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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공부도 할 수 있는 보령 성주사지 천년역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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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민리포터

2022. 5. 25.

역사 공부도 할 수 있는 보령 성주사지 천년역사관


옛 영광은 어디로 갔을까.

드넓은 잔디만이 우리를 반기는 이곳은 한때는 수도승만 하더라도
2,000여 명에 달할 정도로 꽤 규모가 큰 사찰이 있었던 곳이다.
물론 현재는 그 터와 몇 개의 유물만이 '옛날엔 그랬구나'라고 어림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드넓은 초록에 눈길이 가서 가던 길을 멈췄다.

눈을 감고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더 많은 것들이 보인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아쉽다. 성주사지에 대해 궁금하다면
그 곁에 자리한 성주사지 천년역사관으로 가보자.

지상 1층으로 구성된 천년역사관은 올해 3월에 문을 연 따끈따끈한 홍보관이다.
천년역사관에는 대낭혜화상 무염의 이야기, 성주사 가람의 변천사, 비석에 새겨진 성주사지 등
성주사의 역사와 발굴 유물이 전시된 홍보실과 영상체험실 그리고 어린이 전용 체험관이 있다.

"설명 좀 들을 수 있을까요?" 몇 명이 모여 문화 해설사님에게 갔다.
그 덕분에 뜻하지 않게 성주사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성주사지 천년 역사관
- 보령시 성주면 심원계곡로 93 (성주사지 옆)
- 관람 시설: 홍보관, 영상체험실, 어린이전용체험실

무염국사가 성주사 주지로 지냈을 당시 성주사는 불전 80칸, 수각 7칸, 고사 50여 칸 등
1,000여 칸에 이르는 매우 큰 규모였다고 한다.
앞서 설명했듯이 성주사는 한때는 2,000여 명의 승려가 머물렀던 대사찰이다.
백제 땐 오합사라 불렸던 성주사는통일신라시대 때 무염대사가 중창한 사찰로
다른 통일신라 사찰과 달리 평지에 자리한 '가람'의 형식을 택한 사찰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성주사는 '성인이 거주하는 사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성인은 신라 말기 때만 하더라도 이 사찰을 중창한 무염대사를 일컬었다.

성주사지에 대해 알 수 있는 전시뿐만 아니라 재미까지 더할 수 있는 꽤 다양한 시설이 있었다.
이 역사관은 6월 말까지 무료 관람이 가능하다. 월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고
하절기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그리고 동절기엔 오전 9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운영되며,
6월이 지난 후에는 성인 1인당 2,000원의 입장료가 생긴다고 한다. 이왕이면 지금 가보면 좋은 곳!

성주사지로 나와보자. 그 중앙을 지키고 있는 이 탑은 국보 제8호로 지정된 낭혜화상탑비다.
비석이란 고인의 사적을 칭송하여 이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새겨 넣은 돌을 말하는데
국보로 지정된 비석 중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는 통일신라 말 승려 낭혜의 탑비다.
이 탑에는 낭혜화상 무염의 행적을 무려 5천여자에 달하는 장문으로 적혀 있다고 한다.

국보 제8호인 낭혜화상탑비는 신라의 대문장가로 알려져 있는 최치원이 글을 쓴
4개의 비문 중 하나다. 더 정확히 따지자면 최치원이 글을 짓고
글씨는 그의 사촌인 최인곤이 썼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이 비석은 높이 4.55m로 통일신라 비석 중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며,
머릿돌과 받침돌에서도 뛰어난 조형미를 볼 수 있다.
실물을 보기 전에 천년 역사관에서 공부하고 가시면 더 눈에 들어올 것이다.

우연히 찾은 성주사지와 천년역사관.

자세히 들여다보면 수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국보가 이렇게 넓은 절 터에 자리하고 있었다니!
아는 만큼 더 자세히 볼 수 있는 법!

이번 주말엔 역사 공부도 할 수 있는
성주사지 천년역사관으로 떠나볼까?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봄비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 보령 성주사지 천년역사관 >