, 저 굵은 느티나무가 예쁜 옷 갈아입고 눈처럼 비처럼 그 잎을 다 떨어져 내리기 전에 시간을 내지 못한 여행자는 자신을 책망하며 사랑채 오래된 나무 기둥에 기대어 눈을 감아 본다.

▲ 명재고택 사랑채 마루에서 해설을 듣는 사람들

이 명재고택 양편에는 노성향교와 노성궐리사가 있어 조선 시대 양반들이 후학들의 정신문화와 유교적 사회 이념을 실천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음을 짐작할 수 있다. 향교의 문이 닫혀있어 담 너머로 본 기단 위에 전면 세 칸짜리 당당한 명륜당을 보며 지금으로부터 삼백여 년 전 유생들이 모여 낭랑한 목소리로 책 읽었던 모습을 떠올려본다. 명륜당 위 대성전에는 공자와 맹자를 비롯한 5성과 승조 2현 그리고 우리나라의 18현 등 모두 5성 20현의 위패를 모시고 매년 음력 2월과 8월에 재향 한다고 한다.

▲ 노성향교 정문
▲ 노성향교 명륜당

명재고택 뒤로는 노성산 중턱 전망대와 노성궐리사를 거쳐 다시 명재고택으로 돌아오는 ‘명재고택 사색의 길’이라는 이름을 붙인 걷는 길을 조성해 놓아 걸어본다.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는 길을 걸어 도착한 노성궐리사 돌담 지붕 기와 틈 사이로 이름을 알 수 없는 푸른 풀들이 모든 것이 사라진 계절에도 용케 살아남았다. 아직 겨울은 많이 남았고 눈이 내리는 날도 있을 텐데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노성향교와 마찬가지로 문이 굳게 닫혀있는 궐리사는 공자의 유상을 봉안한 영당으로 승조 5현의 영상이 보관되어 있으며 공자의 영정과 공자상을 모셔져 있다고 한다. 궐리사 왼쪽 마당에는 2009년에 중국의 공자 후손들이 기증했다는 공자상을 비롯하여 맹자·증자·안자·자사 등 5성상이 서 있다.

▲ 노성궐리사 정문
▲ 노성궐리사 공자상

이렇게 한 바퀴 돌아보면서 우리 조상들은 전국 330여 군현마다 반드시 향교를 세워 공자를 모신 대성전에서 제를 지내고 명륜당에서 학생을 가르치면서 마음을 갈고 닦는 고고한 선비정신을 배우게 하였음에도 오늘날 무엇이 ‘물질적 행복’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나라가 되었을까, 돌아보게 된다.   

 
- 명재고택(국가민속문화재 제190호) 충남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
  이용안내 : 동절기 10시-16시 / 하절기 : 10시-17시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설산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논산 명재고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